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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

매일 하늘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는데 같은 건물에 사는 I가 하늘이와 같은 반이라서

처음 우리 멤버는 나(등에 업힌 앵두), 하늘,I로 시작했다.

그러다 가는 길이 같은 Y, E가 합류하여 항상 다섯이서 같이 가게 되었다.

3월 초의 어느 날, 한 여자아이가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는 행인이라 생각했는데 우리가 멈추면 따라 멈춰서 딴 데를 보고

우리가 뛰면 따라 뛰는 게....아무래도 같이 가고 싶은데 말을 못 거는 것같아보였다.

처음 말을 건 사람은 나였다.

"너는 몇 반이니?" 그 애도 우리 무리와 같은 7반이었고 그 후 우리 멤버가 되었다.

 

그애의 집은 후문 앞 첫번째 골목에 있었다.

나, 하늘, I는 원래 왼쪽으로 쭉 갔다가 위로 올라가는 길로 다녔었는데

혼자 가야하는 그애를 생각해서 위로 올라갔다가 왼쪽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한 번은 아이들이 모두 왼쪽길로 먼저 가버려서

나 혼자 그 애를 따라서 윗길로 간 적도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애 가방을 들어주고 있었으므로)

윗길로 가고 있는데 하늘이가 울며 불며 올라와서 잠깐 가책을 느꼈고

(왜 내애는 팽개치고 다른 애를......)

어쨌든 그렇게 다녔다.

 

하늘의 학교는 주5일 수업 시범학교라서 토요일마다 쉬는데

그 때마다 토요학습장을 기록해야 한다.

어느 금요일, "내일 어디 가니?" 지나가는 말로 물었는데

그 애가 자기는 항상 집에 있다고 했다.

그애의 아빠는 몇 번 봤다.

항상 술에 취한 듯한 얼굴로 집앞에 앉아있었고 그 애는 살짝 부끄러워하며 들어갔다.

결국 나는 "우리 내일 영화제 가는데 같이 가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성영화제에 함께 갔다.

그 날 카레를 먹고 싶어하는 그애를 위해 오랜만에 만난 나루와 함께

음식점 순례를 했었다. 카레라는 메뉴가 선명한 세번째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카레 메뉴가 없어졌다고 해서 파스타를 시켜먹었는데 그애는 하나도 먹지 않았다.

밥을 다 먹은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카레를 찾아 나갔다.



우리들은 아트레온 근처에 있었는데 남편과 아이들은 연대 앞까지 갔다고 한다.

결국 카레있는 집을 발견했지만 그 애는 먹기 싫다고 해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그애는 수첩을 가져왔었는데 하늘과 하돌에게 한장씩 뜯어주다보니 너무 얇아져서

우리는 그 애에게 수첩을 사주기로 했으나....잡화점에는 그런 수첩이 없었다.

나중에 사주기로 했는데 그것 때문인지 그애가 삐져서 혼자 막 가버리고...

아무튼 난 나루에게 급히 안녕을 고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애는 차안에서도 내내 화가 나있어서 무슨 말을 해도 대꾸도 없이 창밖만을 보았다.

아이들은 지쳐 곧 잠이 들고 우리는 동네 문방구에 들렀고 그애는 다이어리를 골랐다.

 

토요학습장에 붙일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하니 그애엄마가 자기네는 컴이 고장이란다.

다음날 일찍 사진을 프린트해서 그애네 집에 전해주러 갔는데...

그애 엄마가 하늘이에게 "우리 S랑 친하게 지낼거지?" 하는데 별로 기분이 안좋았다.

그때서야 나는 발견했다. 사실 하늘은 그애랑 전혀 친하지 않았다.

그애는 1번이라 맨 앞에 앉고 그 애는 키가 커서 맨 뒤에 앉는다.

말 한 번 할 기회가 없는 애였다. 하늘은 나를 통해서 그애를 알았을 뿐이다.

차 안에서 그애가 삐져서 말을 안하는 게 하늘에게 불편할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애랑 별로 말도 하지않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 때서야 알았다.

내가 그애에게 말을 걸었고 내가 그애에게 집에 같이 가자고 했고 

내가 그애에게 토요체험학습을 같이 가자고 한 것이라는 사실을.

 

다음날부터 나는 내가 먼저 나서서 뭘 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애를 제외한 아이들은 늘 그렇듯이 뛰다가 걷다가 잡기 놀이를 하다가

뭐 그런 식으로 신나게 놀면서 집에 갔고 나는 하늘을 따라갔다.

그애는 내가 말을 시켜도 대꾸도 하지않았고 인사를 해도 아는 척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냥 멀어졌다.

그리고 부모연수가 있던 날(낚임), 교문 앞에서 왔다갔다하는 그애를 발견했다.

그애는 나에게 와서는 "어디 가요?" 하고 물었고 나는 부모연수에 간다고 말해주었다.

1시간 정도? 그정도 앉아있다가 중간에 나왔는데 그애는 여전히 교문앞에 있었다.

 

그애는 나를 따라오며 말했다.

"너무 심심해요. 하늘이는 뭐해요?"

하늘이는 공부방에 갔단다.

"지금 집에 누구 있어요?"

아무도 없어.

"나 하늘이네 집에 가서 놀고 싶어요..."

너희 집에 아무도 없어?

"아빠랑 할머니는 자고 엄마는 일해요. "

집에 하늘이도 없는데 좀 그렇다. 나중에 하늘이 있을 때 놀러와.

"토요일에 어디 가요?"

우리 주말농장에 간단다.

"나 또 토요일에 같이 가고 싶어요"

 

얘야. 미안하지만 나는 널 감당하기 힘들구나.

그날 집에 돌아와서 남편과 긴 얘기를 나눴다.

남편이 전해주었다.

그애한테 카레를 먹이기 위해 연대앞까지 가던 날 하늘이가 물었다고한다.

"아빠, 왜 나는 쟤만큼 사랑안해?"

하늘이가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면 우리는 이거라도 먹으라고 설득을 했을 것이고

계속 고집을 피운다면 카레 집이 어디에도 없는데 어쩔 수없지 않냐고 달랬을 것이고

그래도 안 먹으면 "그래, 그럼 너 굶어봐. 너만 손해지" 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모두들 그애를 중심으로 움직였고 그애의 기분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애초에는 밥을 먹고 여성영화제에 가서 더 놀 계획이었지만

갑자기 토라져서 혼자 가버리는 그애를 달래야했고

그애의 기분을 풀기 위해 여러 이야기를 해봤으나 막무가내였다.

결국 우리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했고 그래서 하돌이는 펑펑 울었다.

 

또 토요일에 가고 싶다는 그 애의 요청에 대해 나는 거절했다.

주말농장은 씩씩이어린이집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그애한테는 부모가 있었고 그 부모가 일을 나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결국 나는 그 날, 그애에게 "너도 엄마한테 공부방 다니게 해달라고 부탁해봐"

라고 말해주었다. 우리 동네에는 한달에 1만원하는 공부방이 있으니까.

집에 돌아오니 그애의 엄마가 전화를 했다.

전화를 해서....하늘이도 공부방에 보내지 말고 자기 애랑 같이 놀게하자고 했다.

자기는 아이를 공부방에 보낼 마음이 없단다.

나는 정중하게 하늘이가 공부방을 좋아해서 그냥 다니게 하겠다고 말해주었다.

 

그애의 엄마 아빠가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서 "너무한다"라고 말하는 게 섯부른 행동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그애 엄마 아빠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월요일부터 하늘이는 한달에 5만원을 하는, 씩씩이어린이집처럼 숲에서 놀고,

노래부르는 것을 즐겨하는 맑은샘공부방에 다니게 되었다.

나는 그애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해서 맑은샘 공부방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맑은샘 공부방은 우리가 오래 기다려왔던 곳이다.

처음 공부방에 연락을 했을 때 공부방 선생님은 1학년 반에 대한 계획이 없다고 했다.

우리의 부탁에 선생님이 "3명이 모이면"이라는 전제로 반을 만들기로 했다.

두달이 다 되도록 아이들은 모이지않았었고 나는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애들이 모여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공부방 선생님께 문의를 해서 한 명 정도 더 받을 수 있다는 얘길 듣고

그애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

 

".....그러니까 5만원이겠죠"

그 말에 정이 좀 떨어졌다고나 할까.

공부도 제대로 안시키는 곳에 보낼 생각이 없단다.

순간 좀 홀가분해졌다고나 할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했다. 선택은 당신이 한 거다. 뭐 그런.

그애를 생각하면 안쓰럽지만 그애의 부모 역할을 우리가 대신 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리고 교훈 하나.

득도한 고승들이 냉정한 이유를 다시 한 번 잊지 말 것.

깜냥도 안되면서 어설프게 개입하지 말 것.

어쨌든 미안하다, 얘야. 그리고 미안하다 하늘아.

내가 좀 한심하게 느껴지는 이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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