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Die Tageszeitung의 기사를 번역한 것이다. 원문은 아래에서 볼 수 있다. (강조는 인용자)
http://www.taz.de/1/politik/europa/artikel/1/autonome-kuendigen-weitere-proteste-an/

 


(경찰의) 15살 소년 살해 후
소요자들이 그리스를 충격 속에 몰아넣다

 

15살 Alexis Grigoropoulos의 죽음 이후에 그리스 매체들이 “살해”에 대해 말하다

저항자들 사이에 분노가 정부를 향해 표출되다

 

 

VON KAKI BALLI
2008년 12월 8일 Kommentare
번역: cheiskra at 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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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토요일 저녁 이후로 약 40명의 사람들이 가두투쟁에서 다쳤다. Foto: d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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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SALONIKI taz “Bullen, Schweine(한국식으로 개새끼 - 역자), 살인마!” 구호가 수 년 동안 그리스의 거의 모든 데모에서 울렸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게 들린다. 그리고 진지하게 들린다. 일요일 이른 시간부터 계속 분노가 아테네, Thessaloniki, Patras, Ioannina 그리고 다른 그리스 도시들의 거리를 지배한다. 자율주의 계열(autonome Szene)의 청소년들, 그러나 또한 수 천 명의 “보통” 학생(초중고생, 이하 학생으로 표기할 경우 대학생이 아닌 초중고 학생만을 가리킨다. - 역자)과 대학생들이 거리에 나서고, 자동차에 불을 지르고,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 특히, 그러나 오로지 그런 것은 아니지만 - 은행의 쇼윈도를 파괴한다.

 

정향되지 않은 분노가 그리스의 15살 학생의 죽음에 반응한다. 그러나 청소년뿐 아니라 그리스 매체 다수가 말하듯, 그 학생의 “살해”에 반응한다. Alexis Grigoropoulos는 토요일 저녁 거리 한복판에서 Exarchia 구역 기동타격대(Spezialeinheit) 경찰이 쏜 총에 맞았다. 경찰은 “실수”라고 말하고, 목격자들은 “조준했다”고 말한다.

 

수 많은 도시에서 밤에도 인터넷과 SMS를 통해 데모가 조직되었고, 곧 소요(Krawalle)로 급변했다. 24시간 내내 아테네 중심이 불탔다. 경찰은 학생의 죽음 후에 마비되었다. 그들은 보도블록(Pflastersteine)이 날라 다니고 상점들이 불탔을 때,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리스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 바로 경찰의 희생자가 된 소년 때문에, 그러나 또한 소요자들(Krawallbider)에 의해.

 

“죽여 봐라, 나 또한 무장하지 않았다!” Thessaloniki의 청소년들이 경찰에게 소리쳤다. 그리스어로 이르기를, “유명한 무명인들”있을 뿐만이 아니었다. 무정부주의적 계열의 핵심부가 여기서 다수가 아니고, 지금 수 백 명이 그들과 함께 시위를 한다. 그리고 전(全) 그리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계속적인 새롭고 자발적인 저항이 월요일 6개 도시를 비상사태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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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is의 장례식이 화요일에 열린다면, 모든 학교와 대학교가 휴업할 것이다. 주초 이래로 더 많은 학교들이 점거되었다. 수많은 교사들은 그들의 성난 학생들과 연대하고 이미 월요일에 동맹휴업을 진행했다. 교육부 장관 Evripidis Stylianidis는 월요일의 학교휴업을 Alexis의 부모에 대한 모욕행위라고 말했다. 사실 그는 새로운 점거물결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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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화의 계기는 오래 동안 준비되어 있었다. 교육제도는 불만족스러운 상태였다. 실업률은 청소년들과 고등학교 졸업생들에게서 특히 높다.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은 TV 앞에 당황스럽게 앉아서, 거의 매일 새로운 스캔들을 듣는다. 보통 시민은 다음과 같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즉 누구도 그 어떤 것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소년의 죽음은 법치국가의 심장을 찔렀다”고 대통령 Karolos Papoulisa가 말했다. 내무부 장관 Prokopis Pavlopoulos가 낸 사표는 수상 Kostas Karamanlis에 의해 거절되었다. 발포한 경찰과 그의 순찰동료는 계속 구속되어 있다.

 

Karamanlis는 Alesis의 가족에게 사건을 밝히고 죄인을 엄히 처벌할 것이라고 약속하는 애도편지를 보냈다. 그것은 믿을만한 것이 아니다. 23년 전에 마찬가지로 15살 소년이 또한 Exarchia에서 경찰에 의해 살해되었을 때, 경찰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1980년 두 명의 시위자를 죽인 사람(십중팔구는 경찰)은 수사 받지 않았다. 지난 해 Thessaloniki에서 한 대학생이 두 명의 경찰에 의해 거의 불구자가 되도록 폭행당했을 때, 그들은 그것에 대해 벌금형을 받았을 뿐이었다.   

 

“시민의 친구이자 도우미”라는 경찰의 직업요람은 그리스에는 낯설다. 경찰은 보통 25년 전처럼 극우주의자(Rechtsradikale)가 아니긴 하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잘 교육받지 못하고, 잘 지불받지 못하며, 의무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경찰 지도부는 거의 항상 당정치적 기준에 따라 지명된다. 그래서 능력은 둘째 문제이다.

 

흥미롭게도 자신의 상점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본 상인들은 지금까지 청소년의 폭력에 대해서 보다 경찰의 무능력에 대해 더 많이 불평했다. 파손된 쇼윈도 앞에서 상인들이 “국가가 없다”며 비판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가오는 경제위기 전의 유예기간으로 기대했지만 흥이 깨져버린 크리스마스 장사를 한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네 상공회의소 대표 Dimitris Armenaki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이가 살해되었다면, 우리의 손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야당들은 정부의 무능력을 비난했다. 그러나 좌파인 Synaspismos당의 대표 Alekos Alavanos만이 정중하긴 했지만, 정권퇴진을 요구했다. 사람들은 야당이 여당인 Nea Dimokratia에게 자신의 결정을 포기할 기회를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린 Alexis의 죽음과 지난날들의 가두투쟁은 다만 실책, 태만, 스캔들의 연쇄이기 때문이다.

 

Karamanlis 정부가 2007년 9월의 지난 선거를 통해 여름의 끔찍한 산불에도 불구하고 의원직을 갱신할 수 있었던 이래로, 그들은 다만 극히 간신히 의회 다수파가 되었기 때문에, 백척간두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전반적인 경제적이고 국내정치적 위기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 그들은 연금체계의 위기와 같은 엄청난 문제들에 대한 혹은, 소녀 소년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던 학교제도와 대학제도의 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조직하지 않았다.

 

수 만 명의 아테네인들이 Alexis의 장례식을 침묵 거리시위의 계기로 만들 것이다. 그러나 분노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분노는 그리스 사회에 너무 깊숙이 박혀있다. 그리고 수요일 갱신된 정세(Luft)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 날을 위해 노조는 이미 연금개혁에 대항한 총파업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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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9 08:02 2008/12/0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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