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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먼 곳으로부터의 편지 2번째

  • 분류
    레닌
  • 등록일
    2011/02/17 06:12
  • 수정일
    2011/02/18 03:01
  • 글쓴이
    얼치기 공산주의자
  • 응답 RSS

레닌

먼 곳으로부터의 편지

 

두 번째 편지

 

새로운 정부와 프롤레타리아트

 

오늘 날짜(3월 8일(21일))로 되어 있는 내 수중에 가지고 있는 주요한 문서는 러시아에서의 혁명에 관한 일련의 보도를 포함하고 있는 가장 보수적인 부르주아지 영자 신문인 3월 16일자 타임 한 부이다. 분명히, 온화하게 말해서, 구츠코프와 밀류코프 정부에 보다 우호적으로 기울어 있는 자료를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신문의 특파원들은 아직 첫 번째 임시정부가, 즉 케렌스키와 치크헤이제 이렇게 2명의 "사회주의자"(신문 기사에 따르면)를 포함하는 로지얀코를 우두머리로 하는 두마 집행위원회가 존재했던 3월 1일(14일) 수요일에 세인트 페테르스부르크로부터 보도한다.

 

"구츠코프, 스타크호비치, 왕자 트루베츠코이, 그리고 교수 바실리에프, 그림과 베르나드스키를 포함하는 상원(국가위원회]의 22명의 선출직 성원들의 그룹은" '왕조'를 구원하고, 두마를 소집하며, '민족의 신뢰'를 향유하는 어떤 사람을 정부의 수장으로 임명하도록 하기 위하여 탄원하는 "짜르에 보내는 전보를 발표했다". 특파원은 "황제가 오늘 도착해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는 전보를 보내는 중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만약 황제가 즉각적으로 자신의 충성스러운 신하들 중에서 가장 온건한 인자들의 바램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제국 두마의 임시위원회에 의해 현재 행사되고 있는 영향력은 공화국이 수립되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그러나 어떠한 종류의 질서가 잡힌 정부를 세울 수도 없는, 그래서 불가피하게 나라를 안팎에서의 무정부상태와 재앙에 빠뜨릴 사회주의자들의 수중으로 넘어갈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정치적 총명함과 명확성을 드러내주는가. 구츠코프와 밀류코프 도당들처럼 생각하는 이 영국사람(그가 지도하지는 않는다고 해도)이 계급세력들과 이해관계들의 배치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 만약 "그의 충성스런 신하들 중에서 가장 온건한 인자들", 즉 군주제주의 지주들과 자본가들이 그들의 손에 권력을 쥐지 못한다면, "영향력"은 "사회주의자들"의 수중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점을 온전하게 알고 있는 가운데, 이들은 손에 권력을 쥐기를 원한다. 왜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인가? 왜냐하면 영국의 구츠코프 지지자는 정치의 장에는 어떠한 다른 사회세력도 없음을, 있을 수 없음을 완전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하여 수행되었다. 혁명은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혁명은 그 피를 흘렸다. 혁명은 노동인민들과 빈민들의 가장 폭넓은 대중들을 그 자신과 함께 휩쓸었다. 혁명은 빵, 평화, 그리고 자유를 요구하고 있다. 혁명은 공화국을 요구하고 있다. 혁명은 사회주의에 호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구츠코프와 밀류코프 도당들이 수장으로 있는 한줌의 지주와 자본가들은 광대한 다수의 의지와 열망들을 배신하고, 위기에 처한 군주제와 거래를 하고, 군주제를 강화하여, 군주제를 구원하고 싶어한다. '폐하, 르포프와 구츠코프를 임명하소서. 그러면 우리가 인민들에 맞서 군주제와 함께 하겠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정부 정책이 의미하는 전부, 그것의 총합이며 본질이다!

 

그러나 어떻게 속임수, 인민에 대한 우롱, 압도적 다수 인민의 의지를 위배하는 것을 정당화 할 것인가?

 

 

인민들을 비방함으로써- 이것은 부르주아지의 오래된 그러나 영원히 새로운 방법이다. 그리고 영국인 구츠코프 지지자는 비방하고, 꾸짖고, 침을 뱉고, 지껄인다. "안팎에서의 무정부상태와 재앙", "질서정연한 정부"가 아니다!!

 

구츠코프 지지자!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공화국을 원한다. 그리고 공화국은 군구제 보다 훨씬 더 "질서정연한" 정부를 대변한다. 두 번째 로마노프가 스스로 두 번째 라스푸틴이 되지 않는다는 어떤 보증을 인민들이 가지고 있는가? 재앙은 정확하게 전쟁의 지속에 의하여, 즉 정확하게 새로운 정부에 의하여 야기될 것이다. 지방의 노동자들과 농민과 도시 거주자들의 가장 가난한 부위의 지지를 받는 프롤레타리아트 공화국만이 평화를 보장하고, 빵과 질서, 그리고 자유를 제공할 수 있다.

 

무정부상태에 대한 모든 외침들은 전쟁으로부터, 전쟁 대부로부터 이익을 얻고자 하는, 인민들에 맞서서 군주제를 복구하고자 하는 자본가들의 이기적인 이해관계를 덮어 가리기 위한 장막에 불과하다.

 

특파원은 계속하여 "... 어제 사회민주당은 가장 치안에 방해가 되는 선언을 발표했는데, 이 선언은 도시 전체에 방송으로 퍼졌다. 그들[즉, 사회민주당]은 교조주의자에 불과하지만, 현재와 같은 시기에는 그들의 해악의 힘이 엄청나게 크다. 장교들과 인민의 보다 온건한 인자들의 지지가 없다면, 인민들은 군주제를 회피할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있는 케렌스키와 치크헤이제는 그들의 덜 분별력 있는 협조자들에 대하여 고려할 수밖에 없으며, 자신도 모르게 임시 위원회의 임무를 복잡하게 만드는 태도를 취하는 쪽으로 내 몰린다...."

 

위대한 영국인 구츠코프 지지자 외교관! 당신은 얼마나 "분별력 없게" 진실을 누설하고 말았는가!

 

"케렌스키와 치크헤이제가" 함께 "고려해야만 하는" "사회민주당" 그리고 그들의 "덜 분별력 있는 협조자들"은 분명하게 1912년 1월 대회에서 복구된 우리 당의 중앙위원회 혹은 세인트 페테르스부르크 위원회, 그들의 "정치적 신조", 즉 사회주의라는 근본, 원칙, 가르침, 목적에 대한 신념을 이유로 부르주아지들이 "교조주의자들"이라는 매도하는 용어로 욕을 퍼붓는 바로 그 똑같은 "볼셰비키들"을 의미한다. 명백하게, 영국인 구츠코프 지지자는 그 선언과 공화국, 평화, 짜르 군주제의 완전한 파괴, 인민들을 위한 빵을 위한 투쟁을 주장하는 우리 당의 실천에 대하여 치안에 방해가 되며 교조적이라는 매도하는 용어들로 욕을 퍼붓는다.

 

인민들을 위한 빵, 그리고 평화 이것은 폭동이다. 그러나 구츠코프와 밀류코프를 위한 장관자리들, 이것이 "질서이다." 오래되고 친숙한 이야기!

 

그럼, 영국인 구츠코프 지지자에 의해 성격 규정된 바에 따른 케렌스키와 치크헤이제의 전술은 무엇인가?

 

동요: 한편으로 그 구츠코프 지지자는 그들을 칭송한다: 그들은(훌륭한 친구들! 똑똑한 친구들!) 군 장교들과 보다 온건한 인자들의 "지지"가 없다면, 군주제는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있다."(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정치적 신조와 사회주의적 가르침에 입각하여 인류사회에 군주제와 전쟁을 끌어들인 자들이 자본가들이며, 모든 정치권력의 프롤레타리아트와 가장 가난한 인민들에게로의 이전만이 우리를 전쟁, 군주제와 기아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고 항상 생각해 왔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덜 분별력 있는 협조자들" 즉, 볼셰비키들, 중앙위원회에 의하여 복구되고 통합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 "대하여 고려해야만 한다."

 

 케렌스키와 치크헤이제로 하여금 그들이 결코 소속된 적이 없으며, 그들 혹은 그들의 자유주의적 대변자들(사회주의 혁명가 당, 인민 사회주의자들, 멘셰비키 지지자들, 등등)이 항상 별 의미 없는 지하 써클로, 교조주의자들의 한 종파 등등으로 매도하고, 비난하고, 공공연하게 공격해 온 볼셰비키 당에 관하여 "고려하도록" 강제하는 힘은 무엇인가? 혁명의 시기에, 현저한 대중적 실천의 시기에, 제정신을 가진 정치인들이 "교조주의자들"에 대하여 "고려"해야만 했던 순간이 언제 어디서 벌어진 적이 있었는가?

 

우리의 영국인 구츠코프 지지자는 완전히 뒤죽박죽이다. 그는 논리적인 주장을 펼치는데 실패했고, 완전한 거짓말이나 혹은 완전한 진실을 말하는데 실패했으며, 그는 단지 스스로의 정체를 드러내었을 뿐이다.

 

케렌스키와 체크헤이제는 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가 행사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트, 대중들에 대한 영향력으로 인하여 이들에 대하여 고려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된다. 우리의 두마 대표단에 대한 체포와 시베리아 유형에도 불구하고, 19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세인트 페테르스부르크 위원회의 전쟁 중의 전쟁에 반대하는, 짜르주의에 반대하는 지하 활동 때문에 위원회가 겪었던 엄청난 박해와 체포들에도 불구하고, 우리 당은 대중들과 함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했다.

 

영국의 속담에 있듯이, "진실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최고로 존경받는 영국인 구츠코프 지지자 양반! 내가 당신에게 그것을 상기시켜 주겠다. 우리 당이 혁명의 나날에 세인트 페테르스부르크 노동자들을 지도했거나 혹은 적어도 이들에게 헌신적인 지원을 제공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에 대하여 영국인 구츠코프 지지자 "스스로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마찬가지로 케렌스키와 체크헤이제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구츠코프 지지자들, "방위주의자들", 즉 사회-배외주의자들, 제국주의 약탈 전쟁을 방어하는 자들은 현재 온전하게 부르주아지를 따르고 있다. 2차 임시정부에 장관직으로 입각함으로써 케렌스키 또한 온전하게 부르주아지에게로 탈주했다. 치크헤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부르주아지 임시정부, 구츠코프와 밀류코프 도당과 프롤레타리아트와 인민의 가장 가난한 대중들의 "임시정부",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 중앙위원회에 의하여 단결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사이에서 계속해서 동요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혁명은 우리가 노동자들에게 노동계급 운동 내에 있는, 그리고 소부르주아지들 사이에서의 주요 정당들과 주요 경향들 사이의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라고 주장했을 때 우리가 특별하게 주장했던 것, 예를 들면, 거의 18개월 전, 1915년 10월 13일 제네바의 사회민주주의 47호에서 우리가 썼던 것을 확증해 주었다.

 

"지금까지로 봐서는, 우리는 사회민주당이 혁명적 배외주의자들이 아니라 민주주의적 소부르주아지와 함께 임시혁명정부에 합류하는 것이 용납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혁명적 배외주의자들이라고 함은 독일에 대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다른 나라들을 약탈하여 러시아 이외의 인민들에 대한 대러시아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하여 짜르주의에 대한 승리를 원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혁명적 배외주의는 소부르주아지라는 계급적 위치에 기초하고 있다. 소부르주아지는 항상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서 동요한다. 현재 소부르주아지는 배외주의(배외주의는 소부르주아지가 심지어 민주주의 혁명의 의미에서조차 변함없이 혁명적으로 되는 것을 방해한다)와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주의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다. 트루도비크, 사회주의 혁명가 당, 나샤 자리야(현재는 델로), 치크헤이제의 두마 그룹, 조직위원회, 플레하노프 등등이 러시아에서 이러한 소부르주아지를 위한 정치적 대변인들이다. 만약 혁명적 배외주의자들이 러시아에서 승리한다면, 우리는 현재의 전쟁에서 그들의"조국" 방어에 반대할 것이다. 우리의 슬로건은 다음과 같다. 비록 이 자들이 혁명적이고 공화주의자라고 하더라고 배외주의자들에 반대한다. 이들에 반대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동맹을 지지한다."

 

하지만 영국인 구츠코프 지지자에게로 되돌아가자.

 

그는 계속해서 "...앞으로의 위험들에 대하여 염려하고 있는 제국 두마의 임시위원회는 자신들이 거의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어제 그렇게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관들을 체포하려는 원래의 의도를 실행에 옮기는 것을 참아 왔다. 이렇게 해서 협상을 위한 문이 열려있는 상태이며, 이로 인하여 우리["우리"=영국 금융자본과 제국주의]는 코뮨이라는 무시무시한 호된 시련과 내전이라는 무정부상태를 거치지 않고 새로운 정권의 모든 혜택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한다.

 

구츠코프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혜택을 얻게 될 내전은 찬성했지만, 인민들, 즉 노동인민들의 실제적 다수가 혜택을 얻게 될 내전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현재와 같은 위기에, 전체 국가[이것이 제4 두마의 지주와 자본가 위원회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라!]를 대표하는 두마의 임시위원회와 순전히 계급적 이해관계[이것은 학문적인 단어들을 한 쪽 귀로 들어 온, 그리고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가 프롤레타리아트와 가난한 인민들, 즉 인구의 90%를 대표한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하는 한 외교관의 언어이다]를 대변하는 노동자 대표 위원회 사이의 관계들은 양쪽 사이의 그 결과를 묘사하기에 너무도 참혹할 분쟁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합리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떠한 작은 염려도 발생시키지 않아 왔다.

 

"다행스럽게도 적어도["적어도"라는 말에 주의하라!] 현재로서는 자신의 노동자 선거인들[즉, 노동자들의 표를 얻기 위하여, 노동자들을 농락하기 위하여]의 이해관계에 입각하여 위원회와 활동할 필요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상당한 연설 능력을 갖춘 젊은 변호사 케렌스키의 영향력 덕택에 이러한 위험을 피해왔다. 오늘[3월 1일(14일), 수요일] 만족스러운 협정이 맺어졌고, 이것으로 모든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게 될 것이다."

 

이 협정이 무엇이고, 이것이 노동자대표 소비에트 전체와 체결된 것인지, 어떤 조건에서 체결된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렇게 중요한 지점에서 이번에는 영국인 구츠코프 지지자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러한 조건들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하는 것은 부르주아지에게 이롭지 않은데, 이것은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들을 위반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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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2개의 매우 중요한 통신을 읽었을 때에는 위의 내용들을 이미 쓰고 나서였다. 첫 번째 것은 파리의 가장 보수적인 부르주아지 신문인 Le Temps 3월 20일자에 있는 새로운 정부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노동자대표 소비에트의 선언에 관한 글이고, 두 번째 것은 베를린 신문(내셔널 자이퉁)으로부터 쮜리히 신문(Neue Zurcher Zeitung, 3월 21일자)에 재개제된 3월1일(14일) 국가두마에서의 스코벨레프의 연설에 대한 발췌이다.

 

만약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에 의하여 기사가 왜곡되지 않았다면, 노동자대표 소비에트의 선언은 가장 놀랄만한 문서일 것이다. 선언은 적어도 그 선언이 발표되던 순간 세인트 페테르스부르크 프롤레타리아트는 소부르주아지 정치인들의 우세한 영향력 하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독자들은 내가 이미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케렌스키와 치크헤이제 타입의 인간들이 이 카테고리의 정치인들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을 상기하게 될 것이다.

 

그 선언에서 우리는 2가지 정치 사상들과 그것들에 상응하는 2가지 슬로건들을 발견한다.

 

첫째. 그 선언은 정부(새로운 정부)가 "온건인 인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결코 완벽하지 않은, 맑스주의적 성격이 아니라 순전히 자유주의적인 기이한 서술. 본인 또한 혁명의 첫 번째 단계가 완수된 현재 모든 정부는 "온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하여 어떤 의미에서는[본인의 다음 편지에서, 본인은 정확하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관하여 밝힐 것이다] 동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정부가 제국주의 전쟁을 지속하고 싶어하며, 이 정부는 영국 자본의 대리인이며, 군주제를 복구하고 지주와 자본가들의 지배를 강화하고 싶어한다는 점을 우리 스스로로부터, 그리고 인민들로부터 덮어 가리는 것은 절대 허용될 수 없다.

 

선언은 모든 민주주의자들은 새로운 정부를 "지지"해야만 하며, 노동자대표 소비에트는 케렌스키가 임시정부에 들어갈 것을 요구하며 그러한 권위를 부여한다고 선언한다. 조건들 - 이미 전쟁 중에 약속된 개혁들의 수행, 민족들의 "자유로운 문화적"(겨우??) 발전에 대한 보장(순전히 카데트적이고 지독하게도 자유주의적인 강령), 그리고 임시정부의 활동들을 감독하기 위한 노동자대표 소비에트와 "군인"으로 구성되는 특별위원회의 수립.

 

두 번째 사상과 슬로건들 속서 나오는 이 감독위원회에 관하여 우리는 따로 좀 더 토론하게 될 것이다.

 

케렌스키를 러시아판 루이 블랑에 임명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정부를 지지하라고 호소하는 것은 이러한 정책의 지도자들과 지지자들이 얼마나 사회주의에 충심으로 헌신하였는가와 무관하게 혁명의 대의에 대한 배신의 고전적인 예, 몇몇 19세기 혁명들에 사형을 선도했던 배신이라고 사람들이 말할지 모른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쟁 정부, 복구 정부를 지지할 수도 없고 지지해서도 안 된다. 반동에 맞서 투쟁하고, 군주제를 복구하고 반혁명적 군대에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로마노프와 그들의 동료들에 의한 모든 가능한 그리고 있을 것 같은 시도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구츠코프 도당을 지지하지 말고, 프롤레타리아트민병대를 조직하고 확대강화하며, 노동자들의 지도력 하에 인민들을 무장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중요하고, 근본적이며, 급진적인 방책들이 없이는, 군주제의 복구와 약속된 개혁들을 취소하거나 줄이려는 시도들에 대한 중대한 저항을 하거나, 인민들에게 빵, 평화, 그리고 자유를 주게 될 길을 굳건히 택하는 것 어느 것도 있을 수 없다.

 

만약 케렌스키와 함께 첫 번째 임시정부(13인의 두마 위원회) 구성원이었던 치크헤이제가 위에서 언급되었던, 혹은 비슷한 성격의 원칙적인 고려들로부터 두 번째 임시정부에 들어가는 것을 삼가했다면, 그것은 그에게 명예로운 것이다. 이 점은 솔직하게 말해야만 한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해석은 사실들에 의하여, 그리고 주로 언제나 치크헤이제와 협조 해왔던 스코벨레프가 했던 연설에 의하여 부정된다.

 

만약 위에서 언급된 근거가 믿을 수 있는 것이라면, 스코렐레프는 "사회적[? 명백하게 사회민주당] 그룹과 노동자들은 단지 임시정부의 목적들과 겨우 약간의 접촉이 있을 뿐이다(거의 접촉이 없다)", "비록 노동자들의 정치적 목적 하늘과 땅 만큼이나 사회의 목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사회[자유주의적 사회]와 일시적 협정을 체결했"으며, "자유주의자들은 무의미한 전쟁의 목적을 버려야만 한다" 등등으로 말했다.

 

이 연설이 우리가 위에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서의 "동요"라고 불렀던 '사회민주주의'로부터의 발췌에 있는 한 예이다. 자유주의자들은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자로 남아 있으면서, 말하자면 그들 자신들만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국-프랑스 금융자본, 수천 억으로 측정되는 세계열강 세력에 의하여 결정되는, "무의미한" 전쟁의 목적을 "버리지" 못한다. 임무는 자유주의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자들이 왜 막다른 골목에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지, 왜 그들은 손과 발이 묶였는지, 그들이 왜 짜르주의가 영국과 다른 나라들과 체결한 조약들과 러시아와 영국-프랑스 자본 사이의 거래들 모두를 감추는지 등에 관하여 노동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만약 스코벨레프가 노동자들이 자유주의 사회와 협정을 체결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어떤 성격이건 상관없이, 그리고 그가 그것에 항의하지 않고, 그것이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에 관하여 두마 연단에서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그 협정에 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정확하게 그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스코벨레프의 노동자대표 소비에트와 임시정부 사이의 협정에 대한 직간접적인, 명백하게 표현되었거나 아니면 암묵적인 찬성은 그의 부르주아지 쪽으로의 진동이다. 노동자들은 평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목적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자유주의자들의 목적과 먼 것이라고 하는 스코벨레프의 선언은 프롤레타리아트를 향한 그의 진동이다.

 

노동자대표 소비에트의 선언에 있는 두 번째 정치적 사상, 즉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즉 임시정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와 군인들의 감독이라는 "감독 위원회"[본인은 이것이 러시아어로 무엇으로 불리는지 알지 못한다. 본인은 본인의 뜻대로 프랑스어로부터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의 설립이라는 사상은 온전하게 프롤레타리아트 적이고, 진정으로 혁명적이며, 그 의도에서 심오하게 올바른 것이다.

 

이것은 뭔가 진실된 것이다! 인민들의 자유, 평화, 빵을 위하여 자신들의 피를 흘려온 노동자들은 자격이 있다! 이것은 짜리즘에 맞서는, 군주제에 맞서는, 그리고 군주제주의자들인 구츠코프, 르포프 도당들에 맞서는 진정한 보증을 향한 진정한 발걸음이다! 이것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루이 블랑에게 "권위를 부여했던" 1848년의 프랑스 프롤레타리아트와 비교하여 진보를 이루었다는 표시이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의 본능과 마음이 개혁과 자유에 대한 선언들, 외침들, 약속들에, "노동자들에 의해 권위를 부여받은 장관"이라는 자리에, 번들거리는 허식들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오직프롤레타리아트, 계급 의식적 노동자들에 의하여 조직되고 지도되는 인민의 무장한 대중들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만을 지지하고자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이다.

 

이것은 올바른 길을 따라가는 발걸음이며 단지 첫 번째 발걸음일 뿐이다.

 

만약 이 "감독 위원회"가 순전히 정치적 형태의 의회적 기구, 임시정부에 "질문을 제기"하고 임시정부로부터 답변을 받는 위원회로 남아 있는다면, 이것은 노리개로 남게 될 것이며, 아무 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반면, 만약 이것이 즉각적으로 그리고 모든 장애물들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민, 모든 남녀로 확대되어, 절멸되고 해체된 경찰력을 대체하고, 어떠한 정부, 입헌군주, 혹은 민주공화국에 의해서도, 세인트 페테르스부르크나 혹은 러시아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경찰력의 복구가 불가능하도록 만들게 될 노동자 민병대, 혹은 노동자 가정 사수대의 형성으로 귀결된다면, 러시아의 선진 노동자들은 새롭고도 위대한 승리를 향한 길, 전쟁 승리, 그 신문이 보도하듯이, 세인트 페테르스부르크에서, 국가두마의 바깥에 있는 광장에서 시위했던 기병대의 색깔에 광채를 더하게 했던 슬로건의 현실화를 향한 길을 진정으로 택하게 될 것이다.

 

"모든 나라에서의 사회주의 공화국 만세!"

 

본인의 다음 편지에서 이 노동자 민병대에 관한 본인의 생각들을 상세히 다루겠다.

 

거기에서 본인은 한편으로는 전체 인민들을 포괄하면서 노동자들에 의하여 지도되는 민병대의 형성이 러시아 혁명(그리고 세계 혁명)이 통과하고 있는 특수한 이행의 순간의 전술적 임무들에 조응하는 올바른 당면 슬로건임을 보여주기 위하여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우선 이 노동자 민명대가 전체 인민들을 포괄해야만 하며, 보편적으로존재하는 수준으로까지 대중 조직이어야만 하며, 남녀 모든 성의, 불구가 아닌 전체 인민들을 진정으로 포괄해야만 하며, 둘째로 이 민병대는 순전히 경찰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국가 기능을 군사적 기능과 사회의 생산과 분배의 통제와 융합하는 것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시도할 것이다.

 

레닌

쮜리히, 1917년 3월 22일(9일)

 

추신: 본인의 이전 편지에 3월 20일(7일)자 날짜를 쓰는 것을 잊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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