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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날

 

2008년 2월 3일은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다. '샴 쌍동이 분리 수술'을 하기로 확정할 테니까.

 

 

 

지난 주초에 주사파-국민파 동맹은 당대회에 참석하는 자파 대의원들에게 지침을 하달했다. 이들은 "새로운 진보정당운동 조직에 대한 해체촉구 결의"를 안건으로 제출하는 등의 액션을 보였고 이와 함께 민주노총, 전농 등도 공개적으로 비대위의 혁신안을 비난했다.

 

그러다가 분위기가 반전되었는데 금요일에 심상정 비대위가 최종 안건을 공지한 후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것은 심상정/노회찬-주사파/국민파 간의 모종의 협상이 타결된 증거라는 얘기가 '나름의 근거'를 갖고 돌고 있었다. 그래서 2월 3일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비대위 혁신안이 통과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었다.

 

그런데 D-1일인 2일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니 주사파들(다함께 포함)이 당대회 안건들을 조직하고 있었다. 사실상 비대위 혁신안에 대한 부정을 뜻한다. 반전의 반전을 보여준 지난 1주일이었다.

 

1999년 여름 63빌딩. 민주노동당이란 당명이 제정된 창당발기인대회보다 더 다이니막한 순간이 2월 3일 당대회에서 벌어질 것이다. 참으로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다.

 

 

 

말걸기는,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은 최기영, 이정훈은 징계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데 이는 주사파의 주사파다운 행위에 대한 단죄를 처음으로 제기하고 있어 의미가 있다는 행인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은 그 자체로 '사기'에 가깝기도 하다.

 

27일 공개본이건 2월 1일 최종본이건 간에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에 대한 말걸기의 비난의 핵심은 이것이다. '종북주의'와 '패권주의'가 성장할 수밖에 없는 진보진영의 본래적 특성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두 안건지의 차이에 주목하는 사람들을 보면 상당히 안타깝다. 이들은 두 본 사이에서 미세한 차이가 난 이유가 심상정과 주사파의 '협잡' 때문이라고 보고 그래서 무척이나 실망하는 듯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심상정과 노회찬이 민주노동당이 깨지는 게 싫다면, 혹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주사파랑 긴장 속 협력을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정치란 원래 그런거야'라고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다. 공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합의도 없이 어떻게 공존을 하는가? 혁신안이 누더기가 되건 말건 양쪽이 어느 정도 주고 받는 수준으로 당대회에서 통과되어야 양쪽은 공존할 수 있다.

 

심상정과 노회찬은 다음 총선까지는 민주노동당 이름 파는 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 그들은 이미 '기성 정치인'이기 때문에 사실 진보정당과의 관계도 정치적으로 계산하면 되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이해 관계는 더 이상 '이념'에서 나오지 않는다.

 

현재 둘 사이의 차이는 있다. 심상정은 '비대위 혁신안 부결은 곧 비대위 불신임'이라고 발언함으로써 당이 깨질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반면 노회찬은 열심히 주사파와 공존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당이 쪼개져도 당분간은 주사파와 동거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심상정 비대위가 운동권들의 진짜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이유는 혁신안으로 포지션 잡는 게 중요했지 진짜 혁신이 중요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심과 노의 이해관계는 민주노동당 내 혁신파들과 다르다(그래서 심빠들과 노빠들을 혁신파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정파로 따지자면, 민주노동당 탄생의 가장 큰 공로자들, 민주노총과의 관계가 가장 유연했던 이들, 민주노동당에서 주사파와 가장 비타협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이들인 옛 진정추 일파들이 혁신파의 큰 기둥이라는 건 아이러니로 보인다. 자기들이 만든 당이 주사파에게 넘어가는 꼴을 견딜 수 없기도 할 터이고, 당을 만들고 성장시킨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도 가장 잘 알고 있어 민주노동당 혁신에 주목한다면 이해가 가긴 한다.

 

이들은 아직 민주노동당의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좌파라면, 같은 당을 하건 다른 당을 하건 주사파와는 '진보진영'을 두고 계속 싸울 수밖에 없다. 혁신파들은, 민주노동당에서 노력했어야 하는 걸 하지 않았는데 밖에 나갔다고 잘 하겠냐고 신당파를 비판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이들의 비판은 옳다.

 

다만, 샴 쌍동이마냥 몸이 붙어서는 서로에게 주먹질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외면하고 있다. 혹은 주사파는 한국 현실에서 진보진영에게는 '관리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들과의 대등한 공존의 룰을 찾고 있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한편 신당파들이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을 메인 타이틀로 삼아버려서 그들도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 만큼이나 '사기'에 가까운 짓을 하고 있다. 물론 그들은 민주노동당에서 주사파-국민파 때문에 막혀버린 일들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실상 '종북주의'에 목메고 있다는 건, 처음 당대회 안건이 공지되었을 때에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가 최종 안건이 공개되자 격렬하게 비난하는 오바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비전'을 이야기한다. 지금 진보정당의 비전 제시는 민주노동당의 오류를 낱낱이 파헤침으로써만 가능하다. 왜냐면 21세기 진보정당의 현신은 사실 상 민주노동당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 정당의 잘잘못에서 비전의 단초를 찾아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패권주의는 주사파가 만든 게 아니고 운동권 자신이 만든 것이다. 운동권은 줄곧 '감시 받지 않는 권력'을 추구했다. 운동권 내 권력 감시 요구는 권력을 차지한 좌파도 깔아뭉갰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민주노동당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국회의원 10명 만든 것이다. 그들은 당내에서 감시 받지 않았다. 2004년 의회 진출 후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하락한 것은, 이들이 민주노동당이 받는 기대 대로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은 이들을 통제할 의사가 없었다. 왜? 각 정파의 대가리거나 끄나풀인 이들 하나가 다치면 정파 간 공생 구조가 파탄 나니까.

 

신당에 참여하고 있는 적지 않은 전진의 일원들, 특히 당직에 복무한 적 있는 이들 중에는 주사파에게 아주 열심히 협력했던 이들이 있다. 이런 협력은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주사파들은 통일에 대한 입장에 예민하니까 이들의 통일론을 알아서 당론인 것처럼 만들어주는 행위들이다. 당론이 바뀌려면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건 무시해 버린다.

 

신당파의 다수가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는 건 아니지만 신당파는 이런 행위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반성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들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의 정치적 선택이 샴 쌍동이 분리 수술이므로 그들에게 힘을 싣고자 할 뿐이다.

 

 

 

2월 3일은 민주노동당이 둘로 쪼개지는 결정이 내려지는 날이 될 것이다.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보다는 '종북주의' 갈등으로 빚어진 것이라 안타깝기는 하지만 일단은 이념적 지향이 다르면 다른 정당을 구성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실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리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날이다.

 

물론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이 약간 수정되어 통과되고 이에 대해 '심사숙고'를 한 심상정이 그래도 'GO'를 외치면서 민주노동당의 혁신의 길이 가 볼 만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다. 이건 신당파에게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그래서 아마 신당파는 심상정 비대위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냄으로서 더욱 자기 입지를 약화시키는 멍청한 짓을 할 수도 있다. 심상정/노회찬과 혁신파를 분리하는 최소한의 정치적 액션도 취하지 못하는 무능을 처음부터 발휘함으로써 멀지 않은 미래의 동지들과 틀어질 짓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심상정 비대위가 'GO'해도 총선 후 당권 선거만 지나면 혁신이고 뭐고 다 끝나게 돼 있다. 이때를 지나 탈당하는 사람들은 더 큰 배신감과 좌절감으로 민주노동당을 떠날 텐데 이들과 함께 해야 할 신당이 집이나 제대로 짓고 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