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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감기

  • 등록일
    2008/07/16 01:20
  • 수정일
    2008/07/16 01:20

장마가 왔다.

꽤 오래전에 말이다.

6월 장마는 명박이조차 외면한다고 재미있어했다.

그래도 매번 물대포로 장마비를 대신했다.

7월이 왔다.

매번 주말마다. 또 일정만 잡히면 비가 오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7월 17일 비가 온단다.

 

지난 토요일 시청 광장 탈환을 목청껏,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으면 외쳤지만, 인권위 앞에서 내리는 비에 촛불이 꺼질라 조마조마해 하는 모습만 기억난다.

그리고 비는 쉼없이 왔다.

잠깐 그친틈을 타 비옷을 벗을라치면 어김없이 다시 쏟아졌다.

이미 비옷은 입으나 마나가 되어 버리고, 6월1일부터 맞기 시작한 비(물대포)를 7월중순까지 맞고 있는 셈이다.

최근 집에서 가장 관심있게 지켜보는 것이 날씨예보다.

과연 오늘은 비옷에 샌달, 그리고 짧은 바지를 준비해야 하나, 아님 가벼운 옷차림에 마실 물을 충분히 준비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 베낭안에는 언제나 어느때나 대응이 가능한 전천후용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쏟아지는 빗줄기와 광선처럼 날아오는 물대포를 밤새 맞고나면 아무소용이 없음을 확인할 뿐이다.

결국 지난 주말(7월12일) 시청탈환을 목표(ㅋㅋㅋ)로 모인 군중과 조직적 대오는 혹여 무슨일이라도 생길까봐,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쏟아지는 비 속에서 쉬지도 못하고 끝없이 걸었다.

솔직히 잠깐이라도 쉬어야 화장실도 다녀오고, 고픈 배도 채우고, 담배도 한까치 피울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는 마치 최근 유행하는 국토대장정을 하듯, 일정에 쫓기듯이 끝없이 걸었다.

그리고 걷는 동안 온몸은 땀과 비에 젖었고, 또 잠깐씩 젖은 몸에 식은 땀이 흐르기를 반복했다.

 

시청에 도착하여 잠깐 쉬는 사이 몸은 차갑게 식어버렸지만, 다시 YTN으로 이동하는 동안, 어디서 끝없이 나오는지 다시 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나중에 집에 들어가서 할려고 했것만, 장대비가 다시 온몸을 씻기고 지나간다.

 

벌써 3달째 뜻하지 않은, 사실 스스로 즐겨 받고 있는 야간 철야 근무(!)를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체력부족을 호소하고 가정사, 개인사, 일터 등등의 문제를 포기하고 촛불에 매달리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런 자발성에 근거하여 촛불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막막하기만 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지난 일요일, 그리고 월요일, 그리고 다시 화요일, 여러가지 장애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있다는 점은 촛불, 아니 작은 태양을 가슴에 심은 많은 이들이 여전히 스스로의 가슴에 희망을 밝히고, 또 미래를 밝히며, 그 따스함과 밝은 빛을 주변과 함께 나누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시큰거리는 코를 모른척 할 수는 없다.

사무실에 들러서 보면 주르르 흘러내리는 콧물,  이치, 에치, 윽, 크 등등의 재채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많은 이들이 휴지를 찾고, 또 재채기를 한다.

우리 가슴에 작은 태양을 켜고 있지만, 중이 제머리를 못깍듯이 자신의 몸을 데우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난 자꾸만 시큰거리고, 가끔 코끝을 스치듯 올라오는 기운을 막기 힘들지만, 하품을 하듯이 뱉어내버리고 만다.

여름감기가 온듯 하다.

 

가끔은 감기를 넘어 몸살로 넘어오려고 하지만, 아직 그정도의 여유를 찾을 정도로 상황이 여의치 않은지, 매번 비켜가고 있다. 또 사실은 부담스러운 여름이기는 하나,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 여지 없이 페달에 몸을 실어 힘껏 페달과 감기기운을 밟아버린다.

 

힘껏 밟으면 많은 물방울이 떨어진다. 이것은 더위와 지친 몸에서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고, 물대포와 장마비에 흘러내리는 물이 아니다. 힘껏 밟은 페달 만큼 쏟아지는 땀방울이다.

 

가슴의 작은 태양이 꺼지지 않고, 나와 세상에 작은 빛, 그 빛속에 나도 함께 그 빛이 되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많은 사람이 함께하지 못하지만, 그 작은 태양이 꺼지지 않도록 서로의 빛이 되어야 할 것이다.

 

촛불을 든 모든 이들이 여름감기를 이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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