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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 ①

 

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 ①

 

 

0.

 

세상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의 혁명론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세상이 바뀔까? 아마도 혁명론을 이해할 이들은 세상 사람들의 극히 일부분일테고 받아들일 사람들은 더 적겠지. 꼭 마르크주의의 혁명론이 아니더라도 사회가 어찌어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든 이론과 사상은 다 마찬가지 운명일 것이다. 레닌의 깃발 아래 죽음도 불사하며 러시아 혁명을 수행했던 볼셰비키들이 죄다 레닌의 사상을 이해하진 못했을 것이다. 이론과 사상이라는 것도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 씌여 있는 이론이나 사상, 혹은 누군가가 또 다른 이에게 가르쳐주는 이론이나 사상이 아니라, 실제로는 생각하는 방식,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이익과 손해를 판단하는 사고의 흐름이 사람들의 행동을 좌우한다.

 

 

이런 얘기를 꺼낸 이유는,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이'세상은 이런 게 문제이니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타당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그(들)을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이 얘기는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차별에 대항해 싸운다는 운동권 안에서 벌어진 수많은 차별의 사건들을 기억할 수 있다. 운동권을 의심해 봐야 할 존재라는 게 확실해진다. 차별을 부수어 버리자고 주장하는 운동권들 내부에 차별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운동권을 부정하거나 우습게 보거나 위선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도 별루다. 어떤 존재건 완전하지 않고 역동적이기 때문에, 그 존재의 가치는 변화의 가능성으로 판단하는 게 더 확실하다.

 

앞대가리가 길기는 한데 진짜 하고픈 얘기는, 돌팔매질 당하더라도, 운동권은 스스로 변화의 가능성을 묻어버릴 무덤을 파고 있다는 얘기.

 

 

1.

 

요즘 너무나 아타까운 사건은 전교조의 연가투쟁이다.

 

그대는 전교조의 연가투쟁을 지지하는가? 그대가 운동하는 사람, 활동가, 진보적인 사고 방식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지지하는가? 혹은 전교조 조합원이거나 교사이기 때문에 지지하는가?

 

전교조는 덫에 걸렸다. 교육부와 보수적 교육계가 깔아놓은 덫에 걸렸다. 전교조는 한국 사회의 '교육계 권력'의 담지자임을 천명하였다. 교장이나 교감, 장학관이나 장학사, 교육관료는 쏙 빠지고 전교조만 독박 썼다.

 

 

전교조가 교원평가를 적극 반대하는 이유는 이 바닥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교육부는 전교조를 사냥하기 위해 교원평가를 시행하려고 한다. 이건 진실이다.

 

지금의 학교 운영 수준으로 보아서는 학생과 학부모가 교원 평가에 참여하기란 대단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학부모가 그렇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진학 상담받을 때나 만나게 되는 교사를 평가한다는 건 우습기도 하다. 이처럼 형식적인 교육부의 교원평가 방식은 확실히 교사 간 줄세우기를 통한 통제의 시도이다. 일본의 경우, 교원평가 실시 후 교원노조가 약해졌다는 얘기도 있다. 아마도 교육부의 교원평가 실시는 전교조의 조직력 하락에 기여할 게 뻔하다.

 

 

전교조는 요즘처럼 강고한 '교원평가 반대' 말고는 방법이 없었을까? 분명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허나 다른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심각한 건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 없었던 그들의 사고방식에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전교조는 교사에 대한 평가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평가를 하는 사람이지 평가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사회적 활동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공익을 위한 활동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교사의 활동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교사는 언제나 감시와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교사들을 감시하고 평가해야 하는가? 이제까지는 분명 교장-교감이라는 권위적이고 파쇼적인 위계가 교사를 감시하고 평가해 왔다. 전교조는 이에 대항한 싸움에 앞장섰고 성과도 얻었다. 모든 학교를 해방시키지는 못했지만 학교 민주화에 기여한 바가 있다. 그러나, 권위적 위계에 의한 감시와 통제가 문제라고 해서 권위적 위계에 의한 평가를 수평적, 연대의 관계에 의한 평가로 바뀌는 것을 막아서는 안된다.

 

전교조가 밟아버린 덫이 바로 이것이다. 교육부의 새 교원평가안의 속은 권위적 위계에 의한 평가이지만 겉은 수평적, 연대의 관계에 의한 평가이다. 실상이 이렇다면 전교조는 처음부터 제대로 된 교원평가를 수행하자고 했어야 했다. 그런데 제대로 된 교원평가라 함은 실로 어려워서 상당한 교육개혁 과제를 수행해야 함께 달성할 수 있다. 단기적 대안으로 삼기는 뻘쭘해도 이왕 교원평가 얘기 나온 김에 교육개혁 과제를 주장할 수 있었다. 모양새는 교육부와의 '딜'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교원평가 방식은 합의해서 추진하고, 교원평가 수용할 테니 니들은 이거 받아라' 따위.

 

 

전교조는 점점 더 대중들로부터 외면받게 될 것이다. '교사는 일찍 퇴근하지 방학 있지 노후 보장되지, 얼마나 좋아'라는 꽤나 진실과 괴리된 오해 때문에 생기는 세간의 시기는 전교조로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졸업과 수행평가가 아쉬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는, 교사가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이익을 따내야 하는 대상이 되어버린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교사가 교육 현장에서 고통받는 만큼 학생과 학부모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하는 진심을 전달할 수는 있다.

 

아마도, 교사가 되기 위해 달달 외워야 했을 '교사는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진심이 대중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전교조는 여전히 '교육계'라는 이데올로기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계속 이어서 써야징. 좀만 길어지니 힘들어서 못 쓰겠당...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