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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혁명과 자기결정권에 대한 민족의 권리 테제

  • 분류
    레닌
  • 등록일
    2008/03/30 09:35
  • 수정일
    2008/03/30 09:35
  • 글쓴이
    얼치기 공산주의자
  • 응답 RSS
사회주의 혁명과 자기결정권에 대한 민족의 권리 테제 1916년 1월-2월 레닌 1. 제국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피억압 민족들의 해방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발전의 최고 단계이다. 선진국가들에서 자본은 성장하여 민족국가들의 국경들을 넘어섰다. 제국주의는 경쟁의 자리에 독점을 확립했으며, 그런 까닭에 사회주의 성취를 위한 모든 객관적인 전제조건들을 창출하고 있다. 이것으로부터 서유럽과 미국에서는 자본주의 정부들의 타도와 부르주아지에 대한 몰수를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투쟁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제국주의는 계급 적대를 날카롭게 함으로써, 경제적으로(신용과 높은 생활비) 그리고 정치적으로(군사주의의 증대, 잦은 전쟁들, 반동의 증가, 민족억압과 식민지 약탈의 강화와 확대) 대중들의 상태를 악화시킴으로써 대중들을 이 투쟁 속으로 강제하고 있다. 사회주의의 승리는 반드시 완전한 민주주의를 성취해야만 하며, 그 결과로 민족들의 완전한 평등을 가져오는 것뿐만 아니라 예를 들면 자유로운 정치적 분리의 권리와 같은 자기 결정에 대한 피억압 민족들의 권리를 실행해야만 한다. 현재뿐만 아니라 혁명 중에, 그리고 혁명의 승리 이후에 모든 자신들의 실천으로 자신들이 노예화된 민족들을 해방하고 자유로운 연합의 기초 위에서 그들과의 관계를 수립할 것이며, 분리의 권리가 없다면 자유로운 연합은 공문구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는 사회주의 정당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배신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는 국가가 사라지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국가의 한 형태이다. 그러나 이 사멸은 완전하게 승리하고 강화된 사회주의로부터 완전한 공산주의로의 이행의 과정에서만 오직 발생할 것이다. 2. 사회주의 혁명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사회주의 혁명은 일회의 실천도 아니고 하나의 전선에서의 한번의 전투도 아니며, 부르주아지에 대한 몰수에서야 비로소 절정에 이를 수 있는 모든 경제적, 정치적 문제들을 둘러싼 전투들과 같이 모든 전선에서의 오랫동안의 여러 번의 전투들을 의미하는 격화된 계급 분쟁의 전제 시대를 의미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프롤레타리아트를 사회주의 혁명으로부터 이탈시키거나 프롤레타리아트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혹은 덮어 가릴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 등은 근본적인 오류일 것이다. 반대로, 완전한 민주주의를 도입하지 않는다면 사회주의가 승리할 수 없는 것처럼,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주주의를 위한 다방면의 항구적이고 혁명적인 투쟁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부르주아지에 대한 승리를 준비할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민족들의 자기 결정에 대한 사항들과 같은 민주주의적 강령의 사항들의 어떠한 것이라도 그것은 제국주의 하에서는 "실행불가능"하거나 혹은 "환상"이라는 근거에서 삭제하는 것도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테두리 내부에서 자기 결정에 대한 민족들의 권리는 성취될 수 없다는 주장은 그것의 순수한 경제적인 의미에서 혹은 관습적인, 정치적인 의미에서 해석될 수 있다. 첫 번째 경우에서, 이 주장은 이론적으로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첫째, 이[경제적-해석자의 첨가] 의미에서, 자본주의하에서 노동화폐[labor money]나 [주기적-해석자의 첨가]위기의 폐지와 같은 것들을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민족들의 자기 결정(권)이 실행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둘째, 1905년의 스웨덴으로부터 노르웨이의 분리의 예만으로도 이 점에서 "실행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논박하기에 충분하다. 세째, 독일과 영국 사이의 정치적, 전략적 관계에서의 약간의 변화와 함께 폴란드, 인도 등의 새로운 국가들의 성립은 아주 가까운 장래에 매우 "실행가능"할 것이다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넷째로, 금융자본은 자신의 팽창에 대한 열망에서 그들이 아무리 "독립적"일지라도 가장 자유롭고 가장 민주적이며 공화주의적인 정부와 어떤 나라의 선출된 관리들이라도 "자유롭게" 살 것이고 매수할 것이다. 자본 일반으로서의 금융자본의 지배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영역과 이 영역에 전체적으로 그리고 배타적으로 속해 있는 자기 결정(권)에서의 어떠한 개량으로도 폐지될 수 없다. 그러나 금융자본의 지배는 계급억압과 계급투쟁의 보다 자유롭고 폭넓고 틀림없는 형식으로서의 정치적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조금도 파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본주의하에서 정치적 민주주의의 요구들 중의 하나를 경제적으로 "성취하는 것의 불가능성"에 대한 모든 주장들은 자본주의의 그리고 정치적 민주주의 일반의 일반적이고 근본적인 관계들에 대한 이론적으로 잘못된 정의로 그들 스스로를 끌어내린다. 두 번째 경우에, 이 주장은 자기 결정에 대한 민족들의 권리뿐만 아니라 정치적 민주주의의 모든 근본적인 요구들이 불완전하고, 일부 훼손된 형태로 (예를 들면, 1905년에 스웨덴으로부터 노르웨이의 분리)와 같은 극소수의 예외로서 제국주의 하에서 "성취 가능"하기 때문에, 완전하지도 않고, 정확하지도 않다. 모든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에 의해 제출되는 것과 같이 식민지의 즉각적 해방을 위한 요구는 또한 일련의 혁명들이 없이는 자본주의하에서 "성취불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민주주의가 이들 요구들을 위한 즉각적이고 가장 단호한 투쟁을 수행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금지하는 것은 단지 부르주아지와 반동에게 이익만을 가져다줄 것이다. 반대로, 그것은 이 모든 요구들을 개량주의적 방식이 아니라, 부르주아 합법성의 테두리 내에 갇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깨뜨리는 것으로, 의회에서의 연설과 말뿐인 항의들에 스스로를 제한하지 않고 대중을 실제 실천으로 끌어냄으로써, 모든 중류의 근본적인, 민주적인 요구를 위한 투쟁을 부르주아지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직접적인 공격으로까지 그리고 그것을 포함하는 투쟁으로까지, 즉 사회주의 혁명으로까지 확대하고 선동함으로써 혁명적인 방식으로 정식화하고 촉진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주의 혁명은 거대한 파업, 가두투쟁, 기아 폭동, 군대에서의 폭동이나 식민지에서의 반란의 결과로서만 발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드레이푸스[Deryfus] 사건, 자베른[Zabern] 사건의 결과로 혹은 피 업악 민족의 분리에 대한 국민투표 등과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다. 제국주의 하에서 민족적 억압의 강화가 민족들이 분리할 자유를 위한 "유토피아적" 투쟁으로서 부르주아지들이 묘사하는 것을 사회민주당이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역시 이 기반에서 발생하는 분쟁들을 대중적 실천과 부르주아지에 대한 혁명적 공격이라는 목적을 위하여 활용할 필요가 있게 한다. 3. 자기 결정권의 의미와 그것의 연맹과의 관계 민족들의 자기 결정권은 단지 정치적 의미에서 독립에 대한 권리, 억압 민족으로부터의 자유로운 정치적 분리에 대한 권리만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이 정치적 민주주의적 요구는 분리를 위한 선동의 완전한 자유와 분리를 원하는 민족의 국민투표로 분리의 문제를 결정할 자유를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이 요구는 분리, 분할, 그리고 작은 국가들의 수립을 위한 요구와 전혀 동일하지 않다. 이것은 모든 형식에서의 민족적 억압에 대한 투쟁의 논리적 표현일 뿐이다. 국가의 민주주의 체제가 완전한 분리의 자유에 더욱 더 가까워질수록, 경제적 진보의 관점과 대중들의 이익이라는 관점 모두로부터 보다 커다란 국가들의 이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이들 이점들이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상승하기 때문에 실제에 있어서 분리의 열망은 더 드물고 적어질 것이다. 자기 결정에 대한 승인은 연맹을 하나의 원칙으로 만드는 것과 같지 않다. 이 원칙에 대하여 단호히 반대하면서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인 사람이 완전한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를 향한 유일한 길로서 민족적 불평등보다 연맹을 선택할 수도 있다. 비록 중앙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맑스가 아일랜드의 잉글랜드에 대한 강제적 종속 보다 아일랜드의 잉글랜드과의 연맹을 선택했던 것도 정확하게 이런 관점으로부터이다. 사회주의의 목표는 단지 현재 인류의 분열을 작은 국가들로 폐지하는 것과 모든 민족의 고립이 아니라, 민족들이 서로가 더 가까워지게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서로를 융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한편으로 우리는 Renner과 Otto Bauer의 소위 "문화적인 민족자치"에 대한 사상의 반동적 성격에 대하여 대중들에게 설명해야만 하며, 다른 한편으로 피억압 민족의 해방을 일반적이고 모호한 문구가 아니라, 공허한 선언들이 아니라, 사회주의가 수립될 때까지 그 문제를 미루는 것으로가 아니라, 억압 민족의 사회주의자들의 위선과 소심함을 특별히 고려해야 할 명확하고 정확하게 정식화된 정치강령으로 요구해야만 한다. 인류가 피억압 계급의 독재라는 이행기를 통과하는 것을 통해서만 오직 계급의 철폐를 성취할 수 있는 것처럼, 인류는 모든 피억압 민족들의 완전한 해방, 즉 그들의 분리의 자유라는 이행기를 통과하는 것을 통해서만 오직 필연적인 민족들의 융합을 성취할 수 있다. 4. 민족의 자기 결정(권)에 관한 문제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적 의미 민족의 자기 결정을 위한 요구뿐만 아니라 모든 우리의 민주주의적 최소강령의 항목들 역시 17세기와 18세기에 이미 소부르주아지에 의해 우리 앞에 제출되었다. 그리고 "평화로운" 자본주의에 대하여 믿고 있는 소부르주아지는 계급투쟁과 민주주의 하에서 계급투쟁이 격화되어 왔다는 사실은 보지 않으면서 모든 이들 요구들을 오늘날까지 유토피아적 방식으로 계속해서 제출한다. 인민들을 속이는, 그리고 카우츠키주의자들이 주창하는, 제국주의 하에서 동등한 민족들의 평화로운 결합이라는 사상이 정확하게 바로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 속물들과 기회주의적 유토피아에 맞서서, 사회민주주의의 강령은 제국주의 하에서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으로의 분리는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하며 불기피한 사실이라는 것을 반드시 지적해야만 한다. 억압민족들의 프롤레타리아트는 합병에 반대한다는 그리고 민족의 동등한 권리 일반을 지지한다는 어떠한 평화주의적 부르주아지에 의해서도 반복될 수 있는 총론적인 진부한 말 잔치에 스스로를 제한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에게 특히나 "불쾌한" 문제인, 민족적 억압에 기초하고 있는 국가의 국경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반드시 식민지들과 "자기 자신의" 국가가 억압하고 있는 민족들의 정치적 분리의 권리를 요구해야만 한다. 만약 프롤레타리아트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주의라는 구호는 의미를 잃을 것이며, 억압민족과 피억압 민족의 노동자들 사이의 상호 신뢰와 계급연대는 불가능할 것이며, "자신들의" 국가에 의해 억압받는, 그리고 "자신들의" 국가 내에 강제적으로 편입된 민족들에 대하여 침묵으로 일관하는 개량주의와 카우츠키주의자들이 주창하는 자기 결정(권)이라는 위선이 폭로되지 못할 것이다. 반면에, 피억압 민족들의 사회주의자들은 특히 피억압 민족의 노동자들과 억압 민족의 노동자들 사이의 완전하고 절대적인 통일(조직적인 단결 역시)을 위하여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투쟁해야만 한다. 그러한 통일이 없이는 부르주아지의 모든 속임수, 배신, 그리고 사기에 직면하여 독립적인 프롤레타리아트 정책과 다른 나라들의 프롤레타리아트와의 계급연대를 고수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피억압 민족들의 부르주아지는 항상 민족 해방의 슬로건을 노동자들을 속이기 위한 수단으로 바꾸며, 국내 정치에서 피억압 민족들의 부르주아지는 이 민족 해방의 슬로건을 지배민족의 부르주아지와의 반동적 협약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며(예를 들면, 유대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을 억압하기 위한 반동적 성격을 가지는 조약을 맺었던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에 있는 폴란드인들), 대외 정치의 영역에서, 자기 자신의 침략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경쟁 제국주의 열강들 중의 하나와 조약을 맺으려고 하기 때문이다(발칸에 있는 작은 국가들의 정책들). 하나의 제국주의 열강에 대항하는 민족 해방 투쟁이 특정 환경 하에서 또 다른 "강력한" 열강에 의해 마찬가지의 그 열강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들 속에서 활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정치적 속임수와 재정적 강탈이라는 목적을 위한 부르주아지의 공화주의적 슬로건 활용의 수많은 사례에서 보다 사회민주주의가 자기 결정에 대한 민족들의 권리에 대한 승인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것에서 더 많은 중요성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는 사회민주주의가 공화주의를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것에 더 많은 중요성이 있었다. 5. 민족문제에 대한 맑스주의와 프루동주의 소부르주아지 민주주의와 달리, 맑스는 모든 민주주의적 요구들을 예외 없이 절대적인 표현이 아니라, 봉건주의에 대항하여, 부르주아지에 의해 지도되는, 인민대중의 투쟁이라는 역사적 표현으로 간주했다. 특정 조건에서 노동자들을 속이기 위한 부르주아지의 도구로서 복무할 수도 없었고, 해오지도 않았던 민주주의적 요구는 하나도 없었다. 민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요구들 중에 하나를 뽑아내고 나머지 모든 것들에 반대하는 것은 이론에서의 근본적인 오류이다. 실제로, 프롤레타리아트는 공화국을 위한 요구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모든 민주주의적 요구들을 위한 투쟁을 부르주아지의 타도를 위한 자신의 혁명적 투쟁에 종속시키는 경우에만 오직 자신의 독립을 성취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사회혁명의 이름으로" 민족 문제를 "거부했던" 프루동주의자들과 달리, 주로 선진국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 투쟁의 이해관계들에 대하여 고려하고 있던 맑스는 만약 어떤 민족이 다른 민족을 억압한다면 어떠한 민족도 해방될 수 없다는 국제주의와 사회주의의 근본적인 원칙을 전면에 내세웠다. 1898년 맑스가 독일의 승리한 민주주의가 독일이 억압하고 있던 민족들에 대하여 자유를 선포하고 부여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은 정확하게 독일 노동자들의 혁명적 운동의 이해관계의 관점으로부터였다. 1869년에 맑스가 잉글랜드로부터 아일랜드의 분리를 요구하면서 " .... 분리 이후에 연맹이 될지 모르지만"이라고 추가했던 것은 정확하게 영국 노동자들의 혁명적 투쟁의 관점으로부터였다. 맑스는 이 요구를 제기하는 것에 의해서만 오직, 실제로 국제주의의 정신에서 영국 노동자들을 교육했다. 오직 이 방도에서만, 그는 당시의 역사적 문제에 대한 혁명적 해결을 반세기가 지닌 지금까지 아일랜드의 "개혁"을 성취하지 못해 온 기회주의자들과 부르주아지 개량주의에 대립시킬 수 있었다. 오직 이 방도에서만 맑스는 작은 민족들의 분리를 유토피아이며 불가능하다고 소리치면서, 경제적 집중뿐만 아니라 정치적 집중의 진보적 성격을 주장하던 자본을 변호했던 자들과는 달리, 제국주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 집중의 진보적 성격을 주장할 수 있었고, 강제가 아니라 모든 나라들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자유로운 통합의 기초 위에서 민족들의 통일을 주장할 수 있었다. 오직 이 방도에서만, 맑스는 민족 문제들의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또한 대중들의 모든 혁명적 실천을 민족들의 평등과 자기 결정(권)에 대한 말뿐인 혹은 종종 위선적인 승인에 대립시킬 수 있었다. 1914-16년 제국주의 전쟁과 그것이 폭로했던 기회주의자들과 카우츠키주의자들의 위선이라는 적폐가 맑스의 정책의 올바름을 인상적으로 확증했으며, 이런 맑스의 올바른 정책은 모든 선진 국가들(이들 모든 선진국가들은 다른 민족을 현재 억압하고 있다)을 위한 본보기로서 복무해야만 한다. 6. 민족의 자기 결정(권)과 관계에서 3가지 형태의 국가들 이 측면에서, 국가들은 세 가지 주요한 형태로 구분되어야만 한다: 첫째, 서유럽과 미국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이 나라들에서는 부르주아지, 진보, 민족 운동은 오래 전에 끝이 났다. 모든 이들 "강력한" 국가들은 식민지들과 자기 자신의 나라안에서 다른 민족들을 억압하고 있다. 이들 지배 민족들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들은 아일랜드과 관련하여 19세기에 잉글랜드 프롤레타리아트의 그것과 동일하다. 둘째, 동유럽의 오스트리아, 발칸, 그리고 특히 러시아. 여기에서 특히 부르주아지 민주주의적 민족 운동들이 발전하였고 민족 투쟁이 격화되었던 것은 20세기였다. 자기자신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개혁의 완수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지원하는 것과 관련한 이들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들은, 만약 프롤레타리아트가 자기 결정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면 성취될 수 없다. 이점에서 가장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임무는 억압민족의 노동자들의 계급투쟁과 피억압 민족들에서의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을 융합하는 것이다. 세째, 합해서 10억 명에 이르는 인구를 가진 중국, 페르시아, 터키와 같은 반식민지 국가들과 모든 식민지들. 이들 나라들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들은 거의 시작되지 않았거나 완수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사회주의자들은 비타협적으로 식민지들의 무조건적이고 즉각적인 해방을 요구해야만 - 그것의 정치적 표현에 있어서 이 요구는 자기 결정에 대한 권리에 대한 승인 이상도 이하도 의미하지 않는다 - 할뿐만 아니라, 이들 나라들에서 민족 해방을 위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들 속에서 보다 혁명적인 인자들을 단호하게 지지하고 그들을 억압하는 제국주의 열강에 대항하는 그들의 반란을 - 그리고 만약 필요하다면 그들의 혁명적 전쟁을 - 지원해야만 한다. 7. 사회적 배외주의와 민족들의 자기 결정(권) 제국주의 시대와 1914-16년 전쟁은 특히 선진 국가들에서의 배외주의와 민족주의에 맞서는 투쟁의 임무를 전면으로 제기해왔다. 민족들의 자기 결정의 문제에 관하여, 사회적 배외주의자들 사이에는 기회주의자들과 "조국 방어" 전쟁으로 제국주의 전쟁을 선언함으로써 반동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전쟁을 치장하는 카우츠키주의자들과 같은 두 가지 미묘한 의견에서의 차이들이 있다. 한편에 제국주의와 정치적 집중은 진보적인 것이며, 자기 결정에 대한 권리는 유타피아적이고 환상적이며 소부르주아적이라는 등의 이유로 합병들을 방어하는 부르주아지의 보다 공공연한 머슴들이 있다. Cunow와 파르부스와 독일의 극단적인 기회주의자들, 영국의 Fabian들과 노동조합 지도자들, 그리고 러시아의 기회주의자 세므코프스키, 리브만, 여케비치 등이 이들이다. 다른 한편에 Vandervelde, Renaudel,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 등의 많은 평화주의자들을 포함하는 카우츠키주의자들이 있다. 이들은 앞서 기술된 그룹과의 통합을 주장하며 실제로 자기 결정에 대한 권리를 순수하게 말잔치와 위선적 방식으로 옹호한다는 점에서 그들과 똑같다. 그들은 정치적 분리의 자유를 위한 요구를 "과도한" 것으로 간주하며("zu viel Verlangt" - 카우츠키, Neue Zeit, 1915년 5월 21일), 특별히 억압민족에서의 사회주의자들을 위한 혁명적 전술들을 위한 필요성을 주창하지 않고, 반대로 그들의 혁명적 임무들을 감추며, 자신들의 기회주의를 정당화하고, 인민들을 쉽게 속일 수 있도록 하며, 강제로 종속 민족들을 존속시키는 국가의 국경 문제를 정확하게 회피한다. 양쪽 모두 맑시즘을 팔아먹는, 아일랜드과 관련하여 맑스가 제출했던 것과 같은 맑스주의 전술들의 이론적 중요성과 실제적인 한결같은 주장을 이해할 모든 능력을 상실한 기회주의자들이다. 합병이라는 특수한 문제가 전쟁으로 인해 특별하게 긴급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합병이 무엇인가! 명백하게, 합병에 대하여 항의하는 것은 민족들의 자기 결정의 권리에 대한 승인이나, 혹은 현상태 유지를 방어하고 혁명적 폭력을 포함하여 모든 폭력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적 문구에 기초한 항의를 의미한다. 그러한 문구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으며 맑스주의와는 화해불가능하다. 8. 즉각적인 미래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구체적 임무들 사회주의 혁명은 가까운 미래에 시작될 것이다. 이 경우에, 프롤레타리아트는 권력 장악, 은행의 몰수, 그리고 다른 독재적 방책들의 도입이라는 즉각적인 임무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한 정세에서, 부르주아지, 그리고 특히 페이비언과 카우츠키주의자들 같은 지식인들이 혁명을 분쇄하고, 방해하려고, 혁명을 제한적인 민주주의적 목표들에 한정하려고 안달일 것이다. 특정한 의미에서, 모든 순수하게 민주주의적 요구들은 -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미 부르주아 권력의 보루에 타격을 가하기 시작하였을 때 - 혁명에 대한 장애가 될 수 있는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피억압 민족들에게 자유를 선언하고 부여할 필요성은 그것이 1848년 독일이나 1905년 러시아에서와 같은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의 승리를 위해 절박했던 것만큼, 사회주의 혁명에서도 절박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이 시작되기 전에 5년, 10년, 그이 상의 시간이 흘러갈 수 있다. 그런 경우에, 임무는 사회 배외주의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이 노동자 당에 붙어 있으면서 1914-16년과 비슷한 승리를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인민들을 혁멍적 영감으로 교육하는 것일 것이다. 식민지들과 아일랜드를 위하여 분리의 자유를 요구하지 못한 영국 사회주의자들, 식민지들과 알사스, 덴마크, 그리고 폴란드를 위하여 분리의 자유를 요구하지 못하는, 그리고 민족적 억압에 맞서는 투쟁의 장으로 혁명적 선전과 혁명적 대중 행동을 이끌지 못하는, 억압 민족의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서 광범위한 비합법 선전을 수행하고, 가두 시위와 혁명적 대중 행동들을 조직하기 위하여 Zabern 사태와 같은 사례들을 활용하지 못하는 독일의 사회주의자들, 핀란드,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을 위하여 분리의 자유를 요구하지 못하는 러시아 사회주의자 등이 배외주의자들과 똑같이, 그리고 피로 범벅된 제국주의 왕조들과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의 똘마니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대중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사회주의자들의 임무가 될 것이다. 9. 자기 결정(권)에 대한 러시아와 폴란드 사회민주주의와 제2 인터내셔널의 태도 자기 결정(권)의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자들과 폴란드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의 차이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강령을 채택했고, 폴란드 사회민주당 대의원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자기 결정에 대한 민족들의 권리를 승인하는 9조를 강령에 삽입했던 1903년 당 대회에서 이미 표면화되었다. 그때 이후, 폴란드 사회민주당은 그들 당의 이름으로 우리의 강령에서 9조를 삭제하거나 혹은 그것을 뭔가 다른 공식으로 대체하라는 요구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인구의 57% 이상, 즉 1억 명 이상이 피억압 민족에 속해 있고, 그 민족들이 광범위하게 넓은 지역들에 분포하고 있으며, 일부 민족들은 러시아보다 더 문명화되었으며, 야만적이고 중세적인 성격을 특히 그 특징으로 하는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아직 완수되지 못한 러시아에서, 짜르주의에 의해 억압받는 민족들의 러시아로부터의 자유로운 분리에 대한 권리의 승인은 사회민주주의의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적 임무들의 이해관계에서 사회민주주의에게 절대적인 임무이다. 1912년 1월에 재건설된 우리 당은 1913년에 자기 결정에 대한 권리를 반복하면서 위에서 강조된 구체적인 의미에서 그것을 설명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1914-16년에 부르주아지와 기회주의적 사회주의자들(루바노비치, 플레하노프, 나쉬 디엘로 등) 사이에서 창궐하던 대러시아 배외주의의 법석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어떤 때보다 강력하게 이 요구를 주장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자들은 실제에 있어서 대러시아 배외주의와 짜르주의의 보루로서 복무하는 것이라고 선언하도록 한다. 우리 당은 자기 결정의 권리에 대한 그러한 반대에 대한 모든 신뢰를 단호하게 거부한다고 선언한다. 민족 문제에 관한 폴란드 사회민주당의 입장에 대한 최근의 공식화(짐머발트 대회에서 폴란드 사회민주당에 의해 만들어진 선언)는 다름과 같은 사상을 담고 있다. 이 선언은 "폴란드 지방"을 다가오는 배상을 위한 게임에서의 볼모로 간주하고, 그래서 "폴란드 인민들로부터 자기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기회를 박탈하는" 독일과 다른 정부들을 비난한다. 선언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폴란드 사회민주당은 단호하게 그리고 엄중하게 전체 나라의 재분할과 분단에 반대하여 항의한다"... 선언은 호엔졸레른가에게 "피억압 민족 해방의 임무"를 맡긴 사회주의자들을 비난한다. 선언은 혁명적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박한 투쟁,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의 참여만이 "민족적 억압의 족쇄를 깨뜨리고 모든 형태의 외국 지배를 폐지하며, 폴란드 인민들을 위하여 민족[국가] 연합에서의 동등한 성원으로서 전면적이고 자유로운 발전의 가능성을 보장할" 것이라는 확신을 표현한다. 선언은 또한 임박한 전쟁은 "폴란드 인민들에게" "이중의 동족상잔"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Bulletin of the International Socialist Committee, 2호 15페이지, 1915년 9월 27일 대다수 제2인터내셔널의 강령들과 결의안들 보다 그들의 정치적 공식화가 여전히 보다 산만하고 모호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들 이론들과 자기 결정에 대한 민족들의 권리에 대한 승인과의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정확하게 정치적 공식으로 이들 사상들을 표현하고, 그것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적용되던가 혹은 오직 사회주의 체제에서만 적용되는가를 결정하고자 하는 어떠한 시도도 민족들의 자기 결정(권)을 거부하는데 있어서 폴란드 사회민주주의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오류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줄 것이다. 1896년 런던에서 열렸던, 위에서 언급된 이론들에 기초하여 민족들의 자기 결정(권)을 승인했던 국제사회주의자 대회의 결정은 반드시 다음과 같은 사항들로 보충되어야만 한다: ⑴ 제국주의 하에서 이 요구의 특별한 긴급성 ⑵ 이 요구를 포함하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모든 요구들의 정치적으로 제한적인 성격과 계급적 내용 ⑶ 억압 민족들의 사회민주주당들과 피억압 민족들의 사회민주당들의 구체적인 임무 사이의 구별을 도출할 필요성 ⑷ 일관성 없고, 순전히 말뿐인, 그리고 그래서 그것의 정치적 중요성이 관련되는 한 위선적인 기회주의자들과 카우츠키주의자들에 의한 자기 결정에 대한 승인 ⑸ 배외주의자들과 사회민주당들, 특히 "그들 자신의" 민족들에 의해 억압받는 식민지들과 민족들을 위한 분리의 자유를 주창하지 못하는 거대 열강들(대러시아, 앵글로 아메리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의 사회민주당들의 실질적 동질성 ⑹ 이 요구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적 민주주의를 위한 근본적인 요구들을 정부 타 도와 사회주의의 성취를 위한 즉각적인 혁명적 대중 투쟁에 종속시킬 필요성. 일부 작은 민족들의 관점, 특히, 민족주의적 슬로건들로 인민을 속이고 있는 폴란드 부르주아지에 맞선 그들의 투쟁에서 자기 결정(권)을 거부하는 것으로 잘못 나아가고 있는 폴란드 사회민주당의 관점을 인터내셔널에 이식하는 것은 이론적 오류이다. 이것은 프루동주의로 맑시즘을 대체하는 것이고 실제에 있어서 거대 열강 민족들의 가장 위험한 배외주의와 기회주의를 본의 아니게 지지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RSDLP 중앙, 사회민주주의 편집국 추신. 방금 출판된 1916년 3월 3일자 Die Neue Zeit에서 카우츠키는 힌덴부르크와 빌헬름 2세에 대한 비천한 조력으로서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의 피억압 민족들의 분리의 자유를 거부하면서, 그러나 러시아의 폴란드에 대해서는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공개적으로 최악의 독일 배외주의를 대변하는 Austerlitz에 대하여 기독교인들의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있다. 이것은 아무도 희망하지 못했던 무엇보다도 훌륭한 카우츠키주의에 대한 자기 폭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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