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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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에 다녀왔다. 그동안 이 일기장을 거의 쓰지 못했기 때문에 블로그로 내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갑자기 왠 브레멘인가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한번쯤 다른 곳에 가보고 싶을 마음이 생길만큼 많은 일들을 이미 베를린에서 경험했다. 그동안 그 여러 이야기들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다는 게 무척 아쉽다. 뭐, 또 그만큼 많은 일들이 앞으로 계속 있을테니...

 

브레멘에는 트윗을 통해 알게 된 정지혜 님의 초대로 이틀밤을 지혜 님의 집에서 묵으며 정말 환상적인 시간을 보냈다. 처음 가 보는 도시에 마음이 들뜰만도 했지만 그보다는 지혜님과, 지혜님의 파트너인 마티스의 지극한 환대 덕분에 여행의 컨셉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마치 목에 걸린 담처럼 쌓여 있던 마음 속의 찌꺼기들을 털어버리는 치유 여행이 되었다. 그 내용들을 글로 옮기는 것은 예의가 아니리라. 

 

브레멘은 '국제도시'인 베를린과는 달리 '독일 도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이었다. 중세로부터 지금까지 각 시기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이 되어 있었고, 도시 전체가 친환경적으로 정비 된 크지 않은 도시였다. 베를린 못지 않게 재정부채가 쌓여 있는 도시라고는 하지만 베를린보다는 훨씬 깨끗했다. 아마 재정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문화적인 차이가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풍경인 듯 하다. 마침 우리가 방문한 날짜가 조용한 브레멘에 그나마 일년에 한 번 찾아오는 축제가 서는(?) 날이라 시끌벅적한 시내 관람을 즐길 수 있었다. 축제라고 하지만 시끄럽기는 그저 베를린의 하커셔 마크트 정도? 브레멘은 오래된 자치도시의 전통을 가지고 있고, 또 20세기에는 대표적인 좌익의 도시이기도 해서 역시나 도심 곳곳에 각종의 정치적 공간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앙역 한켠의 커다란 창고 건물 전체를 점거해서 자치관리하는 예술가들의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짧은 시간은 이 정보 이상의 어떤 것을 체험하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보통의 활동은 낮에 열리고, 클럽같은 경우는 한밤에 열리기 때문인지 우리가 방문했던 저녁 시간에는 많은 행사가 열리고 있지는 않았다. 다행히 창고건물 옆의 부속 건물에 자리잡은 한 갤러리(역시나 점거된 공간인 듯 했다.)에서 남아프리카 만화가들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시보다도 '숲'이 이번 여행에서 우리에게 커다란 것을 선물해 주었다. 안티고네는 오래전부터 독일의 숲을 동경하고 있었고, 마침 마티스의 취미가 버섯채집이어서 일요일 오후에 우리는 브레멘 근교의 숲으로 나가서 함께 걸으며 버섯을 땄다. 숲은 독일인들에게 특별한 공간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와는 달리 독일은 산이 아닌 평지의 숲이 상당한 땅을 차지하고 있고, 많은 독일적인 문화는 이 숲에서 나왔다.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숲은 도시의 긴장과 피로를 풀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버섯을 따는 행위는 먹을 것을 직접 마련하는 오래된 인간의 삶을 상기시켜 주기도 했고, 동시에 숲 안에서 걸으며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은 우리가 결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 도시에서 무언가 나는 할 수 있으며 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회복'이란 자연으로 돌아가는 행위가 아니라 어쩌면 도시로 '다시 돌아오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여행 일정 내내 지혜님과, 또 마티즈와 함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넷이서 함께 대화를 나누었던 몇몇의 순간에는 대화가 너무나도 즐거워서 내가 독일어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잠시 잊을 정도였다. 신변잡기나 일상적 대화가 아닌 학문적인 대화를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대화 가운데서 앞으로의 공부를 위한 많은 통찰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행복하기도 하고, 벌써 그리워지기도 해서 잠시 가슴이 벅차올라 눈에 눈물이 고였다. 우리는 아마도 1월에 베를린 영화제에서 재회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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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9 00:48 2011/10/19 00:48
Posted by 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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