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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변화, 그리고 화장실

 

내가 요즘 돈벌이도 없고 집에서 살림하는 시간도 많아지니 생기는 작은 변화가 있다. 이를테면 감자 사러 시장 가서 감자만 사온다거나 한다. 사실 이건 큰 변화다. 얼만 전만 하더라도 온통 먹을 것 투성이인 시장에 갔다면 몇 가지는 더 사왔야 한다. 감자만 달랑 사들고서는 '집에 가면 밥있어!'를 맘 속으로 수십 번 외친다는 건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경험이었다.

 

그저께 밤 늦게 집에 들어와 출출해서 며칠 전에 마나님이 사다 둔 도너츠를 먹었다. 한 입 깨물기 전까지는 이게 슈크림 도너츠인 줄 몰랐다. 순간 냉장고에 둘 것 그랬나 하는 약간의 후회가 들긴 했다. 살짝 시큼한 맛이 돌았는데, 유통기한을 보니 하루가 더 남아서 그냥 열심히 세 개 다 먹어치웠다. 먹고 나니 속이 요만큼 화끈거렸다.

 

약간이라도 의심가는 음식은 죄다 버려댔었다. 조금이라도 찝찝한 음식은 손도 안댔었다. 다 마나님이 해치웠다. 그런데 이젠 내가 음식 남겨놓기 싫어서, 아까와서 그 시큼한 슈크림 도너츠를 다 먹어버린 것이다.

 

 

도너츠 세 개 해치우고 이것저것 하다가 새벽에야 잠을 잤다.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서 화장실이 급해졌다. 어딘지는 잘 모르겠는데 공중 화장실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엄마가 꿈 속에서 저쪽 화장실을 쓰란다. 눈에 보이는 더 가까운 곳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가지 말고 베개 두 개를 들고 따라 오란다. 왠 베개? 지저분한 화장실에 가는데, 깨끗할 리 없는 공중 화장실에 베개를, 그것도 불편하게 두 개씩이나 들고 갈 이유가 도대체 뭔가? 이쪽 화장실보다 멀기도 하고 베개 들고 갔다가 똥이라도 묻으면 빨래하기도 귀찮아질테니 가까운 화장실로 갔다.

 

가까운 화장실도 참 요상했는데, 내가 들어간 출입문 반대쪽으로도 문이 나 있는 게 사람들이 길을 가로지르는 곳으로 이용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독특한 건 이 화장실은 밭이기도 했다. 고랑에다가 일보나 보다. 사람들이 가로질러 가기도 하니 눈치를 살치다가 인기척이 없어서 한쪽 켠에 쭈그리고 앉으려 했는데 왼쪽 발이 바닥에 깊이 뭍혀버렸다. 똥탕은 아닌 듯 했으나 왠지 좀 그래서 깊숙히 박힌 발을 힘겹게 빼고 다시 자리를 잡으려 했다. 근데 영 폼이 안나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불편해서는 일을 못볼 듯했다.

 

고랑에서 싸기를 포기하니 한쪽 편에 두 개의 문이 달려 있었다. 저기로 가면 되겠구나. 나란히 있는 두 개의 문 중 오른쪽 문으로 들어갔다. 이것 참. 문을 열어보니 수세식 변기 사이에 칸막이가 없었다. 여기서 일 보다 왼쪽 문으로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그것도 낭패다. 뭐 이래. 그래도 싸야겠다. 그런데 변기에 대변이 있는 것이다. 물을 제대로 내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것부터 내려야지 하고 물을 내렸는데 물이 시원하게 내려가지 않고 퍽퍽 튀면서 내 다리에 똥물이 튀었다. 아, 뭐야. 이곳도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아나섰다. 그때 잠이 깼다.

 

 

아침이었다. 요즘의 내 일상으로 보면 꼭뚜 새벽이었다. 새벽녘에 잠을 잤으니 이 시간에 깰 리가 없었다. 어, 이렇게 일찍? 배가 살살 아팠다. 진짜 반가운 화장실로 갔다. 주루룩주루룩. 도너츠가 화근이 될 줄이야. 먹던대로 먹고 하던대로 하고 살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