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터는 청소부는 물건과 장식품을 하나하나 들어내고 닦아야 하기 때문에 집주인이 걸어온 삶의 여정에 관해 제일 많이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W 부인이 명문 여대 졸업생이며 현재는 투자한 돈이 늘어나는지 줄어드는지와 아기의 장운동이 정상인지를 살피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 부부 침실에서 임신, 수유, 생후 6개월, 생후 1년, 생후 2년에 관한 책들로 가득한 책꽂이의 먼지를 닦으면서 제대로 된 탁아소에 아이를 맡기지도 못하는 매디(청소부 동료)가 이걸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세상의 여성들을 종족을 잇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가르는, 아무도 모르는 구분법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서 청소부 계급의 여성들은 이제 더 이상 자녀를 생산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118쪽)
직업군으로서 청소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집단이고 우리가 보이게 되는 경우는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뿐이었다. (140)
테드(청소용역회사의 중간관리자)의 인정을 받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무척 궁금했다. 내가 보기에는 동료들의 ‘애정 결핍’은 만성적인 박탈감 때문에 생긴 듯했다.
피트의 말대로 일은 우리가 사회에서 ‘왕따’로 전락하지 않도록 구원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 자체가 왕따의 일로 눈에 보이지 않고 심지어는 역겹기까지 했다. 경비원, 청소부, 단순노동자, 성인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사람들. 이들은 신분제가 존재하지 않는 민주 사회의 불가촉천민들이었다. 그리하여 테드 같은 자격도 없는 사람에게 카리스마가 부여된 것이다. 그는 탐욕스럽고 무뚝뚝하고 잔인했지만 더 메이즈(청소용역회사)에서는 유일하게 더 나은 세상, 사람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사복을 입고 직장에 나가고, 주말에는 재미로 쇼핑을 하는 세상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
혹은 일반적으로 저임금 노동 자체가 노동자 스스로를 천민처럼 느끼게 만드는지도 몰랐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텔레비전을 보면 등장하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시간당 15달러 혹은 그 이상을 번다. 뉴스 앵커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시트콤이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모두 패션 디자이너나 학교 선생님, 변호사들이다. 따라서 패스트푸드 가게 점원이나 간호사 보조는 자기가 비정상적인 존재라고,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유일한 혹은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한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 생각이 맞다. 가난한 사람들은 문화 전반에서 사라져 버렸다. (163~4)
한 번에 30분 또는 그 이상인 면접 시간 동안 늘 빠릿빠릿하면서도 고분고분하게 보이려고 애쓰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것만큼이나 힘이 들었다. 왜냐하면 ‘솔선수범’하는 사람처럼 보여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노조 결성 같은 걸 할 사람으로 보여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177)
우리가 청소하는 호텔 객실과 그보다 훨씬 더 고급스럽게 꾸며진 연속극 속의 실내장식이 시간이 지나면서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우월하고 안락한 세계, 매일매일이 휴일이고 다만 소일거리라곤 성적 모략이 전부인 세계로 진입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상상의 세계 속에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신분이었고, 그곳에 머무르는 대가로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갈증이 끊이지 않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69)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손님들은 우리가 있는지도 몰라요. 그러다 객실에서 뭐가 없어지면 갑자기 우리 생각을 하고는 죽이려고 들죠.”(70)
직업군으로서 청소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집단이고 우리가 보이게 되는 경우는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뿐이었다.(140)
우리의 세계는 통증이 지배했다. 통증을 참는 방법으로는 엑세드린이나 애드빌 같은 진통제를 먹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혹은 (주말에만 가능했지만) 한두 명은 술로 달랬다.(128)
집주인과 얘기해 본 몇 번 안 되는 경우 중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책상 위를 보니 직업이 개인 트레이너인 몸매가 좋고 단단한 집주인 여자가 내가 땀을 많이 흘리는 것을 보더니 “정말 운동이 되죠?” 하고 말했다. … 나는 “호호.”라고만 대꾸했다. 우리가 헬스클럽에서 만나 담소하는 상황도 아닌 데다, 이런 종류의 운동은 완전 비대칭이고 무자비하게 반복적이어서 근육과 뼈를 단련시키는 동시에 망가뜨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28~129)
면접은 거의 전적으로 4쪽에 걸친 ‘설문’으로 이루어졌다. … 다음과 같은 명제들에 내 의견을 제시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약물을 약간 복용했을 때 더 능률적으로 일한다.” “누구나 한 번은 대마초를 피워 본 경험이 있다.”…
고용주들이 이런 (심리)검사를 함으로써 잠재적인 피고용인들에게서 도대체 어떤 사실을 알아내고 싶은 건지 상상이 안 갔다. …
나는 이런 검사의 실질적인 목적은 피고용인의 어떤 정보를 캐내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인 피고용인에게 고용주의 의사를 전달하는 데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내용은 이렇다. ‘당신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숨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당신의 근육과 그 근육을 움직이는 두뇌 활동뿐만 아니라 당신 생각의 가장 깊숙한 부분까지 소유하고자 한다.’(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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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가난할수록 더 가난해진다 _ 바버라 에런라이크, 《노동의 배신》
Tracked from 어떤 말 2012/07/27 14:39 delete『4천원 인생』이라는 책이 있다. 한 언론사 기자들이 식당 종업원, 공장, 마트 등 저임금 노동 현장에 투입돼 그들의 노동을 직접 체험하고 쓴 책이다. 이 글들은 본래 해당 언론사의 주간지에서 기획된 기사였는데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책으로 묶여 나온 뒤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후에 유사한 책들이 한두 권쯤 더 나오기도 했다. 2000년 전후, 미국 경제 호황기에 쓰여진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은 이런 기획의 원조 격인 책이다. 에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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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잠입취재! 이번엔 화이트칼라다! - 『노동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화이트칼라의 일과 삶 속으로!
Tracked from 도서출판 부키 2012/10/30 09:29 delete시작은 늘 그렇듯이 사소했습니다. 『하퍼스(Harper’s)』편집장과 점심을 먹으며 시간당 6달러나 7달러를 받고 과연 살 수 있을까 라는 워킹푸어의 삶을 이야기하다 “누가 옛날식으로 기자 정신을 발휘해야 해요. 그렇죠.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체험 취재를 할 필요가 있어요.”라고 말한 것이 씨가 되어 ‘누가’가 아닌 자신이 직접 워킹 푸어
같은 분이 쓴 긍정의배신도 읽어보세요ㅎㅎ 난무하는긍정이데올로기에 일침이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