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지저분한 일기

6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1/09/20
    공연 중인 비극(3)
    말걸기
  2. 2009/12/18
    노회찬, 꽤나 무지하다(10)
    말걸기
  3. 2008/04/10
    총선결과평(6)
    말걸기
  4. 2008/02/04
    지난날들(20)
    말걸기
  5. 2008/02/03
    역사적인 날(6)
    말걸기
  6. 2008/02/01
    무한 궤도(3)
    말걸기
  7. 2008/01/21
    샴 쌍동이 분리 수술(13)
    말걸기
  8. 2008/01/12
    심상정 비대위는...(4)
    말걸기
  9. 2007/11/16
    대선 특별 당비(19)
    말걸기
  10. 2007/10/24
    망하려면 멀었다(5)
    말걸기

공연 중인 비극

 

역사는 훗날 이 시절을 어떻게 평가할까? 지난 20년 넘게 '비판적 지지'라 불렸던 부르조아에게 투항하는 노선이 수없이 많은 변종을 만들어냈음에도 역사는 이를 평가하지 않았다. 30년 세월도 평가하기엔 불가능한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마땅한 평가가 좌절된 이 시절 동안 좌파들은 그들의 이념을 실험할 능력을 키우지 못했다. 더 정확히는 그들의 이념을 실험할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다. 이 또한 역사는 평가하지 않았다.

 

2011년 진보신당이 겪는 사건은 2008년 민주노동당과의 분당보다 더 큰 갈등과 상처를 낳고 있다. 이 지각 변동은 단층 몇 개를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커다란 덩어리의 땅을 지하로 묻어버릴 것만 같다. 온갖 폐기물로 뒤덮인 오염된 땅덩이라면 몇 개라도 마그마 속으로 녹아버리면 좋으련만, 주저 앉을 땅은 푸른 새싹들이 가득한 산과 들일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사건은 왜 시작되었을까?

 

소수에게 부와 권력을 집중하는 것이 정당한 체제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부르조아의 편이다. 지금은 왕과 귀족의 시대가 아니니 당연히 부르조아의 편일 수밖에 없다. 주사파는 이념적으로 부르조아의 편이다. 그들의 조직은 부와 권력을 소수만이 제어한다. 거대 자본의 세련된(!) 수법은 아니더라도 그들은 그렇게 한다. 그들이 노조에서 노동권을 외치고 빈민촌에서 평등을 외칠 때도 그들은 그렇게 했다. 주체사상은 부와 권력의 독식을 합리화하는 이념이니 그들이 이 이념에 따른다면 당연히 현실에서도 저열한 부르조아의 수법을 행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말 이것이 그들의 이념에서만 나온 것일까?

 

한국에서는 어떤 실체를 가지고 있을지 궁금했던 좌익소아병자들이 진보신당에 만연하다. 그들도 과연 부와 권력이 소수에게 독점되어야 한다는 이념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 중 일부는 확실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좌익소아병자들은 그런 이념을 책과 문서로 배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권력 독식에 온 정열을 바칠까?

 

우리가 알고 있는 이념과는 다른 층위의 실천 지침이 있는 것 같다. 사실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파악이 안 된다. 아마도 인간 본연의 권력을 향한 의지인지 모르겠다. 남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달콤하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환희인지 알 수 없다. 부르조아는 이 환희를 언제나 환영한다. 권력은 수백년 전부터 그들의 것이니까. 하지만 좌파의 사고는 이와 긴장감을 지녀야 한다. 잡았던 권력조차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좌익소아병자들은 그들의 머릿속 지향과 권력욕 사이에서 정체성을 상실해 무능한 천덕꾸러기들이 되었는지 모른다.

 

주사파는 상처에 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념적 갈등이 없기 때문이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있는 일이 다르지 않다. 좌익소아병자들은 상처에 약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미 심리적 상처로 정신분열에 어울리는 이념분열을 앓고 있다.

 

현실을 장악한 이데올로기와 지향하는 이념이 갈등하는 가운데,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언제나 성찰해야 하는 좌파들에게는 힘든 시절이다. 그들에게 과연 행복한 날이 올까도 의심스럽다. 이들이 불행한 건 역사가 불행해서이다. 이들이 더 큰 상처를 받지 않길 바란다. 당장이야 이런 노선에 서 있고, 저런 노선에 서 있어도 그들의 머릿속에 뿌연 밑그림으로 남아 있는 실험 설계도는 가치 있는 것이다. 상처가 더 깊어지면 아직은 어설픈 그 그림도 지워버릴 것이다.

 

슬픈 좌파 옆에는 이상한 종교 집단도 아니고 정신나간 사람들도 아닌, 이 사회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권력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강력한 패거리가 그들을 위협하기 위해 또 다시 결집하고 있다. 저 건너편이 아닌 바로 옆자리에서.

 

 

권력의 법칙 앞에서 평등은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이념이었을지 모른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든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든.

 

노회찬, 꽤나 무지하다

 

프레시안에 기사가 하나 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16171925

야당들 모여서 학교 무상 급식 예산을 삭감한 정부 따위들을 비판하고 있다.

뭐, 좋은 일이다.

 

그런데...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최근 '학교는 무료 급식소가 아니다'라는 발언을 했다"며 "김 도지사는 학교 무상 급식을 노숙자 음식 제공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노 대표는 "그에게 교육의 일환으로 급식이 제공돼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고, 그저 불쌍한 사람들에게 밥 한 그릇 나눠주는 개념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김문수가 학교 무상급식에 돈 안 쓰고 딴 데 쓰려고 학교 급식을 '무료 급식소'에 빗대었다고 노회찬이 까고 있는데, 노회찬도 '노숙자 음식제공'이 그저 '불쌍한 사람들에게 밥 한 그릇 나눠주는 개념'으로만 생각하고 있네. 어쨌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게 집없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보다 '더 우월한 가치'가 있다는 '개념'을 탑재한 노회찬이 진.보.신당의 대표란다.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꼬? 아니, 어찌 이런 생각을 가진 자가 진보진영의 촉망받는 대표자 중 하나가 되었을꼬? 혹시 모르지. 프레시안 기자가 노회찬을 음해하려고 거짓 정보를 흘리고 있는지도...

 

 

총선결과평

 

심상정, 노회찬 다 떨어졌다. 심상정은 교육특구 사기공약과 문소리, 이범을 앞세워서 선전했다. 노회찬은 '쌈박한 상품' 없이 부자와의 대결 구호로 끝까지 가다가 꺾였다. 이 둘은 투표율 저조로 낙선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어쩌기 쉽지는 않지만 투표율 저조도 한편으로는 정치활동의 결과이긴 하다. 그래도 노원은 서울에서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긴 했다.

 

권영길과 강기갑이 당선되었다. 권영길은 약한 상대를 만나서 당선된 건지 아니면 다른 게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유권자들이 민주노동당의 대선패배의 주요 책임자 중 하나인 권영길을 심판할 리가 없다. 강기갑은 이명박이 살렸다. 하지만 강기갑이 친박연대의 지지로 유권자들의 지지까지 얻을 수 있었던 건 4년의 의정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덕이 크다.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 후보들의 득표율은 2004년 총선과는 다른 양상이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들은 특별한 몇 개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비슷한 득표율을 얻었다. 2008년 총선에서는 지역적 특색을 바탕으로 '활동한 만큼' 얻었다. 이건 진보정당의 후보들도 이제는 확실히 '정치인'으로 등록된 것이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지역구 대결에서는 대부분 진보신당이 이겼다. 진보신당의 수도권 스타 둘이 당선되었다면 민주노동당의 경남 스타 둘의 당선보다 파괴력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남는 건 결과이니 진보신당이 지역구에서는 민주노동당에게 패배했다.

 

진보신당은 정당득표에서 2.94%로 민주노동당의 절반 정도를 얻었다. 속 뒤집어질 득표율이다. 진보신당은 서울에서만 민주노동당보다 많은 정당득표를 했다.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정당득표의 격차는 크다. 결과는 진보신당 0석, 민주노동당은 3석이다. 정당비례선거에서도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에 패했다.

 

진보정당은 서울과 경기 일부에서만 민주노동당보다 '강세'이다. 아주 약간.

 

 

2004년에는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었지만 2008년에는 5석이다. 여기서 분화한 진보신당은 0석이다. '진보의 퇴조'는 명백한 결과이다.

 

 

민주노동당은 강기갑이라는 진정 새로운 스타를 배출했지만 앞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성장하지 못한다고 해서 망해 가지도 않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이제 이익단체인 민주노총과 전농 등의 국회 대변자로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자기들만의 이해관계로 뭉친 전국 조직인 민주노총과 전농 등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퇴조는 있을 수 없다. NL과 국민파가 결별한다면 모를까.

 

어쨌든 17대 국회 시절 민주노동당 내에서 있었던, 전체 인민의 이해와 이익단체들의 이해 사이에서 벌어진 긴장은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보수연대에 대항하기 위해 민주당과 창조한국당과의 공조에 힘을 쏟을 것이다.

 

 

진보신당은 5석으로 텃세부리는 민주노동당에게서 끝없는 탄압을 받을 것이다. 중앙정치에서 각 정당과 언론에게서 무시당하는 게 다반사인 데다가, 지역과 노동현장에서 민주노동당의 직접적 방해 공작, 음해에 시달릴 것이다. 이건 '반역자들'에게 가해지는 형벌이다.

 

소위 시민사회 진영도 민주노동당을 활용해야 하는 입장에서 진보신당과의 관계 트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 보수의 귀환' 시대에 '통큰 단결'은 무엇보다 중시될 것이다.

 

 

진보신당은 '얼어죽는 것'이 무엇인지 점차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얼어죽지 않는 방법까지 깨우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진보신당은 '새로운 진보의 가치'를 외쳤지만 내세운 건 없다. 사실,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겠다는 약속으로 이번 총선을 치를 수 없었던 사정이 있다. 2개월만에 창당과 총선을 모두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알리바이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의 미래는 어둡다.

 

심상정과 노회찬만이 부각된 선거였고 그들의 주장, 그들의 선거 전술 중에는 '새로운 진보의 가치'이어야 할 것들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보신당은 추구해야 할 정치철학과 현실정치의 긴장을 조정할 수 있는 역량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심상정과 노회찬이라는 스타 중심의 권력 구조가 한층 더 발전의 장애로 작용할 것이다.

 

 

지난날들

 

말걸기[역사적인 날]에 관련된 글.

 

 

기분이 별로다. 10년 쯤 공들인 정당이 쪼개졌다. 이런 일은 피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될 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언짢다. 사람의 감정이란...

 

 

1.

 

96년 가을에 군대 제대 후 다시 학교로 돌아와 보니 기존 정파들과는 다른 학생운동을 하고자 했던 소수의 무리들이 있었다. 이들과 함께 잡지도 내고 이러저러한 활동도 했었다.

 

이들은 97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 선거운동을 했다. 92년 대선 때는 경찰들 때문에 선거운동하기 힘들었지 교내에서의 선거운동 분위기는 좋았다. 반면 97년 대선에서 우파는 김대중 지지해야 한다고 하고 좌파는 후보전술도 없으면서 권영길은 민중후보가 아니라고 우겨서 힘들었다.

 

하루 죙일 힘들게 대형 플랭카드를 여러 개 만들어서 학교를 도배했더니 한 순간 바람에 다 찢겼던 일도 있었다. 신촌로터리에서 선거운동 하려고 상가를 돌아다니며 앰프에 사용할 전기를 끌어오려했더니 상가 주인들은 '우리는 이회창 지지한다. 못 준다' 해서 무안 당하며 신촌 한 바퀴 돈 적도 있었다. 결국 길가의 작은 구두닦이 아저씨가 전기를 빌려주셨다.

 

이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교내 좌우 정파들의 다굴에도 꿋꿋하게 권영길 선거 운동했다. 지난 대선 후보 경선에서 주사파-국민파 아니면서 권영길 지지한 사람들은 좌파들한테 욕먹는 걸 무지 싫어했는데 97년에 양쪽에서 다굴당하면서 선거운동 해 봤는지 모르겠다.

 

97년 대선에서 가장 쇼킹한 사건은 '일어나라, 코리아!' 사건이었다. 선거 운동 기간 중 어느 날 집을 나오는데 동네마다 '일어나라, 코리아!'가 걸려 있었다. 숨 넘어가 뒈지는 줄 알았다. 권영길 선거운동을 함께했던 그들은 학교에 모여 이 말도 안되는 구호에 항의를 하기로 했다. 결국 하룬가 이틀만에 투쟁적인 구호로 바뀌었다. 전국에서 난리쳤으니까. '일어나라, 코리아!' 사건은 간첩 최기영이 깊이 관련된 사건이었다.

 

 

2.

 

98년에 말걸기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어 정치활동을 열심히 하지는 못했다. 그 해를 거치면서, 학교에서 함께 권영길 후보 선거운동을 했던 이들은 국민승리 21을 통해 진보정당 지역 조직 건설을 주도했다. 말걸기는 이들과 함께 국승 21 회원이 되었고 진보정당 창당 발기인이 되었다. 이들이 민주노동당 서대문/마포/은평 지부 건설을 주도했다.

 

1999년 여름 63빌딩에서 열린 창당발기인대회는 역동적이었는데 그 긴장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말걸기는 '사회노동당'이라는 당명을 지지했는데 결국 결선에 오르지 못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기립 투표를 했었는데 당명 제정을 위해 네 번 씩인가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창당 과정에 함께 한 말걸기는 그후 지역조직에서 그 많은 당직 중 대의원이나 회계감사 따위의 당직을 수행했다. 나름의 인생 계획을 포기하고 2000년 6월 지자체 재보궐 선거를 지역에서 치른 후에 민주노동당 중앙당에서 일하게 되었다.

 

민주노동당은 웃기는 조직이었다. 사실 운동권 조직이라는 게 그런 조직이었다. 책임과 권한은 분명하지 않았고 개인의 정치력과 끈에 따라 그가 추진하는 사업의 위상이 달라졌다. 내부의 꼬라지가 이런 것이었다면, 2002년 지방선거 전까지는 민주노동당 명함 가지고 밖에 나가면 천대받기 일쑤였다.

 

 

3.

 

그래도 2002년 지방선거와 대선은 참으로 재미 있는 선거였다.

 

말걸기는 2002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 선거사무실로 파견되었다. 이문옥 서울시장 후보 선거와 심재옥 의원을 당선시킨 광역비례의원 선거를 도왔다. 개봉동에서 보문동까지 출퇴근하는 건 참으로 지치는 일이었다. 그래도 때 되면 나오는 맛나는 밥을 먹으며 한 가지 한 가지 일을 해내는 건 보람찼다. 당시 사무총장이자 서울시지부장이었던 노회찬은 서울시 선거를 별로 챙기지 않아서 서거 사무실 분위기가 험악해진 일이 몇 번 있었지만 말이다.

 

이 당시 가장 기억나는 건 두 가지이다. 홍보담당자를 도와 공보물 운송 상황실 역할을 했었던 일이다. 인쇄소에서 출발한 공보물이 각 지역조직에 제대로 전달되어 선관위에 제시간에 제출이 되었는지 일일이 확인했었다.

 

또 하나는 선거차량이 돌아다니면 틀어대는 선거 방송 녹음이었다. 인맥으로 목소리 좋은 사람을 하나 섭외했는데 목감기가 걸려버린 것이었다. 파란꼬리가 긴급 출동해서 선거 방송 녹음을 했다. 파란꼬리는 그 후 몇 차례 공직선거에서 비전문 성우로서 민주노동당에서 사용한 차량용 선거 방송 녹음을 했다.

 

2002년 전반기에 노회찬은 말걸기가 일하던 부서에서 내버려지도록 방관했는데 이재영이 줏어갔다. 그래서 지방선거 후부터 정책위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해 대선 준비는 힘들었다. 여름부터 각자 맡은 분야의 정책/공약을 만들어내야 했다. 당과 친한 단체와 인맥을 바탕으로 정책/공약은 '조직'되었다. 해당 전문가들이 기초 자료를 제공해 주었고 초안을 작성해 준 경우도 많았다. 물론, 당의 핵심 공약들은 당 정책위 멤버들이 직접 관리해서 만들어냈다.

 

이런 작업도 힘들었지만 가을부터 날라오는 질문지는 책상에 쌓였다. 온갖 이익단체들의 질문을 가장한 뻔뻔스런 요구들이 가증스러웠다. 그때 종교계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힘든 일은 TV 토론회 준비였다. 방송국이 하루 이틀 전에 콘티를 확정해서 주기 때문에 이걸 바탕으로 질문-답변 자료를 만들고, 심지어는 후보 교육까지 하려면 세빠진다. 그러다가 11월 말 쯤 되니 국가가 주관하는 TV 토론회 준비 말고는 별로 할 일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TV 토론회 이틀전부터를 제외하고는 아침에 출근해서 밤에 퇴근할 때까지 자다가 오락하다 밥 먹다 수다 떨다 하며 놀았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는 팀플레이로, 스타크래프트는 혼자서 대놓고 했는데 당사를 들락거리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책위는 이 엄중한 시기에 논다'고 손가락질 해댔다. 그것들은 여름부터 밤 세워가며 일한 적 없는데 선거운동 기간에만 바쁜 것들이었다. 일도 안한 것들이 꼭 그런식으로 남 욕한다.

 

 

4.

 

2002년 대선 개표하는 날 득표가 많지 않아 기분이 좀 상했다. 그러다가 표 계산을 다시해 보니 노무현도 이회창도 과반을 넘지 못했고 각각 득표수에다 권영길 표를 더하니 50%가 넘었다. 그때 '캐스팅 보트'를 쥐었구나'라며 소수파에게는 이런 '포지셔닝'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이날 개표 방송을 하는 TV 앞에서 많은 당 지도부들이 노무현 당선에 박수치면 환호하는 걸 보았다. 심상정도 밝게 웃으며 박수를 쳤는데 왜들 그러는지 의아했다.

 

 

5.

 

어쨌거나 2002년 지방선거 정당특표가 8.13%를 달성하면서 한국 사회가 놀랐다. 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밖의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이들의 태도는 2004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공손해졌다. 심지어 2003년에 말걸기는 문화연대(사실 문화연대의 힘이 컸다)와 함께 문광부가 발의하고자 했던 법안도 기초부터 고쳐버렸다.

 

이런 변화는 희망적이었다. 하지만 희망만큼이나 불안이 엄습해왔다. 민주노동당의 외적 성장은 놀라왔고 그래서 당 밖의 주사파와 민주노총 제 정파들이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커가는 정당을 두고 정치집단들이 눈독들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다만, 민주노동당은 다양한 이해를 가진 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지낼 수 있는 기본적인 룰을 갖추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어떤 정파들도 권력의 상대적 우위를 추구했지 감시, 투명성, 민주적 절차는 부차적으로 다루었다.

 

2004년 의회진출을 이루던 날 10명의 국회의원들이 사고칠 것 생각하면서 아득해 했다. 이들은 성과이자 재난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 그런 불안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일들은 터졌다.

 

2004년 국회의원 당선으로 돈이 생긴 민주노동당은 많은 정책 전문 인력을 선발했다. 이는 2003년부터 정책위에서 준비한 기획의 결과였다. 정책위의 각 구성원은 확대된 당 기구로 분산되었다. 그래서 말걸기가 45명이나 되는 정책연구원들 따깔이 역할을 그 해 여름까지 했다. 진짜 자기 똥도 못 닦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문제는 새 지도부가 똥 닦을 휴지도 안 주었다는 점이다. 치사하게스리. 어쨌거나, 이 인간들 중에는 낙하산과 잘못 집어온 쓰레기도 있었지만, 대체로 자기 분야에서는 훌륭한 능력을 지닌 인재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말걸기 따위처럼 당내 국회권력에 대항하기도 했다. 정책위의 적지 않은 구성원들이 당 소속의 국회의원들과 맞짱 뜨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이걸 두고 좌우 제 정파 모두 '정책위라는 정파'의 자기 권력 확대를 위한 행동들로 낙인 찍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 정파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을 보위하기 위해서였다. 이게 민주노동당이 망한 진짜 이유 중에 하나이다. '종북주의'는 원인이 아니라 이 따위 것들의 결과일 뿐이다.

 

 

6.

 

2006년 초 민주노동당 지도부 선거에서 말걸기는 김정진 후보 선거 운동을 했다. 후보까지 3.5명 전국 선거를 치렀다. 그나마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 선거를 했다.  재밌기는 했는데 좀 힘들었다. 8%의 득표로 낙방했다. 서울에서 김기수 전 최고를 이겼다는 것 하나는 기뻤다.

 

이 선거를 마지막으로 당직을 버렸다. 정책위 의장으로 이용대 당선이 확실했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말걸기는 숙청당하기 전에 사직했다. 이용대는 정책연구원이 아닌 정책위 멤버를 모두 숙청했다.

 

두 번째 주사파-국민파 동맹 지도부는 하는 짓이 벌써부터 이상해서 퇴직금을 받아내기로 마음 먹었다. 이미 사직한 9명을 꼬셔서 퇴직금을 받아내기로 했다. 그러던 중 고발까지 가야할 지도 모른다는 말에 두 명이 빠졌다. 말걸기가 8명치 퇴직금을 받아내는 일을 주도했다. 수 개월 만에 전부 받아냈는데 고발장 접수 시한 1분 전에 통장에 입금되었다.

 

나중에 말걸기와 함께 퇴직금을 받은 이재기가 의정지원단장으로 발령을 받자 주사파들이 돈 없는 당에서 퇴직금까지 받아낸 놈이 당직을 수행해서는 안된다고 지랄을 했다. 그때 주모자가 말걸기라고 해주지 않아 기분 나빴다.

 

 

7.

 

2006년 당직이 없던 말걸기는 가을에 지역위원회 좌파테이블에서 이런 저런 일을 했다. 사실 '논의'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다가 2007년 지역위원회 선거에서 좌파블럭 공동선본 선거본부장 역할을 해서 지역위원장, 부위원장 등을 당선시키는 데에 일조했다. 당시 지역위원회 구도는 참 우스웠는데 좌파는 지역위원장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이상하게도 협상의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

 

일산으로 이사를 하려고 했던 말걸기와 파란꼬리에게 그 선거는 진보정당운동을 시작한 지역을 떠나기 전 마지막 정치활동이 되었다.

 

 

8.

 

2007년 봄에는 잠시 레디앙에서 민주노동당 출입기자로 있었다. 주로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심상정을 취재했었다. 심상정 선본이 말걸기에게 어처구니 없는 짓을 여러 번 해서 심상정에 대한 감정이 더 안 좋아졌다. 제일 짜증나는 건 말걸기가 정책위 출신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노회찬을 지지한다고 미리 정해놓고 상대하는 점이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대선 후보로 권영길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당원인 출입기자더러 심상정은 지지하지 말라는 심상정 선본의 메시지로 알고 안티-심상정이 되었다.

 

2007년 여름 일산으로 이사한 말걸기는 한 번도 고양시위원회 행사에 나간 적이 없었다. 새로운 정치적 관계를 만드는 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9.

 

2007년 대선 전부터 분당 얘기가 돌았다. 분당의 이유가 별로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대세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고 실제로 진행이 되면 적절한 수준에서 힘을 실어주기로 맘을 먹었다.

 

그러나 막상 대선 후 '종북주의'와 '패권주의'가 대두되자 실로 짜증이 났다. 그러던 중 권영길은 지역구 재선을 위해서 대선 후보가 되었다는 걸 스스로 고백했고 심상정이 지명한 비대위원들을 보고서는 적당한 때 탈당하기로 맘을 먹었다.

 

어느 날 이재영이 전화해서 집단 탈당하자고 했고 1월 21일부로 함께 탈당을 했다. 집단탈당하자고 꼬셨던 인간들 모두 말걸기에게 탈당 후 뭐 어떻게 하자는 얘기를 한 마디도 안 했다. 뭐냐, 이거. 신당 하자는 거야 그냥 해산하자는 거야 뭐야. 혼자 궁금해 하고 있다가 얼마 전에 조현연에게 전화했더니 그제사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대충 분위기 파악했다.

 

 

10.

 

민주노동당은 말걸기에게 많은 상처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아주 값진 선물도 주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다. 민주노동당 지역 활동과 중앙당직 수행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말걸기는 이 만남에서 '신뢰'를 경험했다. 정치적인 신뢰이자 인간적 신뢰였다. 또한 이들과의 만남에서 입장차를 조정하는 방법과 협력을 경험했다. 실로 값진 날들이었다.

 

블로그에서 만날 수 있는 della, 다섯병, 행인, 간장공장, Tori, Neo 등 정보운동가들, 그리고 문화운동과 교육운동에 헌신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당내의 훌륭한 정치활동가들도 많다. 이들은 활동의 무게에 따라 가까와지거나 멀어지곤 하지만 그래도 쉽게 신뢰가 침식되지는 않을 것이다.

 

 

11.

 

2008년 2월 3일, 민주노동당은 말걸기가 청춘을 바친 것 치고는 초라한 결말을 맞이했다. 지난 10년이 넘는 세월 말걸기와 진보정당의 길을 함께 걸어온 동지 파란꼬리도 2월 4일로 민주노동당과 완전히 인연을 끊기로 했다. 파란꼬리는 말걸기의 청춘을 진정 슬퍼해 주었다. 감사한다.

 

 

12.

 

지난날을 돌아보니 말걸기는 여전히 진보정치활동을 하고 싶어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조만간 신당파 쪽에서 연락이 올 것이다. 그들의 요구와 말걸기의 지향이 일치하는 지부터 확인해 봐야겠다. 물론 말걸기는 올해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신당쪽 일을 해도 조금만 하게 될 것이다. 아예 하지도 말까 싶기도 하다. 어차피 이 신당도 10년 내에 내홍을 겪을 테니까. 스탈린주의자들과 신좌파 사이에서.

 

 

역사적인 날

 

2008년 2월 3일은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다. '샴 쌍동이 분리 수술'을 하기로 확정할 테니까.

 

 

 

지난 주초에 주사파-국민파 동맹은 당대회에 참석하는 자파 대의원들에게 지침을 하달했다. 이들은 "새로운 진보정당운동 조직에 대한 해체촉구 결의"를 안건으로 제출하는 등의 액션을 보였고 이와 함께 민주노총, 전농 등도 공개적으로 비대위의 혁신안을 비난했다.

 

그러다가 분위기가 반전되었는데 금요일에 심상정 비대위가 최종 안건을 공지한 후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것은 심상정/노회찬-주사파/국민파 간의 모종의 협상이 타결된 증거라는 얘기가 '나름의 근거'를 갖고 돌고 있었다. 그래서 2월 3일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비대위 혁신안이 통과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었다.

 

그런데 D-1일인 2일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니 주사파들(다함께 포함)이 당대회 안건들을 조직하고 있었다. 사실상 비대위 혁신안에 대한 부정을 뜻한다. 반전의 반전을 보여준 지난 1주일이었다.

 

1999년 여름 63빌딩. 민주노동당이란 당명이 제정된 창당발기인대회보다 더 다이니막한 순간이 2월 3일 당대회에서 벌어질 것이다. 참으로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다.

 

 

 

말걸기는,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은 최기영, 이정훈은 징계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데 이는 주사파의 주사파다운 행위에 대한 단죄를 처음으로 제기하고 있어 의미가 있다는 행인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은 그 자체로 '사기'에 가깝기도 하다.

 

27일 공개본이건 2월 1일 최종본이건 간에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에 대한 말걸기의 비난의 핵심은 이것이다. '종북주의'와 '패권주의'가 성장할 수밖에 없는 진보진영의 본래적 특성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두 안건지의 차이에 주목하는 사람들을 보면 상당히 안타깝다. 이들은 두 본 사이에서 미세한 차이가 난 이유가 심상정과 주사파의 '협잡' 때문이라고 보고 그래서 무척이나 실망하는 듯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심상정과 노회찬이 민주노동당이 깨지는 게 싫다면, 혹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주사파랑 긴장 속 협력을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정치란 원래 그런거야'라고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다. 공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합의도 없이 어떻게 공존을 하는가? 혁신안이 누더기가 되건 말건 양쪽이 어느 정도 주고 받는 수준으로 당대회에서 통과되어야 양쪽은 공존할 수 있다.

 

심상정과 노회찬은 다음 총선까지는 민주노동당 이름 파는 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 그들은 이미 '기성 정치인'이기 때문에 사실 진보정당과의 관계도 정치적으로 계산하면 되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이해 관계는 더 이상 '이념'에서 나오지 않는다.

 

현재 둘 사이의 차이는 있다. 심상정은 '비대위 혁신안 부결은 곧 비대위 불신임'이라고 발언함으로써 당이 깨질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반면 노회찬은 열심히 주사파와 공존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당이 쪼개져도 당분간은 주사파와 동거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심상정 비대위가 운동권들의 진짜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이유는 혁신안으로 포지션 잡는 게 중요했지 진짜 혁신이 중요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심과 노의 이해관계는 민주노동당 내 혁신파들과 다르다(그래서 심빠들과 노빠들을 혁신파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정파로 따지자면, 민주노동당 탄생의 가장 큰 공로자들, 민주노총과의 관계가 가장 유연했던 이들, 민주노동당에서 주사파와 가장 비타협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이들인 옛 진정추 일파들이 혁신파의 큰 기둥이라는 건 아이러니로 보인다. 자기들이 만든 당이 주사파에게 넘어가는 꼴을 견딜 수 없기도 할 터이고, 당을 만들고 성장시킨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도 가장 잘 알고 있어 민주노동당 혁신에 주목한다면 이해가 가긴 한다.

 

이들은 아직 민주노동당의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좌파라면, 같은 당을 하건 다른 당을 하건 주사파와는 '진보진영'을 두고 계속 싸울 수밖에 없다. 혁신파들은, 민주노동당에서 노력했어야 하는 걸 하지 않았는데 밖에 나갔다고 잘 하겠냐고 신당파를 비판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이들의 비판은 옳다.

 

다만, 샴 쌍동이마냥 몸이 붙어서는 서로에게 주먹질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외면하고 있다. 혹은 주사파는 한국 현실에서 진보진영에게는 '관리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들과의 대등한 공존의 룰을 찾고 있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한편 신당파들이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을 메인 타이틀로 삼아버려서 그들도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 만큼이나 '사기'에 가까운 짓을 하고 있다. 물론 그들은 민주노동당에서 주사파-국민파 때문에 막혀버린 일들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실상 '종북주의'에 목메고 있다는 건, 처음 당대회 안건이 공지되었을 때에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가 최종 안건이 공개되자 격렬하게 비난하는 오바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비전'을 이야기한다. 지금 진보정당의 비전 제시는 민주노동당의 오류를 낱낱이 파헤침으로써만 가능하다. 왜냐면 21세기 진보정당의 현신은 사실 상 민주노동당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 정당의 잘잘못에서 비전의 단초를 찾아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패권주의는 주사파가 만든 게 아니고 운동권 자신이 만든 것이다. 운동권은 줄곧 '감시 받지 않는 권력'을 추구했다. 운동권 내 권력 감시 요구는 권력을 차지한 좌파도 깔아뭉갰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민주노동당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국회의원 10명 만든 것이다. 그들은 당내에서 감시 받지 않았다. 2004년 의회 진출 후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하락한 것은, 이들이 민주노동당이 받는 기대 대로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은 이들을 통제할 의사가 없었다. 왜? 각 정파의 대가리거나 끄나풀인 이들 하나가 다치면 정파 간 공생 구조가 파탄 나니까.

 

신당에 참여하고 있는 적지 않은 전진의 일원들, 특히 당직에 복무한 적 있는 이들 중에는 주사파에게 아주 열심히 협력했던 이들이 있다. 이런 협력은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주사파들은 통일에 대한 입장에 예민하니까 이들의 통일론을 알아서 당론인 것처럼 만들어주는 행위들이다. 당론이 바뀌려면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건 무시해 버린다.

 

신당파의 다수가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는 건 아니지만 신당파는 이런 행위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반성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들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의 정치적 선택이 샴 쌍동이 분리 수술이므로 그들에게 힘을 싣고자 할 뿐이다.

 

 

 

2월 3일은 민주노동당이 둘로 쪼개지는 결정이 내려지는 날이 될 것이다.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보다는 '종북주의' 갈등으로 빚어진 것이라 안타깝기는 하지만 일단은 이념적 지향이 다르면 다른 정당을 구성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실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리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날이다.

 

물론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이 약간 수정되어 통과되고 이에 대해 '심사숙고'를 한 심상정이 그래도 'GO'를 외치면서 민주노동당의 혁신의 길이 가 볼 만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다. 이건 신당파에게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그래서 아마 신당파는 심상정 비대위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냄으로서 더욱 자기 입지를 약화시키는 멍청한 짓을 할 수도 있다. 심상정/노회찬과 혁신파를 분리하는 최소한의 정치적 액션도 취하지 못하는 무능을 처음부터 발휘함으로써 멀지 않은 미래의 동지들과 틀어질 짓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심상정 비대위가 'GO'해도 총선 후 당권 선거만 지나면 혁신이고 뭐고 다 끝나게 돼 있다. 이때를 지나 탈당하는 사람들은 더 큰 배신감과 좌절감으로 민주노동당을 떠날 텐데 이들과 함께 해야 할 신당이 집이나 제대로 짓고 있길 바랄 뿐이다.

 

 

무한 궤도

 

진보신당파는, 민주노동당 비대위가 2월 3일 당대회 안건을 대폭 수정했다고 주장한다. 안건 내용 자체가 팍 줄어든 것은 사실인데, 비대위에서는 지난 1월 27일에 공개한 안건(안)에서 빠진 내용은 안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안건 해설 부분으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뭐, 그러기도 하는 거지.

 

게다가 사실 '종북주의' 문제의 핵심은 간첩(!) 최기영에 대한 처리 건으로 모아지는데(그래서 문제라 할 수 있다), 비대위가 '최기영 보고서'를 공개한 것 보면 진보신당파가 오바질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진보신당파쪽에서 흘러나오는 얘기가 있다.

 

노회찬의 상당한 노력으로 심상정이 자주파랑 총선 비례후보와 차기 당권에 대해 합의하고 혁신안의 적절한 수준에서의 당대회 통과까지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신당파는 이 '사실'을 '확인'한 후 오늘 심도 있는 논의를 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것이 진실인지는 당대회가 어떻게 마무리 되는지 봐야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신당파의 핵심인물 중 하나인 한씨는 탈당 안 한 모양이다. 당대회 가려고.

 

 

샴쌍동이 수술 앞두고 오바질 하는 사람 참 많은데 어느 게 오바질이고 아닌 지 알기가 어렵다. 이거 참 무슨 무한 궤도에 올라가서 같은 자리 뱅뱅 도는 것 같기도 하고... 얼른 2월 3일 지나라.

 

 

 

 

지난 토요일부터 열이 펄펄 끓고 주댕이 주변이 다 물집이 잡혔었는데, 행인 말로는 이게 다 '홧병'이란다. 그럴지도 모르지.

 

 

샴 쌍동이 분리 수술

 

누구는 민주노동당이 쪼개지는 걸 두고 '이혼'이라고 한다. 하지만 주사파와의 결별은 '이혼'이 아니다. 좌파와 주사파가 독립된 존재로서 결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반도의 비극으로 함께 태어나 자란 샴쌍동이이다. 이들이 헤어지려면 분리 수술을 해야만 한다.

 

분단과 냉전, 군사정권 시대는 한반도에서 변화를 꿈꾼 이들에게도 민족주의와 권위주의를 심어주었다. 민족주의로 뒤덮힌 한반도에서는 수구적 민족주의 운동권이 더 많은 자양분을 얻었고 그래서 더 크게 자랄 수밖에 없었다. 이들과 함께 자랐지만 왜소하게 자란 좌파들은 주사파들과 몸이 붙어 있어 그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달릴 수도 없었다. 논쟁과 설득으로 덩치를 이길 수는 없다.

 

샴쌍동이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처지라면 꼭 분리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몸이 붙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편견을 극복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좌파와 주사파처럼 출생은 하나이지만 너무나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 더우기 가고자 하는 길이 오른쪽과 왼쪽인 이들이 계속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불행일 뿐이다.

 

물론 샴쌍동이 분리 수술이 모두 성공하지는 못한다. 하나가 죽기도 하고 둘 모두가 죽기도 한다. 오른쪽 아이는 덩치도 크고 민주노총이라는 애인도 있으니 분리 수술 후 건강회복도 빠를 것이고 한 동안은 의지해서 살아가기도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다만, 왼쪽 아이가 그 동안 상쇄시켜주었던 안 좋은 이미지가 부각될 위험은 있다. 그렇지만 사회생활에서 그 정도는 어려운 게 아니다.

 

반면에 왼쪽 아이는 허약하다. 그를 사랑하는 애인도 없다. 이웃집에 친구인 척 하는 아이들이 있기는 하다. 그들은 붙어 있는 아이들의 꼬라지를 은근히 조롱했으며, 특히 오른쪽 아이를 욕하는 데에서 기쁨을 얻고 있다. 훌륭한 직업들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동안 왼쪽 아이를 위해 한 일은 없다. 진정 친구일 리가 없다. 왼쪽 아이는 수술로 오론쪽 아이와 분리 되어도 당장 뭐 해 먹고 살지 계획이 분명치 않다. 과연 수술 후에 회복이나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렇다고 몸을 떼지 않으면 평생 꿈을 버리고 살아야 할 처지인 건 오른쪽 아이나 왼쪽 아이나 마찬가지다. 각자 갈 길이 다르면 몸이 붙어있어서는 안 된다. 오른쪽 아이가 일요일마다 북쪽신을 모시기 위해 교회를 찾아가는 시간에 왼쪽 아이는 동네 어귀에서 다른 일을 하고 싶어한다.

 

사실 분리 수술이 헤어짐에 있어서 결정적 난관은 아니다. 분리 수술 후 인생 계획이 분명치 않은 것도 결정적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서로가 떨어져 지내게 된다는 두려움, '분리 불안'이 그들의 앞날을 막고 있다.

 

서로를 그토록 저주하는 쌍동이들이 한편에서는 '통큰단결'을, 한편에서는 '책임감'을 내세우는 이유는 분리 불안 때문이다. 마치 떨어지면 죽을 것 같은 두려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혼란. 이 불안은, 몸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둘이 싸우면 싸울수록 커지고 있다. 이러다가 분리 수술을 진짜 하게 되면 어쩌지? 그리고 수술 후에 서로의 몸이 떨어져도 이 분리 불안은 둘 모두를 괴롭힐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심상정 비대위 체제를 구축했다. 2월 20일 경으로 예정된 당대회에 비대위는 민주노동당 혁신안과 비례대표후보 선출안 등을 상정할 것이다. 주사파의 이념적 지향을 꺾는 혁신안은 통과할 수가 없다. 왜냐면 당대회 대의원의 다수가 NL-국민파 동맹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민주노동당은 혁신은 불가하다.

 

둘째, 심상정이 사실상 경기동부연합을 숙청하자는 내용을 제출할 수 있다. 경기동부연합은 지난 대선에서 엄청난 당 돈을 챙겼다. 온갖 부정의 핵심이고 인천연합과 울산연합에게도 욕 먹는 자들이다. 하지만 심상정이 직접 나선들 인천과 울산연합도 과거에 한 일이 있는데 경기동부연합 숙청하는 데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음은 그들 차례일 테니까.

 

셋째는 적당한 선에서의 타협이다. 일단 혁신의 내용을 정하는 게 아니라 큰 방향에서 발판이 될 만한 조치들을 열어두는 방안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것이 민주노동당식 결정이었다. 당장의 갈등은 덮어두되 앞으로 하기나름이라는 식.

 

첫째, 둘째 방안은 당대회에서 통과되기 어렵다. 그건 곧바로 분당이다.  셋째는 당대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에 동의할 수 없는 비NL-비국민파 당원들의 적잖은 수가 탈당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세 가지 방법 외에는 심상정 비대위가 선택할 방법이 없고, 어느 방법을 선택하건 민주노동당은 회복할 수 없는 분열로 치달을 것이다. 대선 패배 후 권영길은 정계은퇴를, 인천연합과 울산연합은 경기동부 숙청을 스스로 결정했어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잘 되었다. 이제는 헤어지는 길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왼쪽 아이는 언제나 오른쪽 아이를 시샘했다. 그래서 혼자서 잘 자라는 방법을 궁리하지 않았다. 시샘하는 아이는 성격이 좋을 리가 없다. 툭 하면 화내고 짜증을 부린다. 자기보다 덩치가 큰 아이에게 끌려다니면서 자기는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는 논리만 키웠다. 그러던 아이가 오른쪽 아이와 떨어지려는 얼마나 죽을 맛일까.

 

그래도 이제 각자 갈 길 가자.

 

 

---------------------------------------------

 

암울한 예상에도 불구하고 비대위가 성공하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비대위에서 함께 일해보겠냐는 제안도 받았는데 그런 관심을 주고 받는 것도 좋은 일이다. 비대위에 힘 쏟는 모든 이들도 좋은 경험을 쌓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말걸기는 민주노동당 고양시위원회에 탈당계를 메일로 보냈다. 아마 21일 오전 중에는 말걸기를 포함한 전 정책위와 인권위 간부들이 집단 탈당 선언을 하게 될 것이다.

 

탈당 사유를 다음과 같이 작성했다. 짧은 집단 탈당 선언문을 재구성한 것이다.

 

"저는, 민주노동당이 스스로 혁신하지 못하고 비리와 불의에 눈 감는 집단, 수구적인 민족주의 정당으로 타락하는 것을 막지 못한 데 대해 반성하며, 진정으로 노동자 서민과 함께 하는 새 진보정당 건설에 매진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을 탈당합니다."

 

9년을 민주노동당을 위해 살았다. 이젠 진짜 가야할 길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6년을 꼬박 헌신했던 청춘이 억울하기도 한 것처럼 다음 진보정당도 말걸기를 슬프게 할 지 모른다. 그래도 민주노동당이 아닌 게 확실하면 떠나야 한다.

 

 

심상정 비대위는...

 

'심상정 비대위'가 출범했다.

최고위원회 정도의 권한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도 있고 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우겨서라도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뭐든 할 수는 있겠다.

 

당내에서 안정적으로 권력 기반을 갖추길 바라는 심상정으로서는 기회이기는 하지만,

'권력의 안정'이란 이 파벌 저 파벌의 균형을 의미하므로

심상정이 얼마나 혁신의 칼을 사용할지는 모르겠다.

시범 경기만 몇 번 하고 끝날지도 모르고 진짜 피 좌르르 흐르는 꼴 보여줄 수도 있고.

 

하지만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지지하고 있는 심상정,

(아직 지난 대선후보 경선 당신 자신의 통일 공약을 수정하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주사파에게 표 구걸했던 심상정으로서는 혁신의 한계를 드러내지 않을까 싶다.

 

혹시 모르지.

워낙 겁이 없는 사람이라, 안되겠다 싶으면 칼을 마구 휘두를지도.

 

심상정 비대위는 대선 평가를 해야 한다.

뭐 뻔한 얘기들이야 이미 다 준비되어 있으니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 평가를 인정하면 존심 상할 인간들의 저항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만 남았다.

 

그보다는 총선 '전략 공천'의 방안이 골치 꽤나 아플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비례대표에 침을 흘리고 있나?

각 정파에서 한 자리 하고 있는 모든 인간들이 비례후보 자리에다 바르려고 바가지에다가 침을 한 가득 모아 놓았을 터인데 말이지.

 

현재 50억이나 된다는 당 빚도 파장의 근원일 것이다.

경기동부연합이 자기 계열사에다가 준 돈이 최소 26억이라는데 이런 문제도 정리할 수 있을까?

경기동부연합 조직원들은 비대위 체제에서도 중앙당직을 굳건히 지킬 것을 지령받은 모양이다.

비대위가 과연 상근자 숙청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한 것.

돈 세탁과 관련한 부서의 상근자들을 손대지 못하면 비대위는 허수아비가 될 건데,

그들을 건드린다는 것은 주사파와 격돌해야 한다는 것.

심상정의 심장이 얼마나 큰 지 구경은 해볼만한 듯하다.

 

 

비대위는 과연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까?

민주노동당 개혁의 틀을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안정적인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것인가?

전자는 할 수도 없고 할 능력도 없을 터이니 기대 말자.

말걸기는 후자가 제대로 되었으면 좋겠다.

안정적 힘의 균형을 이루고 총선 후 지도부 선거에서 심상정이 당대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좌파들의 바닥을 투명하게 드러낼 수 있게.

왜 아직 분당이 '비전'을 갖추지 못하는지 다들 확인해야지.

 

어쨌거나 궁금한 건 대선평가는 전략공천이든 그 무엇이든 비대위가 한 일에 대한 평가는 누가 하게 될까?

 

 

대선 특별 당비

 

어제 낮에 출력소에 있을 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번호를 보니 당사인 듯하여 누가 말걸기를 찾는 줄 알고 냉큼 받았는데... 자원활동하는 당원이라면서 대선 특별당비 5만 원 이상을 당비 계좌에서 인출하도록 동의해 달라는 전화였다. 친절한 목소리였다.

 

"요즘 벌이가 없어서 특별 당비를 내지 못하겠네요."

 

라고 말걸기 또한 친절한 태도로 대답을 했다. 그리고 정말 맘에도 없는, 전화줘서 감사하다는 마지막 인사까지 했다. 특별당비를 내지 않는 이유는 참으로 불쾌하고 어처구니 없는 상황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특별당비 내달라는 전화통에까지 냉담할 필요는 없잖은가. 전화한 사람이 누구건 간에.

 

 

97년 이후 2004년까지는 여유돈이 있는 만큼 선거에다가 부었다. 물론 얼마 되지는 않는 돈이었지만 항상 '약정된 금액'은 훨씬 넘겼다. 그러다가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약정된 금액', 그러니까 당대회 등 의결기관이 결의한 만큼만 특별당비를 냈다. 원래 그 선거를 위해 모아두었던 돈은 몽땅 레디앙으로 갔다.

 

이번에는 최소한의 특별당비 납부도 거부했다. 물론 당장 돈을 벌고 있는 게 아니니 핑계거리도 있다. 애초에는 아무리 당 꼬라지가 지랄같아도 기본적인 의무는 다하고자 했으나 현 지도부에게는 절대 돈을 주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있어 납부를 거부했다.

 

 

레디앙에서 있을 때부터 취재 차 사정을 알아보던 일이 있다. 참으로 거시기해서 결국 기사로 쓰지는 않았지만 정말 지저분한 일이다.

 

선거를 치를 때는 당과 후보의 지지도 뿐만 아니라 당과 후보의 어떤 발언 내용이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여론조사를 한다. 결국 여론조사를 통해서 전술의 변화를 꾀한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이 개뿔 먹히지 않는다는 게 여론조사로 확인되면, 다른 카드, 비정규직 어쩌구를 들이민다든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반응을 보고 제대로 질렀나 다시 확인하는 게 여론조사다.

 

이처럼 여론조사는 선거, 특히 미디어 영향을 많이 받는 작금의 선거에서는 의미 있는 사업이다(물론 한계는 있다). 그래서 여론조사 설계를 제대로 하고 조사도 제대로 하고 그 결과를 통계적으로 제대로 분석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 여론조사를 할 요량으로 당은 예산을 8천 만 원 정도를 책정했단다(정확한 건 잘 모르겠다. 까먹었다). 이는 연초부터 선거전까지 예산이고 선거 시기에는 별도의 예산을 책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이것도 확실한 금액은 모른다). 어쨌거나 1억 원이 넘는 예산으로 한 해 동안 여론 조사를 한다는 건 아주 적은 비용임에는 분명하다. 그래도 당 입장에서는 적절하게 사용하는 수밖에.

 

그런데 이 여론조사를 위해서 여론조사 회사를 선택하는 데 문제가 생겼다. 작년부터 기조실의 여론조사 담당자는 중견 여론조사 회사들과 관계를 트고 이 중 3개 회사와 함께 올해 대선 여론조사 사업을 하려 했고 그 일환으로 올봄 첫 여론조사 사업을 이들과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지도부의 승인에 따라.

 

각 회사의 담당자들은 당사까지 와서 사무총장과 "잘 해봅시다"까지 했다. 그런데 올봄에 하기로 한 사업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지지부진해진 것이다. 두어달 기다린 끝에 여론조사 회사들이 민주노동당이랑 못 해먹겠다고 쨌다. 그 와중에 총무실장이 아주 기본적인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니까 여론조사 예산 규모로 보아 이 사업을 위해서는 공개입찰을 해야 한다는 걸 지적한 것이다.

 

총무실장의 지적은 옳았다. 애초에 일정 금액 이상의 사업을 집행할 때는 공개입찰을 하도록 하고 있는데 기조실 여론조사 담당자에서부터 기조실장, 사무총장, 그리고 대선 전략기획단장까지 아무 생각 없다가 총무실장 한 마디에 "어, 그래?" 그러고는 공개입찰을 내게 되었다.

 

여론조사 회사들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일 잘 해보자고 총장까지 면담했는데 그제서야 공개입찰이라니. 게다가 총무실장은 놀랍고도 황당한 '꿍꿍이'가 있어서 여론조사 담당자와는 상의도 없이 공개입찰 공고를 냈다. 그 내용이 어처구니가 없어 여기저기서 욕을 먹었는데, 이를 테면 회사 직원으로 당원을 얼마나 고용했느냐가 점수에 반영된다는 따위.

 

이로써 중견 여론조사 회사들은 완전히 등을 돌렸고 경기동부연합 계열사인 CNP가 작지만 능력있는 모 회사와 컨소시엄을 이루어 공개입찰에 응했다. 그리고 실력은 고만고만하고 좀 문제가 있는 작은 회사도 공개입찰에 응했다. 공개입찰은 두 개 회사와 계약하겠다고 냈으니 결국 이들과 함께 여론조사 사업을 하게 된 것.

 

경기동부연합의 계열사는 통계의 기본도 몰라 일을 하도 이상하게 해댔다. 여론조사 담당자가 클라이언트로서 조사의 문제를 지적하자 그 회사는 당지도부에 담당자를 혼내주라고까지 한 모양이다. 내부에서는 난리가 났었던 모양이다. 공문까지 날라댕기고.

 

그러다가 경기동부연합 조직원인 총무실장이 갑자기 여론조사 담당자에게 여론조사 사업예산이 5억 원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단다. 그러니까 애초 사업계획보다 3배 가량은 뻥튀기한 예산을 집행할 의사가 있다는 뜻이다. '실무자' 주제에 예산 편성까지 마구 부풀리다니. 그것도 경기동부연합 조직원이라고 그 계열사 회사에게 줄 돈을 늘이겠다니.

 

여론조사 담당자는 처음에는 왤까 싶다가 이내 눈치를 채고선 여론조사 사업으로 최소한의 비용만 지출하려고 무지 애쓰고 있단다.

 

 

일 못하는 것들 상대로 돈 쓰는 게 참으로 아깝다. 돈 아까운 것도 아까운 것이지만 결정적으로 특별당비를 못내겠는 이유는, 당지도부의 비호 아래 당직자가 거액의 당 재산을 자기 조직으로 흘리는 짓거리 때문이다. 사실은 그 조직의 기획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멍청해서 돈을 잘 못 쓰는 건 지적을 해서라도 바로 잡으면 되지만 작정하고 공금을 사조직으로 세탁하는 건 못 봐준다. 한 번은 좌절했지만 계속해서 그런 짓을 할 게 뻔하다.

 

 

망하려면 멀었다

 

천지가 온통 뒤숭숭한 이 시대, 민주노동당도 맛탱이 가고 있다. 물론 어제 오늘 벌어진 갑작스런 사태는 아니다. 수년 간 벌어진 일이라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오래된 만큼 절망은 깊이 파고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이 망하려면 멀었다.

 

 

1.

 

 

이명박이랑 신나게 족구하는 한국노총에게 허리 90도 꺾고 사죄하는, 그것도 대선이 다가온답시고 비굴하게 고개 숙이는 민주노동당에게 쬐끔의 자존심이라도 있는가 싶기도 하다. 한국노총이 이명박이랑 놀든 누구랑 놀든 상관할 바도 아니고 선거 다가오니 뻔뻔하게 굽실거리는 것도 봐줄 수는 있으나 어떻게 노동자의 파업권과 전임자 임금 건을 바꾼 한국노총에게 머리를 숙일 수 있단 말인가.

 

사실 그 보다는, 파업권, 복수 노조 따위의 가장 기본적인 노동자 권리와 전임자 임금 건을 두고 내심 갈등했던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의 유력한 배후 중 하나라서, 그래서 한국노총에게 이렇게 사과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조직노동자를 아주 많이많이 배신한 것은 아니라는 게 더 좌절스러울 따름이다.

 

 

정당에 고용된 사람이 진보를 추구하는 활동가라면, 그리고 그 정당이 진보정당이라면 결코 노동자가 될 수 없다는,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니는 자들이 있다. '노동자'가 악마 같은 자본가에 대항하는 무슨 선한 존재도 아니고 '노동조합'이 프롤레타리아 혁명를 집행하는 결사대도 아닌데 당 지도부는 자본가가 아니라고 둘어대니 어이없다. 프롤레타라이가 적어도 백 년은 피흘리며 만들어 놓은 '부르조아 시대 노동법'도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부정하다니.

 

그 보다는, 예산을 확정할 수 있는 당대회 권한을 임단협에 한해서는 당대표에게 위임하라는 결정을 내린 당대회는 점점 더 또라이 집단이 되어간다는 게 한심하다. 이 따위 말도 안되는 안건을 노조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최고위가 만들어 올려도 대의기관이 거르지 못한다는 건 당이 깊은 수렁에 빠졌다는 걸 보여준다. 민주적 절차가 그때 그때 편의에 따라서 고무줄이 되어버린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의 기치 아래 농활 다니는 권영길의 모양새는 아무래도 삐꾸다. 경선 직후 상공회의소부터 다니기 시작한 권은 문국현을 열나 까는 듯 하더니 손잡아 보자고 하질 않나 여느 부르조아지 정치가의 길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100만 민중대회가 뻥카로 들통날 일만 남았는데 그 후 대책은 아무도 모르고 있으니 뭐하자는 것인지.

 

권의 공식적 발언은 권캠의 몇몇에 의해 좌우되고 있고 권이 지나는 길 또한 자민통 지역 조직을 지원하기 위해 정해지니 내용 있는 대선이 될 리가 없다. 당의 주장을 일관되게 다루어 온 기관은 권의 발언에, 그 발언의 기초에 아무런 영향과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사적인 방식으로 대선 조직이 움직이고 있는가.

 

 

이 사태로 확인된 바가 있다. 우파는 결코 진보정당을 이끌 자격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예전에는 단지 우려했던 바에 그쳤으나 이번 대선을 계기로 철저히 검증했다. 정치에서는 악당보다 나쁜 게 무능한 놈이니 우파가 악당보다 나쁜 존재라는 것 또한 뼈저리게 확인했다.

 

이런 좌절이 더욱 좌절인 이유는, 좌절로 이끈 당내 무리들에게서 어떻게 당권을 빼앗을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 전망이 보이지 않아 당을 떠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당적은 아직 아니 지웠어도 당을 향한 마음을 지운 이들이 수두룩하다. 진정 우파의 승리가 다가 오는 듯하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망하려면 멀었다. 왜냐하면 아직 민주노동당 내에서 확인해야 할 게 남았기 때문이다.

 

 

2.

 

 

민주신당 따위야 원래 이 나라를 쌈 싸먹은 놈들이니 이명박 대안으로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국현을 지켜보고 있다. 문국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쩌구 저쩌구...해 봐야 사람들은 귀담아 듣지도 않는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X됐다.

 

어쨌거나 확인되지 않은, 검증되지 않은 사람 혹은 세력을 새로운 희망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은 언제나 있는 일이다. 대중은 일단 희망적으로 보이면 안 따진다. 민주노동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심상정이 예상 밖 약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민주노총 중앙파의 빽만이 아니었다. 당무에서는 어떤 것도 검증 받은 적 없는 심상정이 뜬 건 '묻지마 신뢰'도 작용했던 것이다.

 

당내 우파와 그 떨거지들은 그들의 무능을 스스로 확인해 주었다. 그럼 이제 민주노동당이 갈 때까지 가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남았다. 당내 좌파의 능력을 확인해야 하는 일이다. 적지 않은 당원들이 당내 좌우 갈등을 혐오하면서도 은근히 좌파를 지지하고 있다. 전폭적이지는 않더라도. 또한 적지 않은 당원들은 좌파가 당권을 장악해도 당이 똑바로 될까 의심하기도 하지만 우파보다야 훨씬 나을 거라고 믿고 있다.

 

정치의 요체 정당에서 무능을 발휘한 우파에 대한 평가는 끝났다. 이제 좌파에 대한 평가만 남았다. 좌파가 평가를 받고 이들에게도 미래가 없다는 걸 모두가 확인할 날이 서둘어 와야 한다. 이 날이 오면 밑천 거덜난 민주노동당을 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나을 거라 생각한 좌파 무리의 무능도 확인해야 진보진영 내 더 이상 믿을 세력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이쯤 되어야 다시 시작할 이유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다시 시작한다는 건 새로운 주체의 형성이다. 새로운 주체 형성은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모두들 기피하고 있다. 그래서 좌파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면 새로운 주체 형성은 없다.

 

문제는 좌파가 우파로부터 당권을 빼앗지 못하면 그 검증의 계기는 자꾸만 뒤로 미루어진다는 점이다. 결국 새로운 시작은 자꾸 멀어진다. 과연 차기 당권 선거에서 좌파는 승리할 수 있을까.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망하려면 멀었다. 그래서 지금 탈당하거나 당을 외면하는 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망하는 꼴을 지켜보며 모두 함께 깨달음을 얻길 바란다. 이 깨달음이란 검증되지 않은 자들에 대한 묻지마 희망 따위는 버리고 기획과 실행 능력을 갖춘 자들을 선별하게 된다는 걸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