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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2/07
    싸우는 이유(5)
    말걸기
  2. 2007/01/11
    노무현이 '폭탄' 던진 날(4)
    말걸기
  3. 2007/01/07
    민주노동당 노조에 대한 저주
    말걸기
  4. 2006/12/27
    우익이나 될까부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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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11/28
    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 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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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11/06
    짜증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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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6/10/24
    '해고 불가' 신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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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6/10/22
    한심한 성과 들추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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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10/18
    주사파와의 결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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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9/20
    어이가 없어서 한 마디 해줬다.(6)
    말걸기

싸우는 이유

 

ScanPlease님의 [치환] 에 관련된 글.

 

"성폭력이-가해자든 피해자든 그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자본주의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

 

이 주장은 ScanPlease님이 얘기했듯이 '치환'이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사라지게" 하지요. "그래서 가만히 보고만 있"기가 무척이나 힘듭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발끈하면,

 

"히한하게도 성폭력의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이겠거니하는 태도는 참 어처구니없는 수순이었다"

 

라고 하면서 마치 가해자를 옹호하지 않는 것처럼 얘기하면 피가 꺼꾸로 돕니다. 첫 명제는 논리적으로 피해자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의미를 온전히 가지고 있는데 이제 와서 가해자를 두둔하지 않는다는 건 뭐냐구요. 이 바닥에서는 한 마디씩 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러면 "지긋지긋한 패거리 습성들"이라며 '조폭'까지 운운합니다. 자기는 '다구리' 당한다고 억울해 하는 것 같은데 수많은 성폭력의 피해자들과 그 폭력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다구리' 당하는 건 보지 못한 모양입니다. 어쨌든 '다구리'도 다 '자본주의에 저질러지는 것'이니 원망 말기를 바랄 뿐입니다. 자본주의한테 가서 따질 것이지 말걸기더러 사과하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지요.

 

 

그런데... 사건이나 문제를 왜곡하거나 회피하는 말에 일일이 진지하게 대응하면 나아지는 게 있나요? 매번 확인하지만, '그런 주장은 사건이나 문제를 왜곡한다'는 걸 납득도 못시킨 채 지쳐버리지요. 상처는 피해자나 피해자를 옹호하는 편에게 남습니다.

 

그래서 ①싸울 데 가서 싸우거나, ②(싸움에 별 지장이 없다면) 조롱이나 하자는 겁니다. 물론, 피해자나 그 사건 때문에 고심하는 이들에게 '공감'하기도 좋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싸움은 어떻게? 사실 싸움의 방법보다는 싸우는 이유에 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입장의 차이로 갈등이 생기면 양자(다자)가 호혜적 태도로 조율을 하기도 합니다. 갈등이 커지면 논쟁과 같은 싸움이 생기기도 하고 더 커지면 실력행사와 같은 싸움의 기법도 동원됩니다. 갈등이 커져 싸움을 할 때는 둘 중 하나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⑴ 어쨌거나 입장을 합의-도출해야만 한다.

⑵ 어떠한 합의도 이루어지 않을 게 뻔하지만 지켜보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갈등이 바람직한 합의(여기서 '합의'라 함은 '완승'을 포함하지 않는 게 아닙죠)로 마무리 되는 게 제일 좋지만 나중을 위해 합의를 회피하는 싸움을 해야 할 때도 있지요. 그럴 때는 힘을 얻기 위한 싸움이 되어야 합니다. 지켜보는 이들을 고려해야겠지요.

 

그런데, ⑴도 ⑵도 이유가 될 수 없거나 필요 없는 상황이라면 싸움이 허무할 것 같습니다. 그럴 때는 조롱이나 하자는 것이지요. 조롱은 큰 공을 들이지 않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조롱을 너무 남발하면 격이 떨어지겠지만 설득할 수 없는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는 부담은 전혀 없지요. 게다가 자신의 격이 떨어지는 게 두렵지 않다면 '신나게' 할 수도 있겠지요.

 

 

아무리 공을 들여도 감정은커녕 논리도 전달이 되지 않는 싸움, 논쟁, 언쟁은 이제 고만합시다. 힘들기만 하잖아요. 차라리 조롱!

 

 

노무현이 '폭탄' 던진 날

 

1. 노무현의 '폭탄'

 

노무현이 '폭탄'을 던졌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는 민주노동당의 오래된 주장 중의 하나이다. 정치학계에서는 대체로 당연히 그리 되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는 주장이다. 한국 정치 수준으로 보아 (진보적이라기보다는) 합리적 방안으로 여겨진다. 그러니까 '폭탄'의 내용물은 실제로는 터질 위험이 없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시켜야 하는 시기가 2007대선-2008총선이며 이 때를 놓치면 2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은 좀 오버다. 현행 헌법대로라면 다음 총선은 2012년 4월, 다음 대선은 2012년 12월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이 한국정치에 그토록 필요한 조치라면 다음 대통령이 정치적 결단으로 스스로 8개월 임기를 단축해도 된다. 어차피 그 8개월 남은 임기는, 5년 단임제에서는, '덤'에 불과할 테니까.

 

게다가 워낙 '양치기 소년' 같은 대통령이라, 노무현은 어떤 '좋은 말'을 해도 좋게 듣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러니 이 시점에서 불쑥 던진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은 더더욱 '꼼수'로 보인다.

 

확실히 세간의 분석, 언론의 보도가 진실에 가까와 보인다. 노무현의 정국 주도권을 위한 필살기! 사실 개헌 카드 꺼낼 거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은 다 예상했던 것이기도 하다. 언제 내놓을까 기다리기도 했던 것이고. 그럼에도 '폭탄'이 되는 거 보니까 노무현의 능력은 정말 '양을 치는 데'에 있는 것 같다. 터지지도 않는 '폭탄'을 던져 놓고 여러 사람들 괴롭게 만드니까. 대단해!

 

 

2. 문래동 당사를 쪽팔려 하는 사람

 

노무현이 '폭탄' 던진 날은 말걸기가 알바하는 날로써 민주노동당사를 찾았다. 이날 알바를 대충 마무리하고 몇이서 밥을 먹으로 나가는데 '눈에 익은 사람'이 젊은 두 사람을 대동하고 문래동 당사 2층(대표실, 정책위 의장실, 정책위 등등이 있는 층)을 어슬렁 배회하는 것이었다.

 

- 진보정치연구소 사무국장 : 어떻게 오셨어요?

 

- A : 234호(243호라 했나?)가 어디지요?

 

- 강언니 : 여기는 호수가 없는데요. 잘못 찾아오신 거 아니예요?

 

- A : 민주노동당 원내대표실은 어딘가요?

 

- 말걸기 : 의원단 대표실은 국회 본청 2층에 있는데요?

 

- A : 문성현 대표님은 안계신가요? 비서실에 아무도 없는데...

 

- 말걸기 : 무슨 일 있어서 나가신 모양인데요. 비서도 다 데리구...

 

- '눈에 익은 사람' : 아까 통화한 사람 누구야? 비서한테 전화 한 번 해 봐.

 

(이 대화에서 좀 웃기는 건 당직자도 아닌 사람들이 참견하고 있다는 점이다... ㅋㅋ)

 

그리고서 일행은 밖으로 나왔는데, 진보정치연구소 사무국장이 뭘 두고 나왔다면서 다시 들어갔다. 잠시 뒤 밖으로 나온 사무국장이 '눈에 익은 사람'은 청와대에서 온 사람이란다. 다들 맞아 맞아 TV에서 봤다며 맞장구쳤다. 사무국장이 물건을 가지러 갔다 오면서 그들의 대화를 들은 모양이다. 분명한 것은 저들은 문성현 대표를 만나러 왔다는 점이다.

 

'눈에 익은 사람'은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이었고, 그날 노무현이 던진 '폭탄'을 받아달라고 각 당 대표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과 그의 수행 비서들의 상식은 이런 것이었다. 정당의 대표를 만나려면 그 정당이 자리잡은 당사로 찾아가 대표실에서 찾아뵈어야 한다는 것. 물론 그들만의 상식은 아니다.

 

이게 상식인데, 문성현 대표는 자기 자리는 놔두고 국회 본청의 의원단 대표실에서 이병완 비서실장을 맞이했다. 왤까?

 

문래동 당사가 뽀대 안나니 쪽팔린 거지 뭐. 아님 말구.

 

 

민주노동당 노조에 대한 저주

 

2007년 1월 6일은 꽤나 '역사적'인 날이 될 듯 싶다. 4~500명의 전국 상근자 중에서 80여 명으로 왜소(?)하게 시작하기는 하지만, 민주노동당 노동조합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 진보정당 역사에서는 빠질 수 없는 조직이 될 테니까. 만들어지기 전부터 민주노동당 노조에게 '저주'가 쏟아지는 것만으로도 역사가가 쉽게 뺄 수는 없게 되었다.

 

 

말걸기도 당에 노조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얘기를 꺼낸 사람 중에 하나였는데, 그 얘기가... 그러니까... 2001년? 2002년 쯤이었나? 제대로 기억도 못하네. 민주노동당 중앙당 상조회장이었던 시절 노조를 만들 요량으로 총무와 함께 노조의 상근자 노조로서 대표적인 전교조 상근자 노조 간부들과도 면담하고 그랬었다. 그때는 전교조와는 상황이 참으로 다르다는 점만 확인한 듯하다. 배울 게 없다는 뜻은 아니고. 하지만 업무 과중(?)과 상근자들의 시큰둥한 반응으로 노조 추진은 자연스럽게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그 후 2004년 총선 전까지도 여러차례 노조를 만들자는 얘기가 있었지만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상근자들의 노조를 만드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많이 있었는데,

 

① 민주노동당 상근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② 정치조직에서는 목표를 정치력으로 달성해야 한다.

③ 지역조직의 상근자를 배제하는 것은 명분이 없고 그들을 포함하기도 어려운 조건이다.

④ 다수가 참여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할 게 뻔하다.

 

등이 이유였다.

 

①의 이유를 든 확실한 배경도 있다. 창당 초기부터 당에서 일한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당을 만든 사람들이다. 물론 말걸기도 당을 만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감정은 사뭇 다를 것이다. 왜냐면 몇몇 상근당직자로 말하자면, 그들이 없었더라면 당이 실제로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직위는 국장이니 불리지만 사실은 상무이사나 마찬가지이다 보니 '노동자'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이상한 노릇이었다.

 

물론 이와는 다른 ①의 이유를 들기도 했다. 전업 활동가는 노동자일 수 없다는 뜻으로 말이다. 이런 주장은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②의 주장은 ①과도 연동되지만 꼭 일치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러하다. 상근자가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②의 이유로 노동조합을 결성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긴 하다. 그 누구의 적절한 지적처럼, 지도부의 지시나 태도가 불만이면 노동자성을 강조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할 때는 활동가성을 강조하는, 다소 이율배반적인 행태가 만연했던 사실에 비추어 보면, 정치력을 발휘하여 스스로의 목표를 달성할 수도 있는 환경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명백하게도 ①과 ②의 주장을 했던 사람들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실장급(당시는 국장급) 인사들과 '활동가 이데올로기'에 쉽게 사로잡히는 주사파들이었다. 주사파들을 제외해도 지도부와 맞짱 뜰 자신이 있거나 지도부도 어려워 하는 실무자들에게는 노조란 오히려 그들의 정치력 발휘에 장애가 될 수 있었다. 노동자란 사용자로부터 근로감독을 받는 존재이지만, 노동자성을 부정하면 보다 더 자율적일 수 있었으니까. 어쨌든 이런 주장은 이해관계에 기반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이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해관계란 언제나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중요하다.

 

③의 이유는 노동조합을 만들고자 한다면 가장 크게 부딪히는 난관임에 틀림없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당시에는 지구당에서 유급상근자를 두는 게 불법이 아니었음에도 실질적인 소득의 격차가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중앙당은 60여만 원 받고 있었지만 지구당 상근자들 중에서는 10~20만 원 받는 사람들도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지역으로 내려갈수록 지역에서의 부조가 발달해서 따지고 보면 큰 차이가 아닐 수도 있으나 확실히 지역의 상근자들의 급여는 어처구니가 없었던 건 사실이다. 이러니 중앙과 지역의 상근자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같을 수 없었다. 하나의 노조로 묶이기가 쉽지가 않았다.

 

④의 이유는 사실 상 '정치적 명분'이었다. 다수가 참여하지 않은 채 노조가 결성되면 웬지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려는 시도처럼 보여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2004년 총선 전은 확실히 노조가 출범하기에는 여러 조건이 어울리지 않았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점은 적지 않은 상근자들이 ②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작금의, 민주노동당 노조 출범에 퍼붓는 저주도 예전의 이유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에다가 도덕성이나 활동가 윤리 규범을 들이대는 짓, 가난한(?) 지역 상근자들 들먹이는 게 더할까.

 

①~④의 이유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노조에 참여하지 않는 상근자들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의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고, 여전히 ①~④의 이유로 노조 참여를 꺼리는 상근자들이나 노조 출범을 탐탐치 않게 여기는 자들에게는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①과 달리 민주노동당 상근자는 노동자가 맞다. 객관적으로 그러하다. 민주노동당 상근자는 2004년 총선 이후 그 지위, 업무 수행에 따르는 권한이 질적으로 낮아졌다. 지도부나 정무직들이 생까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예전에는 상무집행위원회(지금으로 치자면 최고위와 비슷)의 결정 사항에 민감한 상근자들이 별로 없었다. 그들에 비해 꿀릴 것 없는 권한을 행사했었으니까.

 

②의 이유는 노조 결성의 이유이기도 하다. 노조가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는가? 스스로 활동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조가 아닌 정치력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믿는 모양인데, 그들은 참으로 바보다. 지 꼬라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그저 활동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고고한 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노조 결성 자체가 특정한 영역에서의 정치력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임을 깨달아야 한다. 지도부에 반기를 드는 것만 정치적인 행동이 아니다. 제대로 된 질서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정치적인데. 그 질서가 나락으로 떨어진 상근자의 지위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③과 관련하여 중앙과 지역의 상근자들을 대조하며 중앙 상근자들, 특히 정책연구원들을 배부른 놈들이라고 하는데, 2004년 총선 이전과 비교해 보면 지역 상근자들의 상황은 훨씬 좋아졌고 중앙당직자들과의 격차도 엄청나게 줄었다. 어는 동네는 거의 같다. 월 60만 원으로 살인적인 여의도 물가를 버텨가는 와중에서도 노조 얘기 했었는데, 그 시절을 아냐며 배부른 소리한다는 것들은 입을 다 찢어놔야 한다. 그 새끼들 그 시절, 그곳에서 일한 새끼들 아니다. 그리고 지역위 상근자들은 이미 총선 전 중앙당 상근자들보다 훨씬 대우 좋다. (이런 얘기하는 놈들이 얼마나 배부른 새끼들인지는 담 기회에 쓰도록 하지.)

 

④와 같이 다수가 참여하는 노조라면 좋지만 지금의 상황은 갈등이 오히려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갈등없이 민주노동당 상근자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확 갈라져서 갈등이 숙성되어야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에게 좋은 일은 언제나 갈등에서 시작되었다.

 

 

'민주노동당 노조에 대한 저주'에 대해서 몇 마디 했다. 사실 뭐 이 정도 얘기는 다들 하는 얘기니까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여기까지가 서론이다. 그렇다고 본론과 결론은 길지 않다. 이상하게도 오히려 짧다. 본론과 결론의 핵심 내용은,

 

말걸기가 퍼붓는, 민주노동당 노조에 대한 '저주'이다.

 

 

민주노동당 노조에 반대한 부류는 여럿이지만 왜 주사파와 다함께는 민주노동당 노조를 반대할까? 진보정당의 상근자들로 구성한 노동조합은, 그들의 정치적 신념에 위배되는 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현재의 민주노동당 노조는 현지도부에 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재 노조의 구성원들이, 노조를 지도부에 대항하기 위한 조직으로 여긴다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도부의 삽질이 상근자들 업무 환경에 미치는 영향으로 보아 노조는 주로 현지도부의 무능과 무성의에 대항해야만 한다. 이 뻔한 상황은 누구나 알고 있다. 따라서 주사파와 (잠시 동안만이라도) 그들의 2중대가 되길 자처하는 다함께는 민주노동당 노조의 출범에 흠집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 흠집내기의 치졸함에 땅과 하늘이 흔들릴 정도로 말이다.

 

민주노동당 노조는 이처럼 치열한 이해관계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을 하면서 탄생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이런 이해관계는 오래오래 지속될까?

 

까라면 까는 자들은 스스로 노조를 만들 이유가 없다. 하지만 노조가 만들어지고 그들이 모시는 지도부에 대항한다면, 그들 입장에서는 옆에서 노조 욕이나 해대는 것으로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적당한 시점이 도래하면 민주노동당 노조에는 주사파와 다함께도 참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민주노동당 노조는 '조직의 건실함을 지키고자 하는 무리'와 '지도부 빨아주는 딸랑이들' 사이의 쟁투의 장이 될 것이다. 이것이 말걸기의 '저주'인데, 어찌보면 이렇게 되는 것이 민주노동당 노조의 '완성 단계'일 것이다. 이미 노조를 준비하던 이들도 알다시피.

 

 

민주노동당 노조를 두고 노조의 근본을 지키라고는 하지 말자. 모든 노조가 애초에 근본이랄 게 없긴 하지만, 특히 민주노동당 노조에게 '상근자 처우 개선'이나 '진보 운동에의 기여'라는 (틀린 말은 결코 아니지만)말을 덧씌우지 말자. 정치투쟁의 주체로서, 한편으로는 그 자체로 정치투쟁의 장으로서 활동하길 바라자.

 

 

우익이나 될까부다

 

말걸기[정치성향 테스트] 에 관련된 글.

 

 

말걸기의 정치성향을 테스트해 보았더니,

 

○ Economic Left/Right: -9.88
○ Social Libertarian/Authoritarian: -9.08

 

로 나왔다. 1년 전 쯤에 한 테스트이니 지금 다시 한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결과는 말걸기 내면의 성향을 나타낸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그럼 내면 말고 외면은 뭐냐?

 

 

말걸기가 사회를 사유하는 기본적인 관점, 정치철학의 근원은 크리스트교에 있다. 말걸기로 말하자면 외가계로 5대째 가톨릭 신자이다. 6대째인가? 외가로는 아무리 촌수가 멀어도 죄다 가톨릭 신자들이다. 조상이 한국초기교회 시절부터 신자였던 것이다. 신실한 신앙심의 소유자이신 어머니 태중에 있을 적부터 말걸기는 성당엘 나갔다. 피도 안 마른 채로 세례를 받았다. 말걸기의 세례명은 '파비아노'이다. 3세기에 교황이었던 파비아노는 로마 황제의 핍박으로 순교를 한 성인이다. 신념과 삶의 일치!

 

중학교 한 때, 다들 말하는 사춘기 한 때 성당 나가기를 거부했었다. 뭐가 그리 괴로웠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 그 심각한 시절을 보내고 난 후에는 진지하고 성실한 가톨릭 신자로 살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외국에서 선교하는 사제를 양성하는 외방선교회를 예비신학생자격으로 드나들었다. 세상 모르고 사제가 되는 건 좀 손해보는 듯해서인지 신학교 준비는 접고 보통 사람들이 가는 대학을 준비했다.

 

모차르트나 헨델의 미사곡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기도를 했던 열혈 가톨릭 신자는 어쩌다가 무신론자가 되었을꼬.

 

 

말걸기가 가톨릭 신자로 배운 가치는 '사랑'과 '정의'이다. '사랑'이 뭔지에 대해서는 감을 잡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의'는 대단히 구체적이었다. 지랄같은 학교가 지랄같다고 얘기하는 전교조 선생들 죄다 목을 치는 건 '정의'가 아니었다. 할 말 좀 하겠다는 사람들을 폭력으로 눌러버리는 저 경찰들도 '정의'가 아니었다. 그런 사건들이 연속이었던 시절에 '정의'는 대단히 중요한 가치였다. 그런데, 교회는 '정의'에 침묵하였다.

 

말걸기는 재수하던 시절 부활대축일 미사에 갔다가, 불의에는 눈을 감고서 하느님의 나라를 설파하는 교회의 모습을 확인하였다. 그 다음부터는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분명하게 '입장'을 정리했다. 2천년 전 예수는 그러하지 않았지만 교회가 성립된 후에는 교회가 세상을 바꾼 게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바꾸었다고. 그러니 세상이 정의로워지는 데 일조하려면 교회에서 도모할 게 아니라고. 그래, '빨갱이'가 되는거야.

 

 

지금은 '말걸기 인생 돌리도'라고 외치고 싶은 청소년 시절에는 말걸기는 자신의 재능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어차피 점수로 가는 대학, 손해나 보지 말고 대학 가자는 맘을 먹고 재수 끝에, 그것도 제2지망으로 모대학 모학과에 진학했다. 학과 공부에 대한 목표의식이 있을 수 없었다. 열심히(정말?) '빨갱이'가 되기 위해 쫓아다녔다. 그러다가 학과 공부에 재미도 붙이고 등등, 이런 저런 다양한 삶의 가치도 알게 되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빨갱이'로서의 자세였다.

 

주체사상 기초 학습도 받았고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주사파를 선택하지 않았다. 학생운동의 계보로 따지자면 AIAMCPDR(반제반독점 민중민주주의 혁명론)의 세례를 받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AMC의 조직원이 되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공개적인 학생정치조직으로 재편되는 과정이었고, 어느 누구도 말걸기더러 조직원이 되라 하지 않았다. 아마도 믿을 만한 놈이 못되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진보운동한답시고 깝죽대는 건 말걸기밖에 없으니까.

 

군대를 전역하고 학교에 다시 돌아오니 개거품 물며 화염병 던지던 새끼들은 다 도망가고, 아직도 87년인 줄 알고 사는 놈들만 어둡고 좁은 구석에서 득시글거렸다. 그 와중에 새로운 학생운동을 모색하는 모임이 생겨서 그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이 모임은 후에 민주노동당 서대문마포은평지부로서 지역당을 창당하는 씨앗이 되었다). 이 모임을 하면서 진보정당에 대한 생각도 정리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정치권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 당시 말걸기의 사적인 생활은 예술활동이었는데 이 또한 새로운 내면의 감수성을 확인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시절, '모든 권력은 아작내자!'라는 슬로건이 말걸기의 정신적-육체적 일체성을 유지하는 데에 가장 부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싸, 아나키스트! 그런데... 파비아노의 가르침에 따라 '신념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려다 보니 큰 벽에 부딪혔다. 신념을 실현하려면 현실의 조건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아나키즘은 현실 개조에 가장 무능한 신념 체계였던 것이다. 그래서, 살아 생전에 사회주의 사회가 올랑가는 모르겠으나 계속해서 '빨갱이'로 살기로 했다.

 

 

'빨갱이'로서 '빨갱이 정당'을 만드는 데에 비천한 일조를 하고선 그 정당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게 '빨갱이 정당'이 아니었던 것이다. 말걸기가 민주노동당을 '빨갱이 정당이 아니다'라고 할 때는, 보통의 운동권들이 개량주의니 의회주의니 따위라며 얘기할 때의 그 뜻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객.관.적.으.로. '빨갱이 정당'이다. 말걸기가 민주노동당이 '빨갱이'답지 못하다고 한 이유는 무능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적 절차도 잘 모르고, 일을 일답게 풀어나가려면 어찌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똑바로 말할 줄도 모를 정도로 무능해 빠진 정당이다. 일군의 무리들은 주사파들 때문에 그리 되었다고 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개떡! 원래부터 그랬다. 6여년 쯤 당에서 일하고 보니 이걸 깨달았다. 어떤 사회주의(사민주의에서부터 장군님 세상까지)가 되었건, 사회주의 하겠다고 나선 '빨갱이'들처럼 살았다가는 현실 개조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빨갱이 노선'을 버리고 '실용주의 노선'으로 선회할까 생각 중이다. 요만큼 투여하면 그만큼보다는 조금 많은 결과를 얻는 활동. 길게 보고 꾸준하게 많이 투자해서 왕창 벌어들일 것과 찔끔찔끔 단맛만 짜낼 것을 구별하는 안목. 자기의 이해 타산을 잘 계산하는 태도. 실제로 쓸모가 있는 사업만 하자는 노선.

 

 

Economic Left -9.88, Social Libertarian -9.08이라는 극좌 중의 극좌, 아나키스트의 심성을 갖고 있는 말걸기가 반평생 운동판에 있으면서 얻은 점정 결론이 '실용주의'라니 참 어이가 없다. '실용주의'라도 짭짤한 성과를 얻지 못하면 진짜로 확 우익이 되어버릴 것 같다.

 

태어나자마자 부여받은 '신념에 따라 살다가 뒈지거라!'라는 말씀을 끝내 따를수나 있을까 싶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 ①

 

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 ①

 

 

0.

 

세상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의 혁명론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세상이 바뀔까? 아마도 혁명론을 이해할 이들은 세상 사람들의 극히 일부분일테고 받아들일 사람들은 더 적겠지. 꼭 마르크주의의 혁명론이 아니더라도 사회가 어찌어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든 이론과 사상은 다 마찬가지 운명일 것이다. 레닌의 깃발 아래 죽음도 불사하며 러시아 혁명을 수행했던 볼셰비키들이 죄다 레닌의 사상을 이해하진 못했을 것이다. 이론과 사상이라는 것도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 씌여 있는 이론이나 사상, 혹은 누군가가 또 다른 이에게 가르쳐주는 이론이나 사상이 아니라, 실제로는 생각하는 방식,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이익과 손해를 판단하는 사고의 흐름이 사람들의 행동을 좌우한다.

 

 

이런 얘기를 꺼낸 이유는,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이'세상은 이런 게 문제이니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타당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그(들)을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이 얘기는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차별에 대항해 싸운다는 운동권 안에서 벌어진 수많은 차별의 사건들을 기억할 수 있다. 운동권을 의심해 봐야 할 존재라는 게 확실해진다. 차별을 부수어 버리자고 주장하는 운동권들 내부에 차별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운동권을 부정하거나 우습게 보거나 위선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도 별루다. 어떤 존재건 완전하지 않고 역동적이기 때문에, 그 존재의 가치는 변화의 가능성으로 판단하는 게 더 확실하다.

 

앞대가리가 길기는 한데 진짜 하고픈 얘기는, 돌팔매질 당하더라도, 운동권은 스스로 변화의 가능성을 묻어버릴 무덤을 파고 있다는 얘기.

 

 

1.

 

요즘 너무나 아타까운 사건은 전교조의 연가투쟁이다.

 

그대는 전교조의 연가투쟁을 지지하는가? 그대가 운동하는 사람, 활동가, 진보적인 사고 방식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지지하는가? 혹은 전교조 조합원이거나 교사이기 때문에 지지하는가?

 

전교조는 덫에 걸렸다. 교육부와 보수적 교육계가 깔아놓은 덫에 걸렸다. 전교조는 한국 사회의 '교육계 권력'의 담지자임을 천명하였다. 교장이나 교감, 장학관이나 장학사, 교육관료는 쏙 빠지고 전교조만 독박 썼다.

 

 

전교조가 교원평가를 적극 반대하는 이유는 이 바닥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교육부는 전교조를 사냥하기 위해 교원평가를 시행하려고 한다. 이건 진실이다.

 

지금의 학교 운영 수준으로 보아서는 학생과 학부모가 교원 평가에 참여하기란 대단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학부모가 그렇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진학 상담받을 때나 만나게 되는 교사를 평가한다는 건 우습기도 하다. 이처럼 형식적인 교육부의 교원평가 방식은 확실히 교사 간 줄세우기를 통한 통제의 시도이다. 일본의 경우, 교원평가 실시 후 교원노조가 약해졌다는 얘기도 있다. 아마도 교육부의 교원평가 실시는 전교조의 조직력 하락에 기여할 게 뻔하다.

 

 

전교조는 요즘처럼 강고한 '교원평가 반대' 말고는 방법이 없었을까? 분명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허나 다른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심각한 건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 없었던 그들의 사고방식에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전교조는 교사에 대한 평가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평가를 하는 사람이지 평가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사회적 활동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공익을 위한 활동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교사의 활동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교사는 언제나 감시와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교사들을 감시하고 평가해야 하는가? 이제까지는 분명 교장-교감이라는 권위적이고 파쇼적인 위계가 교사를 감시하고 평가해 왔다. 전교조는 이에 대항한 싸움에 앞장섰고 성과도 얻었다. 모든 학교를 해방시키지는 못했지만 학교 민주화에 기여한 바가 있다. 그러나, 권위적 위계에 의한 감시와 통제가 문제라고 해서 권위적 위계에 의한 평가를 수평적, 연대의 관계에 의한 평가로 바뀌는 것을 막아서는 안된다.

 

전교조가 밟아버린 덫이 바로 이것이다. 교육부의 새 교원평가안의 속은 권위적 위계에 의한 평가이지만 겉은 수평적, 연대의 관계에 의한 평가이다. 실상이 이렇다면 전교조는 처음부터 제대로 된 교원평가를 수행하자고 했어야 했다. 그런데 제대로 된 교원평가라 함은 실로 어려워서 상당한 교육개혁 과제를 수행해야 함께 달성할 수 있다. 단기적 대안으로 삼기는 뻘쭘해도 이왕 교원평가 얘기 나온 김에 교육개혁 과제를 주장할 수 있었다. 모양새는 교육부와의 '딜'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교원평가 방식은 합의해서 추진하고, 교원평가 수용할 테니 니들은 이거 받아라' 따위.

 

 

전교조는 점점 더 대중들로부터 외면받게 될 것이다. '교사는 일찍 퇴근하지 방학 있지 노후 보장되지, 얼마나 좋아'라는 꽤나 진실과 괴리된 오해 때문에 생기는 세간의 시기는 전교조로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졸업과 수행평가가 아쉬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는, 교사가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이익을 따내야 하는 대상이 되어버린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교사가 교육 현장에서 고통받는 만큼 학생과 학부모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하는 진심을 전달할 수는 있다.

 

아마도, 교사가 되기 위해 달달 외워야 했을 '교사는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진심이 대중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전교조는 여전히 '교육계'라는 이데올로기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계속 이어서 써야징. 좀만 길어지니 힘들어서 못 쓰겠당... ㅡㅡ;

 

 

짜증나

 

지난 2일(목)에 무슨 일었냐. 민주노동당 중앙당 퇴직자들이 모였다. '왜 모였냐'는 물음에 대한 가장 '진실한 답변'은 "이것도 인연인데"이다.

 

 

2004년 총선은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지위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엄청난 자원을 갖게 된 민주노동당의 중앙당 규모 또한 큰 변화를 가져왔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상근을 하게 된 것. 결국 중앙당은, '당료화'의 과제는 달성하지 못하고 '파편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었다.

 

상근자들이 업무 상 역할이 뚜렷하게 주어지면서 유기적으로 총합되는 '당료화'에 대한 어떠한 기획도 노력도 없었기 때문에 이는 달성할 수 없었고, 상근자들 각자 알아서 줄대고 충성하기에 바쁘도록 만들어서 업무의 유기적 결합을 시도하는 것이 오히려 피곤하게 만드는 '파편화'가 이루어졌다.

 

당연히 총선 이전과 이후의 상근자들 사이에서의 인간관계도 달라졌다. 총선 전은 규모가 작아 상근자들 사이에서 골고루 대화가 가능했다. 합리적이지는 않았지만 타부서 업무도 돕고 그랬다. 정치적 입장 차이 때문에 긴장이나 갈등도 있었지만 당의 성장이라는 목표(예를 들어 의회 진출)가 비슷해서 비교적 솔직한 대화가 가능했다. 즉, 인간적인 신뢰와 호의가 있었다. 그래서 각자의 인생을 위해서 중앙당직을 떠난 이들에 대한 '기억'이 있는 것이다.

 

당직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이유에는 중앙당직에 대한 불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부하기 위해서, 지역활동 개척을 위해서, 자신에게 더 어울리는 일을 하기 위해서, 정치적 야망을 위해서 등등의 이유가 중앙당직을 떠난 진짜 이유들이다. 당권 교체에 따른 사실 상의 축출로 당직을 떠난 이들은 거의 없다. 말걸기처럼 알아서 물러난 이들도 몇 있지만.

 

인연의 끈이라는 게 별게 아니긴 하나 가끔씩 땡겨 보기도 하는 것. 아주 오래전부터 소식이나 듣고 싶었던 이들 전화 한바퀴 돌려서 이제야 한 번 자리를 만들었는데 이걸 두고 조선일보는 '회동'이라고 한다. 지랄.

 

이렇게 한 때 민주노동당의 중앙당직을 지냈던 사람들이 모인다면 무슨 이유일까? 뭔가 도모를 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 사이에 이재영이나 김종철이나 김정진이 있다고 정치적 사건이 벌어질 수 있나? 뭘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인간이나 전 당직자들 모임에서 무엇이 도모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뭘 안다면 아주 나쁜 의도로 그런 소리 하는 것이다.

 

 

어떠한 정치적 협의도 불가능한, 민주노동당 전당직자가 모인 자리가 찌라시 언론에는 이렇게 비추어질 수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지만 무척이나 짜증이 난다. 더 신경질 나는 건 정우상이가 어떻게 알고 기사를 썼냐는 거다. 정우상이는 서울대 메아리 출신이다. 운동권 물 꽤나 먹은 92학번 녀석인데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 담당 기자가 된 듯하다. 이 새끼 눈치는 짱이라 어느 놈한테 붙으면 정보 얻을 수 있는지는 알아가지고 살살거리는 거 잘 한다. 몇몇 전현직당직자들한테 하루가 멀다 전화질 해대는 놈.

 

전상근자들 모여서 식사나 한 번 하자는 연락 받은 누군가가 정우상이한테 찔렀겠지? 우이씨, 재섭써! 이런 것 하고 슬슬 거래하는 걸 재밌어 하는 것도 병이다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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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내부균열 심각… 소수파 “주사파와 결별 불가피”


민주노동당의 내부 균열 양상이 심상치 않다. 북한 핵 실험과 국가정보원이 수사 중인 간첩혐의 사건 이후 당내 이견이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당 지지율까지 급락하면서, 민노당에선 “재창당을 하거나 이것도 안 되면 분당(分黨)이라도 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수파인 민족해방 진영은 “국정원의 음모를 투쟁으로 분쇄하자”고 했지만, 소수파인 민중민주 진영에선 “이번 기회에 북한에 대한 입장을 정리 못하면 당을 함께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는 구속된 최기영 사무부총장에게 탈당을 권유할 것으로 알려졌다.


2일에는 2004년 총선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지만 현 지도부와의 이견 등으로 당직을 그만둔 20여 명이 회동을 가졌다. 한 관계자는 “단순 친목모임”이라고 했지만, 이들이 앞으로 당내 노선 투쟁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오는 6일 확대간부회의에선 최근 사건들에 대한 당내 계파 간 논쟁이 벌어질 예정이다. 이 회의에서 재창당과 지도부 해산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한 관계자는 “다시 10년을 바닥에서 고생하더라도, 주사파들과의 결별은 불가피하다”며 “국회의원들이 현재의 기득권을 버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우상기자

입력 : 2006.11.04 00:41 08'


[기사 링크]

 

 

'해고 불가' 신화

 

해고 위협

 

민주노동당에는 25인승 버스가 있다. 이 버스를 운전·관리하는 당직자도 있다. 최부장이라는 분인데 상근자들은 대체로 '최선배님'하고 부른다. 나이가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꼭 나이 대접해 준다고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니다. 그분은 그냥 아저씨다. 그래도 삶의 궤적에서나 인격에서 '선배다움'이 있어 그렇게들 부른다. '선배'라는 소리 싫어하는 말걸기조차도 그런 호칭이 어렵지 않다.

 

악랄한 기업이 해대는 해고와 마찬가지로 민주노동당은 '최선배님'에게 해고의 칼을 들이대고 있다.

 

 

한심한 차출

 

지금 민주노동당 상근자들이 받는 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돈을 활동비랍시고 받으면서 당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다. 돈 얼마 못받는 것 알고 일을 시작했고, '생활 급여'란 기대하는 게 더 괴롭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때였다. 그래도 '한심한 차출'은 상근일을 더 짜증스럽게 했었다. 이를테면 자신의 업무가 아님에도 불려가서 일을 해야 하는 뭐 그런 상황. 각종 선전전 및 집회가 그러했다. 각종 선전전이나 집회가 '업무'일 수도 있는데 그게 왜 업무인지 아무도 설명해 주지도 않았고 합리적인 과정으로 부과된 업무도 결코 아니었다.

 

그 중 하나가 운전이었다. 말걸기는 다른 두 세명의 상근자에 비하면 아주 많은 횟수는 아니긴 했지만 꽤 여러 번 운전을 했다. 민주노동당 1호차로 불리는 당대표용 승용차 운전은 정말 왕짜증이었다. 피곤함도 두 배였다. 당대표를 뒷자석에 앉혀 놓았으니 일단 부담부터가 크다. 게다가 당시의 당대표였던 권영감은 운전사가 운전하는 게 맘에 안들면 시큰둥 하거나 짜증을 냈다. 아예 눈감고 앉아 있기도 했고. 진보정당의 대표가 승용차 없으면 가지도 못하는 곳에 가는 것도 아니면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는 건 겉멋 들어서라고 생각했지만(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 나이든 노인네가 여기저기 다니려면 힘든 일이라 생각하고 운전했었다. 근데 요즘 생각해 보면, 다시 대선후보 되려는 양반이니 힘이 모자랐던 건 아닌 게야...

 

1호차만큼 부담되지는 않더라도 9인승 승합차 운전도 꽤 피곤한 일이었다. 중고차를 사온 건데 사무국(현 총무실)이 엉망으로 관리해서 창원에서 13시간을 걸려서 혼자서 서울까지 끌고 온 적도 있었다. 차량정비소에서 차를 찾아올 때 차량 관리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물어다가, 말걸기 업무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리 일지까지 만들어서 사무국에 건네줬었다. 그래도 차량 관리 안해서 금방 망가져 버렸다.

 

차량이 금방 망가지는 건 당시 사무국장의 게으름 탓도 크지만, 당이 차를 두 대 가지고 있으면 안전하게 운행하기 위해 기울여야 할 노력이 많음에도 이를 제대로 할 사람을 두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그러다가 2종 보통 면허로는 운전하기 어려운 버스가 등장하자 별도의 운전·관리하는 당직자를 두었다. '최선배님'은 이 전문 업무를 혼자서 수행해야 하는 두번째 상근자이다.

 

조직은 커질수록 업무 영역이 분화되고 역할을 제대로 주어야 효율도 커지고 전문성도 높아진다. 말걸기는 운전하지 않게 되어서 좋아했었다. 일 부리는 자 입장에서는 엉뚱한 일 안해도 되게 되었으니 '네 일이나 잘 해라!'라고 큰 소리 칠 수 있지 않은가.

 

 

책임과 권한

 

운동권들 대부분은 '책임과 권한'이라는 말을 알지 못한다. 그게 사전에 있는 한국말인 것만 안다. 그리고, 선출과 임명에 따른 책무와 임용에 따른 책무도 구분을 하지 못한다. 운동의 오랜 역사는 이런 것들을 구분하여 조직을 운영하기보다는, 한쪽 권한자자 '수단방법 불문 관철' 시도와 이에 저항하는 상대편의 '악악대고 배째기'가 뒤엉켜 결론을 내리는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해 왔다. 이 방식에서 가장 잘 인용된 말은 '활동가로서의 자세'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조직에서는 위임 받은 권력(소위 지도부 혹은 집행부라 불림)이 위임 받은 권한을 행사하라고 사무국을 둔다. 그게 보통 중앙단위에 사람들 몰아 넣고 기획이니 정책이니 조직이니 홍보니 하는 업무를 하게 만드는 곳이다. 그런데 운동조직에서는 위임에 참여한 조직원(당원)이 위임 받은 자들(당지도부-사무총장 따위)의 업무 지시를 받는 상근자들이 되다 보니 이상한 모양새들이 많이 연출된다.

 

상근자들도 '정치인'이다 보니 그러기도 할텐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개길 때는 '나도 활동가(정치하는 사람)'이고, 하기 싫은 업무를 지시 받을 때는 '나도 노동자'라고 한다. 사실 둘 다 맞는 얘기기는 하지만 영악한 태도인 것 확실하다. 그리고 그게 자신의 이해 관계에 어울리는 행동이기도 하고.

 

이런 태도는 '책임과 권한'을 이해시키고, 책임 있는 만큼 권한을 부여하고, 책임을 많이 질 수 있는 자에게 더 많은 권한을 일임하는, '합리적인 관료 체제'가 자리 잡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보다 더 큰 원인은 당지도부가 '책임'과 '권한'을 일치시키는 노력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활동가로서의 자세'만을 강조하며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잣대로 상근자의 업무를 평가해왔기 때문이다. 출퇴근시간 강조(일찍 출근 야근 장려), 데모 열심히 나가기 등등.

 

'그대의 업무는 XXX이다. 그 업무 수행에 있어서 그대의 책임은 XXX까지이다. 그래서 그대의 권한은 XXX까지이다.' 이런 규범(혹은 지침)은 조직의 운영에 있어서, 특히 일정 규모 이상의 조직에서는 필수이다. 당은 정치조직이다보니 권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두고 여럿이 충돌할 가능성이 크므로, 행정의 최종 권한자(이자 책임자)가 권한을 조정하는 역할도 잘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사무총장.

 

그 누구나 알고 있듯이 운동권들 중에는 이에 관심 있는 자들이 없으므로 민주노동당 등 운동단체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①상근자들에 대해 고유 업무에 따른 평가가 불가능하고, ②따라서 효율적인 업무 재설계에 따르지 않은 인사발령이 이루어지며, ③또한 인사권자(규범적이든 실질적이든)의 개인적 판단에 따라 채용과 해고가 이루어진다. 이는 운동권 조직의 일상이다.

 

 

민주노동당의 '해고 불가' 신화의 무기력함

 

민주노동당의 해고는 이제까지, '더럽고 치사해서 나간다'는 맘을 먹을 때까지 갈구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말걸기는 당게시판이나 의결기관의 구성원들의 발언, 뒷골목 술집에서 '원칙'을 부르짖는 당원들의 입에서 등장하는 '해고 불가'의 신화는 거짓이라고 단언한다.

 

우수사랑은 보육-아동복지 정책을 담당했음에도 그가 2004년 총선 직후 공채된 정책연구원의 '신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무총국 복귀를 종용당했었다. 그리고 그가 사무총국 복귀를 거절하자 정책위의장과 사무총장은 정책위 발령도 내 줄 수 없다며, 사실 상 해고 통보를 했다. 결국 '권고 사직'이 되었다. 의정지원단의 C실장도 정책위에 남겨두지 않겠다는 인사권자의 의지에 저항해 보았지만, 대기발령이라는 처지로 얼마 버티지 못했다. 또한 마찬가지로 사직하였다.

 

다른 예는 영상담당 상근자 해고 건이다. 정책위에서 자신의 정파와 같은 입장일 수 없는 오래된 상근자들을 제거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금전적 이해가 걸린 해고였다. 영상담당 상근자가 있는 한, 당의 입장에서는 '영상물 제작 발주'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운동권 영상 제작업소에 영상물 제작 발주를 하여 당의 자원을 갈라먹기 위해 영상담당 상근자를 해고했다. 물론, 그 영상 제작업소란 현지도부의 색깔 정파의 업소이다.

 

어떤 이유인지는 아직 감은 오지 않지만 '최선배님'의 해고도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 듯하다. 영상담당 상근자 해고 때와 마찬가지로 '최선배님'에 대한 좋지 못한 평가를 들먹이며 상처를 내는 방식으로 떠나게 만들고 있다. '일도 못하는 사람', '일 열심히 안하고 노는 사람' 등등.

 

민주노동당의 해고는 인사권자(당규로는 당대표이지만 사실상은 사무총장. 일부는 정책위의장에게 있다고 봐야 함)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행해진다. 한심한 노릇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어찌 해고를 하느냐!'며 원칙론 들이대며 항의하는 사람들에게도 갑갑함을 느낀다.

 

민주'노동'당이니까 해고하면 안된다는 원칙만 자꾸 들이대 봐야 소용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닌가. 물론 치사한 방식으로 사람 쫓아내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항의하고 결과적으로 못하게 막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게 당연하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상처받은 상근자들은 떠난다. 왜? 해고 위협을 딛고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해도 자신의 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해고의 근거가 없다는 건 업무 수행을 제대로 한다는 근거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여전히 쫓아내려 했던 인사권자, 그리고 이를 열심히 도왔던 동료 상근자들로부터 린치는 계속당할 테니까.

 

 

'해고 불가' 원칙보다는

 

앞서 말했듯이 민주노동당은 상근자들에게, 상근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방식으로 분명하게 책임과 권한을 제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즉, 합리적인 평가가 불가능한 구조이다. 해고까지 얘기할 것도 없이 모든 인사 이동이 별 근거가 없다. 그냥 그래서 쟤는 여기다 심고, 쟤는 저기다 심고,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는 얘들은 저편에다 몰아 넣고... 뭐 그런식이다. 현 조직실장은, 당대표 선거 때 조승수 도왔다는 이유로 쫓아내놓고서는 조직이 잘 안 굴러가니 다시 데려왔다. 사람을 내쫓든 데려오든, 사람 피땀 빨아먹으려면 능력이라도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데 그걸 안한다.

 

말걸기 생각에는 당지도부(그리고 지도부격에 있는 운동권 인사들 대부분)는 일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일을 할 줄 알아야 일이 되는 방식으로 임무를 주고 권한을 줄 수 있다. 그리고 평가도 할 수 있다. 못한다고 야단치거나 한직으로 쫓아내거나 해고를 하는 게 아니라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능력 향상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제시할 줄도 알 것이다. 모든 수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천덕꾸러기는 쫓아내기도 해야 할 것이다. 해고 말이다.

 

2004년 총선 후부터 민주노동당은 제대로 된 당료조직을 중앙에 만들었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그게 뭔지 모르는 정도를 넘어 망치는 조직문화를 가진 자들이 당권을 장악해서 당료조직 구성은 실패했다.

 

아무리 운동 조직이라며 '해고 불가' 원칙만을 강조하는 데에 그칠 일이 아니다. 이보다는 일에 있어서의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책임과 권한이 뚜렷해야 당직 수행에 대한 비판과 방어, 임용된 자들(당 전체로 보면 상당한 권한을 가진 자들이다!)의 감시가 가능해지며, 이들의 능력 향상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도 도입할 수 있다. 이게 당의 능력을 키우는 방편이다.

 

 

'최선배님' 해고에 맞선 움직임을 지지한다. 무엇보다 이런 일에서는 당사자인 '최선배님'과 형수님이 상처를 덜 받는 게 중요하다. 두번째로 당의 인사 문화에 대한 뼈아쁜 통찰이 있길 바란다.

 

 

 

※ 말걸기가 예~전에 사무총장한테 '책임과 권한'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못 알아 들어서 좌절했던 적이 있다. OTL. 누구였냐고?

 

 

한심한 성과 들추기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아주 흥미로운 공지가 올라왔다. 몇 일 지난 것이긴 한데 너무나 의미 심장하다.

 

[보고] 중앙당 서명운동 실천 현황(19일)

 

이 공지를 올린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이용대를 비판한 정책연구원들이 당 방침(FTA관련 서명받기)을 얼마나 '생까는 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마녀 사냥'용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나서 판갈이에,

 

중앙당직자들, 3일간 서명운동 마감

 

이라는 뉴스도 올라왔다. 얼마나 열심히 서명운동들을 했는지 4만 명의 서명을 받았단다.

 

말걸기가 '의미심장'하게 생각하는 점은, 중앙당직자가 3일 동안 서명만 받으러 다녔다면, 그 당직자는 평소에도 별로 일을 하지 않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입증'한 것인데, 주사파들은 자랑이라고 이걸 광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말걸기가 차기 사무총장이 된다면 3일 내내 열심히 서명받으러 다닌 당직자들, 혹은 그에 버금 가는 당직자들는, ①평소에 일을 게을리하고 있는 자이거나, ②업무 설계가 잘못되어 '해도 고만 안해도 고만' 업무가 부여된 자이므로, 중앙당직자로서의 자질 평가를 하거나 업무 재설계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현 사무총장이라도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말걸기의 이런 평가를 두고 중앙당직자들 모욕하지 말라며, 노고를 깍지 말라며 지랄발광할 자들이 있을 터라 한 마디 더 붙여 줘야겠군. 행여, 3일 동안 열심히 서명을 받으러 다닌 당직자 중에 일상에서 중요한 업무를 열심히 수행하는 자가 있었다면, 사무총장 등 최고위원들이 바/보/새/끼/들/임을 확인한 거다. 중요한 당무를 방해하다니... 그게 다 자기들 성과가 될 터인데... 쯧쯧...

 

또, 지역의 상근자들도 열심히 하는데 그들도 욕보이지 말라고 할지 모르겠다. 비교할 걸 비교해라. 중앙당직자들의 역할은 길거리에서 '비조직-지나가는 대중' 만나는 데에 있지 않다. 그들은 '당료'이다. 당.료.

 

창당 초기에는 중앙당직자들 툭하면 '동원'되어서 서명도 받고 거리 선전전도 하고 데모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차츰 줄어들었다. 왜냐면 비합리적이니까. 당 중앙의 역할은 정책을 만들고 사업을 기획하고 당을 홍보하는 것이다. 그러라고 자원을 집중해서 '당료'들을 한 데 모아 놓은 것이다. 그들의 능력과 피를 길바닥에다 뿌리는 것만큼 그들을 비능률적으로활용하는 형태는 없다. 차라리 놀려라.

 

지역의 활동가들 중에서는 중앙당직자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선전전 등등을 하면 좋아하는 사람들 있다. 좋게 생각하는 여론이 있다. 중앙당직자들이 '모범'을 보였다며 환호하는 여론. 그에 맞추어 주려는 지도부의 노력(?)은 여태껏 있어 왔다. 이게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거다.

 

왜 지역의 여론은 중앙당직자들의 '선도'를 좋아할까? ①지역에서도 꼴통들이 있어서 길거리에 나가서 허공에 씨부리는 게 '최고의 실천'이라는 환상을 가진 자들이 있다. ②중앙당에서 기획을 내놓지 못하니 '몸빵'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①이야 생까도 되는 것이고, ②는 중앙당, 특히 당 지도부가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기획이 없는 자들, 대가리가 빈 것들이 '거리'만 좋아해가지고 기획해야 할 자들, 기획을 하도록 해야 할 자들을 거리로 내몬다...

 

 

사실 뭐, 3일쯤 봉사활동한다고 생각하면 서명하러 다니지 못할 것도 아니지만, '무능'을 가리기 위한 '동원'에 입과 몸을 대주는 게 제정신 있는 자들에게는 쉬운 건 아니지... 이걸 알고도 힘들게 길바닥에서 고생한 몇몇 동지들은 대단한 포용력을 가진 게 분명해...

 

 

주사파와의 결별

 

왜 주사파는 한국사회에서 '진보'에 속하는가?

 

결정적 순간마다 주사파들은 '진보'의 가치를 내동댕이쳐 왔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는데 이를 두고 '자위권'이라며 두둔한다. 악당 미국이 북한에게 하는 짓 보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핵'이 그냥 '핵'일 뿐이다. 평화적 사용을 아무리 강조해도 핵은 인류의 재앙이기 때문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저 북한 정권의 안위가 중요할 따름이다.

 

지난해 주사파, 혹은 그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민주노동당의 지방의원들이 한나라당을 도와 부동산세 인하를 주도 혹은 협조했던 일이 있었다. 세금은, 권력이 삥뜯는 돈인데 그거 모아다가 필요경비에 쓰기 위함이다. 현대국가에서는 '분배'가 '필요경비'의 주요한 항목이다. 그래서 세금 포탈하는 것들은 중죄인이고, 가진 자들 세금 깎아주는 것도 반동 범죄로 취급해야 한다. 여기서 '가진 자'들이란 연봉 몇 천 받는 노동자도 속한다. '진보'의 가치에 비추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사파는 언제나 '진보'의 진영에 위치해 있었다. 왜 그럴까? 주사파의 조직적인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회경제 정책은 없다. 본 적이 없다. 항상 진보적 학계나 타정치그룹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정책을 차용해 왔다. '진보'의 가치를 내재한 내용을 생산한 적도 없는데 그들은 '진보'라 한다. 이상한 노릇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들이 '진보'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이 있다. 바로 분단이다. 남북한의 분단은 평화를 짓밟는 폭력과 폭압을 불렀다. 아직도 유감없이 능력 발휘하는 그 후예들을 낳은 한국의 군사정권이 그러했고, 미국과 같은 제국주의의 영향력도 그러하다. 주사파는 일면 '제국에 대한 항거'라는 측면에서 '진보'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실질적인 의도는 북한 정권 보위이지만, 정치적 관계에 있어서는 '반미반제'의 의미를 담기 때문이다.

 

또 하나, 그들은 그들의 교리에 따라 '아래로' 내려가서 조직을 만들었다. 즉 한국사회가 앉고 있는 부조리의 공간들, 부당함과 차별이 있는 곳에서 조직 사업을 해왔다. 그래서 '운동'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그들이 있다. 이념적으로는 '제국의 항거'가 그들의 '진보'를 확인해 주었고, 현실적으로는 조직이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공간에 있기 때문에 '진보'가 되었다.

 

 

주사파와 진보진영이 결별할 수 있을까?

 

주사파가 아닌 진보진영의 활동가 및 지원자들은 주사파를 다 싫어한다. 잘 따져보면 북한과 미국에 대한 태도, 단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한국사회의 우파와 본질적으로 다른 바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지위라고나 할까, 혹은 정치적 효용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들 때문에 소위 '진보 정책'을 지지할 뿐이다. 게다가 패권적이기까지 하니 좋아할 수가 없다. 그래서 '결별'을 꿈꾸는 자들이 많다.

 

그런데, 과연 한국의 진짜 진보진영이 되어야 할 좌파는 주사파와 결별할 수 있을까? 말걸기의 대답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드슈.'

 

주사파는 사회경제적 입장에서는 우파이지만 분단이라는 한국 상황에서는 한국사회의 우파와 '진실한 결합'이 불가하다. 소위 좌파들은 '비판적 지지의 망령'의 진보진영에 대한 해악을 지적해 왔지만, '반한나라전선' 따위가 주사파들의 헤게모니 하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은 간혹 잊는 듯하다. 어떤 미친 우파가 주사파와 화학적 결합을 시도하겠는가? 바로 아웃인데.

 

'반한나라전선', '상설공투체' 등등으로 표현되는 '비판적 지지 ver.2'는 지난날의 '비판적 지지'와는 달리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지분(9개의 의석)을 쥐고 타정치세력(열우당 내 개혁파 등)과 거래를 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정치공학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열우당 내 분파의 입장에서는 이를 잘 활용할 이유도 있다. 특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만의 독자적 색깔을 지우고 자기네들보타 왼쪽 성향의 모든 유권자표를 획득하는 전술로서 말이다. 그러나 스스로 '주사파' 딱지를 붙일 수는 없으니 화학적 결합, 즉 새로운 정당의 창당은 꺼려할 것이다. 게다가 열우당의 정계개편의 동력도 상당히 떨어지니 더더욱 쉽지는 않다.

 

주사파와 진보진영의 결별은, 지금으로써는 민주노동당의 분당이라는 형식으로밖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두 개로 쪼개진다고 가정할 때, 두 개의 안정적 조직의 탄생이라는 조건이 갖추어질 때 분당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주사파들이 '비판적 지지', 즉 보수반동에 대항해야 한다는 대의를 팔아먹을 수 있는 곳이 열우당 세력 따위와의 결합에 있지 않다면 과연 어디에서 안정적 정치조직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그럼, 소위 '좌파'가 독립하면 진보진영이 나아지는가?

 

주사파가 진보진영을 활개치게 된 것은 한국의 좌파가 무능하기 때문이란 말로밖에 설명이 불가하다. 사실 한국에서는 어떠한 경우라도 좌파가 무조건 불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능력 발휘가 쉽지 않다. 우파랑 같은 능력을 갖추어도 좌파는 무조건 지게 되어 있으니까.

 

이 법칙은 진보진영 내 주사파 대 좌파의 대결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조직의 확대는 설득과 교육에 있는데 주사파의 이념은 한국 사회의 통념인 우익 이데올로기에 기반하므로 설득과 교육이 무난하다. 약간의 민족주의 감수성을 자극하여 북한에 대한 긍적적 태도와 미국에 대한 악감정만 부추긴다면 어렵지 않다. 반면, 좌파는 모든 통념에 문제를 제기해야 하므로 이해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는 더 어렵다. 타고난 반골이 아닌 다음에야 좌파의 그 지리한 주장을 쉽게 이해하겠는가.

 

아무리 불리한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앞서지 못하면 무능한 것이다. 필요한 만큼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니까. 소위 '좌파'라고 하는 자들, 정파들은 '좌파가 무능하다'라는 말을 곧 잘 한다. 그런데, 그 무능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 말걸기 생각에는 진짜 그들의 무능함은 그점에 있다. 주사파라는 내부의 우익 정치그룹과 대치하면서 미제국주의, 한국의 우파와 대결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지만, 대결의 조건을 하나씩 개선해 나가는 방법에는 관심도 없고 생각도 없어서 무능한 것이다.

 

수위 '좌파' 그룹들은 세계사에서 나름 입증된 좌파의 주장들을 이해하고 있다. 또한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 대부분, 특히 조직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각 정파와 주요 인사들은, 주사파와의 경쟁에서 '정글의 법칙'만을 따를 뿐이다. 진보진영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민주적 절차를 실현한 적이 없다. 너무 심한 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망가지는 좌파'를 이루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당헌, 당규는 나름 민주적 절차를 만들어 놓고 있다. 선거나 회의 규정. 가장 기초적인 당원의 권리와 의무 등. 한국사회 내 여타의 정치조직에 비해 훌륭한 절차는 두고 있다. 그런데 소위 '좌파'들도 여기까지만 보고 있는 것이다. 이걸 룰이라고 만들어 놓는 데만 멈추고 지랄하고 자빠져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당헌, 당규에는 '내부 권력에 대한 감시'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 모든 진보진영의 유력 조직 및 단체가 이를 보장한 데는 없다.

 

각급 기관마다 회의록을 작성하도록 한 당규는 당내 '민주주의자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당권을 장악하고 있던 '좌파' 무리들은 '현실적 문제', 즉 '행정적 자원을 소모'해야 한다는 이유로 있으나 마나한 규정으로 만들어 버렸다.

 

웃기는 것, 민주노동당에는 '공식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공식 문서'라 함은, 각종 회의에서 결론을 내리면 그 과정까지 제대로 기술하여 당이 공식적으로 권위를 부여한 문서라는 뜻이다. 즉, 독립된 기관에 의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좌파는 이런 문제를 우습게 여긴다. 당이 돈이 없으니 아직 그럴 만한 여력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이다.

 

기록이 공유될 때 권력에 대한 감시가 이루어질 수 있다. 제1기 최고위의 '위대한 말말말'은 언론사의 기자에 의해 기록되었지 당은 기록하지 않았다. 그 기록은 당원들에게 공개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많은 당원들이 모르는 사실은, 국회의원단들은 '정치적' 이유를 들어 그들의 회의를 기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감시 당하지 않는다.

 

소위 '좌파'의 모든 정파들이나 유력 인사들은 자신들이 감시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제도들은 다 제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식적이고 정당한 평가가 방해를 받는다. 결국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좌파'는 과연 '상식적'일까? 2004년 국회의원 후보들에게 노동자 평균임금만 받겠냐는 선서에 심상정은 거부하다가 막판에 이름을 넣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지금 FTA 싸움에서 잘 나가는 심상정에게 감시와 규제의 제도를 들이댄다면 '전진'은 찬성할까?

 

결국 뽀록나서 선관위로부터 수모를 당한, 지역위 상근자 임금 세탁 제도도 당내 좌우 합작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한 대안은 중앙당 상근자가 제시했음에도 다 씹었다. 당이 건강하게 존재할 수 있는 방식에 '좌파' 무리들은 방임한 죄가 있다. 당원들의 소통과 교육을 등한시 했다. 그럴 돈 있으면 다른 티나는 사업에 사용했었다. 그게 우파랑 무엇이 다른가?

 

이런 '좌파'가 독립해 봐야 진보진영이 나아질리는 없다.

 

 

주사파와의 결별보다 중요한 것

 

주사파와의 결별은, 주사파에 비판적인 당원들이 민주노동당을 뛰쳐나가 새로운 당을 만들었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다. 정치적 계기가 없으면 분당을 멸망이다. 2007년 대선에서 '반한나라당 전선'이 나름 성공한다면 분당의 계기를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반한나라당 전선'이 한편으로는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주사파들이 안정적으로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정치지형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진보 진영 스토커' 역할은 끝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주사파와의 결별을 꿈꾸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한심 짓거리로 매일 사람들 머리를 쥐어박는 주사파와 못해먹겠다는 탄식보다 중요한 게 있다. '좌파' 스스로 좌파의 원칙과 민주주의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들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부메랑을 날아온들 '권력에 대한 반감시' 제도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기록과 공개. 그리고, 새로운 정치 활동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민주노총을 거치지 않고 노동자를 만나고, 지역주민을 직접 대화할 수 있고 등등. 또 뭐가 있을까?

 

중요한 건, 이러한 실천을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그룹, 정파를 형성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정파는 정치적 이념의 일체성이 필요하므로 이데올로그가 필요하다. 또한 이념을 설파할 수 있는 조직가가 필요한다. 그리고 그런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스탭이 필요하다. 문제는 새 정파가 탄생하길 바라는 말걸기가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게다. 역시 조직은 함께 하는 것인데 사람을 묶는 능력이 없다보니 좀 한심하긴 하다. 누가 좀 나서주지...

 

 

그럼, 주사파는 어쩔 건데?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는 주사파는 극소수의 종교단체일 수밖에 없다. 그냥 그러고 살라 그래.

 

 

어이가 없어서 한 마디 해줬다.

 

민주노동당 당원토론방에 [찬물]이라는 자의 글이 올라와 있다.

 

▲ 심재옥 최고위원의 '업무 보다 육아가 우선' 주장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봅시다

 

 

그래서, 한 마디 해줬다. 아주 논리적으로 구구절절 얘기하기는 귀찮고 해서, 간략한 콩트와 길지 않은 잔소리와 블랙 코미디로 답해줬다. 이러니 좀 길어졌네.

 

▲ 찬물 / 제대로 된 최고위원회라면...

 

 

말걸기의 게시물을 옮기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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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있었을 법한 최고위 회의를 상상해 봅시다.

 

(찬물님이 전해 주신 말씀만으로도 당시 상황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을 것 같군요.)

 

○ 문성현 대표 : "한미 FTA 저지 투쟁에 올인하기 위해 최고위원들이 전국순회 등 모범을 보이자"

 

○ 심재옥 최고 : (아마도) "나는 아이를 돌봐야 해서 전국순회는 어렵다."

 

○ 문성현 대표 등 기타 최고위원들 : (아마도) 한미 FTA 저지 투쟁의 중차대성을 설명하며, 최고위원들의 모범이 있어야 한다는 등... 심재옥 최고에게 책임감 있게 참여할 것을 독려...했겠지요.

 

○ 심재옥 최고 : (아마도 사정을 좀 더 상세히 설명하였으나 여전히 난감함이... 그리고 나서) "업무는 중단할 수 있어도 육아는 포기할 수 없다"

 


■ 제대로된 최고위원회라면...

 

○ 문성현 대표 : "한미 FTA 저지 투쟁에 올인하기 위해 최고위원들이 전국순회 등 모범을 보이자"

 

○ 심재옥 최고 : "나는 아이를 돌봐야 해서 전국순회는 어렵다."

 

○ 어느 최고위원이든간에 : "물론이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심재옥 최고의 일정은 육아에 지장이 없도록 계획해야 옳다."

 

○ 문성현 대표 : "심재옥 최고의 일정은 실무를 준비할 때 육아에 지장이 없도록 계획하는 것으로 한다."

 


아무래도 후자의 회의가 깔끔하면서도 진보정당의 지도부 답지 않나요?

 

찬물님께서 말씀하신 "업무와 육아문제의 대비"는, 여성의 의지가 아닙니다. "업무와 육아문제의 대비"는, 언제나 남성이, 권력이, 자본이 그리 하도록 했답니다. 그것이 어떤 일이건간에 자신의 일을 원하는 지구 상의 모든 엄마들은 "업무와 육아문제가 대비"되는 상황을 무척이나 싫어한답니다. 그 둘이 대비되는 순간 둘 중 하나는 충실히 이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내면적 갈등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건 엄마들(혹은 엄마가 될까 생각하는 여성들)에게는 큰 고통이랍니다.

 

찬물님께서 말씀하신 '범부'들은, 그 고통을 이겨내기 어렵도록 하는 사회 때문에 둘 중 하나를 포기하거나 뒤죽박죽으로 삽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하는 게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최고지도부라고 해서, 그 책임이 막중하다고 해서 '예외'로 두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 누구가 최고지도부라고 해도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고위원인 엄마가 아이를 성실히 돌보는 걸 제대로 보장하지 않으면, 민주노동당이라는 조직은 언제든지 '예외'를 인정할 준비가 되도록 내면화됩니다. 사실은 이미 내면화되어 있기때문에 심재옥 최고가 더욱 고통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마지막으로 웃기도 어려운, 실제 있었던 블랙 코미디 하나는 들려드리지요.

 

중앙당 상근자 하나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1년 육아휴직을 신청했습니다. 이 상근자와 함께 정말 열심히 일하고 싶은 또 다른 상근자가 말했습니다.

 

"동지, 정말 육아휴직 쓸겨? '진보'도 좋지만 우리에게는 '변혁'의 길이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