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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0호>무엇을 위한 연대인가? 야권연대의 결말은 노동자계급투쟁에 대한 비수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던 ‘관악을’ 여론조사 조작에서 비롯된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야권연대의 균열은 3월 23일 이정희 의원의 총선후보 사퇴로 봉합되었다. 다시 ‘연대’는 굳건해졌다.
왜 야권연대를 하는가? ‘이명박 정권이라는 절대악에 맞서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명박 정권을 ‘만 악의 근원’으로 규정하고 난 이후에는 이명박 정권을 제외한 모두가 ‘우리 편’이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편’은 엄청나게 늘어나며, 이는 그 ‘우리 편’에 속한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MB에 맞서는 우리 편은 늘어나고 있고, 그렇게 ‘우리’는 한발 한발 승리를 향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우리’는 승리를 향해가고 있는가? 야권연대는 노동계급에게 어떤 미래를 선사할 것인가?

한명숙과 이정희의 합의문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3월 10일, 한명숙과 이정희는 양당의 정책합의문을 발표했다. 양당의 정책합의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가? 모두가 핵심문제라고 하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살펴보자. 정책합의문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간접고용 규제, 불법파견 금지 등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한 제도를 개선하고, 최저임금의 현실화와 산업별 단체교섭 법제화 등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 정상화를 비롯한 노동관계법의 민주적인 전면 개정을 추진한다.”
- <4.11 총선, ‘국민 승리를 위한’ 범야권 공동정책 합의문> 中

위에서 보이듯 양당의 정책은 간접고용 철폐가 아닌 ‘간접고용 규제’, ‘파견법 철폐’가 아닌 ‘불법파견 금지’, 비정규직 철폐가 아닌 ‘비정규직 문제해결’이다.  

정책으로서의 ‘불법파견 금지’는 코미디다. 생각해보자. ‘불법파견’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도 그 자체로 ‘불법’이기 때문에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도 한명숙과 이정희의 합의문은 ‘불법파견 금지’를 말하고 있다. 현 상태에 대한 동어반복이다. 현대차 ‘최병승은 정규직’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조차 자본에 의해 휴짓조각이 되는 이 땅에서, ‘불법파견’이 없어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선택지 밖에 없다. 파견법이 없어지던가, 자본이 바라듯 모든 파견이 합법화되어야만 한다.
이명박 정권과 자본가들 역시 불법파견이 ‘불법’이기 때문에, ‘불법파견’과 ‘합법도급’을 나누고, 1차 하청과 2차 하청을 나누며, 더 나아가 동희오토식 100% 비정규직 공장을 설립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투쟁방향이 파견법 자체의 철폐뿐이라는 것은 투쟁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상식이다. 98년 김대중 정부에 의해 파견법이 만들어진 이후 노동자들은 무려 14년간 파견법 철폐를 외쳐왔지 않은가. 현행 파견법을 만든 민주당이 말하는 ‘불법파견 금지’라는 것은, 자본가들이 불법파견 시비를 피해갈 법제도적 장치를 완비한다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해보자. ‘비정규직 철폐’에서 ‘비정규직 차별철폐’로, 다시 ‘비정규직 처우개선’으로 후퇴해가던 요구를 애초의 ‘비정규직 철폐’로 다시 바로세운 것은 다름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이었다. 비정규직을 ‘고용의제 해당자’와 ‘고용의무 해당자’로 가르지 말고, ‘입사 2년 이상’과 ‘입사 2년 이하’로 가르지 말자며 세워낸 요구가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 ‘파견법 철폐’ 아니었던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입사하자마자 원청사와의 ‘묵시적 근로계약’이 성립함을 있었음을 노동자들이 그토록 강조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던가.
자본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세워낸 요구가 ‘야권연대’의 이름으로 다시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핵심이라 말하는 비정규직 문제, 이 문제에서조차 야권연대의 이름으로 후퇴가 이루어지고 있다면, 대체 그 야권연대라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자본가들과의 연립정부는
노동자 투쟁의 무덤이 될 것이다
3월 5일, 조합원 천명의 입당원서 제출과 함께 이루어진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민주통합당 행에 대해, 민주노총은 어떤 성명도 발표하지 않았다. 이석행 개인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자면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이 어디에 있는가. 오히려 진실은, 민주노총이 민주통합당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석행을 규탄할 형편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수백, 수천의 이석행이 탄생할 것이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야권연대가 민주통합당과의 연립정부 구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현재의 추세로 보면 연립정부 구성은 물론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합당까지도 가능할 것이다. 이미 국참당과 합당했는데, 민주당이라고 합당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MB심판’이 정치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민주당과 통진당은 대선에 공동으로 대응하게 될 것이고(물론 민주당의 후보로), 이는 필연적으로 연립정부 구성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정권창출에 한 몫 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전직 노동자 출신, 현직 관료’들은 수도 없이 양성될 것이다. 노동자 투쟁은 민주연립정부의 이름으로 금지되고 지탄받게 될 것이다. 끔찍한 미래는 현실이 되고 있다. 그리고 통합진보당은 이런 끔찍한 미래를 ‘전태일 정신과 노무현 정신의 만남’이라고 부른다.

민주당은 노동자의 적이다
당장 민주당이 지방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전북에서, 민주당은 버스 자본가들의 직장폐쇄를 뒷받침하며 버스노동자들을 혹독하게 탄압하고 있다. 전북고속 노동자들의 투쟁은 500일이 다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은 의석확보를 위해 민주당과의 연대에 명운을 걸고 있다. MB만이 온갖 노동탄압의 주범이고, 그 MB에 맞선 야권연대를 통해 정세가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변하고 있다면, 그리고 민주당이 MB에 맞서서 함께 싸울 ‘동지’라면, 왜 정작 민주당이 지방정부를 장악한 곳에서 노동자들은 이렇게도 혹독한 탄압과 싸워야 한다는 말인가? 노동자 정치의 힘이 확장되고 있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민주노총은 당장 FTA가 발효되어도 그 흔한 ‘뻥파업’을 선언할 힘조차 없다는 말인가?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노동자 정치’는 저 높은 의사당에서의 정치일 뿐이기 때문이다.

김주익 열사가 노무현 정권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게 ‘문재인’이라는 노무현 정권의 비서실장에 대한 지지를 강요하는 현재의 정치는 그 얼마나 파렴치한가. 현재의 야권연대는, 플라스틱 조화를 사다놓고 ‘우리가 꽃을 피웠다’고 기뻐하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인도를 찾아 떠난 콜럼버스는 정 반대편인 아메리카에 도착했지만, 죽을 때까지 자신이 도착한 땅이 인도라고 믿었다. 통합진보당 역시, 스스로는 인도를 향해가고 있다고 믿을 것이다.

백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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