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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본에 대한 레닌의 규정과 그 현실적 유효성
한동백 | 집행위원
독점자본주의 단계에서 모든 특징적인 경제적 양상의 구체적 보편은 금융자본의 활동을 빼놓고는 추려질 수 없으므로 제국주의의 경제적 기초인 독점자본주의 경제의 성격을 확정하고 그 파생 현상을 분석·종합하는 데서 금융자본 개념은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일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시행되는 몇 가지 법률적 특수성을 ‘근거’로 하여, 현대 자본주의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기초한 금융자본 개념이란 더이상 있을 수 없고, 따라서 금융자본에 대한 레닌의 규정 역시 “철지난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근래에 들어서까지 계속 제출되고 있다. 심지어 속류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입장에 기초하여, 자본의 운용과 ‘법률적 통제’에 있어 “앵글로색슨 자본주의(Anglo-Saxon Capitalism)” 방식과 “라인 자본주의(Rheinischer Kapitalismus)” 방식 간 “근본적 차이”를 소련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자의로 사상하였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전부 금융자본의 일반적 성격에 대한 레닌의 진의에의 몰이해 속에 있다.
금융자본에 대한 레닌적 규정이란 무엇인가?
레닌은 금융자본을 논하기에 앞서 『제국주의론』 제2장에서 은행자본의 성격 규정을 명백히 하였다. 이는 D. 클라인이 적절하게 파악한 바와 같이, 독점자본주의 형성에서 필수적인 물적 요소로서의 “자본 동원에 대한 새로운 요구들을 [형성되어 있는 경제 구조가; 인용자]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은행자본에서의 새로운 거대 조직들이 필요”1하였다는 역사적 측면에서, 매우 타당한 분석 수순이었다.
레닌은 은행자본의 성격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은행의 가장 주요한 기능은 지불과정의 중개이다. 이를 통해 은행은 유휴화폐자본을 가동자본, 곧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으로 전화시킨다. 즉 은행은 모든 종류의 화폐소득을 모아 자본가계급의 관리에 맡기는 것이다. 은행업무가 발전하고 소수의 수중으로 집적됨에 따라, 은행은 중개자라는 소극적인 역할로부터 탈피하여, 거의 모든 자본가와 소경영주의 화폐자본 및 한 나라 혹은 여러 나라의 생산수단과 원료자원을 대부분 지배하는 강력한 독점체가 된다. …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우선 은행업무의 집적에 대해 자세히 고찰해야 한다.”2
우리가 호주머니에 있는 화폐─실은 극히 예외인 경우가 아닌 이상 모조리 불환폐이지만─를 특정한 사용가치를 얻기 위해 지불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그 화폐는 자본이 아니다. 그러나 이 화폐를 더 많은 화폐를 돌려받기 위한, 즉 생산 및 유통 과정을 거쳐 더 풍부화한 화폐를 돌려받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한다면 이제 화폐는 화폐자본이 되며, 이내 그것은 생산자본으로 형태변환한다. 은행은 우리의 화폐─은행 이용자의 예금 및 기타 저축 행위를 통해 유입된 가치─마저 모두 자본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은행은 화폐를 다른 자본에게 대출해 주어 그 화폐를 화폐자본으로 탈바꿈시키며, 이렇게 하여 유휴화폐가 자본으로 기능하게 한다. 이는 생산 영역에서 실제적으로 운동하는 자본의 ‘쇄도’를 유도함으로써 공황의 가능성을 더욱 심화한다.
자유경쟁 자본주의 시기 은행의 업무와 활동은 주로 지불중개업무, 즉 예금업무 및 대출업무, 신용업무에 국한되어 있었다. 당시 은행 수입은 모두 예금이자와 대출이자의 차액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산업적 생산의 집적과 더불어 전 사회의 이윤 총량이 증가하고 생산의 거대화와 함께 고정자본이 전체 자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증가하자 신규 자본 투자 용도의 대규모 화폐의 물색을 위한 자본의 노력이 가열화하였다. 이러한 확대 재생산 비용의 제공을 은행이 떠맡게 되자, 은행자본 간 경쟁은 격화되기 시작, 은행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전개되었다. 레닌은 소은행이 대은행과의 경쟁에서 패배하여 대은행으로 자본이 집중이 되어가고 있음을 당대 여러 통계 자료를 통해 입증하였다. 자본주의 경제 운동에서 은행 독점체의 영향력은 현재도 여전하다. 일례로 2023년 한해 미국 전체 예금과 대출의 약 80%가 상위 5대 은행에 의해 운용되었다.
은행이 독점체로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규정력을 일정 이상 키우게 되면 산업자본과 은행자본 간의 인적 결합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인적 결합은 앞서 언급한 인수 합병이나, 주식 지분에 의한 인적 결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노골적인, 그리고 진부해 보이는 ‘인적 결합’에 관해 레닌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레닌은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은행과 산업 사이의 ‘인적 결합’은 이들과 정부와의 인적 결합에 의해 보완된다. 야이델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사회의 의석은 관청과의 관계를 매우 용이하게[!!; 레닌] 유지할 수 있는 명망가나 퇴직관리들에게 스스럼이 없이 제공된다. … 대은행의 이사회에는 대개 국회의원이나 베를린 시의회 의원이 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대독점체의 건설과 발전은 말하자면, ‘자연적’ 및 ‘초자연적’ 방법에 의해 전속력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수백 명의 금융와 사이에는 일종의 분업이 체계적으로 발전하고 있다.”3
뒤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레닌의 인용·설명 역시 금융자본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서 중요하다. 야이델스에 따르면 당대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의 ‘인적 결합’도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은행 이사회에 참가하는 등; 레닌] 대산업가들의 활동영역이 확장되고, 은행의 지방 간부들이 특정한 산업구역만을 한정하여 관할하게 됨에 따라 대은행의 중역들 사이에는 전문화가 진전된다. … 이러한 분업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전체 산업과의 관계가 전문기능으로서 한 중역에게 위탁되는 방식이다. 또 하나는 각 중역들이 몇 개의 개별 기업 또는 같은 산업분야에 있거나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진 기업군에 대한 감독을 맡는 형태이다. … [자본주의는 이미 개별 기업을 조직적으로 감독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레닌] 어떤 이는 독일 국내산업, 때로는 서부독일 산업만을 전담하고, 또 어떤 이들은 외국 및 외국산업과의 관계, 기업가 또는 기타 사람들에 관한 정보, 증권거래소 업무 등등을 전담한다. … 그 목적(및 결과)은 그들을 순수한 은행업무 담당자 이상으로 어느 정도 끌어올려, 산업의 일반적 문제와 각 산업부문의 특수한 문제에 대하여 정통하고 보다 정확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고, 또 그럼으로써 은행의 세력권에 있는 각 산업영역 내에서 그들이 보다 큰 활동력을 갖게 하려는 데에 있다. 또한 은행은 기업가, 전직 관료, 특히 철도업이나 광산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을 은행의 이사진으로 선출하여 노력함으로써 그러한 체계를 보완한다.”4
레닌이 말하는 산업자본과 은행자본 간 결합의 중핵인 ‘인적 결합’에서 중요한 내용은 인수 합병을 통한, 또는 주식 지분 관계를 통한 직접적인 ‘인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일어나고,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전화하면서 자본─여기서는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의 운용이 정부라는 매개를 통해 조직적으로 감독되어지는 단계로서의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에 있다. 그것은 전문인력의 활발한 교환, 양 부문 간의 전문기능 위탁, 각 중역들이 몇 개의 개별 기업 또는 같은 부문에 존재하는 것 등으로 나타난다. 이는 오늘날, 금산분리법(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의 일부 특수한 형태의 결합을 방지함은 물론, 주식 지분 보유율을 제한하는 모든 법률과 정책적 수단)이 존재하는 일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레닌은 금융자본 형성의 양상을 나열하는 마지막 부분에 도달해서야 인수 합병을 통한 ‘인적 결합’을 이야기하며, 그것은 “한편으로 … 유착이 증가하는 … ”5, 한 경향성으로만 언급될 뿐이다. 레닌이 부하린을 인용하며 집중하는 대목은 다시, “다른 한편으로는, 은행이 참으로 ‘보편적 성격’을 지닌 기관으로 성장하는”6 현상이다. 즉 제국주의의 경제적 기초를 마련하는 데서 핵심 조건인 금융자본의 발전은 산업자본을 포함한 모든 자본이 은행을 경유로 하여, 즉 발달된 신용제도를 통해 화폐를 화폐자본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 그리하여 은행은 항상 정부와 밀착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의 경제 정책이 은행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러한 관계가 자본 축적에서 ‘보편적 성격’을 띠는 규정성으로 되어가거나, 또는 그렇게 된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레닌은 이러한 ‘보편적 성격’에 관하여, 야이델스의 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여 보강하고 있다:
“산업적 제관계를 총체적으로 조사해 보면 산업을 대신하여 활동하는 금융기관의 보편적 성격을 볼 수 있다. 다른 종류의 은행과는 반대로, 그리고 문헌상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듯이 자기 지역을 잃지 않으려면 은행은 한 가지 사업 또는 산업부문으로 전문화되어야 한다는 사실과는 반대로, 대은행은 지역에서나 산업부문에서나 가능한 한 다양한 산업체들과 연관을 맺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개별 기업들의 역사적 발전으로 인한 지역 및 산업부문들 간의 자본분배의 불균등성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다. … 산업과의 관계를 전반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하나의 경향이 있으며, 그 관계를 항구적이고 밀접한 것으로 만들려는 또다른 경향이 있다.”7
그 후 이어지는 “은행자본에 대한 상공업계의 불만”에 관해 다루는 내용도 금융자본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이를 통해 상공업계, 즉 일반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수준에서의 산업자본의 ‘불만’이 은행자본이 자신들을 합병하는 것, 또는 주식을 통해 자기 자본에 침투를 해 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불만’의 원천은 “은행과 ‘우호적’ 관계에 있는 산업체들만이 은행이 설립한 기술연구를 위한 특수한 단체의 성과를 이용할 수 있다”8는 것, 공여한 신용에 대한 회수 여부가 사실상 은행의 독단으로 결정되는 것9 등에 있다. 이러한 수순은 자연스레 독점이 점거한 부문에 새로운 자본이 유입되는 것을 막는 데로 나아간다. 독점이 지배하는 부문에서 새로운 기업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현대적인 기업을 창업하는 데 드는 막대한 량의 화폐자본인데, 이는 대은행에 자금 보조를 요청하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다. 그러나 대은행과 독점 기업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고려할 때, 금융 과두제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도움을 주길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10 산업자본과 독점적 은행자본의 관계에서 발전하는 축적의 새로운 조건이 산업자본에 대한 은행자본의 간섭을 크게 허용함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오늘날에는 신용평가 업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상업 부문까지 크게 발전하였다. 미국의 독점적 은행자본이 국내적으로 구축한 경제적 지반은 “그들에게 최대의 이익을 줄 기회, 기업 통제 방법 그리고 기업과 부자의 업무에 관한 가장 자세한 정보를 제공”11하였다. “그들은 약세 기업이 인수될 시기가 언제인지 알고 있었고, 탐욕스러운 기업 및 자본 준비금을 가진 억만장자를 위한 잠재적 인수 계획을 가질 수 있었다.”12
레닌은 야이델스의 글을 참고하면서, 당대 자본주의 발전 수준 아래에서 산업자본은 은행자본과의 밀착 관계 없이는 더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하고 또 그것은 어떠한 자본주의 내에서의 정책적 수단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한다. 결정적으로 레닌은 “상당히 정확한 대답”이라고 하면서 야이델스의 다음과 같은 문구를 인용한다:
“새로운 내용·형태·기관에 의한 은행과 산업기업 사이의 연관, 달리 말해 집중적인 동시에 비집중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대은행은 1890년대 이전만 해도 전혀 특징적인 경제현상이 아니었다. 사실상 어떤 의미에서 그 출발점은, 중요한 ‘기업활동’들이 일어나고, 은행의 산업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비집중적 조직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처음으로 도입되었던 1897년으로 잡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 출발점은 좀더 늦은 1900년 공황기로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황에 의해 비로소 산업 및 은행에서의 집적 과정은 엄청나게 가속화·격화되고 한층 강력해졌으며, 산업과의 연관을 처음으로 대은행의 실질적인 독점으로 전화시킴으로써 훨씬 밀접하고 능동적인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13
레닌의 이 인용 대목을 통해 우리는 레닌이 은행자본과 산업(자본)과의 연관은 전자가 후자를 직접적으로 병합·소유하는 것만이 아니라 “훨씬 밀접하고 능동적인 것”─그간 야이델스의 글에 대한 레닌의 인용절에서 내내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예로서 표현되는 것들, “새로운 은행 중역의 대부분”이 추구하는 “산업에 대한 적극적 개입”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밀접하고 능동적인” 지배 방식들─을 염두에 두며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레닌은 나열된 양상 전체를 종합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20세기 벽두는 낡은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자본주의로, 자본 일반의 지배에서 금융자본 지배로의 전환점을 이룬다.”14
이는 모든 기능자본의 독점적 양상의 필수 불가결한 측면을 이루고 있다. 부르주아 법률이 ‘통제’하는 영역 내에서조차 산업자본은 안정적인 신용대부의 공급자로서의 은행자본을 희구하며, 다양한 유착 관계를 형성한다. 예컨대 금산분리에 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거나, 관련 규정이 실질상 무용한 아시아 및 유럽의 자본주의 국가들과 자주 비교되는 미국의 경우는 1956년 은행지주회사법(Bank Holding Company Act) 시행 전 이미 관리통화제도와 연계된 국가정책은 산업자본에 대한 은행자본의 주도력을 보증하는 강한 요소로 작동하고 있었는데, 금융과두제의 유지에 있어 시중 은행의 고유한 기능은 이미 국가적 기능으로 대체·통합되었다. 실지 이는 1930년대 초부터 주요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어져 온 국가독점자본주의 양상의 연장으로서, 그것은 이미 같은 시기 미국 외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도 채택하고 있던 금융과두제 유지 수단의 보편적 형태였다. “제국주의─은행자본의 시대이며, 거대 독점자본의 시대이고, 독점자본의 국가독점자본으로의 발전의 시대─는 명백히 ‘국가기구’의 비상한 강화와 더불어, 군주제 국가와 가장 자유로운 공화제 국가를 막론하고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억압 조치의 강화와 연관된 관료제 및 군사기구의 전례없는 확대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15 이에 상응하는 만큼 부르주아 정권의 국가 독점적 기능 기구들을 구성하는 인력과 금융자본의 인력은 서로 활발한 교류 속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해 갔다.16
오늘날에는 미국에서 기업대출 전담 기관들의 지위의 확고부동함, 연방준비제도를 위시로 하는 ‘양적완화’ 정책, 국채·MBS 매입을 거쳐 이루어지는 (중앙은행의) 달러 발권에 대한 산업자본의 과도한 의존, 그리고 이러한 정책 실현에 있어 필수 매개항인 시중 은행자본들─JP모건 체이스(JPMorgan Chase),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 웰스 파고(Wells Fargo), 씨티은행(Citybank) 등─의 수입 규모·경제적 영향력 팽창에 의한 금융과두제의 발전 양상이 매우 두드러진다. 2020년 4월부터 2022년 3월, 약 2년 간 이어진 연방준비제도의 초저금리 정책과 ‘양적완화’는 월가 은행들의 모기지 대출 수익률을 대폭 증가시켰다. ‘유동성 공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 정책은 총 이윤의 배분에 있어 유력한 은행자본들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고, 산업자본에 대한 대은행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되었다. 독점자본주의 하 민관 유착의 측면으로서 금융자본의 발전 경향에 대해 이쿠카와 에이지(生川榮治)가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은행자본의 집중은 독점적 은행자본으로 신용관계가 집중되는 것을 촉진하지만, 이 과정은 또 동시에 독점적 은행자본과 은행의 은행인 중앙은행과의 관계를 보다 밀접하게 만든다. 금융자본의 성립 과정에서는 중앙은행이 선행단계에 비하여 질적으로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할인 정책의 전개에 의해 독점적 은행자본의 화폐자본축적과 운동을 보완하고, 어떤 경우에는 공신용(公信用)과의 관련을 배경으로 한 국가재정(권력기구)과의 결합을 축으로 ‘통화관리’를 실시하여 한편으로는 한 나라의 금준비의 집중점으로서의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따른 급속한 자본집중에 의한 축적에 의해 생긴 현실자본(독점적 산업자본) 내부의 불균형을 은폐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17 그는 다만 이것이 신용구조 발전의 충분조건일 뿐 필요조건은 아니며, 필요조건은 증권업자본의 발전에 빚을 진다고 한다. 통화정책을 기반으로 한 민관 경제 협조가 긴밀해지는 조건 속에서 신용구조의 확고한 발전이 뒤따른 결과는 오늘날 복잡하고 엄격한 그리고 독점적인 신용 평가를 매개로 한, 산업에 대한 은행자본의 지배력 강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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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적 산업자본은 더 많은 양의 화폐자본을 신속히 융통하여 경쟁에서 초과이윤을 획득하고자 하고, 이러한 유착 속에서 독점적 은행자본은 국가의 보조 아래에서 산업 전반에 여전히 매우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집중과 집적의 이러한 발전 구조를 필연적으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클라인이 파악한 그대로, “트러스트나 콘체른은 특정한 형태의 가공자본(주식, 자본 참여 등)을 발생시키는 자본 유착을 토대로 하는 독점의 존재 양태일 뿐이다.”18
“산업자본을 소유”한 은행자본으로서, “합병의 주체”인 은행자본은 금융자본과 등치되지 않는다. 레닌이 규명한 금융자본이란 이러한 양상을 포함하면서, (산업) 자본 일반의 지배에서 상승한 것으로서의 “금융자본의 지배”라는 경제사적 과정과 일체를 이루고 있다. 자본의 축적 구조에서 은행자본의 고유한 기능이라는 매개가 중요하지 않았던 1897년 이전과 달리, 이제 산업자본은 은행자본을 매개함으로써만 성장할 수 있으며, 그러한 매개를 외면하는 이상 그것은 더이상 자본일 수도 없는 시대임을 레닌은 확고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1890년대 이후의 산업자본과 은행자본 간 관계 양상, 즉 이 관계를 필수 매개함으로써만 자기증식할 수 있는 자본의 발전 경향이 곧 금융자본이다. 레닌은 힐퍼딩의 다음과 같은 글을 인용하면서 금융자본의 보편적 성격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산업자본 중에서, 그것을 운용하는 산업자본가가 소유하지 않은 자본의 비율은 꾸준히 증대하고 있다. 산업자본가는 오직 은행의 매개를 통해서만 자본을 사용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은행은 자본의 소유주를 대표하게 된다. 다른 한편 은행은 자기 자본의 더욱더 많은 부분을 산업에 투하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하여 은행은 점점 더 산업자본가로 전화된다. 이러한 은행자본, 즉 사실상 산업자본으로 전화되는 화폐형태의 자본을 나는 ‘금융자본’이라 부른다. … 금융자본이란 은행이 통제하는 산업자본가가 사용하는 자본을 말한다.”19
레닌은 힐퍼딩의 이러한 정의가 생산과 자본의 집적을 파악하지 못 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동시에 그는 힐퍼딩이 앞의 두 장에서 자본주의적 독점체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레닌은 이를 종합하여 “생산의 집적, 이로부터 생겨나는 독점체, 은행과 산업의 합병 혹은 유착, 이러한 과정이 바로 금융자본의 발생사이며 금융자본이라는 개념의 내용”7이라고 명확히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여기서 합병은 유착과 나란히 나열된다. 금융자본에 대한 레닌의 성격 규정은 금산분리법이 ‘제재’하려는 바와 같은 관계들─“은행자본의 산업자본 소유”, 또는 “대산업자본의 은행자본 소유” 일반을 통해 형성된 특정한 부문으로서의 합병 자본만을 일컫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금융자본이란 자본주의의 일정한 발전 단계 속에서 은행자본에 의해 매개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매개를 통해서만 자기 증식할 수 있는 자본의 은산(銀産)-상호 제약적 융합 운동을 지칭한 것에 불과하다.
개별적인 수준에서 주식 지분율과 분리된 금융자본의 지배는 레닌이 밝혀낸 보편적 연관을 매개하여 국가를 경유하지 않고도 이루어졌으며, 이는 미국이 (속류 경제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앵글로색슨 자본주의”의 성격을 확고히 가지게 된 결정적인 시기인 1930년대 이후21에도 매우 흔한 현상이었다. A. 로체스터(Rochester)에 따르면 “금융 통치자들의 경제적 힘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자본을 통제하는 구조적 메커니즘에 의해 뒷받침”22되고, “이 메커니즘은 은행업과 산업이라는, 명백히 두 가지로 나눠진 부문에서 기능”12하는데, 여기서 관철되는 금융 지배 메커니즘은 각 나라마다 그 특수성으로 인해 다음의 세 단계의 발전 경향을 가진다:24 1. 소수의 핵심 기업과 수많은 소규모 기업의 주식 대부분을 소유한 가문이나 소수 동업 그룹에 의한 통제; 2. 낮은 주식 지분율과 분산을 결합한 통제; 3. 주식 지분율과 분리된 통제. 여기서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는 익히 알려진 방식이다. 예컨대 반독점법의 철퇴를 맞아 해체 수순을 밟은 1911년 직전까지 스탠다드 오일 그룹은 두 번째 유형의 통제 방식을 선호하였다. 수많은 나라에서 금융 지배는 첫 번째 방식으로 전개된다.
반면 “모건 그룹의 산업 통제는 주로 세 번째 유형”12에 속하였다. 당대 모건 그룹의 경제 권력은 “자본주의 발전과 집중의 가장 진보된 단계를”12 보여주었다. 이 그룹의 산업 통제는 주식 지분과 크게 분리되어 있었다. “주주는 기술적으로 기업의 오너이다. 반면 회사채 소유자는 오너가 아니라 채권자일 뿐이다. 주주는 이사를 선출하는 반면 회사채 소유자는 회사 업무에 대한 투표권이 없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대기업과 많은 중소기업에서 주주의 투표 행위는 지명자와 경영진의 정책에 대한 단순한 고무 도장의 기능을 할 뿐이다.”27 한편 “은행가는 채권을 매각하거나 단기 신용을 공급하여 기업에 대출 자본을 공급한다.”28 이때문에 거대 규모의 은행자본은 기업의 경영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주식 지분율의 여부와 무관하게 주주를 통제할 수 있다. “은행이 사업 신용을 제공할 때 회사의 다른 의무, 이윤, 급여, 경쟁 시장에서의 지위 등에 대한 모든 정보를 요구”29하며, “대출된 화폐자본이 상환되지 않는 한 은행은 기업에 대한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12 게다가 “은행가들은 해당 기업을 보이콧하고 파산으로 몰고 가는 데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12
이러한 지배 방식은 두 번째 방식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행해졌다. 1972년 미국에서 모건 신용보증회사는 모빌 오일의 2.9%, 제너럴 일렉트릭의 2.7%, 웨스팅하우스의 5%, 세이프웨이의 3%, 그랜드 유니온의 3.3%, 그 외 29개 기업에서 각각 2%를 소유하고 있었다. 같은 시기 체이스 맨하탄 은행은 모빌 오일의 5.8%, 아틀란틱 리치필드의 4.5%, 포드 자동차의 3.5%, 크라이슬러 자동차의 4%, 제너럴 일렉트릭의 3.6%, 다우 케미칼의 2%, 세이프웨이의 10.5%, 그랜드 유니온의 2%, 그 외 46개 기업의 각각 2%를 소유하고 있었다. 1968년 49개 미국 은행과 268개 대기업체에서 겹치기 이사는 768명에 이르렀다.32 산업 및 금융자본은 주식소유 및 여러 대기업체 이사회에의 직접 참여 그리고 그 핵심적 위치에 인적 관계의 배치 등으로써 서로 결합하였다.33
이는 산업자본에 대한 대은행자본의 강력한 영향력 행사의 일반적 매개로 되어있는데, 그것은 로체스터가 지적한 바 그대로, 산업에 대한 금융 지배의 가장 발전된 형태이다. 이 기조는 1999년 금융서비스현대화법(Gramm-Leach-Bliley Act)의 통과로 더욱 공고화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국내 산업에 대한 강력한 지배력을 유지한 채 성장한 미국의 금융자본은 그 ‘성과’로서 쌓은 잉여자본을 해외 수출함으로써 국제화되었다. 초국적 지배력 행사는 식민주의와 연동되어 그 어떠한 법률적 저지도 받지 않는 것으로 발전해 왔다. 레닌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는다: “한 나라의 거대 금융자본은 정치적으로 독립된 다른 나라의 경쟁자들을 언제든지 매점할 수 있고, 또 끊임없이 그렇게 한다. 경제적으로 이는 완전히 실현 가능하다. … 제국주의에 관한 문헌에서 여러분은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가 사실상 영국의 ‘무역 식민지’이고, 포르투갈이 사실상 영국의 ‘속국’임을 보여주는 지표들을 끊임없이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다. 영국 은행들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고, 영국의 채무를 지고, 철도, 광산, 토지 등이 영국의 수중으로 넘어가는 등으로 해서 영국은 그 나라들의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지 않고서도 경제적으로 그 나라들을 ‘병합’하는 것이 가능하다.”34 역사적으로, 1960년에서 1978년까지 해외지점을 소유한 미국은행의 수는 129개, 미국은행의 해외지점자산은 약 35억 달러에서 3,068억 달러까지 증가하였다. 미국 내 미국은행의 대외자산의 규모는 1973년 약 267억 달러에서 1978년에 1,154억 달러까지 상승하였고, 미국 10대 은행의 전체 수익에서 해외수익의 비중은 1970년 23.0%에서 1978년 45.7%까지 상승하였다.35
1956년 이래 미국의 금산분리 제도에는 오늘날까지 아무런 본질적인 강화도 가해지지 않았다. 즉, 이 시기가 지난 시점인 앞의 여러 사례로써 다시금 우리는 “앵글로색슨 자본주의”가 금융자본의 형성과 발전, 산업자본에 대한 금융 경제 권력의 지배력 행사에 대해 어떠한 제지도 할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금융자본에 대한 레닌의 분석이 유효함을 입증한다.<끝>
2025년 2월 19일
- D. Klein, 『자본주의 정치경제학』, 제2권, 권영경 역, 서울: 세계, 1990, 66.
- V. I. Lenin, 『제국주의론』, 남상일 역, 서울: 백산서당, 1989, 60.
- 위의 책, 71.
- 위의 책, 71-2.
- 위의 책, 73.
- 같은 책
- 같은 책.
- 위의 책, 74.
- 참고: 위의 책, 73.
- E. Varga, Politico-Economic Problems of Capitalism,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68: 146.
- V. Perlo, Super Profits and Crises: Modern U.S. Capitalism, NYC: International Publishers, 1988, 232.
- Loc. cit.
- 『제국주의론』, 1989, 75.
- 위의 책, 76.
- V. I. Lenin, Colleted Works, Vol. 25,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74, 415.
- G. V. Barabashev, “Imperialism and the Crisis of Bourgeois Municipal Self-Government”, Soviet Law and Government, 10 (3), 1971: 211.
- 生川榮治 편, 『현대 금융자본론』, 선경식 역, 서울: 동녘, 1982, 68-9.
- 『자본주의 정치경제학』, 제2권, 1990, 72.
- R. Hilferding, Finance Capital, Moscow, 1912, 338-9.; 『제국주의론』, 1989, 77.
- 같은 책.
- 1933년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l Act)의 제정을 기준.
- A. Rochester, Rulers of America: A Study of Finance Capital, NYC: International Publishers, 1936, 104.
- Loc. cit.
- Ibid., 105.
- Loc. cit.
- Loc. cit.
- Ibid., 106.
- Ibid., 106-7
- Ibid., 107.
- Loc. cit.
- Loc. cit.
- M. Mintz & J. Cohen, Power, Inc. Public and Private Rulers and How To Make Them Accountable, NYC: Viking Adult, 1976, 234-5.
- S. N. Nadel, 『계급론』, 김병호 역, 서울: 녹두, 1986, 36.
- V. I. Lenin, 『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양효식 역, 파주: 아고라, 2018, 172-3.
- U.S. Senate, International Debt, the Banks, and U.S. Foreign Policy, 1977.; Federal Reserve Board, Federal Reserve Bulletin,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