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꿀이 흐르는 곳

 
 
젖과 꿀이 기독교에 이르러 그 물질성을 최대한 탈각한, '생명의 근원'같은 영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나는 이 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고 부르리라. 물론 그것은 다시금 저 은유에 물질성을 부여함으로써이다. 커피. 그것이야말로 나의 젖과 꿀이 아닌가. 노이쾰른(Neukölln)으로 이사와서 산책을 나갔다가, 이 가게를 발견했을 때 나는 정말 가나안복지(福地)를 발견한 것이었다. 커피콩과 땅콩과 다람쥐가 함께 그려져 있는 이 가게의 정체를 한국에서 30년 동안을 살면서 내 안에 구성된 인식범주들은 처음엔 인식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가게 안에 놓인 Probat 커피로스터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슈퍼마켓에서 한번에 1kg씩이나 사 먹어야 했던 커피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참이었다. 
 
유리창 아랍어가 써 있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이 가게는 아랍인이 운영하는 커피 및 각종 견과류/과자를 파는 곳이었다. 이곳 노이쾰른은 사실상 아랍계와 터키계 이민자들이 주류인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이곳이 게토는 아닌데(베를린은 파리와 달리 이민자들의 게토화를 매우 경계하는 편이다.) 해가 갈수록 이 지역으로 작고 대안적인 카페나 겔러리, 혹은 힙스터들이 몰려들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노이쾰른 북단에는 큰 거리가 두개 있는데, 하나는 구동베를린을 회고하는 영화 제목으로도 쓰였던 Sonnenallee이고, 다른 하나는 Karl-marx-Straße다.(서 베를린이었던 이 거리에 Marx의 이름이 붙은 건 아마도 이 곳이 독일 사민당의 초창기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존넨알리는 아랍인들이, 칼 막스 거리는 터키인들이 크고 작은 가게들을 열고 각각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곳이 되었다. 칼 막스 거리는 거기에 더해 지금 베를린에서 아마도 가장 싸게 옷이나 각종 용품을 구매할 수 있는 백화점이나 아케이드가 몰려 있는 곳이다.  
 
이 가게, "테드 앤 프레드"의 한켠에는 에스프레소, 혹은 터키식 커피를 위한 블렌드가 서너종, 콜롬비아, 과테말라 등 스트레이트 커피가 대여섯 종 정도 있었고, 카운터 아래는 맥주 안주로 먹으면 좋을 각종 견과류와 과자들이 수십종 있었다. 아랍계 특유의 친절한 사장님이 아주 천천히 내가 이해할 때까지 각 커피의 특징을 설명해 준다. 로스팅은 "매일" 한다는 걸 특히 강조하면서. 커피 가격이 얼마냐면, 1kg이 20유로가 조금 못 된다. 그러니까 100g을 사면 2유로(3000원) 정도 하는 셈이다. 이 가게를 발견한 덕분에 드디어, 매주, 150g씩, 그리고 아주 저렴한 신선한 커피를 사서 아침과 오후에 내려먹을 수 있게 되었다. 맛은 커피 종류마다 격차가 좀 있었는데, 에스프레소 블렌드들은 입에 잘 맞지 않았고, 과테말라가 필터커피(드립)나 모카, 뭘로 내려도 맛있었고, 시다모(에티오피아 커피의 한 종) 커피는 천국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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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7 23:25 2011/12/17 23:25
Posted by 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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