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옥씨의 노동운동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시작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 또 다른 글이 프레시안에 올라왔다. 매우 그럴듯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으면서 뭔가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말 '스웨덴 -네덜란드 모델'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아무튼 헷갈린다.

 

노동운동 '스웨덴-네덜란드 모델'에서 대안찾자!

[노동운동 논쟁 6탄] 박승옥씨 문제제기에 공감하며

  2004-09-16 오전 11:08:23

 

"노동운동, '스웨덴 모델'에서 배우자"
  
  노동운동의 위기에 대한 박승옥의 글은 전반부 문제제기와 후반부 대안제출로 구성되어 있었다. 박승옥이 제출한 대안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을지라도 '문제제기의 핵심'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박승옥 문제제기의 핵심을 다시 요약하면 ▲노동내부의 양극화 심화, ▲노동운동의 정책적 대안부재, ▲노동운동의 사회적 아젠다 능력 상실 등이었다. 사실 노동운동의 위기와 노동내부의 양극화 심화 등은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명확한 것이다. 혹자는 박승옥의 문제제기가 조중동과 경제신문 등에 의해서 악용되고 있다고 비난하는데 그러한 비판방식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조중동이 무슨 짓을 하건 박승옥의 문제제기가 타당한지 여부를 중심으로 생각해서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극복할 것은 극복하면 되는 것이다.
  
  본 글은 박승옥의 문제제기에 대체로 공감하며 박승옥과는 다른 방식의 '대안적 해법'을 제출하고자 한다. 아무쪼록 필자의 부족한 글이 더 많은 사람들의 논의를 통해 풍부해지기를 고대하며 글을 시작한다.
  
  '제한된' 계급 대표성
  
  잘 알다시피 현재 노동조합 조직률은 11%이다. 그런데 우리가 노동조합 조직률을 중시하는 것은 '양적인' 측면 때문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 때문이다. 조직률 11%의 구성을 보면 대부분 '1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만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86%는 100인 미만 사업장(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들 대다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은 100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자들만 조직되어 있다는 점에서 노동계급 '전체'를 대표하는 '계급적' 대표성을 획득했다고 볼 수 없다. 즉, '조직구성'의 차원에서 볼 때 '제한된' 대표성만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며 노동조합 운동은 이러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앞으로의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90년대 중반 노동조합 조직률이 15%정도인 적이 있었는데, 당시 100인 이상 사업장의 90%가 조직되어 있었다. 이 말은 거꾸로 만일 노동조합 조직률이 30%정도 될 때 비로소 명실상부한 계급적 대표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직률 30%가 되기 위해서는 100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 조합원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박승옥이 11%의 낮은 조직률을 언급했던 이유 역시도 이렇듯 조직률의 '양적' 측면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질적' 측면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박승옥의 문제제기에 화답하려면 찬반입장을 떠나 낮은 조직률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 명실상부한 '계급적' 대표성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 노동 내부의 양극화 심화 등에 대한 진전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비껴가는' 모든 반론은 읽는 이로 하여금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결국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대안'은 도대체 무엇이며 현재의 노동조합운동이 과연 대안을 모색할 적극적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는지의 문제가 중요하다. 이것이 현재 노동운동 위기 논쟁 전체를 관통하는 논쟁의 핵심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시적 코포라티즘의 '진보적' 의의
  
  박승옥과 황광우는 한국노동운동의 핵심 극복과제로 전투적 조합주의를 지적하였다. 그러나 전투적 노동조합주의가 한국 노동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지윤이 잘 지적했듯이 '전투적 조합주의(생디칼리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치투쟁의 중요성, 노동자 정당의 중요성을 간과한다는 점인데 이러한 편향은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을 통해서 어느 정도 극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현재 노동운동의 위기를 초래하는 핵심적 요인은 조직, 교섭, 분배구조를 총망라하는 '기업별 노조 체계' 그 자체로 인한 것이다. 기업별 노조 체계는 실로 심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기업별 노조체계로 인해서 규모가 작은 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조합원으로 조직화되기 어렵고, 조합원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가로막고 있으며, 기업단위 교섭체계로 인해 자금여력이 있는 대기업과 자금여력이 부족한 중소 영세기업의 '분배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더군다나 대기업에 소속된 노동자의 경우 '기업복지'가 발달하여 사회복지에 대한 투쟁동력에서 이완되는 작용도 하고 있다. 실제로 전국에서 복지수준이 가장 낮은 지역중 하나가 대기업 노동운동이 가장 활발한 울산지역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기업별 노조체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 문제를 접근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본과 노동 사이에 이루어지는 협상을 좀더 입체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자본과 노동 사이에 이루어지는 협상은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기업별 노조 차원의 노동-자본 협상('미시적' 코포라티즘)과 좀더 거시적인 국민국가 차원의 노동-자본 협상('거시적' 코포라티즘)이 그것이다.
  
  알다시피 유럽의 경우 과거에는 강력한 중앙 집중 산별 교섭이 주를 이루다가 최근에는 총연맹(또는 산별) 차원의 거시적 노동-자본 협상과 기업 차원의 미시적 노동-자본 협상이 상호보완적인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미시적 코포라티즘에 해당하는 기업별 노조와 기업별 협약만 존재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에 소속되지 못한 89%의 '미조직 노동자들', 즉 중소영세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비정규직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이해관계가 반영될 통로가 사실상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업별 노동운동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산별노조의 건설'이다. 그런데 문제는 산별노조의 건설은 '미래'이고 89%의 미조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현실'인데, 그렇다면 산별노조가 '건설되기 이전'까지는 89%의 미조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방법은 없다는 말인가?
  
  그런데 우리는 이 지점에서 산별노조로 이행하고자 하는 '본질적 취지'가 무엇이었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서, 어떤 효과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산별노조로 이행하고자 했던 것인가? 우리가 산별노조라는 '조직형식'으로 이행하기 위한 본질적인 이유는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포괄적으로' 반영하는 교섭 틀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요컨대, 89%의 미조직 노동자가 존재하는 한국적 상황을 감안할 때 거시적 코포라티즘(사회적 조합주의)은 특히나 다음과 같은 지점에서 '진보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첫째, '거시적 코포라티즘'은 노동계급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미조직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다. 현재 기업단위에서 이루어지는 미시적 코포라티즘은 조직된 노동자(100인이상 사업장)의 이해관계만을 대표하고 있다는 근본적 한계를 가지는데 반해, 거시적 코포라티즘은 노동계급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중소영세노동자/여성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에 훨씬 더 유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둘째, 거시적 코포라티즘은 미시적 코포라티즘에 비해서 '포괄적인 협상'이 가능하다. 알다시피 기업단위 노조에서 협상할 수 있는 의제는 대단히 제한되어 있다. 가령, 비정규직 문제만 하더라도 단위사업장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제도적 개혁이 이루어져야 가능하며 또한 제도개혁을 하더라도 연관된 제도가 종합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실제로 유럽의 노사정 합의기구(사회적 코포라티즘)에서 협상되는 것들은 아주 포괄적이다. 단지 임금문제와 고용보장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연금정책, 공공의료정책, 실업정책, 주택정책, 재정정책, 환율정책 등 노동자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을 협상 의제에 포함하여 노동-자본-정부간의 포괄적 협상이 이루어진다.
  
  대기업 노동자일수록 조직력, 투쟁력, 협상력 등에서 우월적인 지위에 있기 때문에 거시적 코포라티즘의 필요성을 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 운동과 진보정당 운동은 대기업 노동자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거시적 코포라티즘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동시에 거시적 코포라티즘을 통해서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전략적 성과물들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궁극적으로 이는 대기업 노동자들이 이해관계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거시적 코포라티즘(사회적 조합주의)이 실효성있게 작동하기 위해서 사회적 협약 기구의 '위상'을 올바로 확립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또한 기업별 협상(미시적 코포라티즘)에서 그렇듯이 협상전략의 일환으로 총파업을 선택할 수도 있고, 협상의 파트너가 꼴통 같은 짓을 할 때 일시적으로 '협상 결렬'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거시적 코포라티즘 그 자체를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입장은 본의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중소기업/비정규직/여성노동자들의 '절박한' 이해관계를 외면하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거시적 사회적 합의'가 실패하는 이유는...
  
  노동조합 운동을 하는 분들 중에는 사회적 합의 구조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진 분들이 있다. 이러한 거부감은 98년 노사정대타협의 패배에 대한 경험적 학습효과가 한몫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98년의 치명적인 오류와 뼈아픈 패배는 사회적 합의라는 '틀'(형식)자체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노동운동세력의 '아젠다 전략의 부재'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합의구조는 하나의 '협상 틀'(형식)이다. 새로운 협상 틀(형식)이 내용적 진보성까지를 자동으로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내용적 진보성을 채우는 문제는 결국 '아젠다 전략'으로 귀결된다.
  
  아젠다 전략은 의제설정 전략, 조직 동원 전략, 시민사회와의 연대 전략 등을 포괄한다. 그런데 이중에서도 특히나 중요한 것은 현재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중심고리"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노동운동의 발전에 대한 중장기적 전망 속에서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과 '나중에' 중요한 것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구분 없이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것은 정작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박승옥은 현재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으로 "정책적 대안부재"와 "의제설정 능력의 무능"을 지적하였는데 전적으로 타당한 지적이었을 뿐더러 정책적 대안능력과 의제설정 능력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제 아무리 '거시적 코포라티즘'이라는 새로운 협상 틀을 가지게 될지언정 98년의 치명적 오류와 뼈아픈 패배를 재현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민주노총의 이수호 신임 집행부는 사회적 합의구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사회적 합의구조는 정책적 대응능력과 의제설정 능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거나 오히려 노동운동을 옥죄는 '덫'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시적 코포라티즘의 진보적 활용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민주노총 정책연구소 등에 대한 '획기적인' 인적. 물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노동운동의 '전략적 아젠다'를 위하여 - '네덜란드 사례'에서 배우기
  
  현재 노동운동이 처한 어려움을 전략적으로 타개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실질적 진전, ▲노동 '내부의' 평등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전략, ▲산별노조에 대한 실질적인 '이행전략'의 제출, ▲노동조합 조직률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는 조직화 전략 등이 필요하다.
  
  위와 같은 과제들은 하나같이 굵직 굵직한 과제들인데 우리는 위와 같은 과제들을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연관된' 종합적 프로그램 속에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네덜란드 모델'과 '스웨덴 모델'은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진보적 시사점을 주고 있다. (지면관계상 네덜란드 모델과 스웨덴 모델의 개괄적 특징은 생략하고 궁금한 분들은 참고문헌을 활용하기 바란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네덜란드 모델의 진보적 특징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적은 노동시간(주당 33시간)과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간에 '차별'이 없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회보험 혜택에 있어서 정규직과 동일하게 대우받을 뿐만 아니라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의해서 '시간당 임금'을 기준으로 보면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없기 때문에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의 '호환'이 이뤄지고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외에도 네덜란드 모델에서 특히나 주목해야 할 것이 두 가지 더 있는데 ▲공공고용서비스 체계를 통한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노동시장 개입', ▲노동내부의 평등을 지향하는 '산업별' 기업연금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유럽에서 드물게 근로자 파견제를 수용했지만 한편으로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공공고용서비스체계를 가지고 있다. 노동조합 3명, 자본측 3명, 정부 대표 3명을 포함 총 9명으로 구성된 중앙고용위원회 (Center Employment Board)와 총 28개의 지방노동위원회는 노동자들에 대한 취업알선, 교육훈련 등을 수행하며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또한 최근 노무현 정부가 2006년부터 퇴직연금제를 도입하겠다는 것과 관련해서 네덜란드식 기업연금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 기업연금제는 정치경제학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는 모델인데, 다음과 같은 '진보적'인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산별차원의' 강제연금이라는 점이다. 네덜란드 노동운동은 연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산별차원의 강제연금을 채택하고 있으며 그 결과 연금혜택을 받는 노동자가 91%에 이를 정도로 높다. (참고로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경우 비정규직을 포함하여 600만명의 국민들이 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산별차원의' 기업연금제도는 연금이 기업간 경쟁조건이 되는 것을 막아 '노동 '내부의' 평등'을 달성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네덜란드 기업연금의 99%는 확정급여형을 채택하고 있으며 전체 노동자의 87%가 산업별 연금에 가입되어 있다.)
  
  둘째, 네덜란드의 기업연금 운용은 노동과 자본의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산업별' 사용자 대표와 '산업별' 노동자 대표가 동일한 비중으로 연금이사회(Pension Board of Directors)를 구성한다.
  
  셋째, 이렇게 구성된 산업 차원의 연금은 외부의 증권회사, 투자자문사, 뮤추얼펀드, 보험회사 등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산업 부문 내의' 자체적인 금융서비스 회사에 맡긴다. (참고로 노무현 정부가 퇴직연금제 도입 발표를 하고 난 이후, 재벌과 외국자본이 장악한 금융권은 퇴직연금제 시장규모가 100조원이 넘느니, 150조원이 넘느니 하며 '돈 독'이 올라 벌써부터 들떠 있는 분위기이다.)
  
  기업연금제도는 엄청난 자금 규모로 인해서 적립방식, 운영방식 등이 어떤가에 따라서 자본주의의 성격을 뒤바뀔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다. 흔히 경제학계에서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와 독일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구분하곤 하는데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의 발전에는 확정기여형-외부위탁형-주식시장 중심의 기업연금제도의 발달이 중요한 배경을 이루었을 정도이다.
  
  네덜란드식 기업연금제도는 적립방식, 운영방식, 지배구조 등에서 영미식 기업연금제가 금융자본주의를 촉진ㆍ조장하여 노동배제적인 성격을 강화하는 것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네덜란드 모델이 가지고 있는 '진보적 특징'들을 살피면서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 모든 제도들이 노동 내부의 '연대'를 이루고자 하는 조직화된 노동조합운동의 목적의식적인 노력으로 가능했다는 점이다.
  
  가령 네덜란드는 96년 유연-안정성(Flexicurity) 협약을 통해 24개월 이상 근무하는 비정규직의 경우 고용 지속 의무를 부과하고 연금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조치들을 도입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적 진전은 네덜란드 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내부의 평등과 노동 내부의 연대를 실현하기 위해 해고 요건에 대해 부분적으로 양보하면서까지 수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산업별' 기업연금제도, 기업연금제도에 대한 노동조합의 지배구조 참여, 노동시장에 대한 노동조합의 적극적 개입,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함께 '안정성'을 위해 강력한 사회적 안전망을 도입하는 노력 등이 병행되어 25%까지 하락하던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상승세로 반전되어 90년대 중반 30% 수준으로 올라갔다.
  
  노동운동의 '전략적 아젠다'를 위하여 - '스웨덴 모델'에서 배우기
  
  스웨덴 모델이 주는 진보적 특징에 대해서는 노동운동 내부에서 많이 알려져 있다. 90%가 넘는 노동조합 조직률, 1932년부터 현재까지 3번 정도를 제외하고 전부 좌파정당이 집권한 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사회복지 수준, 높은 여성 지위 등이 그러하다. 그래서 스웨덴 모델은 전 세계 진보진영의 연구 대상이자 동시에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한국에도 스웨덴 모델은 많이 알려졌지만 스웨덴 모델이 내포하고 있는 '조직화 전략'과 '노동 내부의 평등' 전략에 관해서는 공론화가 부족했던 것 같아 이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겐트(Ghent) 제도'라는 노동친화적 실업보험 제도와, ▲연대임금제에 담겨진 노동 내부의 평등 정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50%가 넘는 나라들은 채 10개국이 되지 않는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벨기에 등 대부분 북유럽에 몰려 있다. 그런데 이들 나라들 사이에는 지리적으로 인접해있다는 공통점 이외에도 실업보험의 방식으로 겐트(Ghent)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겐트(Ghent)제도는 실업보험 방식의 일종인데, 영국식 국민보험과 달리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에게만 실업보험이 적용되는 제도이다. 노동조합의 가입과 고용을 연계시킨 것이 '유니언 샵'인데, 실업보험에서 유니언샵 원리를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한국에는 단순하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임금정책수준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는 '연대임금제도'에 담겨있는 노동 내부의 평등 정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의 연대임금제도는 제도 그 자체가 철저하게 '노동내부의 단결'을 목적으로 대기업 노동자의 양보를 전제로 설계된 것이다. 스웨덴 노총(LO)은 연대임금제도를 통해 동일업종 동일노동의 성격을 가지는 경우 '기업규모'와 관계없이 동일한 임금을 지불하도록 하였다. 연대임금제도는 속성상 대기업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받지 않는 한편, 동일임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중소자본은 '생산성'이 그만큼 뒤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퇴출(구조조정)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연대임금제도)를 수행하지 못하는 중소자본은 퇴출되었고 이때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실업에 대해서는 강력한 사회적 안전망과 연계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해결하였다. 실업보험, 직업재교육, 취업알선 등의 직업 재전환 과정 일체를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는데 우리가 흔히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연대임금제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임금정책이나 단순한 복지정책 및 실업정책이기 이전에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실질적으로 이룩하기 위한 종합적인 정책설계였으며 동시에 산업구조조정과 경제성장을 '노동친화적'인 방법으로 이룩하기 위한 스웨덴 노총(LO)의 수년간에 걸친 연구와 전략적 의지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스웨덴 모델과 네덜란드 모델에서 공통되는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첫째, '노동시장에 대한 적극적 개입'이 '조직률 제고'에 전략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노-사-정이 참여하는 공공고용서비스 체계 및 산업별 기업연금제도를 통해서 노동조합이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스웨덴의 경우 겐트(Ghent)제도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정책적 조합을 통해서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또한 '노동 '내부의' 연대'를 이룩하기 위해 정규직ㆍ대기업 노동자의 양보를 얻어내서라도 목적의식적인 제도 개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분적으로 해고 요건 완화를 수용하면서까지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업연금 혜택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산별단위 기업연금제도를 설계하였고, 스웨덴의 경우 연대임금제를 통해 대기업의 경우 연대임금 수준에서 의도적인 임금억제를 하도록 제도를 설계하였다. 물론 한국적 적용에 있어서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양보를 요구하는 정책은 실현가능성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것은 '강요'이지 양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글을 맺으며-"노동 '내부의' 연대"에 기반을 둔 진보적 코포라티즘 전략을 위하여
  
  필자는 위의 내용들을 통해 '거시적 코포라티즘' 전략이 미조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진일보한 협상틀일 수 있음을 밝히고, 또한 내용적 진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젠다 전략 수립이 중요함을 역설하였다.
  
  노동운동의 위기를 전략적으로 타개할 수 있는 아젠다 전략의 수립으로는 ▲비정규직 문제, ▲노동 '내부의' 평등, ▲산별노조로의 '이행전략', ▲노동조합 조직률 제고 등을 거론하며 네덜란드 모델과 스웨덴 모델에서의 시사점을 정리해 보았다.
  
  가령 이런 것이다. 기업규모의 격차가 커서 노동과 자본의 '이질성'이 크면 클수록 산별노조의 추진은 쉽지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산별노조의 이행은 목적의식적인 '제도적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산별차원의 기업연금제도’의 도입, 현재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가 하고 있는 업무를 노동조합(또는 노사공동)이 운영하는 ‘산별차원의 고용시장위원회’ 같은 것을 설립ㆍ운영하여 산별노조를 하는 것이 산별노조를 하지 않는 것보다 유리한 방향으로 "인센티브"를 끊임없이 설계하여야 한다.
  
  그래서 산별차원의 고용시장위원회로 하여금 연구개발(R&D)사업, 직업훈련, 인적투자, 취업알선 등의 사업을 주관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업들은 모두 노동조합의 조직률을 제고하면서도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 강화에 기여하여 노동조합의 사회적 영향력 역시도 증대시킬 것이다.
  
  또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어디서 어떻게 주워들었는지는 몰라도 '입으로만' 네덜란드 모델을 떠들지 말고 네덜란드 모델이 가지고 있는 진보적 특징에 걸맞게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보험 혜택을 보장하고 시간당 임금이 같도록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업연금제도야말로 네덜란드식 기업연금제도를 적극적으로 채택할 일이다.
  
  위와 같은 전략적 아젠다를 쟁취하기 위해서 민주노총은 대기업노동자들을 포함한 조합원 전체와 충분한 토론을 통해 심도 있는 공론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대기업노동자들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일정부분 책임을 지겠다는 '사회공헌기금'의 기본 문제의식을 살려 대기업노동자들의 '임금자제'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
  
  임금자제를 양보하는 대기업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다른 방식의 인센티브, 예컨대 '우리사주제' 형태로 지불하는 방법을 적극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나 '우리사주제'는 현재 주식시장의 43% 가량을 외국계 자본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기업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도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실제로 미국에서 종업원지주제(ESOP)가 발달하게 되었던 배경에는 80년대 M&A 바람이 불어 경영권 방어차원에서 경영자가 종업원지주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 기업들은 '외국계 자본'을 들먹이며 뻔뻔한 거짓말로 경영권 방어차원에서 출자총액제의 완화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외국자본'에 의한 경영권 인수를 그렇게 우려한다면 기업에 장기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핵심 내부자인 종업원과의 동반자 관계를 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기업별 노조, 계열사 구조에 의한 내부노동시장의 존재, 연공서열식 임금구조 등의 측면에서 한국의 노사관계는 흔히 일본식 모델과 유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런데 일본은 기업별 노조체계의 문제점을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좌파가 거의 몰락직전에 있는 상황이며 그리고 인해 현재 일본의 사회ㆍ정치적 세력관계는 우파와 극우파의 대결로 변화되었다. 한국에 87년 노동자대투쟁이 있었다면 일본의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은 60년대 안보투쟁이 있었을 정도로 화려함과 전투성에 있어서 결코 뒤지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형식적 격렬함 여부가 아니라 내용적으로 얼마나 노동계급이 실질적 단결을 이룩할 수 있도록 제도가 설계되었으며 또한 뿌리내리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좀 더 냉정하게 살펴본다면 한국의 노동조합 운동은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거기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현재 한국경제의 기본구조가 '남미 모델'로 재편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주식시장의 43%, 은행지분의 30%, 핵심 상장회사들은 이미 외국계 지분이 50%를 넘었고, 노동시장은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정규직 중심으로 유연화되고 있는 상황이며, 자본은 투자비전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풍부한 현금성 자산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연히 경제 전체의 성장잠재력이 고갈될 뿐만 아니라 경제주체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정책수립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노동운동의 위기를 걱정하는 '절박함'은 과거와는 또 다른 차원으로 그 중요성이 더해가고 있다. 또한 한국경제의 진보적 재건을 위해서라도 노동자 계급 전체를 아우르는 이해관계를 조직하고 여론화시키고 제도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민주노총의 위기와 노동운동의 위기는 불구경하는 구경꾼의 자세로 접근될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조합운동의 실질적 재건 여부에 따라서 한국사회가 산별노조와 노동자정당의 '양 날개'가 원활히 작동하는 유럽식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모델로 진행될 것인지 아니면 기업별 노동조합의 한계를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진보적 색깔이 거세되고 기업에 내부화된 일본 혹은 남미 모델로 갈 것인지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후기 : 본 글이 작성되는 중간에 '근로자 파견제'와 관련된 황당한 정부 개악 안이 제출되었다. 만일 현재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자 파견제와 관련된 개악 안이 통과된다면 이는 노동조합 운동 자체의 존립을 허물게 될 것이며, 현재의 정규직 노동자들조차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추진되는 정부의 비정규직 개악 안은 협상의 여지가 없는 법안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적 합의구조'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전혀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래 글에서 제시된 사회적 합의구조의 필요성은 '현재' 참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노무현 정부의 최소한의 진전된 자세를 전제로 할때만 유의미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네덜란드 모델‘에 관한 참고 자료
  
  김훈(2003), 「네덜란드 노사관계」, 『세계의 노사관계 변화와 전망』, 한국국제노동재단
  김태현(2003), 「네덜란드 모델, 장님 코끼리 만지기」, 『노동사회 2003년 8월호, 통권78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2003), 「네덜란드 노동운동 탐방기」, 『노동사회 2003년 8월호, 통권78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윤영모(2004), 「네덜란드 사회협약 체결, 임금동결? 사회보장제도 개혁!」, 『노동사회 2004년 1월호 통권83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병천(2003), 「연금제도와 개혁의 비교자본주의론」,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 ; 연금개혁의 비교자본주의론』, 아연출판사
  이상훈(2004), 「네덜란드형 대타협, 그 기적과 환상」, 민주노동당 정책참고자료실(www.kdlp.org)
  주진우(1999), 「네덜란드 노사관계 모델의 특징과 한국에의 시사점」, 『노동사회 1999년 3월호, 통권 31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민주노동당 정책참고자료실(www.kdlp.org)
  전창환(2003), 「네덜란드 모델과 네덜란드 기업연금제도」,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 ; 연금개혁의 비교자본주의론』, 아연출판사, 민주노동당 정책참고자료실(www.kdlp.org)
  최병천(2003), 「네덜란드 모델의 진짜 핵심 : ‘획기적인’ 노동시간 단축과 비정규직의 ‘차별철폐’」, 『월간 말 8월호』, 민주노동당 정책참고자료실(www.kdlp.org)
  황기돈(2001), 「네덜란드의 일자리 나누기정책과 정책적 시사점」, 『노동교육 31호, 32호』, 한국노동교육원
  황기돈(1998), 『적극적 복지를 통한 노동시장 유연화, 네덜란드의 사회경제 개혁』, 한국노동연구원
  
  ‘스웨덴 모델’에 관한 참고 자료
  
  고세훈(1996), 「서구 복지체계의 변화와 정당-노조관계 : 영국과 스웨덴」, 『고려대학교 EU 연구센터 제4회 학술세미나 : 유럽과 한국의 민주화 비교』
  이병천 외 역(1993), 『사회민주주의의 새로운 모색 - 스웨덴』, 백산서당
  이헌근(1999), 『'제3의길'로서의 스웨덴 정치』, 부산대학교 출판부
  조영철(1997), 『스웨덴 복지국가모형의 위기와 변화』, 국회 입법조사분석실, 민주노동당 정책참고자료실(www.kdlp.org)
  신정완(2004),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경험이 한국 사회민주주의 운동에 주는 함의」, 한국사회경제학회 학술대회 발표논문, 민주노동당 정책참고자료실(www.kdlp.org)
  신정완(2000a), 「글로벌라이제이션 시대의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1980년대 이후 스웨덴 사민당의 경제ㆍ사회정책의 변모를 중심으로」, 『스칸디나비아 연구』, 창간호.

   
 
  최병천/민주노동당 의정지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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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6 17:47 2004/09/1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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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anori 2004/09/16 22:35

    넘 길어서 도저히 못읽겠어요.
    결론만 너댓줄로 정리해 줄 수 없나요?
    ㅋㅋㅋ 

  2. babo 2004/09/19 20:34

    그냥 읽어보세요. 원래 박승옥씨가 쓴 글은 더 길어요.(두 배 정도) 그리고 내가 이 글을 요약할 정도의 실력은 안되고 또 요약할 경우 왜곡시킬 수도 있으니까. 기냥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