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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촌의 언니들

이틀 전에 용산 관련 영상물들을 보았고

닷새 전에는 하이퍼텍 나다에서 <대추리에 살다>를 보았고

한달 전에는 푸른영상과 함께 다큐보기에서 <평촌의 언니들>을 보았다.

 

나도 열심히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들.

일단 2월의 이사를 잘 끝내놓고.

 

사는 일은 모퉁이 길을 걷는 것과 비슷한 것같다. 최근 들어 부쩍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이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스무 살 시절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왔던 교회가 이젠 내 삶의 중심에 서있고, 대학 신입생 때 답사코스로 억지로 가본 강화가 삶의 터전이 되었다. 다른 이가 보기에는 찻잔 속 태풍일지 모르겠지만 찻잔 안 세상이 전부인 누군가들에게는 그렇게 삶은 변화무쌍하다.

 

임춘민 감독이 만든 <평촌의 언니들> 속 언니들에게도 삶은 그렇게 변화무쌍하게 다가온다. 영화 속 주인공인 언니들은 가정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뉴코아 킴스클럽 계단대에 서게된 주부들이다. 그런데 2007년 6월 ‘비정규보호법안’ 시행 한 달을 앞두고 해고 통보를 받게 되고 이에 항의, 전면파업을 선언하지만 한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조합원들은 지쳐간다. 임춘민 감독의 카메라는 언니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434일의 그 모든 시간을 충실히 기록한다.

 

투쟁. 작게 읊조려본다. 이 단어가 아주 친근한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보슬보슬 비가 내리던 지난 1월 20일, 용산 참사 1주년 추모 문화제가 열리던 남일당 건물 앞에서 나는 한 번도 이 단어를 따라하지 못했다.

투쟁. 이 단어를 외치며 영화는 끝이 난다. 하지만 이 말이 울려퍼지는 공간은 투쟁이 벌어지는 파업현장이 아닌 한적한 산행길이다. 각자 싸온 도시락을 까먹고 지나간 시간을 웃음과 눈물 속에서 떠올리다가 기념사진을 찍던 언니들은 ‘치즈’나 ‘김치’ 대신 ‘투쟁’이라고 말하고 활짝 웃는다.

 

“옛날에는 TV에서 데모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렇게 할 일이 없나?’ 싶었거든. 그런데 직접 내가 겪어 보니까 다시 생각이 드는 거야. ‘아, 그 사람들도 어쩔 수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 세상 많이 배웠지 뭐.”

언니들의 요구사항은 그저 하나였다. 그저 이대로 일만 하게 해달라는 것.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노동시간을 줄여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근무기간이 2년이 넘는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한다는 비정규직 보호법안 때문에 평촌의 언니들은 해고통보를 받게 된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방패가 아닌 칼날이 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줄을 잡아 흔든다. 해고통보 전, 회사측은 언니들에게 용역으로의 전환을 권고한다. 월급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설득하지만 언니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나는 이 회사의 직원으로서 일을 하고 싶다는 거다.

파업에 돌입하자 회사측에서는 용역직원들을 고용해 계산대에 세운다. 언니들은 울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호소한다.

“거긴 제 자리예요. 제발 비켜주세요”

고개를 돌리며 외면하는 용역직원들 또한 안쓰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들 또한 눈물을 흘리며 애써 버티다 결국 회사측의 명령에 따라 계산대를 떠난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언니들은 힘들다. 싸움 틈틈이 가족들 밥상도 차려야하고 아이들 교복도 다려놓아야 한다. 애시당초 가정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시작했던 일이기에 가정이 흔들리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매장점거싸움에 대한 계획을 세우다 언니들끼리 싸움이 일어난다. 한 쪽에서는 동료에 대한 배려를 요청하고 한 쪽에서는 심각해진 가정불화를 걱정한다. 승리에 대한 확신은 찾아볼 수도 없고 이젠 어떻게든 끝나기만 바라는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언니들은 말한다.

“우리들은 괜찮지만 함께 싸운 정규직들은 다들 가장이잖아. 그 사람들이라도 남아야지.”

나중에야 알았다. 뉴코아 싸움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했던 최초의 싸움이라는 것을. 영화 말미, 언니들이 그토록 지켜주려 했던 노동조합의 정규직 사원들은 해고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해고와 언니들의 고용승계를 맞바꾼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했던 아름다운 시간은 그렇게 끝이 난다.

 

긴 시간이 흐른 후 이제는 뿔뿔히 흩어진 언니들이 산행을 함께 한다. 지나간 싸움을 이야기하며 그 투쟁으로 무엇을 이루었는가라는 물음에 한 언니가 답한다.

“나는 이 일이 밑거름이 되어서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가 언젠가는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해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 열매를 우리가 따먹을 수는 없겠죠.”

아주 오래 전,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기 전에 내가 먼저 변했고 ‘투쟁’이라는 단어가 떠올리는 추억은 여전히 나에게 상처다. 인간의 존엄 따위는 함부로 비웃으며 자본은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역사가 발전한다는 말은 이제 빛바랜 책 속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해왔다. 그 짙은 패배감 속에서 내 아이들의 안위만 생각하며 땅만 보며 살자고 했던 나에게 평촌의 언니들이 ‘투쟁!’하고 활짝 웃는다. 아이들 학원비라도 벌어보려고 계단대에 섰던 언니가, 그저 일하게만 해달라고 파업을 했던 언니가, 434일간의 기나긴 그러나 실패한 투쟁을 겪어낸 언니가 말한다.

 

‘사는 일은 모퉁이 길을 걷는 것처럼 한치 앞을 모르지만, 그렇지만 쉽게 냉소하거나 쉽게 비관하지는 말아라. 길은 그렇게 이어져있고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니까.’

 

그 전언을 받아든 나, 나즈막히 읊조려본다 ‘투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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