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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와 저항의 약속

작년 101, 그날은 내 다섯번째 영화의 첫 촬영날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오는 길에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대기발령을 받았다는 소식. 청천벽력.

 

그 일주일 전에 교회에서 이상한 일이 있었다.

평소 친하던 남성교우분이 밥을 먹고 있는 나한테 다가와

"사모님, 힘내세요" 하고 가셨다.

나는 참 안부인사를 독특하게 한다,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일주일 후, 남편의 대기발령 소식을 듣고 나서 그 말이 그냥 안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당사자인 남편이 101일 아침에 안 사실을

일주일 전에 교인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분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았다.

그 분은 너무 어려워하시며 "다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라고 해서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드렸다.

"선생님, 저 방금 알았어요. 남편이 그동안 비밀로 해서 오늘 통고를 받은 후에야 알았어요.

지난 주에 제게 하셨던 말씀을 좀더 자세하게 해주실 수 없어요"

알았으면 됐지 뭐 그러냐고 자꾸 거절하시는 걸

선생님, 최소한 제가, 사람들 사이에 어떤 말이 떠돌고 있는지는 알아야하잖아요.

남편도 몰라요. 남편도 오늘 알았대요....그렇게 사정사정을 한 후에 알게된 사실은

"유사제가 사람을 잘못 써서 더이상 0000에서 일을 못하게 됐다"라는 소문이

일주일 전부터 돌고 있었다는 것.

 

뭐 그렇게 큰 일은 닥쳐오고

하지만 나는 예정되어있었던 촬영을 했고 그 주말엔 또 예정되어있었던 밀양행을 실천했다.

송전탑 공사현장인 산꼭대기에서 경찰들이 주민들을 막고 있었는데 경찰 카메라만 5대가 넘었다. 근데 내 손바닥만한 카메라를 보고 힘을 받은 주민들이 우리도 카메라 있다!” 외치는 것이었다. 거기에, 다큐멘터리를 시작할 때의 내 처음 자리가, 여전히 놓여있었다. 주류 카메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편에 서고 싶어서 나는 푸른영상에 들어간 거였으니까.

밀양에서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세월호 미디어팀 활동을 하고 있다. 한달 쯤 전에 밀양 주민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방문한다고 해서 거기 갔었다. 거기서 보았다. 늘 씩씩하던 영석엄마가 위양마을 정임출 엄마를 붙들고 엉엉 우는 것을. 밀양은 그렇게 위로를 건넨다. 당신들도 고통스러웠을텐데 늘 의연하게 맞서고 새 날이 시작되면 새 날의 태양이 빛을 나눠주는 것처럼 위로와 평화의 기운을 나눠주신다.

밀양을 경험하면서 나는 변했다. 다큐멘터리감독으로서 내 주요 관심영역은 여성과 교육이지만 시민으로서 내 역할이 있다는 것. 대학 시절에 학생으로서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신문에 나오지 않는 소식을 시민들한테 전하려고 유인물 배포활동을 했던 것처럼, 나는 공부방 다큐멘터리 작업도 열심히 하고 지금 내가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세월호 관련 미디어 활동도 열심히 할 거다.

밀양&청도 희망순례단의 72시간 송년회에 함께 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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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에 들어있는 <밀양에서 온 편지>는 

<천막>의 김재영감독과 <아이들>의 류미례가 함께 만든 것입니다. 

 

관심과지지 부탁드려요~

 

http://socialfunch.org/for72h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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