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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vs '사교육'의 대결

 

내가 교육문제로 골치를 앓기 시작한 건 2002년 대선 때부터였다. 그 이전에는 사회 걱정하는 사람의 하나로서 교육문제를 바라보는 수준이라고나 할까. 2002년 대선을 준비하던 그해 여름부터 민주노동당 정책위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나더러 교육공약까지 만들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하라면 해야지. 교육공약 만들었다. 사실 '조합'을 했다. 당에 열심인 교육계 인사들의 도움으로.

 

2002년 대선은, 진보정당이 진보운동진영에 운동의 계기나 동력, 동기를 강하게 부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최소한 교육분야에서는 그러했는데, 그게 바로 '무상교육'이라는 공약이었다. 사실 2002년 대선에서 '무상교육'은 하나의 이념적 지표로 작용을 했지만 정책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것은 '국공립대 통합(나아가 대학평준화)'이었다. 이 정책은 2003년을 지나 2004년 총선에서 상당히 수준 높게 다듬어졌고 총선 이후에도 조금씩 다듬어지고 있다. 무상교육 정책은 총선에서도 뻥치는 수준이었지만 총선 후에 상당히 진전된 내용으로 다듬어졌다. 이로써 민주노동당과 진보적 교육계는 공교육 개혁의 기본 방향과 그 내용을 수준 높게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교육 개혁의 내용은 무상교육(재정)과 대학평준화(경쟁질서와 그 폐해의 극복)만으로는 전부 채워질 수는 없다. 관련 있는 여러 문제들도 많다. 그 중에 두 가지를 독특한 방식으로 소개하고 싶은데, 하나는 지방교육자치이고 또 하나는 자립형 사립고 문제이다. 이 두 가지는 교육 정책적 수준에서는 단순하고 명쾌하게 연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민주노동당 울산시장 후보 경선(형식은 민주노총 추천 후보 경선)에서는 단순하게 연결되기도 한다. 어떻게?

 

노옥희 vs 김창현 = 전 교육위윈 vs 전 명문학원장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공교육 vs 사교육의 대결'이라는 비유가 만연했었다. 약간 치사한 비유라고 보이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엔 맞는 비유다. 치사할지언정.

 

 

노옥희 후보가 울산시 교육위원이었을 때 회의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지방교육자치 문제 때문이었다. 민주노동당도 당이니 이 문제에 대한 기본 입장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2005년 초 수개월에 걸쳐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과 만나 결국 기본안을 만들었는데 그때 혁신교육위원들의 의견 청취 자리에서 노옥희 후보를 만났다. 사적인 인사나 대화는 없었고 철저하게 공적인 대화만 있었다.

 

이때 노옥희 후보의 태도에 사뭇 놀랐다. 왜냐면, 아무리 진보적인 교육계 인사라고 하더라도 교사 출신인 경우에는 대부분 현재의 교육자치체제(영주 분할 체제 : 난 현재의 '교육부-교육청-학교 체제'를 이렇게 부른다)를 기본적으로 옹호한다. 그러나 노옥희 후보는 이 체제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변화에 따라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었다. 즉, 일반자치-교육자치의 통합 흐름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교육계의 정치적 지형(특히, 혁신교육인사들의 교육위원회 진출) 때문에 수년간 유예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었다. 이런 입장은 노옥희 후보만의 것은 아니었고, 교사 출신이라 하더라도 수년간 교육위원으로서 교육개혁에 헌신했던 다수의 교육위원들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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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정부-여당이 교육감을 주민 직선으로 선출하고 일반자치-교육자치를 통합하여 이번 지방선거에 즈음하여 교육감 선거도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게 2004년말부터 2005년초의 일이었는데 이때문에 교육계가 발칵 뒤집혔었다. 그 이유는 이론적으로나 헌법-교육기본법 등 법률 체계로나 상당히 복잡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단순하게 말하자면 교육계가 자신들의 영지를 내주기 싫기 때문에 문제가 커졌었다.  교육계의 반발로 일반자치-교육자치 통합 등은 실현되지 않았다. 정치권 입장에서는 선거를 겨냥한 계산이 있었는데 논의가 길어지니 이번 선거에 반영할 수는 없고 해서 포기한 것이다. 물론, 차후에 다시 고개를 들긴 할거다. 민주노동당은 이때 '일반자치-교육자치 통합'을 기본방향으로 정했다. 몇 가지 독특한 장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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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서 노옥희 후보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출신 배경이나 이해보다 한 차원 높은 대중의 이해를 고려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추고 있는 인사라는 것이다. 이는 공교육 개혁(사실 상 교육 개혁)에 대한 수준 있는 철학적-이념적 사고 체계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로써 진보적 정치인의 덕목을 모두 갖추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자신의 사적 배경이나 관계를 객관적으로 보고 사회 진보의 방향을 고민할 수 있는 기본 덕목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이 정도면 일단 현재 민주노동당 수준에서는 탑클래스다. 물론, 앞으로 정치인으로서 노옥희 후보는 사람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주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이와 달리 사교육의 대명사 김창현 전총장은 교육 철학이라고는 개똥밖에 없는 사람이다. 나는 이 사람이 울산 동구에서 최고 명문입시학원을 운영한 걸 문제삼지 않는다. 먹고 살자고 시작한 것이고 한편으로는 지역운동의 활로와 네트워크 확장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벌인 사업이다. 동네 학생들 입시 공부만 시킨 것도 아니고 지역 주민을 위해 좋은 일도 많이 했다고 하니 믿어줘야지.

 

내가 김창현 전총장을 두고 하고픈 얘기는 자신의 사적인 영역과 한국 사회의 진보에 대한 상을 구별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엉터리 교육관으로 자신의 사적인 영역에 대해 변명이나 하는 한심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김창현 전총장은 자립형 사립고에 반대를 한다. 그건 귀족학교이기 때문이란다. 여기까지는 콜. 별문제 없다.

 

근데 공개적으로 자신의 딸이 서울 명문외고에 진학한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참으로 어이가 없다. 딸은 자립형 사립고에 진학하길 바랬는데 아버지가 자립형 사립고 정책을 반대하기 때문에 스스로 외국어고에 진학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마치 김창현 전총장 스스로가 자립형 사립고에 철저히 반대하고 있고, 가족 내에서는 관철시키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김창현 전총장의 딸이 자립형 사립고를 가길 원했다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서울의 명문외고에 진학한 사실을 문제삼을 수 없다. 김창현 전총장의 딸은 그런 선택을 할 권리, 어떤 비난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딸의 의견을 듣고 외고에 진학하게 한 김창현 전총장도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다만, 자립형 사립고 정책이 문제가 있어서 외고에 진학했다는 딸의 일화를 들며 자신이 교육 문제에 대한 진보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선전한 사실이 어처구니 없을 뿐이다. 이러면서 진보적 인사의 내적 갈등, 학원에서 학생들을 자사고에 입학시키는 게 어떻게 비춰질까 따위의 갈등을 소개한다. 비록 사교육으로 돈을 벌지언정 '교육 문제'라는 정책적 수준에서는 분명한 교육 개혁의 상을 갖고 있어야 진보정당의 지도자로 자격이 있다.

 

외고와 같은 특목고는 자립형 사립고(귀족학교)로 가기 위한 길목에서 설치한 학교다. 한번에 귀족학교로 가기 어려우니까 우파들이 우회로로 삼은 학교란 말이다. 본질적으로 이 둘은 같다. v.1.0과 v.2.0의 차이라고나 할까. 근데 자립형 사립고는 반대하니까 딸이 진학을 포기하도록 분위기 잡고, 외고는 반대 안하니까(이 사람은 보통의 우파처럼 소위 '영재교육'을 주장한다) 진학을 밀어주고. 무슨 교육관이 이런가. 이렇게 교육이념이 엉터리인 이유는 진보진영의 구호(자사고 반대 따위)에 반응은 해야겠고, 자기는 사교육에 뿌리를 둔 사람이 보니 헷갈려서 그런거다. 철학도 없고 깊이도 없으니 얄팍할 수밖에.

 

 

사람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결정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적인 배경이나 이해관계에 놓일 때와는 달리 대중의 큰 이해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노옥희 후보는 이런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다. 반면 김창현 전총장은 이런 훈련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김창현의 부인인 이영순 의원이 울산동구청장이었을 때 학원 건물 앞에 소방도로가 뚫리는거다.

 

오늘은 생뚱맞는 비교를 늘어놓았다. 그러고 보니 공교육이나 사교육에 대한 내용은 아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