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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사무실 떠나며 나는 부끄럽다" 출처: 레디앙 | ||||||||||||
[진보패권주의와 잃어버린 성찰] 신당에 몸을 싣지 못하는 이유 | ||||||||||||
심상정 비대위가 실패로 끝난 이후 탈당이 봇물 터지듯 이루어지고 있다. 나 역시 당 정책전문위원직을 사직하고, 이어 8년간의 당적을 마무리했다. 정들었던 사무실을 떠나며 내 생각을 정리해 본다.
그러나 이번 민주노동당 사태를 보면서 눌러오는 죄책감에 마음이 무겁다. 처음으로 진보운동에 폐를 끼쳤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리숙한 의사가 환자를 다루겠다고 나섰던 꼴이다. 자족적인 활동에 안주해 왔으며, 진보운동가로서 소양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근래 1년 반을 정말 정신없이 보냈다. 2006년 가을부터 심상정 경선캠프에 참여해 일했다. 2007년 여름 경선이 정점에 달했을 때는 신나는 나날이었다. 당에도 새로운 에너지가 충만했다. 경선이 끝난 이후 권영길 후보의 정책특보로 대선에 참여했다. 다소 의아해 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권의원을 존경해 왔고, 대선이라는 활동 공간에서 일해보고 싶었으며, 어찌되었든 난 당의 대선에 복무해야 하는 상근간부였다.
대선 참패 이후에는 심상정 비대위에 다시 팀장으로 참여했다. 엄중한 시기 심의원을 도와 당 혁신을 이루고 싶었다. 이렇게 난 지난 1년 반, 내부 경선, 권영길 선대본, 심상정 비대위에 흠뻑 빠져 살았다.
지금은 나와 비슷하게 탈당한 간부들, 특히 내가 가까이 했던 사람들이 진보신당 건설로 달려가고 있다. 이 중에는 최선책이 아님을 알면서도 해야 할 일이기에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존경하는 분들이다. 하지만, 난 그 배에 지금 몸을 실을 수가 없다. 아마 그래서 이렇게 글이라도 적어보려는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굳이 인생관 비슷한 것을 말하라면 ‘결과보다 과정을 보라’는 것이다. 난 이번 민주노동당 분당과정, 혹은 진보신당 과정에서 진보진영을 지배하는 ‘선악 이분법’이 두렵다. 비록 자주계열의 잘못이 아무리 크다 해도 여기에 편승해 역으로 행해지는 또 하나의 패권주의를 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진보 패권주의’가 작동하면서 동지간 신뢰도, 활동간부의 성실성도, 당의 민생정치도 무너졌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혹 진보신당이 단기간에 성공할지 모르지만, 민주노동당 실패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는 성공은, 그 근본문제를 그대로 가지고 있기에 잠재적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과연 대선 참패 이후 민주노동당은 회복 불가능한 조직이었을까? 우리 안에서 혁신하며 다시 태어날 순 없었을까? 난 충분히 그러할 수 있다 기대했다. 대선 경선이 그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었다. 심상정비대위를 통해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어내자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대선 이후 당을 휘감은 ‘종북주의’ 프레임에 심상정 비대위도 자유롭지 못했다. 대선 직후 터져 나온 종북주의론은 궁지에 몰린 자주계열을 낭떠러지로 몰아 넣고, 새로운 신당을 만들려는 사람들에겐 분리 이유를 제공하는 카드였다.
처음 종북주의 주장을 접했을 때, 선뜻 동의하긴 어려웠지만, 그래도 무슨 근거가 있을거라며 귀기우려 보았다. 하지만 앙상한 딱지붙이기에 불과하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종북주의 마스터플랜이 ‘9월 테제’라는 주장은 황당하고, 최기영 건의 심각성은 인정하지만, 이것을 지난 4년 민주노동당의 실패를 설명하는 잣대로 사용하는 것은 무리다.
지난 당 대선 경선 시기는 누가 ‘혁신’을 높이 내거느냐를 경쟁하는 때였다. 당시 나는 한반도 공약을 다루면서도 ‘친북당’ 이미지를 어떻게 벗어날까 고심은 했지만, 종북주의 같은 문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나 역시 대선 경선 때 자주계열의 지지를 기대하며 한반도 공약을 만들었지만 그들에게 영혼을 판 적은 결코 없었다. 세 후보도 합리적으로 ‘한반도’ 의제를 토론한 편이다. 권영길 후보의 ‘애국열사릉 참배, 노동당사 공동 사용’ 등 황당한 ‘선거용 발언’이 있었으나 당원이나 언론 모두 에피소드로 넘겼다. 그만큼 북한은 이제 우리사회에 두려운 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 이후 튀어나온 종북주의론의 위력은 막강했다. 지역에서 자주파의 횡포에 눌려 있거나 새로운 공기를 찾으려는 당원들의 열정을 감싸안는 ‘진보 포퓰리즘’으로서 힘을 발휘했다. 민주노동당 뉴스거리를 찾아 나선 언론에게는 ‘미디어 상업주의’에 딱 들어맞는 주제이기도 했다. 종북주의론 하나에 모두들 허둥댈 만큼 우리는 미숙했다. 사물을 정파적으로 직시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이다.
대선후보 정책특보로서 대선 기간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내건 자주파와는 싸우면서도 이를 빌미로 한 역편향 공세엔 관대했던 것도 비슷한 연유일 것이다.
많은 일들이 꼬리를 물고 다가온다. 난 거듭된 최고위원회 선거 때 친한 동지가 알려주는 번호대로 투표를 했다. 나도 셋팅선거에 참여한 셈이다. 새롭게 당간부를 알아갈 때도, 정파 딱지로 그들을 분류해 갔다.
원내 진출 이후 당의 위신을 실추시킨 첫 번째 사건일 ‘부유세 논란’ 때도 나는 침묵했다. 당시 최고위원회의 실수를 악용하여 ‘부유세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부유세 사태’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서도 말이다. (부유세는 자주파의 무능보다는 ’부유세주의자‘들에 의해 버림받았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원내에서 관련법안 10개를 조세담당연구원과 함께 만들었던 당사자로서, 난 언젠가 이 어처구니없는 역설적 행위를 바로잡는 숙제를 마무리하고 싶다).
2007년 초 문성현 대표는 공중파가 생중계하는 신년연설회에서 오직 국민연금 보험료지원사업(소위 ‘사회연대전략’)을 원포인트로 다루었다. 대표의 결단이 담긴 승부수였으며, 많은 당원들이 기대했던 사업이다. 그러나 실무담당자로서 나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지 못했으며, 아직까지 평가보고서조차 내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일들이 더 많다.....구체적으로 적지는 않겠다. 난 정말 진보적이고 책임있는 활동가였을까?
민주노동당이 오늘 이 지경에 처한 문제의 핵심은 민생정치에 무능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이것이 당이 민생정치를 내팽개쳐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매 시기마다 당 원내외가 설정한 핵심의제가 항상 ‘민생’이었다. (아마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4년 내내 당의 민생활동을 기획도, 실행도, 평가도 해보지 않은 채, 여의도 주점가를 떠도는 풍문에만 익숙한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항상 민생을 외쳤지만, 민생정치에 성공하지 못했다. 정세를 감안한 세밀한 전략이 부족했고, 강력한 열정보다는 관료적 매너리즘을 보다 가까이 삼았으며, 사업을 벌여보기엔 대중조직과 유리되어 있었다. 헤엄을 치려고 발버둥은 쳤으나 앞으로 나가지는 못한 꼴이다.
난 이후라도 당의 ‘민생 정치 실패’에 대해서 균형있는 평가작업이 수행되기를 고대한다. 비록 실패했지만, 민주노동당 4년이 그렇게 엉터리는 아니었다는 것을 남겨야 하고, 민생정치가 얼마나 어려운 지도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의 4년이 지금처럼 한방떨이로 매몰차게 버릴 물건은 아니다.
평등계열 역시 진보패권주의의 파트너였다. ‘좋은 여당’도 없었지만 ‘좋은 야당’도 없었다. 민주노동당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문제를 자주계열의 낙후함과 패권성으로 환원하는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난 대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존 당권파의 패권주의는 부각되었으나, 상대적으로 평등계열의 패권주의는 점검되지 못한 채, 급히 총선 물결로 휩쓸려가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진보신당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자주계열이 지배하는 민주노동당을 넘어, 우리 안에 존재하는 ’진보 패권주의‘를 도려내는 뼈아픈 과정이어야 한다. 민주노동당 실패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지 않으면, 진보신당 역시 ‘민주노동당 II'의 운명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사태가 진보신당 창당으로 급속히 쏠려가면서 진보진영에서 ‘성찰 프레임’이 작동할 공간이 매우 협소해 졌다. 대선 직후, 혹은 비대위 실패 직후 이러한 논의구도가 형성되기를 바랐지만, 이미 때는 놓친 듯 하다. 단병호 의원이 겨우 이를 제기했지만, 흐르는 대세를 막을 수는 없는 형편이다.
난 민주노동당 사태에서 자유로운 중앙 간부는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정책담당 간부들이 함께 모여 탈당선언을 하자는 제안에 참여하지 않았다. 지난 4년 당 정책팀의 안이함을 자주계열을 비판하는 것으로 면죄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탈당선언 정치’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난 이번 총선이 다소 우려스럽다. 코 앞에 닥친 총선일정으로 ‘선거공학’이 작동할 것이다. ‘새롭고 참신하고 대중적 아이콘을 가진’ 진보신당과 ‘구태의연하고 친북적이며 운동권이 몰려 있는’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분법적 선악구도를 내걸 개연성이 크다. 자신의 진보적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옛 동지들을 무너뜨려야 하는 ‘진보내전’을 보는 건 정말 힘겨운 일이다.
1월 12일 비대위 승인 이후 체제를 갖추는 데 1주일이 흘러갔다. 태만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그리고 대의원대회 1주일 이전 안건 공지 규정에 따라 채 열흘 안팎의 활동으로 안건을 만들어야 했다. 물리적으로 무리한 일정이었다.
비대위가 최기영 제명 건을 전면에 내건 것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시는 탈당 국면이었다. 자주파의 오류가 전면적으로 부각되는 상황에서 ‘편향적 친북행위’ 건을 혁신의 상징적 징표로 내거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만큼 종북주의 프레임이 강하게 걸려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대목이 여럿 있다. 아직 비대위에 대한 본격적인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비대위 참여자마다 조금 의견은 다를 수 있겠지만, 난 비대위가 절대적 시간 부족, 안이한 전략 등으로 인해 섬세하고 치밀한 활동을 벌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첫째, 비대위는 당시 신당파와 다른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지 못했다. 초기부터 신당파의 활동을 강력히 경고하여 최기영 건과 균형을 갖추고, 종북주의론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천명했어야 했다. 비대위의 활동 의지를 당원들과 소통하고, 가능한 종북주의 프레임을 상대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둘째, 패권주의 문제를 충분히 강조하지 못했다. 상징적 조치로서 ‘편향적 친북행위 척결’을 내걸되, 근본적 조치로서 ‘당내 패권주의 청산’을 적극 부각시켰어야 했다. 패권주의 청산을 위해선 ‘기존 정파 해산 및 정파패권주의 청산위원회 구성’등을 구체적으로 제안해 공론화시키는 작업도 필요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혁신의 근본과제로 예상했던 것은 패권주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셋째, 최기영 제명 건을 보다 치밀히 다루지 못했다. ‘제명되어야 한다’는 평가안을 제안하면서도 증거를 공개할 수준으로 확보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의원대회 찬반토론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고, ‘정치적 제명’을 요구하는 입장이 되어 버렸다.
비대위가 초기에 신당파의 종북주의론과 확고한 선을 긋고, 최기영 건과 패권주의 청산으로 평가혁신 안건의 균형을 갖추며, 자료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물론 이렇다 해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고, 비대위 성원들 마다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나에겐 여전히 안타까운 순간들로 남아 있다.
어찌되었든 비대위는 서툴렀다. ‘의도하지 않는 결과’이지만, 나는 비대위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판단한다. 비대위의 좌절로 진보 패권주의는 더욱 극단화되었고, 민주노동당의 실패를 성찰할 결정적 계기마저 유실되어 버렸다. 비대위 역시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자주파의 과오가 덮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난 자주파 지도부의 ‘보수성’에 다시 놀랐다. 대의원대회에서 비대위가 제명 증거를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는 자주파 지도부의 정치적 역공세는 심각했다.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정보 공개 한계를 이용한 이들의 선동을 보며 나는 마지막 기대를 접었다. 비대위는 정치적 결단을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결단하지 않고 기존 자리를 지켰다).
과거 80년대 NL, PD 노선은 당시 사회운동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을 거친 산물이었으며, 비록 사회적 분위기는 무르익지 않았지만, 사회변혁노선으로 내부에선 ‘사회운동적 현실성’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동구 사회주의가 패망하고 북한의 열악한 현실이 알려지면서, PD와 NL의 역사적 근거는 점차 사라져 갔다. 진보진영은 대중운동의 약진에 힘입어 이념적 위기를 피해갔지만 결과적으로 이념과 노선의 현대화를 게을리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념에 민감한 PD진영의 안이함은 심각하다. 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민주노동당 강령이 사문화되어 가는데도 애타하지 않았다. 사민주의를 경계한다면서도 선거 때는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사회주의로 설명하기도 했다. NL은 아직도 북한에 대한 미련을 지우지 못한 채, ‘혁명’은 빠지고 ‘민족’만 남은 민족지상주의로 흘러갔다. 서로 구태의연하게 ‘동거’한 것이다.
진보세력의 대표체로서 정파들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함에 따라, ‘노선’은 간데 없고 ‘족보’만 남았다. 과거 족보로 퇴화되어버린 정파들은 자신의 정체성이나 헤게모니를 진보적 실천이나 이념적 혁신으로 확보하지 못하고 오직 조직권력을 장악하는 것에 의존했다.
족보정파가 구축되는 데는 진보진영 내부에 일정하게 권력자원이 형성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에 권력자원이 생기면서 ‘대중을 잊고서도’ 권력을 향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선거 때만 반짝하는 ‘선대본 정파’가 되어버렸고, 일상시기에 당권파는 다수의 힘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고, 소수파는 ‘다수파의 실수’를 기대하는 딴지세력으로 자리잡아 갔다.
(이러한 면에서, ‘종북주의론’ 논란은 족보 정파 게임의 결정판이다. 이것은 NL, PD 노선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하기는커녕, ‘종북주의’라는 딱지로 노선 구도를 더욱 과거로 퇴행시켜 버렸다. 종북주의론은 최소한의 내부 소통의 여지를 가로막으며, 민주노동당 사태를 야기하는 기본 프레임으로 작동했다는 점에서 한국 진보운동의 뼈아픈 자충수다).
배타적 지지는 상층 지도부의 언술에만 존재할 뿐, 조합원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지 않았다. 이미 민주노총에는 정규직 중심 조합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어 새로운 비정규직 활동을 담기가 벅찬 현실이다.
난 지금을 ‘한국 진보주의의 위기’로 판단한다. 세계사적으로 국제 진보운동이 동구권 몰락으로 역사적 위기 상황으로 빠져 들었을 때, 한국 진보운동은 남한에서 형성된 80년대 진보 열풍과 90년대 대중운동의 부상으로 이 세계사적 위기를 피해 갔다.
그러나 IMF 위기체제 이후 오늘까지 한국의 진보운동은 이념과 노선에서, 그리고 대중운동에서 벽에 부딪혀 있다. 그나마 2004년 제도권 진출의 환호를 주었던 민주노동당 실험마저 실패해 버렸다. 이제 진보적 사상, 이론, 정책, 조직, 문화 등 전 영역에서 성찰적 논쟁이 필요하다. 한국 진보주의 위기를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고선, 진보 패권주의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진보운동의 정체성을 현대화하지 않으면, 서민을 볼모로 한 노무현의 진보, 손학규의 진보, 문국현의 진보, 진보신당의 진보가 얽혀버리는 모양이 될 수도 있다. 이들 ‘신진보’의 특징은 모두 그럴듯한 이념적 가치로 포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녹색이든, 소수자든, 평화든 ‘현실의 실천’ 없이 정치적 상표로만 위로부터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면에서 지금은 진보 ‘가치의 과잉’, 그리고 진보 ‘실천의 실종’ 시대이다.
진보신당의 경쟁력은 강령 문구를 잘 다듬는 것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서민대중은 이러한 ‘말 성찬’에 더 지쳐 있다. 새로이 ‘믿음직한 진보’를 형성하고자 한다면, 그 방식은 아래로부터 풀뿌리 실천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진보도 검증 대상이고, 그 검증은 이론적 연역보다 실천적 귀납을 통해 확보되어야 한다. 지역에서, 부문에서, 소수자에서 진보의 새 생명이 움터야 한다.
또한 ‘한국 진보주의 위기’는 다시 창고 안에 방치될 것 같다. 진보운동에게 제도권 정치는 불가피한 활동 공간이지만, 진보운동을 근시로 만든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처음 활동가의 심정으로 긴 호흡의 진보 이야기를 이제 해야 할 때이다.
이제 총선이 한달여 앞에 있다. 모두가 자신의 위치와 소신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몇가지 바람을 적으며 글을 마무리한다.
첫째, 총선에서 더 이상 서로를 부정적으로 딱지 붙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미 갈라섰다면, 이제 두 진보정당이 건전하게 경쟁하길 바란다. 누가 더 서민대중과 호흡하는지, 누가 더 풀뿌리 실천을 조직하는지, 누가 더 새 세상의 상상력을 발휘하는지가 상대를 이기는 승부수다.
둘째, 총선 이후에라도 진보 패권주의에 대한 엄중한 성찰 작업이 수행되어야 한다. 두 진보정당, 대중조직, 진보학계 중 누구라도 나서서 민주노동당 활동을 균형있게 기록했으면 좋겠다. 족보 정파에 의해 행해진 패권주의 사례들을 정리하여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야 하며, 민주노동당이 행한 귀중한 성과를 발굴해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셋째, 우리 스스로부터 새롭게 살아야 한다. ‘요구적 실천’에서 ‘참여적 실천’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부유세와 직접세를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그만큼의 회비구조를 지닌 진보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녹색가치를 부르짖는 사람이라면 자기 사무실, 지역의 에너지 낭비와 싸워야 한다. 사회연대에 기여하는 것이라면 임금이든, 복지든, 재산이든, 속시원히 자신의 기득권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지금이 한국 진보주의 위기라고 칭할 수 있다면, 이에 정면 대응해야 한다. 더 이상 진보의 아노미를 방치할 수 없다. 민주노총, 북한, 사회주의 등 성역을 과감히 허물고, 노동정치, 평화, 사회공공성 등의 가치로 새로 채워야 한다. 일국적, 중앙집중적 ‘진보담론’체계를 허물고 국제적, 그리고 풀뿌리 중심의 진보 가치를 실험해야 한다. 하나씩 하나씩 더디더라도 만들어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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