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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 밖으로 굽는구나... 동국대, 안되겠네~

 

_최준영 / 문화활동가 ptrevo@jinbo.net


이제는 존경심마저 생기려고 하는 우리의 황우석 선수. 기말을 맞아 네OO 지식검색을 들락거리며 레포트를 베끼고 짜깁기 하는 전국의 대학생들에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가라’”임를 보여주며 연말 모든 언론의 1면을 특유의 연기력 물씬 풍기는 얼굴로 장식하였다. 덕분에 홍콩에서 1,000여 명이 연행되면서까지 WTO 각료회의 저지를 외쳤던 홍콩민중투쟁도, 집회에서 경찰의 곤봉과 방패에 맞아 두 분이 사망하기까지 한 쌀개방 반대투쟁도 주류언론의 관심에서 비껴났으며, 모든 국민들이 사실은 잘 이해되지도 않는 줄기세포 번호나 ‘스너피’(맞나?)가 복제인지 쌍둥이인지에 대한 얘기만 들어야 했다.


이런 와중에 장충동에 조용히 있던 동국대학교가 기어이 ‘일’을 냈다. “6.25 전쟁은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었다”라는,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칼럼 때문에 - 그러면 북한이 왜 6.25 전쟁을 시도했을까를 생각해보자. 실수로? 그냥 한 번? 일본으로 가려다보니 지나가던 길이라서? -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강정구 교수의 직위해제를 결정한 것이다. 내년 1월 초 이사회에서 직위해제가 확정되면 강정구 교수는 다음 학기부터 강의를 맡을 수 없게 된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던데 도대체 이놈의 학교는 왜 아직 형이 결정되지도 않은 사건에 대해 총장까지 참가한 정책회의에서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일까? 검찰의 기소도 수업내용이 아닌 인터넷 칼럼 때문임에도 불구하고 교수의 수업권을 빼앗는 어이없는 결정을 한 ‘정책회의’가 뭐하는 곳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총장에다 보직 교수 전원이 참가한 회의라... 다시 말해 “배운 만큼 배웠고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일 텐데,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라는 말도 못 들어봤나 보다.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더군다나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주장하면서도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사상․표현․양심의 자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강정구 교수의 사법처리를 주장한 수구꼴통 할아버지 9,000명과 같은 레벨에서 놀고 있으니 말이다.


하긴 최근 조선일보를 넘어서는 수구꼴통 신문으로 거듭나고자 ‘석간으로’ 고생하는 OO일보가 <강정구 교수 직위해제 늦었지만 당연하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진작에 - 소위 만경대 방명록 사건 때 - 직위해제 시켰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까지 하고, 조금은 지난 일이지만 경제단체들이 동국대 학생들 취업제한까지 하겠다고 나설 정도로 세상이 미쳐가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학이 어떻게 아직 수사가 종결되지도 않은 사건, 더군다나 국가보안법이라는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된 악법에 의해 기소된 자기 학교의 교수에 대해, 교수의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수업권을 빼앗겠다고 나설 수 있단 말인가. 눈과 귀를 막고, 또 입에 재갈을 물린 채 어떤 민주적인 토론과 소통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수업권은 ‘수업을 할 권리’임과 동시에 ‘수업을 받을 권리’이기도 하다. 총장과 몇 명의 보직교수들에게 학생들의 수업권을 박탈할 권한은 없다.


‘지식의 상아탑’과 같은 현실에도 맞지 않은 낯간지러운 말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다. 대학이 사회의 여론과 특정 이데올로기에 휘둘려 자신의 본분이라 할 수 있는 수업권 - 이는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해당되는 권리다 - 을 놓아버린다면, 그 대학은 더 이상 존재할만한 가치가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동국대학교는 강정구 교수에 대한 직위해제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 수업권을 교수와 학생에게 돌려줘야 한다. 이것만이 실추된 대학의 명예와 위상을 뒤늦게나마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한참이나 지나간 90년대 말장난으로 글을 맺어본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북한산에 ‘어이’ 잡으러 가야겠다!” 장충동에서 잃어버린 ‘어이’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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