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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6/10
    연애의 목적을 보고
    봉기꾼

연애의 목적을 보고


                    

 

 

한낱 영화 따위에 왜 이리 불편한 맘이 드는지 모르겠다.

장르가 에로틱이었던가? 로맨틱 코메디였던가?

쨌든 유쾌한 영화일 거라는 생각으로

영화관에 들어간 나는 내내 불편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간의 이미지와는 다른 박해일의 연기를 보며

다들 좋아라 했지만, (나도 영화 초반엔 좋아라 했었다!)

박해일이 연기하는 이유림의 모습은 심히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또 누군가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그냥 즐기라고 할지 모르지만

눈에 보이는 걸 못본 척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심지어 이 영화는 같이 봤던 사람들 모두가

손꼽아 기다려왔던 영화라고 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미칠 영향력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젠장! 이렇게 끄적거리기라도 해야 맘이라도 편해질 것만 같다.


이 영화는 일상에서의 모습들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그 리얼리티가 문제가 아니라,

이 관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하는 것이 문제다!

철저히 남성적 시각에서의 연애가 정식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문제다!

이게 이 영화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까지 들게 하는 것이 문제다!



내가 불편하게 봤던 건 수없이 많지만 네가지 정도로 줄여보면,

 

 

1. 연애의 시작이 늘 남성에 의한 성폭력적 상황과 일치되는 것이다. 

 

말했듯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남성의 일방적인 표현과 접촉 등이 바로 연애의 시작과 일치한다.

여성의 동의 여하와 상관없는 남성의 이런 태도들은

적극적이고 터프한 남성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해주기도 한다.

심지어 충만한 사랑의 폭으로까지 확대해석되기도 하지 않는가?

쨌든 여기서 여성은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가? 과연 있기나 한걸까?

영화에서 이유림의 일방적인 이런 태도(성폭력)들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 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홍은

깐깐하거나 인정사정 없는 매몰찬 사람으로 묘사된다. 

 

 


2. 여성의 성욕은 여전히 ‘소수 밝히는 여성들의 것’으로 묘사된다.

 

이유림은 처음 만난 홍에게 서슴없이 같이 자자고 말한다.

그게 안되면 으슥한 골목에서 키스라도 하고 가자고 한다.

이쯤 되면 저 새끼가 미쳤나하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쳇!

그리고 결국은 길 한복판에서 동의도 없이 뽀뽀를 해버리고 만다.

이 영화는 남성이 가지고 있는 성욕을 질질 흘려도 되게끔 용인한다.

하지만 반면 여성의 성욕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이중잣대를 들이댄다.

결혼할 남자친구가 아닌 이유림과 같이 잤던 홍은 밝히는 여자가 되고

이유림과 결혼을 약속하고 다른 사람과는 절대 그럴수 없다고 했던

이유림의 여자친구는 떠받들어줘야할 고귀한 사람으로 표현된다.

이런 표현이 이유림의 입을 통해 나온다는게 더 밥맛없다!

여기서 일반적인 남성의 인식수준이 현실 그대로 드러난다고 본다. 

남성의 시각에 의해 밝히는 여자이거나, 다소곳한 여자이거나로 양분되는

여성들은 자신의 욕구과는 상관없이 스스로를 조작하기에 바쁘다.

조작된 모습을 보이도록 옭아매는 순간부터 권력관계는 시작된거다. 


 

3. 성폭력 피해자로서의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치유하는 여성을

‘나쁜년’과 동일시하거나 영원한 피해자의 위치에 머무르게 하고 있다. 


영화 흐름상 초중반까지 홍은 무기력한 성폭력 피해자의 위치에 머무른다.

아마 이런 상태로 영화가 끝나버렸으면 난 미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깝깝해서! 다행히 홍이 발버둥이라도 쳐주어서 얼마나 고마운 지.. 

홍이 권력을 이용한 폭력에 무력하게 대응하다가

싫다는 표현이라도 할라치면 예전에 있었던 성폭력의 아픔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날카로운 사람 쯤으로 표현된다.

여성의 좋고 싫음의 표현은 아예 없던 것처럼

홍의 목소리는 철저히 파묻혀버린다.

홍은 예전에 아무것도 모른채 사랑했던 사람이 유부남이었고

상습범이라는 걸 알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다가

스토커라는 역공격을 받아 학교까지 그만뒀었다.

그 일에 상처받은 이후로 다신 연애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되뇌인다.

그리고 불면증 때문에 편안히 잠을 자지 못하고,

문도 꼭 걸어잠궈야 맘이 놓인다. 창문이라도 열어놓으면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고 두렵다고 했다.

과연 성폭력 피해자들의 내면까지 이해하면서 영화에 담았을까?

그게 얼마나 두렵고 갑갑한 것인지..

짜증나는 이유림은 이런 홍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 그 사랑을 잊지 못해서 그러는 거라고 말해버린다. 개새끼!

그러다 영화 후반부에 홍은 자신의 피해경험을 용기내서 내어놓는다.

하지만 여전히 주변의 시선은 ‘나쁜년’이거나,

따먹힌 여성쯤으로 위치짓는다. 안타깝게도 홍은 나쁜년이 됨과 동시에

누군가들이 구제해줘야 할 피해자에 머무른다.


 

4. 결국 성폭력 피해의 경험을 사랑으로 미화시키는 영화의 설정~

 

나쁜 남자를 보고 막 토악질을 해대고 싶었던 설정이기도 하다.

포주와 성매매 피해여성이 사실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 지저분한 결말에 여전히 난 최악의 영화로 ‘나쁜 남자’를 꼽는다.

그런데 이 영화 역시 나쁜 남자의 맥락과 궤를 같이 한다.

자신이 미치도록 소유하고 싶어하는 여자가 자기 맘대로 되지 않자

안달복달하면서 성폭력을 가했는데, 

여성도 사실은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는 그렇고 그런 결말!

아찔하게도 잠시 박해일이라는 배우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 때문에

홍도 좋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버렸던 나를 자책한다.

물론 이 영화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을 강요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물론 나를 불편하게 했던 요소들은 더 많다.

함부로 남의 험담 해대고 옮기면서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든가,

청소년들 전반을 우매한 집단으로 매도해버리는 설정이라든가..

더 많지만 나의 불편함의 토로는 여기까지만 하려 한다.

밤새야할 것 같다! -.,-



다행히, 이유림에게서 드러나는 불편한 요소들이

홍에 의해 조금은 누그러든다.

자신을 밝히는 여자쯤으로 단정 짓는 이유림에게

여자를 잘 모른다고 말하기도 하고

권력을 이용해 자신을 성추행하고 강간했던 이유림에게

무작정 무력해지지 않고 용기를 내어 자기 치유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으면서 성폭력을 가한 이유림이

자신을 역공격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미안해하거나 (혹은 고마워했을까?)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속이 갑갑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좀더 적극적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절절 끓는다.


매번 영화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늘 여성은 없다.

그녀들의 실체도 그녀들의 목소리도 온데 간데 없다.

그런 차원에서 얼마전에 본 박진 감독님(^^)의 그녀들의 사랑이 떠오른다.

이 연애의 목적을 여성의 시각으로 재조명 했다면 참 유쾌하게 봤을텐데..


쨌든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관을 나와 이글을 쓰기 전까지

불편했던 맘이 글을 통해 조금은 풀어지는 느낌이다.


여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그 유쾌함을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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