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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드리다

패랭이꽃을 사고 싶었다.

패랭이꽃의 꽃말은 순결한 사랑이라고 한다.

꽃말을 알게 된 건 89년이다.

군대에 가는 친구를 위해 패랭이꽃을 준비한 한 선배가

"석죽. 돌처럼 대나무처럼 변하지 말아라"는 말을 건넸다.

 

나의 선배는 앵두와 동갑인 아이를 두고 13개월을 갇혀있었다.

기어다니던 아이가 꼿꼿이 걷고 옹알이가 단어로 변해가는 그 순간을

형은 보지 못한 것이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처음 만난 선배는 3년을 갇혀 있었다 한다.

 

선배들에게 꽃을 드리고 싶었다.

변하지 말라고 드리는 게 아니라

변하지 않고 살아가는 당신들에게

당신들의 순결한 사랑과 신념에 존경을 드리고 싶어서였다.

 

잠깐 들른 꽃집에는 패랭이가 없었다.

꽃집 주인은 철이 아니라고 그랬다.

이상하지. 89년에 처음 패랭이를 만난 것도 겨울이었는데...

포기하고 환영회 자리에 빈 손으로 갔다가 집에 가기 전에 다시 꽃집에 갔다.

비슷한 색깔의 국화를 골랐다.

그렇게라도 마음을 드리고 싶었다.

 

노치의 <모순이에게>를 본 게 월요일.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가 뜨겁던 2004년의 거리를 보며

그 시간보다 더 뒤로 가있다고 생각한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나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13개월을, 또 3년을 갇혀 있었던 선배들을 만난 것이다. 

93년 이후에 절대 가지 않았던 학교는 너무나 많이 변해있어서 한참을 헤맸다.

기독학생회며 탈사랑우리같은 동아리들이 다 없어졌다 한다.

학생들은 학교 이름이 씌어진 점퍼를 입고 다녔다.

그 옷들은 레벨, 혹은 라벨의 역할을 할 것이다.

 

레벨 때문에 자랑스러웠던 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어서 고마웠던 그 학교 앞에서

기억 속 간판들이 아주 드물게 빛나고 있었다.

신입생 환영회 때면 방을 잡아놓았던 향월여인숙.

세미나를 했었던 까페 마실.

단골집은 모두 사라졌지만 그 2개라도 볼 수 있는 게 어디냐 싶었고.

 

그리고

89년부터 지금까지 내내 지켜봐주었던 선배.

개꼬장을 부려도 미안하다는 한 마디로 회복될 수 있는 관계가

내게도 있다는 사실에 살짝 감격.

 

선배님들 내내 강건하시길.

저도 열심히... ^^;

 

 

집에 오는 길에 선배가 30분만 노래하고 가자고 해서 집 근처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남편한테 전화가 와서 언제 올거냐고 해서

지금 학교 앞에서 택시를 탔으니 30분 후에 도착할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선배가 택시비를 냈으니 노래방 비는 내가 내야 할 것같아서

선배가 화장실 간 사이에 카드로 노래방 비를 냈는데...

 

노래 2곡 부르고 선배랑 이야기하다 폰을 보니 언제 온지 모를 문자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택시 안이라더니 무슨 노래방?"

 

딱 걸렸다.

카드를 쓰면 남편 전화기로 문자가 가는데 그걸 깜박한 거다.

그 길로 나와서 언덕길을 뛰어올라가는데 밤공기에 목구멍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오늘의 교훈

거짓말을 하지 말자.

아니면 거짓말을 할 때에는 들키지 말자.

 

그런데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의 노력을 도대체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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