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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1호>4차 포위의 날을 기점으로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전사회적 투쟁을 만들자

계속되는 극단적 선택
22번째다. 연이은 쌍차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죽음은 이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근본적으로 되묻게 한다. 강요된 희망퇴직, 강요된 정리해고, 강요된 자살, 강요된 죽음이다. 오로지 쌍차노동자들에게 이 사회는 ‘강요’만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노동자는 아직 분노하고 있지 않다. 조직된 노동자들 대다수 역시 이 죽음 앞에 침묵하고 있다. 사회적 타살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묻고 이 죽음을 멈추게 하지 않으면 어쩌면 우리 모두는 공범일 수도 있다. 그만큼 이 무게감은 노동해방을 지향하는 노동자들에게 클 수밖에 없다.
특히 22번째 노동자의 죽음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번에 스스로 이 절망의 사회와 단절한 노동자는 77일 투쟁기간동안 도장공장 옥상에서 최후까지 저항했던 정리해고 노동자였다. 투쟁이 끝난 후에도 희망퇴직을 거부하고 스스로 정리해고를 선택할 만큼 결단력과 자본에게 끝까지 굴복하지 않은 노동자였다. 그런 노동자가 죽음을 선택했다.
그를 바라보는 차가운 사회적 시선, 취업 이력서에 쌍차 파업 참가는 고사하고 쌍용차에 다녔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만 해도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악랄한 자본의 횡포, 수십장의 이력서가 휴지통에 버려지고 생존하는 것 자체가 구차해지는 것같은 모멸감이 그를 휘감고 있었을 것이다. 
77일간의 투쟁의 기억으로 당당하게 살고 싶었을 노동자! 그러나 77일 투쟁을 이어줄 수 있는 더 강력한 투쟁으로 자본을 압박하지 못하는 노동운동의 무력감을 더욱 절절하게 느꼈을 것이고 그 냉정한 현실 앞에서 절망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22번째 죽음 앞에서 ‘위로하지 말고 함께 싸우자’며 오열하는 쌍용차 노동자들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연대로, 전국적 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희망텐트
희망버스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며 시작된 쌍차 노동자들의 희망텐트 투쟁은 계속되는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서는 무급-정리해고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답을 분명하게 알고 시작됐다. 또한 무급-정리해고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정리해고 그 자체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와 투쟁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인식도 녹아든 투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부터 8.6합의를 뛰어넘어 정리해고 철회-해고자 복직을 기치로, 공장 앞에 텐트를 치고 결코 짧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면서도 긴호흡으로, 당당하게, 웃으며 투쟁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희망텐트를 계기로 전개된 3차에 걸친 집중투쟁은 3년여에 걸쳐 정리해고 철폐 투쟁으로 지쳐있는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신호탄이었다. 먹고살아야 하는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던 다수의 노동자들을 또다시 결집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음은 있으나 회사측의 눈치를 봐야 하는 공장 안의 노동자들까지 새로운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투쟁은 확산되지 못했다. ‘공장을 포위하라’는 구호는 구호에 그쳤고 포위의 날에 모인 노동자들은 공장 앞 ‘투쟁’을 두고 주저했다. 금속노조는 초기 강력한 의지 표명을 했지만 그에 걸맞는 투쟁을 조직하지 못했다. 희망버스 운동으로 대중조직을 넘어서는 자발적 주체들의 결집과 운동의 확산은 이번 희망텐트에서는 기대한 만큼 이뤄지지 못했다.
그 시기는 총선이 사회적 이슈로 집중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선거는 노동자투쟁이 더욱 활성화되면서 노동자의 요구를 전 사회적 요구로 만들어내는데 기여하기 보다 오히려 노동자요구를 주변화시켰고, 노동자투쟁은 선거 구도에 종속되거나 외면당했다.
3차를 끝내면서 4차 포위의 날을 기약하지 못했고 희망텐트는 온전히 쌍차 노동자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쌍차노동자들은 22번째 죽음과 또 다시 맞게 된 것이다.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전사회적 투쟁
22번째 노동자의 죽음, 이는 한달에 한번쯤 진행되는 집중집회 만으로는, 희망텐트를 방문하는 소수에 머물러 있는 자발적 흐름들만으로는, 정치적 해결을 기대며 의회를 압박하는 것으로는 이 죽음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4차 포위의 날을 앞두고 운동진영의 대표자들과 원로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살인정권 규탄, 정리해고 철폐, 쌍용차 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이하 쌍차 범대위)’를 결성해 범국민적 추모와 투쟁확대를 해나가겠다는 의견을 모아냈다. 범대위는 분향소를 대한문에서 전 지역으로 확대하고 4차 포위의 날을 전후로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희망지킴이와 시민상주단 운영, ‘청와대가 해결하라’는 기조아래 4.30투쟁과 청와대 항의 투쟁 등 49재까지 투쟁을 이어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따라서 4차 포위의 날은 죽음의 행렬을 실제로 멈추기 위한, 쌍용차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투쟁을 전 사회적인 투쟁으로 만들기 위한 결의의 장이자, 출발점이다.
이제 노동자들은 쌍차 투쟁을 주체적으로 받아안으면서 정리해고 문제를 전 사회적 투쟁으로 만들어내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 이는 6~7월 예고되어 있는 금속노동자 파업과 8월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을 준비하는 것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 야간노동 철폐와 노동시간 단축, 노동권 보장이라는 2012년 핵심투쟁과제를 실천에 옮길 도화선이 될 것이다. 제운동세력 역시 4~5월 쌍차 투쟁을 중심으로 자본과 정권에 반격할 계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것이 77일 치열한 투쟁을 버텨내면서 자본에 굴복하지 않았음에도 이 사회와 단절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선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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