[김연수] 질투, 여자, 본다는 것...

2011/07/27 00:07

나는 여름감기로 한참을 고생하고 나서 며칠동안 사무실에서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
과장이 여름휴가를 간 덕분에 나의 나태함이 되살아 났다.
그러나 밀려있는 사건 때문에 마음의 조급함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나의 업무가 지루하고 형편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행정심판은 참으로 무미건조한 일이다.
연민이나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 '인정사실'과 '판단'을 쓰지 못하고 사건은 뒤죽박죽 된다.
무미건조함과 냉정함이 같은 뜻일까.
아직 나는 나의 일에 보람이나 긍지 따위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어제 밤에 나는 동료들과 잔득 술을 먹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친구에게 전화해서 한참을 울었다.
나의 삶이 부끄럽다고 말한 것 같다. 나의 모습에 내가 서러웠나 보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지각을 면하기 위해 급하게 걸아가다가 안경이 뿌옇게 흐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어제 흘린 눈물의 흔적이었다.

 

요즘 하루키의 소설을 대충 마무리하고 후배의 추천으로 김연수의 소설을 읽고 있다.


닭고기와 여자

- 너는 닭고기하고 여자 중에 뭐가 더 좋냐?
- 당연히 여자가 좋지, 임마.
-그럼 어떻게 한 여자보다 닭고기에 대한 사랑이 더 오래가냐? 난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김연수, 2003, [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51쪽)

 

남자의 질투(...이거 생각보다 무섭다.)

광수의 얼굴이 금방 확 달아올랐다. 원래 술이 약하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 토마토보다도 더 시뻘개진 그 얼굴을 설명하기에는 곤란한 점이 많았다. 그건 아름다운 여자를 자신만이 소유했다고 믿는 모든 남자들이 두툼한 지갑과 함께 늘 지니고 다녀야만 하는 감정인, 질투심 때문이었다.
(김연수, 2003, [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74쪽)

 

질투란 숙주가 필요한 바이러스와 비슷하다. 질투란 독립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랑에 딸린 감정이다. 주전선수가 아니라 후보선수라 사랑이 갈 때까지 숨을 헐떡거리면 질투가 교체선수로 투입된다. 질투가 없다면 경기는 거기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13세기 사람 앙드레 르 샤플랭은 "질투하지 않는 자는 사랑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했다. 자신들의 사랑을 충분히 확인한 사람들 중에는 급기야 질투로 사랑을 확인하려는 욕망을 느끼는 부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처음 만난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자기보다 잘생긴 사람을 만나서 질투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를 위해서는 시기심이라는 단어가 준비돼 있다. 그런 점에서 어휘력이 부족하면 세상사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곤란이 따른다.
(김연수, 2003, [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103-104쪽)

 

쓰여지지 않는 책

얼마 전에 녹음한 책에 보니까 아프리카에서는 노인이 한 명 죽을 때마다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썼습디다.
 (김연수, 2009, ' 달로 간 코미디언', [세계의 끝 여자친구], 문학동네, 268쪽)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내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내가 마치 거기에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마주 앉아 있어도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한법은 몹시 추운 겨울날 목도리를 두르고 밖에 나간 적이 있어요. 내가 지팡이을 두들기고 지나가니까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죠.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불어대던지. 그때 어떤 아줌마가 나한테 '어차피 앞도 안 보이는데 그냥 목도리로 얼굴을 다 감아버리지, 왜 목만 가리느냐'고 묻습디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나는 앞을 볼 수 없으니까. 그 말은 어차피 남들이 나를 볼 수 없으니까, 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내 존재 자체가 사려져요. 시각장애의 핵심은 내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보여져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연수, 2009, ' 달로 간 코미디언', [세계의 끝 여자친구], 문학동네,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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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나서...

2011/07/16 00:26
나는 나의 자유가 좋다. 무한한 자유는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고 즐기는 자에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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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선생님, 그리고 "지식"의 한계 
 

출처 : [박노자의 글방] 만감: 일기장 2011/07/07 10:28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36038 
 
 

이제 곧 200일을 맞을지도 모를 김진숙 지도위원의 크레인 고공농성을 지켜보면서 늘 드는 생각 하나 있습니다. 생각이나 정서를 십분 공유해도 “행동”을 김진숙 선생님처럼 하지 못하고 있는 저 같은 사람은 과연 의미 있는 생을 사는가 라는 부분에 대한 회의입니다.
 
저의 조상 대다수를 길러낸 유대교의 문화도 그렇고 한반도 문화도 그렇지만 대개 “배움”에 대한 거의 절대적이다 싶은 가치를 둡니다. 1970년대의 동일방직 여공들의 외침을 기억합니까? “우리는 배우지 못했지만, 똥을 먹고 살 수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배우지 못했지만”이라는 전제입니다. 개인 의지의 문제도 아니고 엄격히 사회적 환경의 문제일 뿐이지만, “배우지 못한 사람”이 애당초부터 한 수를 접고 “배운 사람들”이 지배하는 이 사회를 대하게 돼 있습니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고급 관료, 기업 소유주와 임원들의 대다수는 국내외 “명문대”의 화려한 학위를 지니고 있으며, 그들을 지성적으로 뒷받침해주고 보필해주는 전임직 교수 집단 중에서는 역시 약 40%가 화려한 “외국산 학위”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지배자들이 가장 기대는 SKY의 상경, 사회 계열의 교수 집단 같으면 “명문 중 명문”의 미국 대학에서 “간판”을 따고 유창한 내지어로 무장한 사람들의 비율은 아예 80-90%입니다 (예컨대 서울대 경영대는 89% 정도 됩니다). 개화기나 박정희 시대의 구호대로 “지식은 국력”이라면, 한국은 벌써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될 만도 합니다. 식민지 모국의 “인증서”가 붙은 지식의 보유와 지배/통치 관계가 정확하게 겹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상전들이 “검증된” 지식을 확고한 지배 명분이자 매우 유용한 지배 도구로 삼지만, 백성들도 이 체제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보려고 빚을 내서라도 아이들에게 절망적으로 내지어를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일제말기에는 조선인 중에서는 그 당시의 내지어이었던 일본어의 능통자는 약 15%이었지만, 지금 같아도 직접적 식민 통치없이도, “간접 통치”의 상황에서도 거의 그 정도로 새로운 내지어인 영어의 능통자가 늘어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지배체제가 요구하는) 지식으로 살고 죽고 생사를 가리는 이 대한민국은 과연 덜 폭력적인 사회가 돼갑니까? 최근 경찰이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을 대하는 방법만 봐도 그게 전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유성기업의 경우도 그렇고 한진중공업의 경우도 그렇지만 자본에 “감히” 행동적으로 권리주장하는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1990년대처럼 원천봉쇄, 묻지마 연행, 초강경 진압, 살인적 손배 소송, 그리고 용역의 무지막지한 폭력입니다. 1980년대와 비교해도, 고문이 없어진 것 빼고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지식으로 가득 찬, 지식이 인제 거의 “잉여”가 될 정도로 지식에 의존하는 사회인데도, 그 폭력성의 수준은 그리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지식 그 자체만이 사회를 개선시킬 수는 없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회의 차원도 그렇지만, 개인 차원에서도 지식 그 자체만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지 않습니다. 체제에 잘 편입되기만 하면, 그 체제가 아무리 악질적이라 해도 “고급 지식”의 보유자들은 대개 군대 졸병 이상으로 잘 순치됩니다. 세계체제 주변부 파시즘의 전형에 가까운 유신 체제 하에서는 송기숙 교수 등 일부 “제도권 지식인”들은 민중의 편에 섰지만 대체로 저항을 주도한 것은 함석헌처럼 “지식” 그 자체보다 독특한 종교적 사고를 지닌, 그리고 “지식 인증서”가 잘 없는 야생마적인 존재들이었습니다. 저항에 가담한 교수들보다 “교수평가단”에서 출세가도를 달렸던 교수들은 몇 배 많았습니다. 박정희가 어렸을 때부터 흠모했던 히틀러의 치하에서는 과연 달랐을까요? 지식인의 꽃이라고 할 의료권력자, 즉 의사의 약 절반이 나치 당의 당원이었다는 곳은 파쇼 독일의 실정이었습니다 (http://fcit.usf.edu/holocaust/Resource/REVIEWS/Aly.HTM ). 반전 운동을 시발점으로 해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삶을 시작한 촘스키교수는, 월남전쟁 한참이었던 1960년대 말만 해도, 미국 대학 교수의 약 7할이 전쟁을 지지했거나 무관심했다고 회고합니다. 미국 대학과 군수복합체의 밀접한 관계까지 생각한다면 결코 놀랄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지식 그 자체가 인간을 구제할 수 없다는 걸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 뇌 속에서 축적된 지식은 그저 컴퓨터의 파일처럼 “삭제”되고 맙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지식인이라는 것은 너무나 “유한”한 것이죠. 사회화된 지식, 즉 책 등의 형태로 공동체 전체의 재산이 된 지식은 그것보다 오래 살아도, 절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나고 나면 오늘날 우리의 지식은 그저 역사학자들에게만 관심사가 될 뿐이죠. 지식도 “유효기간”이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어도 “삭제”되지 않고 수 백년, 수만 년이 지나도 빛 바래지 않는 것은 김진숙 선생님이 지금 보여주시고 계시는 “동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동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하면 괜스레 종교적 냄새가 느껴지지만, 사실 노동운동판에서 김진숙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실천은 제게 어느 종교가의 실천보다도 더 고귀하게 보입니다. 종교의 “이웃사랑”에 늘 권위주의적 상하관계가 내재돼 있습니다. 예수는 단순히 한 명의 씨알이 아닌 “주님의 아들”로 기억되고, 부처는 설법을 들으러 온 사람이 그 발에 입을 맞추어야 하는 “세존님”, 절대적 권위의 보유자로 기억됩니다. 종교계에서는 “이웃사랑”은 권위 관계의 밑천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김진숙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동류 사랑”에는 사랑만 있고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고 군림하려는 뜻은 없습니다. 김진숙 선생님도 제도가 아닌 자신의 힘으로 “지식인”이 되고, 자도 애독하는 <소금꽃나무>의 저자이기도 하지만, 이 지식은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니고 “동류 사랑”의 실천 수단이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지식의 유일한 올바른 쓰임 방법일 것입니다. 지식이란 일종의 칼입니다. 누구의 손에 잡히는가에 따라서 해방의 도구도 학살의 도구도 다 됩니다. 그런데 칼을 절대시하는 문화는 “해방”보다 “학살”에 더 가까운 것처럼, “지식”을 절대시하는 문화도 전혀 해방적이지 않습니다.
 
행동하지 못하고 체제에 편입된 지식은 그저 악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김진숙 선생님을 보면서 저 같은 사람들은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식을 전문적으로 다루면서 김진숙 선생님처럼 행동하지 못하면 결국 지배자 무리에 포섭돼 이 지옥을 관리하는 악마들의 유순한 도구가 될 확률은 너무 높습니다. 저도 그렇고 저의 동료인 “직업적 체제내 지식인”들도 그렇지만, 다 살얼음판을 걸어 다니는 것입니다. 김진숙 선생님을 보면서 “인간 해방을 향한 지식 축적”은 무엇인지 매일매일 배워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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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메일] 파시즘

2011/06/30 13:04

* 출처 : [아트앤스터디 지식메일] http://www.artnstudy.com/sub/community/minerva.asp?clip=C

 

개인은 없다.

 

2차 대전을 일으켜 지구를 피로 물들인 공포의 이름, 나치즘[Nazism]과 파시즘[Fascism]-놀랍게도 이 잔인한 분파는 그들의 당수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죽고 추축국이 패전한 다음에도 스페인의 프랑코와 아르헨티나의 페론을 통해 살아남았으며, 지금도 정치, 경제 상황이 불안한 사회에서 언제든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있는'현재진행형' 우익 집단이다. 그들은 인류의 공존을 무시하고, 자국의 이익만을 중시하는 극단적인 배타성을 띤다. 너무 자주 들어 지겹지만, 자칫 방심했다간 큰일을 저지를지 모를 이 음흉한 세력은 누구인가?

 

같으면서 다른 얼굴, 나치즘과 파시즘

 

나치즘와 파시즘은 '동일한 하나'의 두 측면이다. 그만큼 둘은 서로 닮았다. 이탈리아의 파시즘은 '위대한 이탈리아' 건설을 최대 목표로 삼았으며, 독일의 나치즘은 '위대한 독일' 건설을 절대 과제로 두었으니, 이들은 강력한 '국가' 건설을 위해 필연적으로 민족 유대를 강조하고 영토 확장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나치의 깃발바탕이 '민족, 피'를 상징하는 붉은 색인 것과 무솔리니의 깃발 중앙에 고대 로마 군인들이 행군 때 사용했던 '파쇼(fascio)'('단결'을 뜻하는 이 단어에서 파시즘이란 명칭이 유래했다고 한다.) 가 그려져 있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대 로마의 재건을 꿈꿨던 이탈리아가 '국가'라는 시스템을 강조한 반면, 나치는 자신들의 게르만 '혈통'을 지나치게 부각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는 여러 인종의 집합소였던 로마 제국을 모델로 삼았기에 반유태주의 성향이 크지 않았지만, 나치는 다윈의 『종의 기원』에 나타난 가설, '종 간에는 생존 투쟁이 벌어지며, 환경에 더욱 잘 적응한 개체가 살아남는다'를 '인간 사회'에 그대로 적용했다. 게르만 족은 역사적으로 다른 인종을 지배해 온 우월한 종이기에 열등한 종을 지배하는 것은 권장할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생존 투쟁에서 진 인종이 제거되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라는 인종주의(racism) 앞에서 천부인권은 무용지물이다. 만약 열등 인자가 살아남고 싶다면, 우월 인자의 지배를 받아들여 허드렛일이나 하며 겨우 목숨을 유지해야 할 뿐이다.

 

나치의 우생학[eugenics]과 인종 개량 'T-4 작전'

 

나치는 유대인만 학살한 것이 아니었다. 우생학에 뿌리를 둔 인종 개량 프로그램인 T-4 작전을 발동시켜, '게르만의 우월성에 흠집을 내고 국가 예산을 좀먹는' 동족의 장애인, 정신병자를 어른, 어린이 할 거 없이 안락사시켰다. 추후 그 대상은 노인 및 전쟁 중 부상을 입은 참전 용사에게까지 확대되어 총 사상자가 20만 명에 이르렀다.

또한, 우월한 자손을 양성한다는 명목으로 알코올 중독자나 45세 이상의 여성, 신체적 결함이 있는 사람 등 40만 명을 강제로 불임 수술 시켰으며, 반대로 건강한 신체와 높은 지능을 가졌다고 판단되는 남녀를 모아 혼인을 장려하거나 동침하도록 강요했다. 그렇게 탄생한 아이들이 패전 후 비난과 멸시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지 쉽게 유추할 수 있으리라.

 

비합리성의 극대화

 

당신은 타당한 근거를 중시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인가, 아니면 신화와 웅변 혹은 유행에 크게 영향받는 감정적인 사람인가? 라이프니츠, 피히테, 헤겔, 니체, 하이데거 등 수많은 철학자를 배출한 냉철하고 논리적인 독일인이 어떻게 잔혹한 히틀러에 그토록 열광했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실 그 원리는 간단하다. 나치는 무기력하고 불안할 때 자신보다 강한 힘에 쉽게 휘말리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십분 이용한 것이다. 그들은 정치, 경제적으로 위태롭던 당시의 자국민에게 풍족하게 살게 해준다는 공략과 '선민사상'을 선물했다. 다른 인종을 밟고 올라섬으로써 불만과 열등감은 극복되고 민족의 일체감은 커졌다. 인간에게 존재하는 '비합리성'은 이렇게 극대화되었다.

 

나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유사 파시즘'

 

나치와 파시즘을 가장 단순하고도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용어는 '전체주의(totalitarianism)' 혹은 '국가 우선주의(statism)'일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은 없다. 국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며 민족의 양심과 문화를 대변하는 거대한 힘이자, 독자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실재이기에 언제나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숭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인간은 각자의 개성과 차이조차 논할 수 없을 정도로 보잘것없다.

무서운 일은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행위가 '그것이 등장할 필요가 없는' 영역에서 의도적으로 공공연히 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별다른 검열 없이 보다 다양하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국익이 강조된다. 나에게서 충성심과 감동 심지어 비장함을 끌어 낸 몇 가지 사례가 실은 '유사 파시즘'은 아니었을까? 민족주의가 심해지면, 더 이상 개인은 없다.

  
  Written by cowgirlblues (cowgirl@artnstudy.com)   
참고문헌 『역사의 이해와 해석』(이주영, 건국대 출판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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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사랑이란 무엇인가?

2011/06/16 16:44

사랑이란 무엇인가? 

 

[출처 : 박노자의 만감: 일기장 2011/06/14 20:44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35697

 
저는 지금 이례적으로 노동시간임에도 집에 앉아 있으면서 저희 동네 치과에서의 약속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돌연히 치통의 기습 (?)을 받아, 거의 책읽기가 불편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플 때에 저로서 최고의 진통제는 글쓰기입니다. 오랫동안 생각해온 것을 글로 정리해놓으면 왠지 아픔이 조금 물러갑니다. "작문요법"이라고나 할까요? 오늘의 주제는, 제가 사춘기 때부터 고심해온 주제인지라, 아무래도 거의 20여년 간의 고민을 정리해놓으면 이 무서운 치통이 조금 덜어질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올리고 치과에 가려 합니다.
 
저는 지금도 1991년 여름에 열차를 타고 흑해안 휴양지에서 레닌그라드로 돌아가는 3일을 아주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게 쏘련의 마지막 여름이었다는 사실, 이 후로는 저희와 같은 일선 지식일꾼들이 흑해안 휴양지에 대한 꿈을 완전히 버려야 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불과 1년 후에 가스총을 휴대하지 않고 집을 떠나기가 무서운 준(準)내전적 상황들이 도래할 사실 - 이 모든 사실들을 저는 그 때에 알 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열차여행을 지금도 기억하는 이유는, 가스총 없이 마음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마지막 쏘련식 여행이라서는 아닙니다. 흑해북안을 떠났을 때에 어떤 이름모를 우크라이나의 철도역에서 우연히 신문가판대에서 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운좋게 사서, 레닌그라드 도착까지 그 책을 열독해 거의 외울 정도가 되어서, 지금도 그 여행을 "프롬과의 만남'으로 기억합니다. 신문가판대에는 황색신문과 에로잡지 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오늘날 러시아를 염두에 둔다면 20여년 전의 쏘련에서 신문가판대에서 사르트르나 일본 단가집, 도덕경의 러역, 아니면 프롬을 살 수 있었다는 것은 거의 믿어지지 않는데, 엄연히 사실이었습니다. 페레스트로이카 시절인지라, 냉전기간에 외국사상에 접근 제한 당해왔던 인민들은, 그 때에 "외국 진보 사상"이나 "외국 고전"에 대한 매우 뜨거운 열기를 보였습니다. 참, 프롬의 이 책은 기쁘게도 번안 식의 국역본도 있는데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419623) 국내에서 얼마나 읽혀지는지 저로서는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좌우간, 그 때에 불편한 열차 침대에서 그 책을 읽고 얻은 깨달음을, 그 후로 20년 동안 잊을 수 없었습니다.
 
인본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인 프롬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소유욕"의 정반대로 정의했습니다. "소유욕"이라는 것은 자아 본위적인, 자아 지향적인, 그리고 본질적으로 타자에 대해 배타적인 욕망입니다. 효도를 함으로써 효자/효녀 소리 듣고 싶은 욕망, 자식에의 "투자'를 함으로서 노후에 자식으로부터 "모심"을 받고 싶어하는 욕망, "나의 여자/남자"가 오로지 "나"에게만 속하기를 바라는 욕망 - 이는 이 사회에서 "사랑"으로 오해 받는 각종 "소유욕"의 종류들입니다. 그 중에서는 아마도 가장 독신 (瀆神)적인 것은, 불전 (佛錢) 헌납이나 교회 출석, 수천배 (數千拜) 올리기 등등을 통해서 "나"나 ("나"의 연속으로 인식되어지는) 부모/친지를 위해 천당/서방정토에서 "한 자리"를 마련하려는 욕망입니다. 정말이지, 부처님/하나님 사랑의 이름으로 신과의 "자아 본위의" 거래를 시도하는 사람보다 차라리 살인의 악업을 지어 지옥에 갈 각오로 억압자를 상대로 수류탄을 투척하는 정의의 테러리스트가 천당/서방정토에 가는 게 더 순리일 것 같습니다. 그는 악업을 짓는다 해도, 적어도 자기자신을 위한 악업이 아니고 타자의 공통적인 업(業)을 향상시키기 위한, 자기 희생적인 악업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타자의 입장에 서서 타자에 대한 자신의 배타적인 욕망을 버리고, 타자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타자의 욕망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의 혼적이 없을수록 사랑의 순도가 높아지게 돼 있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은 바로 그럴 것입니다. 신이 우리에게 "나를 모시라", "나에게 예배하라"라고 욕망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타자와의 관게망 속에서 남의 행복을 건설해주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도 행복해지기를 신은 그저 바랄 뿐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신의 사랑만큼 "무아적" (無我的)이지 못하지만, 일단 이 방향으로 계속 시도하는 것은 우리 존재의 진짜 의미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제 장자 유리군(君)을, 그 녀석이 19세 (노르웨이에서의 성인 연령)가 되는 그 순간 바로 "방생" (?)하려고 합니다. 본인이 이제 클 만큼 컸으니까 알아서 살아라 하고, 그 인생에 대한 일체 간섭을 절대 안할 생각입니다. 물론 그가 제게 지원이나 상담 등을 요청하면 이를 적절한 한도 내에서 받아들일 용의는 있지만, 그와의 관계를 기본적으로 서로 동등한 타인 사이의 관계 형태로 건설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그에 대한 소유 욕망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고, 또 그래야 그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노후에 자식으로부터 "부양"이나 "효도"를 받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남에게 글 등으로 도움 주지 못하고 도리어 남의 도움에 의존해야만 하는 상태가 되기 전에 제발 저를 황천으로 보내달라고 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의 방법으로 자식과의 관계를 설정하자면 부자 양쪽이 내면적으로 좀 강해야 하는데, 일단 아동의 자립심을 키우는 것은 "국, 영, 수"보다 더 중요한 교육의 목적이지요.
 
남녀 사랑 같으면, 독점욕이라는 독약이 제일 퍼지기 쉬운 영역입니다. 더군다나 이 미쳐버린 세상의 가장 악질적인 억압장치 중의 하나인 배타적인 일부일처제가 이와 같은 독점욕을 법제화까지 시키니 더더욱도 소유욕을 사랑으로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제게 (프롬의 정의에 맞는) 진정한 남녀 사랑의 모범은 로서아 혁명시인 마야코브스키와 문학연구자/혁명가 요십 브릭의 부인 릴랴 브릭 (http://en.wikipedia.org/wiki/Lily_Brik)의 사랑입니다. 1915년, 부인 릴랴가 청년 시인 마야코브스키와의 사랑에 빠졌을 때에 그 남편 요십 브릭은 그저 기뻐했을 뿐이고, 마야코브스키를 초청해 셋이서 하나의 호구를 이루어 같이 살게 됐습니다. 요십 브릭과 마야코브스키는, 질투를 느끼기는커녕 아주 절친한 친구가 된 것이죠. 1923년 이후에 마야코브스키와 릴랴가 더이상 육체적 관계를 거의 갖지 않았지만, 역시 아주 가까운 동무로 지냈으며, 거기에다가 릴랴가 마야코브스키와 새롭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또 다른 여러 여성들과 가까운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십 브릭과 릴랴 브릭, 그리고 마야코브스키 사이에 각종의 "시련"은 있어도, 한 가지 절대 없었던 것은 질투이었습니다. 세계에서 "소유"라는 게 없어지게끔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혁명가들이라서 그런 것인이었던가요? 꼭 혁명가만이 진정한 (비소유적인) 사랑을 할 줄 아는 게 아니지만, 대체로 공산주의적 혁명과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같은 방향으로 가는 동질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란 사유와 이윤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고, 진정한 사랑은 소유욕과 독점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공산주의자만이 진짜 사랑을 할 줄 아는 게 아니지만, 공산주의자라면 적어도 자신의 소유욕에 대한 "거리 두기", 상대화, 궁극적으로 소멸 작업을 해야 할 듯합니다.
 
아아, 오랫동안 생각해온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니 치통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좌우간, 약속시간에 맞추어서 인제 치과에 다녀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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