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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8호> 공정한 시장경쟁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나?

공정한 시장경쟁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나?
허울뿐인 경제민주화 논쟁

 

 

“저는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그리고 '복지의 확대'를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로 삼겠습니다.”- 7월 10일, 박근혜 「대선 출마선언문」 중에서

“시장경제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여 경제민주화를 구현한다."

- 새누리당 강령 3조 1항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확립을 통한 경제민주화 실현」 중에서

 

이른바 경제민주화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가 화두다. 박근혜건, 문재인이건, 안철수건 모두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있는 형국이다. 박근혜가 7월 10일 대선출마를 선언하며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겠다는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놓자, 문재인 역시 질세라 출자총액제도 부활,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제도 강화, 금산분리 강화를 약속하며 박근혜의 경제민주화를 ‘사이비’라고 비판한다. 안철수 역시 최근 출간한 자신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을 통해 ‘공정한 시장경제’를 핵심으로 하는 경제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탈바꿈하며 당 강령에 ‘경제민주화’를 집어넣은 상황은, 그 구체적 의미가 무엇인지는 둘째치고서라도 우리에게 무엇인가 낯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지금의 상황은 무엇을 말하는가?

 

생존의 문제 - 경제민주화 논의의 배경
보수색을 약화시키는 새누리당, 대놓고 진보를 표방하는 민주통합당. 이들의 외견상의 ‘좌 클릭’에는 높은 실업률과 넘쳐나는 비정규직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이 ‘생존’의 문제에 답하지 않고 권력을 쥘 수 없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에 이들의 실제 행보가 어떠하건 외견상으로는 모두가 일자리와 복지, 재벌규제를 입에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생존’의 문제에 대한 각 정치세력의 입장이 집약돼 드러나고 있는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 논쟁이며, 이 논쟁의 장에서 각 세력은 모두 자신들이 가장 많은 이들에게 안정적으로 밥을 먹여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공정한 시장경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가 서로 다른 것처럼 자신들의 주장을 포장하고 있지만 이들이 말하는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결국 ‘공정한 시장경제’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생존의 문제가 어디 시장질서가 공정하지 않아서 발생한 것인가? 개발독재 시기의 낮은 실업률이 공정한 시장질서가 존재했기 때문이란 말인가? 더 나아가 시장이 공정해지고, 그렇기 때문에 자본 사이의 경쟁이 더욱 강화된다면, 노동자의 복지와 임금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재벌을 작은 기업들로 쪼갠다고 해도, 그 중소기업의 자본가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체제의 본질을 털끝만큼도 건드릴 생각이 없는 이들은, 이런 문제에 답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고장난 녹음기처럼 ‘재벌 문제가 심각하다’고 외칠 뿐이며, 재벌에 대한 특혜가 완화되거나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처럼 이야기할 뿐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일자리와 비정규직의 문제를 경제민주화의 패러다임 속에서 녹여낼 수 없다. ‘재벌개혁’의 문제와 ‘일자리’의 문제가 유기적으로 연관되지 못하고 병렬적으로 나열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왜 누구도 몰수를 말하지 않는가?
우리는 세계공황의 한복판에 있으며, 생존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계급투쟁이다. 너도나도 복지의 확충과 일자리 확대를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전체 자본의 몫을 줄일 수밖에 없다. 결국 노동자 민중에게 돌아오는 몫이 늘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재벌과 중소기업 사이의 공정한 시장경쟁이 아니라, 재벌과 중소자본을 가리지 않는 전체 자본 몫의 축소 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자리를 늘리고, 비정규직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자본가의 소유권, 즉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구성하는 생산수단 소유권의 문제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현 시기 노동자 민중의 생존을 보장하는 길은, 곧 자본의 소유권에 대한 침해일 수밖에 없다. 어떤 말랑말랑한 단어로 표현해도, 그 본질은 마찬가지다.
삼성전자가 백혈병으로 희생시킨 수많은 노동자들을 생각해보라. 쌍용차 자본이 죽음으로 몰고 간 22명의 노동자들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대법원 판결마저도 어기고 있는 현대차 자본을 생각해보라.
그들이 부당하게 얻은 이윤을, 그리고 그렇게 축적한 생산수단과 재산을 국가가, 노동자가 몰수하는 것이 부당한가? 왜 누구도 자본가들이 부당하게 축적한 이윤과 재산의 환수를 말하지 않는가? 전두환, 노태우의 재산은 몰수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왜 자본에 대해서는 똑같이 말하지 못하는가?

 

백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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