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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04
    소나무 숲길로(2)
    말걸기
  2. 2006/08/19
    이게 어떤 장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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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로를 수정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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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5/26
    불어나는 여행 경비(5)
    말걸기
  7. 2006/05/20
    시베리아-몽골 여행의 탄생(3)
    말걸기

소나무 숲길로

 

바이칼 호수에는 바이칼을 닮은 섬이 있다. 알혼섬이다. 알혼섬의 중심지는 후쥐르 마을이다. 작은 마을이다. 한국으로 치면 면소재지 정로랄까. 이 평온한 마을은 섬의 서쪽 중앙에 위치해 있다. 이르쿠츠크에서 차를 타고 5~6시간 정도 걸린다. 알혼은 바이칼의 백미이며, 후쥐르에서 알혼 여행은 시작된다.

 

아래의 사진은 후쥐르 마을 남쪽의 소나무 숲길이다. 알혼에는 여기저기 방풍림마냥 소나무숲이 있다. 실제로 방풍림인지는 모르겠고. 바람에 모래 바닥이 쓸렸는지 거대한 뿌리를 내놓고 숲 입구 길가에 큰 소나무가 서 있다. '각'이 후쥐르에서 빌린 자전거를 끌고 후쥐르로 향하고 있다.

 

 

@ 06-07-03 18:58 | NIKON D200 | Sigma 10-20mm F4-5.6G | 10.0mm | 1/250s | f/5.6 | ISO 100

 

 

 

이게 어떤 장면?

 

아래 사진은 어떤 장면일까요?

 

 

정답은 '월출'입니다.

달이 산 뒤에서 뜨고 있는 광경이랍니다.

심심풀이 썰렁 퀴즈였습니다.

 

 

 

새까맣게 보이는 산은 '표범산'이랍니다.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280km 정도 떨어진 'Bayan Gobi'라는 캠프 옆에 있는 산이지요. 바얀 고비 캠프는 몽골제국의 한 때 수도였던 '하라호린'이라는 도시에 가기 위해 머물렀던 캠프입니다. 하라호린은 울란바타르에서 서쪽을 35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지금 몽골 땅의 정중앙에 있지요.

 

표범산 근처에서, 초원과 사막의 중간이라고나 할까, 고비를 체험했지요. 이런저런 풍경은 나중에.

 

 

여기는 울란바타르

 

휴업 중인데 찾아주신 분들이 꽤 많이 계신 듯.

부러워서 어쩌려구 그리 많이도 찾았을까... ㅋㅋㅋ

 

 

여기는 울란바타르 시내 모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가 첨이라 좀 어색하기는 하나, 이미 적응했음.

벌써 이곳에서 세 밤을 지냈으니...

 

 

지난 달 28일에 '초록도시' 하바로프스크로 떠날 때와는 다른 말걸기가 된 듯.

일단 얼굴과 팔과 다리가 시커멓게 탔고, 살도 좀 빠졌기 때문.

무엇보다 몸이 지쳐서 이 시간까지 게스트하우스에서 빈둥대고 있음.

어제 맥주도 1리터'나' 먹었으니 더 그렇겠지.

'다른 말걸기'라는 말에는 '철학적' 혹은 '성찰적' 의미는 전혀 없음.

말걸기는 '여행을 통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그런 인간 아님.

 

 

말걸기의 '기대'와 주변분들의 '성원'답게 여행 전 별별 꼬라지들은 '액땜'이었던 듯.

아직 하루가 더 남긴 하였으나 '억세게 운 좋은' 여행임.

하바로프스크에서 우연히 만난 쏘샤와,

이르쿠츠크-바이칼의 가이드 김명희-김수진 자매와,

이곳 몽골의 가이드 툭스씨를 만난 것.

진짜 둘도 없는 여행의 행운!

이들의 앞날에는 영원한 복이 자리잡길 기원함.

(죽어서도 복이 지속된다면 불운인가?)

 

물론 억세게 운이 좋긴 하나 여행 중 세 번의 액땜이 있긴 했음.

한번은 무지무지 화가 나서... 집으로 가버릴까도 싶었으나 인내하길 잘 했음.

(물론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무슨 재주로 비행기표 사겠나...)

 

 

러시아, 최소한 시베리아와 몽골은 너무나 아름다운 고장임.

아름다워서 눈물이 다 남. 과장이란 조금도 없는 표현임.

진짜루 몽골 초원의 나즈막한 산 위에 혼자 올라 눈물 뚝뚝 흘렸음.

바이칼 앞에서는 왠지 '시선' 땜에 눈물은 흘리지 못했으나 가슴 터지는 줄 알았음.

'초록도시' 하바로프스크에서 하룻밤밖에 지내지 못한 건 아쉬움이 큼.

아무르강의 석양도 아름다움.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행자의 짧은 스침이지만

시베리아와 몽골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있거나 계속 상처를 받고 있어 안타까움이 그지없음.

그리고, 관광객 중 예의도 없는 씹쌔들 땜에 무지 열받은 적도 있었음.

이르쿠츠크에서 울란바타르로 오는 열차 안에서의 국경 통과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음.

 

 

여행 중 있었던 얘기 다 털어놓으려면...

(아냐 다 털어놓겠다고 큰소리치면 안돼!)

 

뭐, 나중에 할 말 있으면 여기다 올려놓겠음.

그리고 사진이 걱정임. 20기가 정도 찍었는데 건질만 한 게 얼마나 있을지...

그나저나 사진기 안에 먼지가 꽉 껴서 대부분의 사진이 점박이가 되었음.

이거 보정이나 할 수 있을까 싶음.

 

에이, 몰라몰라, 어떻게 되겠지.

 

 

 

 

 

 

 

여행 가기 싫어진다.

 

당장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상당히 치밀하고, 나름대로 꼼꼼하게 진행한 터라 준비 단계서부터 기록이 상당한 여행이 이번 시베리아-몽골여행이다. 그 여행 준비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행 준비가 거의 끝나야 할 때이지만 그렇지 못해 마구 몰린다고나 할까.

 

내가 외국 여행 경험은 일천하지만 시베리아-몽골 여행은 쉬운 여행은 아닌 듯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리 맘 조리고 괴로운 여행 준비일 줄이야.

 

 

나는 꼭 시베리아-몽골을 특별히 가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긴 여행'을 원했기 때문에 제안에 응했다. 그러다가 시베리아의 도시들과 바이칼호, 몽골의 초원과 사막 이야기를 찾아보고선 너무나 가고 싶어졌다. 그 때부터 조금씩 설레임을 느꼈고 그것조차도 작은 행복감을 선사해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설레임이 없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여행을 '갈 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이미 예약 등을 마친 게 한두 가지도 아니고 게 중에는 되돌릴 수 없는 돈도 상당액 지불한 상태이다. 또 하나는 함께 가기로 한 사람들과의 약속을 깬다는 게 인간적으로 너무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갈 수밖에 없는 건 '출장'이지 '여행'일까?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원만했던 게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일단 돈이 걸리니 액수를 맞추기 위해 여행지를 이래 바꾸고 저래 바꾸고, 여행 국가(또는 도시)에서의 관광 내용도 이래 바꾸고 저래 바꾸고. 예약도 원만하게 된 건 하나도 없고. 환율은 떨어지기만 하는 듯하더니 오르락내리락 춤을 추고. 400만원 어치 사진 장비(내 인생에서는 중요한 도구들이다!) 들고 가야 하는데 여행자 보험은 이걸 감당하지 못하고. 가네 마네 늦게 출발하게 어쩌네 일행 하나는 2주도 남기지 않고 하루에 한번씩 말이 바뀌고. 포기할까 싶으면 또 하나는 꼭 가고싶다고 소망을 밝히고. 하여튼 짜고 치는 고도리판(겉으로만 공모 사업)에 순진하게 낄 때부터 재수에 옴이 붙었던 것 같다.

 

여행을 준비하며 여행지에 대해 하나하나 알게 되는 기쁨. 어처구니 없는 신비감 때문일지라도 그게 어디야. 그게 행복감 아닌가. 여행 직전에 난 그 기쁨을 상당히 잃었다. 퇴직금 땜에 얼토당토 않은 일들은 벌어지니 여행 준비도 시원치 않게 진행된다. 이래가지고서는 돈만 왕창 들인 짜증스런 세월을 보낼 듯한 느낌이 든다. 돈도 몇 푼 없고 벌지도 못하는 백수 주제에 퇴직금 쪼개서 반은 사진 장비 사고 반은 해외 여행 가는 정신 나간 짓거리 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미쳤지 내가.

 

내면에서 솟는 열정의 에너지를 느끼는 게 여행인데 오히려 짜증의 기운만 가득하다.

 

짝꿍은 막상 여행을 떠나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 한다. 하지만 준비가 개판이니 기분 좋을 때보다는 후회 짙은 짜증만 가득할지 모른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봉착해도 해결하는 과정이 여행이라지만 그 어려움을 즐기면서 넘기려면 지금의 나같은 태도로는 어림도 없다. 나는 나를 잘 안다.

 

 

에이씨! 되는 일도 없고 짜증 만땅! 이 시절 뛰어넘었으면 좋겠다.

 

 

경로를 수정하다

 

말걸기[불어나는 여행 경비] 에 관련된 글.

 

 

시베리아-몽골 여행은 애초에는 시베리아-몽골-중국 여행으로 제안되었었다. 중국까지 가면 몸이 못 버틸 것 같다는 나의 의견에 중국이 빠졌다. 이 때만 하더라도 돈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Green Asia 2006 공모에서 떨어지면서 우수리스크에 갈 이유가 사라져서 바이칼을 가기 전에 하바로프스크를 들르기로 했다. 또한 여행팀 내부에서 중국에 대한 궁금증과 욕구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 정도 경로가 만들어질 때 쯤 예산은 불어만 갔다. 그래서, 20만 원 정도 줄이는 방안으로 날짜를 줄여 블라디보스토크를 건너 뛰고 하바로프스크로 바로 날아가기로 했다.

 

 

[여행 경로의 수정]

 

(1) 서울 - 속초 - (배) - 블라디보스토크 - (TSR) - 우수리스크 - (TSR) - 이르쿠츠크 - (TSR+TMR) - 울란바타르 - (TMR) - 북경 - 텐진 - (배) - 인천

 

(2) 인천 - (비행기) - 블라디보스토크 - (TSR) - 우수리스크 - (TSR) - 이르쿠츠크 - (TSR+TMR) - 울란바타르 - (비행기) - 인천

 

(3)  인천 - (비행기) - 블라디보스토크 - (TSR) - 하바로프스크 - (TSR) - 이르쿠츠크 - (TSR+TMR) - 울란바타르 - (비행기) - 인천

* 다만, 현지 상황을 봐서 '울란바타르 - (TMR) - 북경 - (비행기) - 인천'으로 변경될 수 있음.

 

(4) 인천 - (비행기) - 하바로프스크 - (TSR) - 이르쿠츠크 - (TSR+TMR) - 울란바타르 - (비행기) - 인천

* 다만, 현지 상황을 봐서 '울란바타르 - (TMR) - 북경 - (비행기) - 인천'으로 변경될 수 있음.


 

이제는 세세하게 뭘 보고 다닐 지 시간표를 짜봐야 한다. 굵직굵직한 이동 경로와 교통수단, 시간표는 다 확보했다. 해당 도시나 지역에서 가야 할 곳, 가는 방법, 비용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신경도 많이 쓰이고 정신도 살짝 나가 있다. D200과 친해질 시간도 의외로 없고 약속도 잊는다.

 

6월 1일에는 몽골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려줄 사람을 만난다. 이날 얘기를 마치면 계획도 완성되고 가장 구체적인 예산도 짜여지고, 무엇보다 예약할만한 건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준비물을 챙겨야 할 시간이 된다. 내게는 가장 큰 걸림돌인 보험 문제도 알아봐야 할 테고.

 

 

왠지 블라디보스토크를 건너 뛴 게 안심이 된다. 여행자에게 충고는 하되 협박은 금물!

 

 

불어나는 여행 경비

 

말걸기[시베리아-몽골 여행의 탄생] 에 관련된 글.

 

 

러시아의 물가가 비쌀 리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유럽의 러시아가 아니라 아시아의 러시아, 즉 시베리아의 물가가 비싸면 얼마나 비싸겠는가.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동네 물가는 여의도 물가 뺨친다. 사람들은 여의도 물가의 특징을 잘 모르는데, 이 동네 물가의 특징은, 기본 가격은 상당하고 '싼 것'은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홍대앞이나 강남역 동네에서는 비싼 데도 많지만 싼 데 찾기도 어렵지 않다. 이것 참. 러시아 동쪽 동네 물가가 여의도 물가라니... 어딜 가든 먹고 자는 데 싼 곳은 있기 마련이다. 블라디보스톡이나 하바로브스크, 이르쿠츠크에도 싼 데는 있겠지. 근데 어디 있느냐 말이지.

 

한국에서 정보 구하기가 어려우니, 현지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이들(여행업자/숙박업자)이 제시하는 가격에 먹고 자고 이동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사이트에 문의글도 올리고 이곳 저곳 메일도 보내고 여행 경비로 얼마를 준비해야 할 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오늘은 몇 통의 답신 메일과 인터넷 서핑의 결과를 모아 [시베리아-몽골 여행]의 예산을 짜 보았다. 환율 계산해 주는 사이트까지 찾아가면서.

 

ㅇㅇㅇ만 원이라는 결과가 나왔는데, 이 셈에 넣지 못한 경비가 있다. 정보가 부족해서 다시 알아봐야 하는 몇 군데 관광비용이다. 오마나! 얼마나 더 필요할까. 처음 여행을 가야겠다고 맘 먹을 때에 비해 100만 원이 오바하는 비용이다. 이건 하루가 멀다 인플레이션이 심한 러시아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7월부터 열차삯이 또 오른단다.

 

나 혼자만의 즐거운 상상으로 잼나는 여행을 꿈꾸다가도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하니 김이 좀 샌다. 주머니가 두둑해서 돈 많이 들든지 말든지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일단 가고 봤으면 좋겠다.

 

 

불어나는 여행 경비에 주위 사람들이 한 마디씩 훈수를 둔다. 누구는 블라디보스톡에 가서 $100 같은 고액 달라 지폐를 보이면 칼 맞는단다. 또 누구는 세계여행 이리저리 다 가봐서 더 이상 갈 데 없는 사람들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단다. 아주 겁을 먹게 만드는 멘트다. 내가 여행갈 때 들쳐 메고 가야 할 가방 한 보따리는 400만 원 정도한다. 카메라 가방. 달라 지폐는 커봐야 $100이지만 이 가방은 $4,000나 되는데 나 더러 칼 맞으라는 거냐. >.<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싫지만, 안정감 없는 여행이 더 싫다. 위협을 받는다거나 바가지를 뒤집어 쓴다거나 하는 건 너무 싫다. 좀 고생해도 이런 게 없는 게 좋다. 돈도 없으니 삐까뻔쩍한 곳에서 잘 먹고 잘 잘 수는 없지만 몸은 불편해도 맘은 편안했으면 좋겠다. 난 '평온을 얻기 위해' 여행을 가려는 건데 말야.

 

 

지금 돈 등등 땜에 기분이 언짢은 게 액땜이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전전긍긍하다가 막상 가서는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여행.

 

 

시베리아-몽골 여행의 탄생

 

며칠 전에 여행 함께 갈 사람들과 만났는데, '각'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글을 쓰고 싶은데 잘 안된다고 했다. 문득 내가 쓰고 싶어졌다.

 

 

 

언제였더라... 민주노동당 정책위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식당에서 밥과 술을 먹다가 '각'이 바이칼호 얘기를 했다. 여럿이 있었는데 그 중 당시 제2정조위원장이었던 김변이 큰 돈 벌면 다함께 바이칼호 관광시켜준다고 했다. 가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아 '나도 갈래'라고 소리쳤지만 그런 날이 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2월초에 사직을 하니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조금씩 걱정되기도 하고 궁금해지기도 했다. 과연 난 뭘 하고 살까? 약 6년 동안 지친 건 몸뿐만이 아니라서 마음을 달래기에 바빴다. 내 안의 괴물을 알게 되니 무섭기도 하거니와 우울중과 불안증으로 하루가 괴로웠다. 앞으로 뭘 하든 당장은 나에게 좋은 건만 하고 살자 맘 먹었다.

 

소수의 사람들과만 접촉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 누군가 여행을 권했다. 꽤 긴 여행. 새로운 공간에서 익숙치 않은 사람들과의 만남,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면 감당하기 힘드니 적당한 깊이의 만남. 좋은 제안이라고 여겨졌다. 여행을 권한 사람이 괜찮은 프로그램이 있다면서 알아봐주겠다고 했다. 다만, 돈이 얼마 들지 몰라 어떨지 모르겠단다. 잘 알지는 모르지만 '피스 보트'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데 나처럼 연고 없는 사람이 참여하려면 1,500만원이나 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단다. 한달 정도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1,500만원이면 나한텐 지극히 사치스럽기도 하거니와 돈 만들 능력도 되지 않아 포기했다.

 

김이 새버린 처지일 때 '각'이 바이칼호 얘기를 다시 꺼냈다. 예전에 잠시 스치는 꿈만 꾸었던 바이칼. 상당히 구체적인 구상을 밝혔는데 그 동안 바이칼 여행을 실현하기 위해 이것 저것 많이도 알아보았나 보다. 기본 루트와 기간, 대략적인 예산. 이 정도면 여행을 맘 먹기에는 충분한 정보였다. 퇴직금을 받아내서 여기에도 쏟아 부어야 할테지만 난 떠나고 싶었다. 난 바이칼이 좋다기 보다는 여행이 필요했다.

 

 

많은 비용과 긴 시간의 여행에 대해 나는 짝꿍의 이해를 간곡히 구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난 나름대로 가고 싶다는 표현을 했는데 짝꿍은 여행을 가겠다는 결심을 통보받은 것으로 이해했다. 한편으로는 미안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한 문제다. 짝꿍은 내가 긴 여행을 가게 될 걸 여전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난 가야겠다. 기대에 부풀다가 정작 가서는 고생스러워도,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그 생경과 개성을 지닌 풍광을 보고 와야겠다. 사진에다가도 담아 와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삼아야겠다. 난 너무 더럽고 절망적인 것들과 살아왔고 조롱과 비난과 상처에 익숙해져 있다. 난 나와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깊이 느끼지 못하면 앞으로 무얼 하고 살아야 할지도 결심하지 못할 거다. 이건 죽음의 길이다. 아직까지는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니 파산과 함께 여행을 선택했다.

 

 

'각'이 제안한 컨셉은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이었다. 누군가의 여행기도 빌려주어 열심히 읽었다. 고생이 눈에 선하나 흥미롭다. '각'은 주변의 인물을 꼬셨다. 내가 알지 못하는 두 명을 더해 넷이 가자고 했다. 하나는 이제 유학을 결심한 듯하다. 이번 여행엔 함께 못하게 될 것 같다. 이번 일로 딱 두 번 만났음에도 아쉬웠다.

 

예산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불어났다. 지금도 불어나고 있다. 돈도 큰 문제라 고심하던 터에 환경재단의 'Green Asia 2006'이라는 공모 사업을 알게 되었다. 시민사회의 주제를 가지고 아시아 지역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제출하면 심사해서 한 팀에 500만원까지 지원하는 사업이다. 3주 고생해서 나름대로 솔직하고 괜찮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응모했는데 떨어졌다. 나름대로 시민사회 영역에서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들로 구성된 팀이 떨어진 것에 적지 않은 이들이 쪽팔린 일이라며 놀려대고 있단다. 우리는 그냥 내정자들이 있었던 걸로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리했다. 더더욱 훌륭한 계획을 세웠더라도 채택되지 않았을 공모에 응한 게 어리석었다고. 이게 쪽팔린 거라고. 자존심이 상할 땐 남탓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각'의 애초의 제안과 달라진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각'도 몰랐던 러시아의 물가 상승이었다. 즉, 대략 200만원 씩이면 꽤나 잘 먹고 놀겠다는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러시아는 여의도 물가란다. 또 하나는 여행 루트다. '각'은 중국의 베이징까지 들르길 원했지만 일정(이는 곧 돈)도 길어지고 체력에 자신없는 내가 몽골에서 끝내자고 했다. 하지만 여행이 주는 또 하나의 묘미는 계획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 될 지 모르니 중국비자는 받아두고 몽골-한국 항공권은 구입하지 않기로 했다. 난 아마 못버티고 몽골에서 한국으로 날라올 것 같다.

 

며칠 전 여행자들끼리 만나서 날짜와 기본 루트를 만들어 보았다. 몽골 횡단열차의 운행 날짜를 알 수 없어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하루 차이 정도니 문제는 아니다.

[여행 일정(안)]

 

6/25(일) 인천 → 블라디보스토크(항공편)

6/26(월) 블라디보스토크 출발(시베리아 횡단열차)

6/27(화) 하바로브스크 도착

6/28(수) 하바로브스크 관광

6/29(목) 하바로브스크 출발(시베리아 횡단열차)

6/30(금) 열차 안에서

7/1(토) 이르쿠츠크 도착

7/2(일) 이르쿠츠크 관광

7/3(월) 리스트비얀카 등 바이칼호

7/4(화) 이르쿠츠크 → 알혼섬

7/5(수) 알혼섬 일주

7/6(목) 알혼섬 → 이르쿠츠크

7/7(금) 환바이칼열차

7/8(토) 울란바타르로 출발(시베리아 횡단열차+몽골 횡단열차)

7/9(일) 울란바타르 도착

7/10(월) 울란바타르 관광

7/11(화) ~ 14(금) 고비사막 여행

7/15(토) 울란바타르 근교 등

7/16(일) 울란바타르 → 인천(항공편) or 북경행 열차

7/17(월) ~ 몇 일간 여행. 북경에 있다면

 

자, 이제는 비자발급과 티켓, 숙박 예매를 해야 한다. 다들 열심히 알아보고 있다. 좋은 결과란 '싸고 좋은 상품'을 취하는 것이다. 정보가 많지 않으니 돈을 무지막지하게 아끼진 못할 것 같다. 이제 러시아어와 몽골어 공부도 해야 하고 여행 물품도 마련하고 할 게 많다. 이런 과정이 나에게 큰 재미를 주었으면 한다. 그게 나의 여행 목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