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디외는 중간계급을 연구하면서 그들이 과거에 어떠한 계급 분파에 속했다가 현재는 어떠한 분파로 이동했는지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른바 계급 연구에 시간적 요인을 도입한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중간계급에 속하더라도 사회적 상층부에서 중간계급으로 이동한 경우 모두 통계수치에서는 동일한 범주에 속한 것으로 포착된다. 그러나 동일한 중간계급에 속한 사람들이라도 그들의 정치적 가치관과 행동유형은 매우 다르다. 상층부에서 중간계급으로 이동한 경우 과거의 생활방식에 익숙한 나머지 여전히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는 반면, 하층부에서 중간계급으로 이동한 경우에는 생활 형편이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생활 습관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민중계급의 절약 정신과 정치적 진보성을 보일 수 있다.
한국적 상황에서 부르디외의 중간계급론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우선 한국의 일부 지식인 그룹에서는 중간계급의 구성원들이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만일 부르디외의 분석이 한국에서도 여전히 적실성을 갖는다면 중산층을 통해 사회 변혁을 기대하는 이른바 중간계급에 대한 낙관론은 수정되지 않을 수 없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사회에서는 1980년대의 민중계급론이 후퇴하고 시민사회론이 강세를 보여 왔다. 이때 시민계급을 구성하는 사회적 실체가 중간계급이라고 한다면, 시민계급의 정치적 진보성에 대해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홍성민, 『취향의 정치학─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읽기와 쓰기』, 현암사, 2012, 3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