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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6/15
    한국 민주주의에서 권위,도덕,갈등의 문제
    좀비
  2. 2005/06/11
    욕하기(6)
    좀비
  3. 2005/06/08
    정직
    좀비

한국 민주주의에서 권위,도덕,갈등의 문제

'인간과 정치'를 끝으로 모든 시험이 끝났다.

최장집 선생의 수업이나 시험은 언제나 '한국의' '민주주의'이다.

이번 수업에는 특이하게 노빠 정치비리의 선두주자인 안희정씨도 보였고

쌩뚱맞게 청와대 쪽 사람들도 보였다.

 

후반부에 수업이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에 집중되 너무 지루해져,

마지막 수업을 세번 정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그 때 나온 내용이 시험에 나와버렸다.

요즘 선생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민주주의에서의 '권위'문제였다.

 

시험은 총 두문제 시간은 한시간이었고 정말 머리를 있는데로 다 쥐어짰다.

첫 문제는 한국 헌정체제에 대한 논평 두번째는 제목의 내용 대로다. 첫번째야

저번 학기 민주주의론에서 배운 것 그대로 주욱 썼고 두번째는 사실상 '소설'을 썼다.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로마가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공화정에 의해서다. 그리고 공화정은 사회 세력 간의 갈등에 의해 유지되었다. 이것은 현대 민주주의에도 적용 가능하다. 사회의 다양한 갈등이 자유롭게 표출되어 조직하여 그 속에서 선출된 정당, 정권은 민주적 권위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현대 사회는 엄청나게 다원화 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갈등이 그대로 표출될 수 밖에 없으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도대체 갈등이 표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당들은 지역감정에 자신의 세력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 지역감정은 실질적으로 국민의 삶의 갈등이 아니라는 점에서 허구에 불과하다. IMF 이후로 빈부격차는 계속 커지고 있고 비정규직 문제 같은 '분배'의 문제가 강하게 부각되고 있지만 여전히 정당은 지역감정에만 집착하고 있다. 진짜 갈등에 기인하지 않은 정당, 정권은 민주적 권위를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이 국민의 삶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지지율은 갈수록 하락할 수 밖에 없으며 정치에 대한 무관심도 커질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들은 자신의 권위를 '도덕'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정당끼리 서로 부패 고발하기 경쟁을 벌이며 정치의 문제를 사법부로 가져가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유행한다. 그들은 '그래도 자신이 더 깨끗' 하다는 걸로 끊임없이 경쟁하며 정치에서 '도덕주의'가 횡행하게 된다. 잃어버린 국민의 지지를 도덕성으로 메꾸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의 권위를 회복하기는 커녕 오히려 정치 자체가 무능력 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갈등은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선 반드시 있는 그대로 표출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오히려 진정한 갈등의 표출을 집단 이기주의나 포퓰리즘으로 매도하고 있으며 그러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정당은 오로지 지역감정에만 기반한 채로, 매 선거마다 국민들에게 '전라도냐 경상도냐'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냉전적 정치 상황은 장기적으로 민주주의를 약화시켜 나갈 것이고 표출되지 않은 갈등들은 어느새 폭발해 버릴지 모른다.

 한국 민주주의는 지역 감정에 기반한 정당들에 의해 갈수록 형식화, 무능력화 되고 있다. 그들로 인해 다양한 갈등들은 불법과 이기주의로 전락되고 있으며 갈등의 발생 자체를 막고 있다. 민주주의의 문제는 곧 정치의 문제이며, 한국에서 여러 정치문제의 근원은 기형적인 정당 형태에 기인한다. 한국 정치가 민주적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삶에 기반한 정당들이 국민들을 대표해야 한다. 역사청산보다 급한건 수구정당들의 청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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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기

* 민중언론 참세상["진압작전"이라는 이름의 "강제철거"] 에 관련된 글.

사실, 경찰이나 군인이나 선생들이나

그들 각각의 개인들에게 "이 ㅈ같은 씨발놈들" 이라고 말해선 안되겠지만,

 

푸코의 말대로 권력은 일상에 광범위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그 누구도 '소유' 하는 것이 아니라 해도,

실 생활에서는 분명 권력은 개인과 개인 혹은 권력있음과 권력없음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이럴 때마다

권력에 의해 훈육 되었고 다시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들에 대해

ㅈ같음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국민을 '보호' 해주고 질서를 유지해 준다는 공권력의 연대력은

그 권력의 실체가 드러나거나 공권력의 무기력함이 보일 때 완벽하게 드러난다.

불을 끄고 생명을 구조한다는 소방대나, 치안을 유지한다는 경찰이나,

국가안전을 보장한다는 군대는 그때마다 철저하게 규합해, 인민을 그들 권력의

'적'으로 만들어 낸다.

공권력은 '언제나' 내부의 적을 만들었고 사실은 그들로부터 존재이유를 발견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권력은 누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며

누구로부터 누가 빼앗은 것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ㅈ같은 놈들, 만약 지옥이 있다면 니들이 갈거다"라는

저주는 누구한테 해야 하는 것인가?

 

시위 판에서 시위자가 경찰의 방패날에 맞아 눈알이 빠져도,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도,

욕을 시원하게 할 대상이 확실하지 않다니 이건 참, 욕하는 사람으로선 엄청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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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

일상 생활에서 가장 구역질 날 때는,

어떤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는데

그 말을 '그 상황'에서 하는 이유가 똑바로 보이는데도

그걸 다른 걸 빗대어 포장 하는 거다.

 

다른 친구의 말대로 이건 '이미지 플레이'인데

더 웃긴 건 내가 그런 사람들을 깔 때 조차

이미지를 '이용'한다는 거다.

 

다른 사람의 이미지 사용을 비난하지만 그러는 내가

이미 '그러한' 이미지(난 뭔가 레딕헐 하지 따위)를 팔아 먹는 거다.

 

해서, 나의 좌우명은 이제 "정직해지다" 다.

 

'정직'을 내 나름으로 정의하면,

내가 말하거나 밖으로 보이는 '그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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