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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2/07/16
    강제로 건전하게 살아야....(1)
    단단이아빠
  2. 2012/02/03
    나는 꼼수다 비키니 논쟁에 대한 생각
    단단이아빠
  3. 2011/10/24
    내 양력 생일
    단단이아빠
  4. 2011/08/16
    이빨을 뽑았다.
    단단이아빠
  5. 2011/06/27
    그냥 같이 살거나 같이 죽거나....
    단단이아빠
  6. 2011/04/20
    I will survive
    단단이아빠
  7. 2010/11/29
    눈오는 날의 기억
    단단이아빠
  8. 2009/11/02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동기부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고는 높은 성과를 낼 수 없다
    단단이아빠
  9. 2009/06/14
    금주
    단단이아빠
  10. 2009/06/14
    [펌]노무현 '동지'를 꿈꾸며..(김진숙지도위원 편지글)
    단단이아빠

강제로 건전하게 살아야....

7/7

오후 3시경 창고정리를 하다가 갑자기 현기증과 함께 오른쪽 팔다리가 경련이 오고 마비되는 것 같은 증세.. 어제 저녁에 뭐 잘못 먹었나 고민하면서 왜 이러나 하다가 잠시 누워있으니 5~10분 정도후에 정상으로..

저녁에 집에 들어가는데 또 갑자기 다리에 마비가 오면서 질질 끌리고 잘 안걸어짐.. 어.. 이거 죽을 병인가.. 그러다가 또 정상

 

7/8 

2주만에 보는 마님과 애들과 같이 빕스에 가서 저녁 잘 먹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또 갑자기 다리에 마비가 .. 질질 끌리는 다리를 마님이 보고 그때 혀가 마비된 것처럼 발음이 잘 안돼고 해서 어버버버.. 마님 급 당황.. 또 10분 정도 후에 마비 풀리고 정상화..

 

검색하더니 병원가자고 애원을 하는데 일요일 밤에 병원가면 고생한다고 내일 회사 갔다가 갈거라고 안심시키고...

 

7/9

회사 출근 잘 해서 창고 잘 정리하고 점심 챙겨먹고 고대 안산병원으로 고고싱..

접수하는데서 증상을 설명했더니 신경과 로 가보라고 .. 신경과 접수하는 곳에 가서 또 증상을 설명했더니 응급실로 바로 가라네.

응급실에 갔더니 바로 심장박동재는 거 달고는 입원.. 약먹고는 일주일은 입원해야 할거라면서 링겔 꼽아주더만.

저녁에 담당의사가 와서는 어떻냐고 해서 입원한 후에 가볍게 마비가 오는 것 같다고 했더니 바로 중환자실로. 약먹었는데도 뇌졸증 증세가 있으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7/10

아.. 중환자실에서 밤새는 것 죽여준다. 사람이 살데가 아니여...

어쨌거나 큰 증세 없이 하루 밤 보내고는 중환자실에서는 도저히 못있겠다고 차라리 응급실로 보내달라고 했더니 오후 늦게 2인실로 옮겨주더만.. 2인실은 의료보험이 안돼서 졸라 비쌈...

 

7/11

바득바득 우겨서 5인실로 옮김..

이때부터 죽어라고 검사. 초음파 검사 MRi 신경검사 , 계속 피 뽑아가서 검사. 검사하다 죽겄다..

하지만 일단 나아야 하니까...

 

7/13

당뇨와 고혈압에 의한 뇌경색으로 추정(그동안 한 그 수많은 검사는 결국 다른 원인이 특별히 있는 건 아니다라는 결론을 위해서...) 

금연,금주,규칙적인 운동을 해야 한단다...

존나 타의에 의해 건전하게 살게 생겼다.

 

7/14

드디어 퇴원.. 병원비가 350만원이 넘게 나왔다.. 와 한번만 더 아프면 우리 망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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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꼼수다 비키니 논쟁에 대한 생각

비키니 입고 정봉주 석방 사진을 올린 것과 그에 대한 나는 꼼수다의 태도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어차피 성희롱은 당사자가 그렇게 느끼는가 가 성희롱이냐 아니냐가 결정되기에 그것에 대해서 성희롱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는 없다. 

 

다만 수치심이 느껴져서 성희롱이라고 생각되었다면 그에 대해서 문제제기하는 건 좋지만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명제"처럼 이야기 안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안 그렇게 느끼는 나 같은 사람도 많거든... "내가 기분 나쁜 것"이지 "니네들이 잘못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발 그들의 말이 맞건 틀리건,그들의 주장일 옳건 그르건 관계없이 자신의 말을 했으면 한다. 정맞고 망치맞아서 둥글둥글해진 의견이 아니라...

 

씨바 세상에 그런 잡놈들도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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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양력 생일

난 음력으로 1968년 11월 28일에 태어났다....

 

양력으로 보니 1969년 1월 16일 목요일에 태어났다.. 음.. 단단이 엄마가 맨날 누나라고 부르는게 이해가 가는구만...

 

태어난 시간은 어머니하고 고모하고 기억하는 시간이 틀려서리.....

 

엄마 말로는 오전 11시라고 하고 고모 말로는 저녁밥 짓는 연기가 올라올 때라고 했으니 아마 오후 6시 경..?

 

누구 말이 맞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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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을 뽑았다.

지난 주부터 죽어라고 아프던 이빨을 오늘 뽑았다. 오른쪽 어금니와 사랑니(예전에 잇몸 치료할 때 사랑니는 다 뽑은 줄 알았더니 오른쪽은 안뽑았더만...). 간만에 죽을거 같은 아픔을 느껴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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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같이 살거나 같이 죽거나....

죄수의 딜레마 라는 이론이 있단다.

잡혀간 두명의 공법이 서로의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자백을 하고 안하고에 따라 형량이 가중되거나 혹은 그냥 풀려나올 수 있거나...

 

처음 사회과학 책을 세미나 하면서 세상을 만드는 건 노동자고 모든 가치는 노동에서 나온다라는 선배의 말에 그럼 그냥 다 일손을 놓으면 세상이 바뀌겠네.. 했던 생각이...

 

한진중공업 노조가 파업을 철회하고 김진숙 지도위원의 크레인 퇴거를 책임지겠다고 합의했다고 한다. 뭐하나 도와주거나 격려의 행동 하나 한것 없는 상태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그냥 같이 살거나 같이 죽음 안되는 건가..

 

뻔히 미래가 보이는 상황에서 지금 파업철회하고 회사와 합의하면 연말에는 또 정리해고로 남은 사람중 몇이 떠날거고 내년엔 , 내후년엔....

 

싸우다 깨지는 건 아프지만 이렇게 서로의 등에 비수를 꼽는 건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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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ill survive

[펌] http://sky7102.thoth.kr/?document_srl=9243513

I Will Survive

 
song: GLORIA GAYNOR
 
At first I was afraid, I was petrified 
처음엔 난 두려웠지, 너무도 끔직했어 
 
Kept thinkin' I could never live without you by my side 
너없인 절대 살수 없단 생각만을 계속 했어 
 
But then I spent so many nights Thinkin' how you did me wrong 
하지만 그리고선 니가 얼마나 내게 잘못했는지를 생각하며 수많은 밤을 보냈지 
 
And I grew strong 
그리고 난 강해졌어 
 
And I learned how to get along 
어떻게 살아가는건지 배웠어 
 
And so you're back, from outta space 
그리고 바깥 세상으로부터 다시 니가 돌아왔어 
 
I just walked in to find you here with that sad look upon your face 
난 슬픈 얼굴을 한 너의 모습을 보러 들어온거야 
 
I should have changed that stupid lock 
오..그 빌어먹을 자물쇠를 바꿨어야 했는데 
 
I should have made you leave your key 
니가 그 열쇠를 못가져가게 했었어야했는데 
 
If I had known for just on-e second you'd be back to bother me 
니가 날 또 귀찮게 하러 올거란걸 알았더라면.. 
 
Go now go, walk out the door 
가버려, 저 문밖으로 나가 
 
Just turn around now 
지금 돌아가버려 
 
Cause you're not welcome anymore 
더이상 널 반기지 않아 
 
Weren't you the on-e who tried to hurt me with goodbye 
이별인사를 하며 날 아프게 한게 너였잖아 
 
Think I'd crumble? 
내가 무너질거라 생각했어? 
 
Think I'd lay down and die? 
조용히 누워, 죽을거라 생각했어? 
 
Oh no, not! I'll survive 
천만해, 난 살아갈거야 
 
Oh as long as I know how to love I know I'll be alive 
어떤게 사랑하는 건지를 아는이상 난 살아있을거야 
 
I've got all my life to live 
살아가야할 내 인생이 있는걸 
 
I've got all my love to give and I'll survive 
흠뻑 빠질 사랑이 있는걸, 난 살아갈거야 
 
I will survive. Hey, hey
난 살아 남을거야 헤이 헤이
 
 
 
It took all the strength I had not to fall apart 
무너지지 않기위해 안간힘을 썼지 
 
Kept tryin' hard to mend the pieces of my broken heart 
다친 마음을 치유하려 정말 애를 썼지 
 
And I spent oh so many nights Just feelin' sorry for myself 
내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많은 밤을 보냈어 
 
I used to cry 
울곤했지 
 
But now I hold my head up high 
하지만 이제 나 고개를 들어(당당해) 
 
And you see me, somebody new 
나를 봐, 새로운 사람이야 
 
I'm not that chained up little person still in love with you 
너와 사랑에 빠져 갇혀버린 사람이 아냐 
 
And so you feel like droppin' in 
너는 그저 잠깐 들렀겠지 
 
And just expect me to be free 
그리고 내곁에 아무도 없을거라 생각하지 
(내가 만나는 사람이 없을거라 생각하지 
혹은 너를 위한 시간을 내줄만큼 여유있다 생각하지도 가능할듯..) 
 
 
Now I'm savin' all my love for someone who's lovin' me 
난 내 모든 사랑을 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껴두고있어
 
 
난 내 모든 사랑을 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껴두고있어I Will Survive
 
song: GLORIA GAYNOR
 
At first I was afraid, I was petrified 
처음엔 난 두려웠지, 너무도 끔직했어 
Kept thinkin' I could never live without you by my side 
너없인 절대 살수 없단 생각만을 계속 했어 
But then I spent so many nights Thinkin' how you did me wrong 
하지만 그리고선 니가 얼마나 내게 잘못했는지를 생각하며 수많은 밤을 보냈지 
And I grew strong 
그리고 난 강해졌어 
And I learned how to get along 
어떻게 살아가는건지 배웠어 
And so you're back, from outta space 
그리고 바깥 세상으로부터 다시 니가 돌아왔어 
I just walked in to find you here with that sad look upon your face 
난 슬픈 얼굴을 한 너의 모습을 보러 들어온거야 
I should have changed that stupid lock 
오..그 빌어먹을 자물쇠를 바꿨어야 했는데 
I should have made you leave your key 
니가 그 열쇠를 못가져가게 했었어야했는데 
If I had known for just on-e second you'd be back to bother me 
니가 날 또 귀찮게 하러 올거란걸 알았더라면.. 
Go now go, walk out the door 
가버려, 저 문밖으로 나가 
Just turn around now 
지금 돌아가버려 
Cause you're not welcome anymore 
더이상 널 반기지 않아 
Weren't you the on-e who tried to hurt me with goodbye 
이별인사를 하며 날 아프게 한게 너였잖아 
Think I'd crumble? 
내가 무너질거라 생각했어? 
Think I'd lay down and die? 
조용히 누워, 죽을거라 생각했어? 
Oh no, not! I'll survive 
천만해, 난 살아갈거야 
Oh as long as I know how to love I know I'll be alive 
어떤게 사랑하는 건지를 아는이상 난 살아있을거야 
I've got all my life to live 
살아가야할 내 인생이 있는걸 
I've got all my love to give and I'll survive 
흠뻑 빠질 사랑이 있는걸, 난 살아갈거야 
I will survive. Hey, hey
 
난 살아 남을거야 헤이 헤이
 
It took all the strength I had not to fall apart 
무너지지 않기위해 안간힘을 썼지 
Kept tryin' hard to mend the pieces of my broken heart 
다친 마음을 치유하려 정말 애를 썼지 
And I spent oh so many nights Just feelin' sorry for myself 
내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많은 밤을 보냈어 
I used to cry 
울곤했지 
But now I hold my head up high 
하지만 이제 나 고개를 들어(당당해) 
And you see me, somebody new 
나를 봐, 새로운 사람이야 
I'm not that chained up little person still in love with you 
너와 사랑에 빠져 갇혀버린 사람이 아냐 
And so you feel like droppin' in 
너는 그저 잠깐 들렀겠지 
And just expect me to be free 
그리고 내곁에 아무도 없을거라 생각하지 
(내가 만나는 사람이 없을거라 생각하지 
혹은 너를 위한 시간을 내줄만큼 여유있다 생각하지도 가능할듯..) 
Now I'm savin' all my love for someone who's lovin' me 
난 내 모든 사랑을 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껴두고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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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 날의 기억

아침에 출근하는데 간밤에 눈이 와서 담장위와 주차된 차들위에 쌓여있다. 많은 눈은 아니지만 아마 ㅇㄹ겨울들어 첫눈이지 싶다. 1996년 쯤이었나. 벌써 가물가물하네. 전해투 명동성당 농성때가 생각난다. 전해투에서 명동성당 입구계단에 쇠사슬 걸어놓고는 몇일동안 노숙단ㅅㄱ투쟁을 했고 그 옆에서 뒷바라지를 좀 했다.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밤 12시 넘어서 함박눈이 내리는거다. 자는 동지들위로 비닐을 덮아놨는데 그위로 어찌나 눈이 쌓이는지 쓸어내려도 쌓이고 또 쌓이고... 사는거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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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동기부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고는 높은 성과를 낼 수 없다

스탠포드 비즈니스스쿨제프리 페퍼 교수가 쓴 “Human Equation”, 즉 “사람방정식”이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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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금요일 저녁 술먹고 취해 크게 사고치다. 술 잘먹고 큰방에서 마님이랑 이야기하고 있는데 작은방에서 갑자기 서후가 우는 소리. 안에 들어가 놀다가 문이 잠겨서.. 이 망할놈의 집은 처음 들어올 때 부터 문에 열쇠를 안줬다. 이사온 첫해에 단단이가 화장실에 갖혀서는 온갖 안간힘을 다 쓰고서야 겨우 문을 열어서는 나올 수 있었다. 그 후로 화장실 잠금장치를 망가뜨리고 쓰고 있다. 작은 방은 화장실 할 때 처럼 열쇠를 어떻게 해서 열수가 없어서 결국 문을 거의 부시고는 열 수 있었다. 술이 취한 김에 완전히 꼭지가 돌아버렸다. 문을 때어 내서는 밖에서 다 뽀개버리고 소리지르고 난리가 아니었다. 마님은 완전히 질렸댄다. 다음부터는 이런 꼴 안볼거니 앞으로 한번만 이러면 집을 나가랜다. 그래 내가 잘 못한게 있으니까. 앞으로 술 안마시련다. 술 안먹는다고 죽는것도 아니고.. 내가 생각해도 알콜 중독 기운도 있어보이니까. 대신 앞으로 뭐 사주거나 집에 뭐 사들고 오거나 그런 거도 이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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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노무현 '동지'를 꿈꾸며..(김진숙지도위원 편지글)

빨간쉼표(http://bsnodong.tistory.com)에 실린 글입니다.... 집회도 없고 수련회도 없는 휴일은 외려 잠이 일찍 깨요. 아무 일도 없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언제부터 저는 평화가 실감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걸까요. 아무 일도 없는 이상한 토요일.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화면에 뉴스속보가 뜨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뇌출혈로 입원” 검찰조사가 시작되면 입원으로 시작해서 휠체어나 마스크가 구명보트처럼 등장하는 꼴을 늘 봐오긴 했습니다만 당신은 그런 쇼를 할 사람은 아닌지라 스트레스가 어지간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10여분 후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한 듯”이라는 자막이 뜨고 그제서야 뒹굴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날이 일구 우일구하기 여념없는 시시껍절한 방송이 중단되고 속보가 이어지더군요. 경호원, 사저뒤편, 부엉이 바위, 세영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심폐소생술, 열상 따위의 일상과 밀접하지 않은 단어들이 바 퀴벌레처럼 툭툭 튀어나와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정신적 공황상태까진 아니었지만 불면 탓으로 약간 멍한 채로 이틀을 보냈고 월요일 아침 부산역까지 가긴 했으나 조문 은 못하고 역 광장을 몇 바퀴 빙빙 돌다 왔습니다. 선뜻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문상객들의 거리낌없는 몸놀림이 참 부럽다고 생각하며. 잠이 안오대요. 다음 날 다시 부산역엘 갔습니다. 역 광장을 또 빙빙 돌다가 그냥 돌아가면 다시 닥칠 불면의 밤이 성가셔 문상객들의 뒤에 얼른 붙어 섰습니다. 방명록에 몇 줄 쓰기도 했습니다. 잠을 자야하니까.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습니다. 90년 변호사 접견 오셨을 때처럼 봉하마을 어딘가에 앉아 각자의 위치가 만들어 낸 그동안의 원망과 미움들을 두런두런 털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곧.. 고맙고 죄송합니다.“ 90년. 제가 첫 징역을 살 때였습니다. 접견을 오셨었지요. 보통 변호사 접견은 재판 전날 와서(사실 재판 전날도 안 오는 변호사도 많습디다만) 재판절차를 일러주고 이빨도 맞추고 하는데 재판날짜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였던지라 많이 의아했던 만큼 20년 전인데도 이리 생생하네요. 접견실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더군요. 보통은 재소자들이 한 시간 이상씩 주리를 틀면서 기다리는데. 요샌 교도소 반찬이 뭐가 나오냔 얘기, 여사에선 뭐하고 노냐는 얘기, 변호사가 해주던 징역살이 얘기, 남사에선 뭐하고 논다는 얘기, 법무부 시계도 가니까 재밌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서 징역을 잘 깨라는 얘기. 변호사가 접견을 와선 재판이야긴 한마디도 없이 노닥거리기만 하다 그 더디기로 유명한 법무부시계가 세상에 한 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가야겠네” 일어서시길래 하도 황당해서 물었습니다. “왜 오셨어요?” “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그리고 당신은 정치권으로 갔고, 정치권으로 갔다는 건 권력을 탐하는 변절로 규정하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으니 변호사비용을 거침없이 떼먹고도 사기꾼의 돈을 떼먹은 것 마냥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직하면 갚으마. 유전 발견하면 갚으마. 보물선 찾는대로 갚으마. 막연한 약속이 선임비였던 시절이었으니. 그게 인권변호사의 당연한 책무였으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상실감이었어요. 그 시절 당신은 우리들의 유일한 빽이었는데. 공돌이 공순이 편을 들어주는 가장 직책 높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있어 우린 수갑을 차고도 당당할 수 있었는데. 그때 직감적으로 생각했어요. 이제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겠구나. 재판장 앞에서 수갑을 찬 채 잔뜩 주눅 든 우리를 향해, “피고인은 무죕니다.” 외쳐 줄 사람이 이젠 없겠구나. 이제 재판에서 지더라도 찾아가 울 데도 없겠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부엉이바위인 크레인 위에 올라갈 때 따라 올라가지도 않겠구나. 그리고 당신을 잊었습니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없어서 혼자 진행했던 1심 재판에서 당연히 지고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왜 항소를 안했어요?” 라는 질문에 “항소가 뭔데요?” 라고 되묻던 저에게 “노동자가 항소를 알면 그건 노동자가 아니지.” 하던 말도 잊었고, 노동자도 이론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며 함께 했던 소모임도 잊었고, 군사정권 시절 해고된 노동자의 그 막막한 눈빛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유일하게 내 얘기를 그대로 들어주던 무료법률 상담소도 잊었고, 어느 날은 밤에 오라 길래 밤에 찾아갔더니 그날이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의 기일이라고 변호사 사무실 구석에 조촐한 제상을 차려놓고 아무 말도 없이 유령들처럼 절을 하던 그 뭉클하던 밤도 잊었고, 함께 같은 거리를 달리던 6월 항쟁도 잊었고, 최루탄 가루가 싸락눈처럼 내린 범냇골 국민운동본부 옥상에서 막걸리를 나누던 걸판지던 뒤풀이도 잊었습니다. 그리고 침례병원이 초량에 있을 때였습니다. 노동조합 조합원 교육에 초청을 받았는데 앞 시간 강사가 당신이었더군요. 당신은 내려오고 나는 올라가던 계단에서 마주쳤습니다. 난 참 어색하기가 짝이 없습디다. 그냥 모른 척 할라고 했습니다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지요?” 굳이 손까지 내미시더군요. 그때 대답을 했거나 웃기라도 좀 했으면 지금 잠을 이루기가 좀 쉬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출마한 대선에서 전 4번을 찍었습니다. 단 한 번도 단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외포리를 한번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생 1번을 벗어난 적이 없는 큰언니가 전화를 했더군요. “이 노무헤니가 그 노무헤니지? 니 벤호사. 그 사람 찍었다. 너 인쟈 깜빵 안가지? 복직두 되갓지?” 얼른 대답할 말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제가 왜 “내 변호사”를 놔두고 4번을 찍었는지 우리 큰언닌 죽을 때까지 이해 못할 거예요. 2번과 4번의 극심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도 이리 막막한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그 미세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은 저의 재주로는 난망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뻐서 우는 사람도 있습디다만 이회차이가 당선된 거보다 노무혀이가 당선된 게 노동자들에게는 더 힘들 거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립은 깊어졌고 고착화되었습니다. 김영삼이가 당선되었을 때 운동권이 1/3이 떨어져 나갔고,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른바 재야가 사라졌고,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그야말로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았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해고될 때 그 무지막지한 자본을 향해 호통쳐주는 어른 하나 없습디다. 노동자들이 핏발 선 눈으로 거리로 나설 때 역성들어주기는커녕 죄 우리만 나무랍디다. 그거 아세요. 당신은 조중동이랑 열심히 싸우셨습니다만 우리에겐 조중동이랑 한편처럼 보인 거. “야~ 기분좋다!” 시며 봉하로 가셨을 때 오리농법보다 더 중요한 일은 농민들의 삶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왜 목숨 걸고 한미 FTA를 반대했는지. 그리고 전용철, 홍덕표 그들의 죽음에 당신이 늦게나마 사과를 하면 참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봉하마을을 갔을까요. 아마 갔겠지요. 그리고.. 김 주익 얘기도 했을까요. 아마 그 얘긴 못했을 거예요. 말로 꺼내긴 크나큰 상처였으니까.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말씀. 유난히 노동자들에겐 가혹하셨습니다. 2003년도 한진중공업에서 저는 한꺼번에 두 명의 지기이자 동지를 잃었습니다. 김 주익은 600여명 조합원의 명퇴에 맞서 2년을 싸웠고 노사가 합의를 했고 그 합의를 회사가 번복을 했고 그래서 크레인에 올라갔고 그 크레인 위에 129일을 매달려 있다가 아시다시피 목을 맸습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시대는 정말 지났을까요.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종종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인 것을.. 저는 당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당신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지배가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시대에 그 꿈은 가장 허황되고 지리멸렬해졌습니다. 때론 우리가 품은 꿈이 너무 초라했고 궁색했습니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짤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격상됐고 그들은 언론과 자본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조차 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기주의를 꾸짖으십디다만 동료가 수백 명씩 짤리는 걸 목격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에게 내밀 손이 남아 있겠습니까. 저 살아남는데 써야지. 징역을 살 때 만난 사형수가 있었어요. 이 여잔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개털이었는데 새로 신입이 들어오면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샴푸나 속옷을 사달라는 거예요. 출소한 사람들이 쓰다만 물건들도 다 그 여자 차지였죠.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는 게 도덕의 눈으로 보자면 참 추접스럽습디다. 그 여자 집행되고 보니 샴푸나 속옷 나부랭이가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옵디다. 백분의 일도 못쓰고 죽었죠. 생에 대한 나름의 집착이었던 거죠. 샴푸 생길 때마다 빌었겠죠. 이거 다 쓰고 죽자. 정규직 노동자들은 삶의 벼랑에서 그런 심정으로 잔업하고 철야를 합니다. 얼마가 남았을지 모를 정규직의 삶을 그딴 식으로 저축하면서. 그 무렵쯤이었을 거예요. 변호사비용을 이제 그만 갚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당신의 시혜나 은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적이 될 거라면 호적수이고 싶었습니다. 실력도 한참 모자라고 열정도 전만 못하고 진정성마저 잃어 그리 되진 못했습니다. 그게 참 부끄러워요.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나 우리를 속속들이 아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고 남은 자들은 동네북이 되어 초딩들마저 두들겨대고 천덕 꾸러기가 되어 크레인엘 올라가고 굴뚝엘 기어 올라가도 언놈 하나 눈길주는 놈이 없어졌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 밖에 못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입 달린 사람은 죄다 침이 마릅디다만 고등학교도 못 나온 저 같은 노동자들은 당신의 시대에 대부분 절감해야 할 원가가 되어 구조조정 당했고 효율화를 위해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차라리 군사독재 시절엔 대드는 노동자만 짤렸으나 당신의 시대엔 남녀노소가 짤렸습니다. 서민의 벗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훨씬 더 까마득해졌습니다. 당신이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24년의 세월 동안 전 아직 복직도 못한 해고노동자로 찌질한 50대가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짧은 시간 동지였고 오랜 세월 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뜨겁고 바른. 만고 씰데없는 소립디다만 그래서 대통령 같은 거 하지 말았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 지금도 해요. 불안하고 불길한 기운으로 떠돌던 예감이 당신의 죽음으로 확연해집니다. 한 시대가 갔다는.. 이제 상고출신이 변호사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양양한 가도가 보이고 그 길을 편하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의 있습니다!” 외칠 때, 그 외침에 뒤돌아보는 사람도 이제 더는 없을지도 몰라요. 만 명이 울어주면 천국에 간다했던가요. 천국에 가셨을 거라 믿어요. 진심으로. 김주익 곽재규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당신의 시대에, 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서러움으로 억울함으로 목 놓아 울었던 죽음들입니다. 당신처럼 벼랑 끝에 내몰렸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죽음을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란 적이 있었어요. 하도 야속해서. 노동자의 삶을 안다는 사람이 어찌 저럴 수가 있나 너무 미워서. 아무리 야속하고 미워도 그런 바람은 품지 말걸 그랬다 싶어요. 애증도 부질없어 졌습니다. 언젠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말들이 기형도의 시처럼 떠돌다 때때로 부딪히겠지요. 이제 변호사비용은 영원히 안 갚아도 되게 생겼습니다. 다음 생에 오실 땐, 너무 똑똑하게 오지 마시구려. 사법시험 같은 것도 합격하지 마시구요. 그냥 태생대로 기름밥 먹는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저는 당신에게 변절이라 손가락질 할 일 없이, 당신은 절더러 경직되었다거니 세상을 모른다거니 한심해 할 일 없이. 떠날 일도 보낼 일도 없이 그냥 내내 동지로. 그래서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다. 그 멋진 말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 남다른 정의감 그대로 만날 수 있길. 다시는 미워할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이렇게 미어질 일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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