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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노조에 대한 저주

 

2007년 1월 6일은 꽤나 '역사적'인 날이 될 듯 싶다. 4~500명의 전국 상근자 중에서 80여 명으로 왜소(?)하게 시작하기는 하지만, 민주노동당 노동조합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 진보정당 역사에서는 빠질 수 없는 조직이 될 테니까. 만들어지기 전부터 민주노동당 노조에게 '저주'가 쏟아지는 것만으로도 역사가가 쉽게 뺄 수는 없게 되었다.

 

 

말걸기도 당에 노조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얘기를 꺼낸 사람 중에 하나였는데, 그 얘기가... 그러니까... 2001년? 2002년 쯤이었나? 제대로 기억도 못하네. 민주노동당 중앙당 상조회장이었던 시절 노조를 만들 요량으로 총무와 함께 노조의 상근자 노조로서 대표적인 전교조 상근자 노조 간부들과도 면담하고 그랬었다. 그때는 전교조와는 상황이 참으로 다르다는 점만 확인한 듯하다. 배울 게 없다는 뜻은 아니고. 하지만 업무 과중(?)과 상근자들의 시큰둥한 반응으로 노조 추진은 자연스럽게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그 후 2004년 총선 전까지도 여러차례 노조를 만들자는 얘기가 있었지만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상근자들의 노조를 만드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많이 있었는데,

 

① 민주노동당 상근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② 정치조직에서는 목표를 정치력으로 달성해야 한다.

③ 지역조직의 상근자를 배제하는 것은 명분이 없고 그들을 포함하기도 어려운 조건이다.

④ 다수가 참여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할 게 뻔하다.

 

등이 이유였다.

 

①의 이유를 든 확실한 배경도 있다. 창당 초기부터 당에서 일한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당을 만든 사람들이다. 물론 말걸기도 당을 만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감정은 사뭇 다를 것이다. 왜냐면 몇몇 상근당직자로 말하자면, 그들이 없었더라면 당이 실제로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직위는 국장이니 불리지만 사실은 상무이사나 마찬가지이다 보니 '노동자'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이상한 노릇이었다.

 

물론 이와는 다른 ①의 이유를 들기도 했다. 전업 활동가는 노동자일 수 없다는 뜻으로 말이다. 이런 주장은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②의 주장은 ①과도 연동되지만 꼭 일치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러하다. 상근자가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②의 이유로 노동조합을 결성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긴 하다. 그 누구의 적절한 지적처럼, 지도부의 지시나 태도가 불만이면 노동자성을 강조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할 때는 활동가성을 강조하는, 다소 이율배반적인 행태가 만연했던 사실에 비추어 보면, 정치력을 발휘하여 스스로의 목표를 달성할 수도 있는 환경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명백하게도 ①과 ②의 주장을 했던 사람들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실장급(당시는 국장급) 인사들과 '활동가 이데올로기'에 쉽게 사로잡히는 주사파들이었다. 주사파들을 제외해도 지도부와 맞짱 뜰 자신이 있거나 지도부도 어려워 하는 실무자들에게는 노조란 오히려 그들의 정치력 발휘에 장애가 될 수 있었다. 노동자란 사용자로부터 근로감독을 받는 존재이지만, 노동자성을 부정하면 보다 더 자율적일 수 있었으니까. 어쨌든 이런 주장은 이해관계에 기반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이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해관계란 언제나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중요하다.

 

③의 이유는 노동조합을 만들고자 한다면 가장 크게 부딪히는 난관임에 틀림없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당시에는 지구당에서 유급상근자를 두는 게 불법이 아니었음에도 실질적인 소득의 격차가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중앙당은 60여만 원 받고 있었지만 지구당 상근자들 중에서는 10~20만 원 받는 사람들도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지역으로 내려갈수록 지역에서의 부조가 발달해서 따지고 보면 큰 차이가 아닐 수도 있으나 확실히 지역의 상근자들의 급여는 어처구니가 없었던 건 사실이다. 이러니 중앙과 지역의 상근자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같을 수 없었다. 하나의 노조로 묶이기가 쉽지가 않았다.

 

④의 이유는 사실 상 '정치적 명분'이었다. 다수가 참여하지 않은 채 노조가 결성되면 웬지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려는 시도처럼 보여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2004년 총선 전은 확실히 노조가 출범하기에는 여러 조건이 어울리지 않았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점은 적지 않은 상근자들이 ②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작금의, 민주노동당 노조 출범에 퍼붓는 저주도 예전의 이유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에다가 도덕성이나 활동가 윤리 규범을 들이대는 짓, 가난한(?) 지역 상근자들 들먹이는 게 더할까.

 

①~④의 이유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노조에 참여하지 않는 상근자들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의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고, 여전히 ①~④의 이유로 노조 참여를 꺼리는 상근자들이나 노조 출범을 탐탐치 않게 여기는 자들에게는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①과 달리 민주노동당 상근자는 노동자가 맞다. 객관적으로 그러하다. 민주노동당 상근자는 2004년 총선 이후 그 지위, 업무 수행에 따르는 권한이 질적으로 낮아졌다. 지도부나 정무직들이 생까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예전에는 상무집행위원회(지금으로 치자면 최고위와 비슷)의 결정 사항에 민감한 상근자들이 별로 없었다. 그들에 비해 꿀릴 것 없는 권한을 행사했었으니까.

 

②의 이유는 노조 결성의 이유이기도 하다. 노조가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는가? 스스로 활동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조가 아닌 정치력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믿는 모양인데, 그들은 참으로 바보다. 지 꼬라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그저 활동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고고한 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노조 결성 자체가 특정한 영역에서의 정치력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임을 깨달아야 한다. 지도부에 반기를 드는 것만 정치적인 행동이 아니다. 제대로 된 질서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정치적인데. 그 질서가 나락으로 떨어진 상근자의 지위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③과 관련하여 중앙과 지역의 상근자들을 대조하며 중앙 상근자들, 특히 정책연구원들을 배부른 놈들이라고 하는데, 2004년 총선 이전과 비교해 보면 지역 상근자들의 상황은 훨씬 좋아졌고 중앙당직자들과의 격차도 엄청나게 줄었다. 어는 동네는 거의 같다. 월 60만 원으로 살인적인 여의도 물가를 버텨가는 와중에서도 노조 얘기 했었는데, 그 시절을 아냐며 배부른 소리한다는 것들은 입을 다 찢어놔야 한다. 그 새끼들 그 시절, 그곳에서 일한 새끼들 아니다. 그리고 지역위 상근자들은 이미 총선 전 중앙당 상근자들보다 훨씬 대우 좋다. (이런 얘기하는 놈들이 얼마나 배부른 새끼들인지는 담 기회에 쓰도록 하지.)

 

④와 같이 다수가 참여하는 노조라면 좋지만 지금의 상황은 갈등이 오히려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갈등없이 민주노동당 상근자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확 갈라져서 갈등이 숙성되어야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에게 좋은 일은 언제나 갈등에서 시작되었다.

 

 

'민주노동당 노조에 대한 저주'에 대해서 몇 마디 했다. 사실 뭐 이 정도 얘기는 다들 하는 얘기니까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여기까지가 서론이다. 그렇다고 본론과 결론은 길지 않다. 이상하게도 오히려 짧다. 본론과 결론의 핵심 내용은,

 

말걸기가 퍼붓는, 민주노동당 노조에 대한 '저주'이다.

 

 

민주노동당 노조에 반대한 부류는 여럿이지만 왜 주사파와 다함께는 민주노동당 노조를 반대할까? 진보정당의 상근자들로 구성한 노동조합은, 그들의 정치적 신념에 위배되는 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현재의 민주노동당 노조는 현지도부에 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재 노조의 구성원들이, 노조를 지도부에 대항하기 위한 조직으로 여긴다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도부의 삽질이 상근자들 업무 환경에 미치는 영향으로 보아 노조는 주로 현지도부의 무능과 무성의에 대항해야만 한다. 이 뻔한 상황은 누구나 알고 있다. 따라서 주사파와 (잠시 동안만이라도) 그들의 2중대가 되길 자처하는 다함께는 민주노동당 노조의 출범에 흠집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 흠집내기의 치졸함에 땅과 하늘이 흔들릴 정도로 말이다.

 

민주노동당 노조는 이처럼 치열한 이해관계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을 하면서 탄생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이런 이해관계는 오래오래 지속될까?

 

까라면 까는 자들은 스스로 노조를 만들 이유가 없다. 하지만 노조가 만들어지고 그들이 모시는 지도부에 대항한다면, 그들 입장에서는 옆에서 노조 욕이나 해대는 것으로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적당한 시점이 도래하면 민주노동당 노조에는 주사파와 다함께도 참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민주노동당 노조는 '조직의 건실함을 지키고자 하는 무리'와 '지도부 빨아주는 딸랑이들' 사이의 쟁투의 장이 될 것이다. 이것이 말걸기의 '저주'인데, 어찌보면 이렇게 되는 것이 민주노동당 노조의 '완성 단계'일 것이다. 이미 노조를 준비하던 이들도 알다시피.

 

 

민주노동당 노조를 두고 노조의 근본을 지키라고는 하지 말자. 모든 노조가 애초에 근본이랄 게 없긴 하지만, 특히 민주노동당 노조에게 '상근자 처우 개선'이나 '진보 운동에의 기여'라는 (틀린 말은 결코 아니지만)말을 덧씌우지 말자. 정치투쟁의 주체로서, 한편으로는 그 자체로 정치투쟁의 장으로서 활동하길 바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