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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글이'의 추억


     아마 천구백팔십육년이었을 겁니다. 읽어야 할, 읽고 싶은 책들이 밀려 가진 돈을 털어 밀린 책들을 샀습니다. 그랬더니 당장 밥 사 먹을 일이 걱정인 겁니다. 남아 있는 돈으로 다음 달 생활비가 생길 때까지 밥을 먹긴 글렀기에 생각해 낸 것이 '뽀글이'였습니다. 당시 저는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군대에 갔다온 선배들이 '뽀글이'를 만들어 권하곤 했었고 그다지 맛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어울려 먹긴 먹었던 터입니다. 그저 달랑 라면 한 봉지 값으로 한 끼 식사가 해결되는, 지극히 저렴한 방식이었으니 잘만하면 한 달을 버틸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뽀글이'로 먹든 그냥 생으로 부숴먹고 뜨거운 물을 한 잔 마시든(경험을 말하자면 그냥 라면 한 봉지를 부숴 먹으면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뜨거운 물을 한 잔 마시면 그 라면이 속에서 '뿔'어 배가 부릅니다) 오직 라면 한 봉지로 한 끼를 버틴 것이 거의 보름 정도 지났을 때였습니다. 낮에 학교 앞 분식 집을 지나는데 그 집에서 마침 라면을 끓였나 봅니다. 그 냄새에... 멀쩡한 대낮에 바로 토했습니다.
     가로수를 붙잡고 토하는데 지나가던 선배가 등을 두들겨 주면서 "야! 너 밥 안 먹어서 그렇지?" 하는 겁니다. 제가 밥 먹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나 봅니다.



     그땐 읽고 싶은 책은 밥을 먹지 않더라도 사서 읽었어야 했고, 읽어야 할 책도 그랬습니다.
     지금은... 화장실에 가서 똥 쌀 때만 책을 읽습니다. 그것도 (당연하지만) 심각한 내용은 아니고 그저 짧막한 글들일 뿐입니다. 읽고 생각할 책을 전혀 읽지 않습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때 피씨를 켜고 웹 서핑이나 하면서 드라마 종영 소식이나 읽고 그럽니다. 제가 생각해도 제가 뭘 하고 지내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그러니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고, 예전에 읽었던 내용도 모두 잊었습니다.

 

     좋은 습관을 들이는 일은 삼 년이 걸려도 쉽지 않고 나쁜 습관은 삼 일만에 익숙해 진다는 말이 맞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읽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사는지... 하루하루를 돌아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책 읽는 모임을 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같이 읽고(다소 강제성이 있으니 어느 정도 읽긴 읽지 않겠습니까?) 같이 토론하고(기능적인 소재를 두고 지지재재 떠들어대는 거 이제 지쳤습니다) 같이 고민하면 그나마 책을 읽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번 주엔 무조건 모여야겠습니다.

 

     ※ 뽀글이는 지금도(아니 지금은 더욱) 잘 해 먹습니다. 군에 갔다온 이후 그 맛을 알았다고 할까? 아주~ 맛있습니다.

     ※ 그 선배, 등 두들겨주던 선배가 그날 제게 밥을 사 주면서 밥 먹을 돈 없으면 언제라도 밥 사달라고 하라, 고 했습니다. 저는 제 후배들에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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