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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

5월은 폭주다.

끊임없는 전화, 일.

왜 이렇게 갑자기 일들이 몰리나.

장애학회 분과회원 모집하는 일

세월호 집회 영상 정리하는 일

감독 특별전에 쓸 문서 작성하는 일

심지어 인디포럼 20주년 기념 인터뷰까지.

뭔 일이 있긴 있는 거다.ㅜㅜ

 

첫번째 숙제.

인디포럼 20주년을 맞아 매해 가장 핫한 영화를 한 편씩 선정하여

인터뷰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 영화는 그 해 가장 핫한 영화!

가 아니라 두 번째로 핫한 영화.

첫번째 핫한 영화의 감독님이 인터뷰가 힘드셔서

공동2위를 한 나와 김곡김선감독이 인터뷰를....

뭐 이런 일이.

심지어 김곡김선이라니.

몇 년 전 모영화제 심사 때에도

나와는 전혀 다른 그 분들의 영화세계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인터뷰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서면으로 작성하겠다고 했다.

작성하면서 살짝 후회했다......ㅠ.ㅠ

 

<인디포럼 20주년 인터뷰>

1. 우선 요즘 근황을 알려주세요얼마 전 세월호 집회에서도 카메라를 들고 계신 감독님을 봤었는데요좀 낯설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그랬어요밀양에서도 촬영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013년 10회의시간에 푸른영상 강세진감독이 밀양에 카메라가 필요하다는 말을 해서 밀양에 갔습니다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본 밀양은 아름다운 곳이었어요하지만 그 작은 도시의 평화는 송전탑 때문에 깨진 상태였어요. 765kw라는 엄청난 용량의 송전탑이 들어선다고 하자 평생 일궈온 땅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은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제가 '밀양765kV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미디어팀'의 임시 구성원이 되어 밀양 상동면 109번 공사부지에 올라갔을 때주민들은 손바닥 만한 제 작은 카메라를 반기며 눈물을 보이셨습니다방패를 든 경찰들이 겹겹이 막고 있어서 공사 현장은 볼 수도 없었는데 가끔 할매 한 분이 우리 산 얼마나 파헤쳤는지 보자” 하고 다가서면 경찰들은 방패로 물샐 틈 없는 벽을 만들어 할매의 앞길을 막았습니다그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서너 대의 경찰 카메라들이 몰려들어서 주민들의 얼굴을 찍었습니다제 작은 카메라가 그런 경찰들을 찍기 시작하자 할매들은 우리도 카메라 있다!”면서 가슴을 폈습니다가슴이 뭉클하더라구요다큐멘터리를 시작할 때의 제 처음 자리가 거기 있었어요주류 카메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편에 서고 싶어서 저는 푸른영상에 들어간 거였거든요.

밀양을 경험하면서 저한테는 이런 분별력이 생겼습니다다큐멘터리감독으로서 내 주요 관심사는 돌봄과 교육이지만 시민으로서 내 역할이 있다는 것대학 시절에 학생으로서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신문에 나오지 않는 소식을 시민들한테 전하려고 유인물 배포활동을 했던 거랑 비슷해요공부방 다큐멘터리 작업도 열심히 하고 지금 내가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세월호 관련 미디어 활동도 하는 거지요열심히 하지는 못해요여전히 세 아이를 돌봐야하고 이런 저런 이들이 많아서요지금은 주변의 독립영화감독들이나 미디어활동가들에게 일을 소개해주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밀양을 포함한 탈핵그리고 세월호 참사 관련해서 카메라가 많이 필요하거든요.

 

2. 감독님께서 <엄마...>를 제작하신 게 벌써 11년이 되었네요. <엄마...>를 제작하셨던 때와 지금을 생각해 보면 활동영역이나 여러 가지가 삶의 조건들이 바뀌신 것 같아요이제 그때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엄마...>제작하게 되신 계기에 대해서요.

 

<엄마....>를 만든 게 벌써 11년 전이네요결혼으로 시작된 그 즈음의 제 시간은 정말 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다시 카메라를 들 수 있을지 두려웠고 나만 애를 키워야하는 사실 때문에 남편이 미웠어요그래서 정말 많이 싸웠어요이혼까지 생각을 했었죠그 와중에 김동원 감독님이 엄마로서 만들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라고 했습니다노동양심수장애와 같은 공적 이슈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저는 그 때 눈물이 났습니다서운해서요하지만 다른 작업을 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업고 할 수 있는 작업이라서 시작했던 영화입니다카메라 앞에 맨 몸을 내어주는 게 다큐멘터리인데 누가 아이업은 엄마의 카메라에 자신을 내어놓을까하는 생각을 했었으니까요그래서 저희 엄마가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지요좀 가증스러운 딸이죠제가.

3. 인디포럼 2004에 상영하셨을 때 그때 분위기 생각나세요관객들과의 만남은 어땠는지 (좀 오래 되었지만...;;;), 그때 영화제 분위기 등요인디포럼이 다른 영화제와는 다른 분위기가 있죠? (이후에 상영 됐던 영화제들과 비교해주셔도 되고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세요? (아이를 맡기고 왔다든지, GV 사회자가 누구였는지관객 중 기억에 남는 분이 계신 지 등)

 

인디포럼은 제게는 가장 선진적인(?) 실험적인(?) 영화제라서 <엄마...>가 상영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여성영화제나 여성들이 주 관객인 공동체상영회에서는 제 영화는 관객들의 기억을 끌어내는 문고리가 되지만 영화를 많이 보고 영화를 좋아하는생활과 예술 사이에 미세한 필터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에게는 제 영화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그래서 인디포럼 상영 소식을 듣고 기쁘면서도 걱정되었지요관객과의 대화 때 아무 질문도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저 아줌마는 애키우는 거 갖고 뭔 영화까지 만들었대?’ 하는 시선이 느껴지면 어쩌지그런 걱정을 했지요다행히 반응은 뜨거웠어요자식의 입장에서 어머니 이야기를 하거나비혼의 입장에서 결혼에 대한 걱정을 하는 반응을 접했어요제 영화는 생활영화이고 그래서 관객과의 대화도 상담과 고백이 주를 이루더라구요가장 인상적인 관객은 윤성호감독님과 그분의 x여친그 분이 영화에 대해서 재밌었다고 얘기해줘서 의외였고 기뻤습니다뭐 자식 입장에서 고생한 엄마에게 치하하는 입장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여전히 합니다만.

 

4. 다큐멘터리 작업이라는 것은 감독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요자신의 고민과 삶이 제작에 밀접하게 담기니까요어찌 보면 감독님 작업은 그런 면에서는 교과서 같은 예가 아닐까 싶어요. <엄마...>를 제작하시면서 어려움그리고 얻은 것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이후 제작한 영화들에 기준이 될 만한 무엇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앞에서도 살짝 말씀드렸지만 <엄마...>를 만들까 말까 고민하던 게 2002년 정도였는데요 그 때만 해도 사적 영역의 이야기가 많지 않았어요제가 좋아하는 김희철감독의 <나의 아버지>가 있었지만 남성감독이 군대에 미친’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거라서 애 키우는 이야기와는 약간 거리가 있지요. ‘집에 가서 애나 봐라라는 말이 여전히 쉽게 나올 정도로 모두가 하고 있는 그 일을 가지고 영화로 만든다고 하면 유별나다는 말을 들을 것같았어요그래서 기획단계에서의 <엄마...>의 제목은 <엄마그냥 엄마로만 남아있으면 안돼?> 였어요엄마의 연애를 계기로 노년의 성과 사랑에 대해서 다루려고 했던 거죠다큐멘터리는 공적 의제를 다뤄야한다는 것에 대한 강박이 심했던 시간이었습니다여성학을 공부하면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건 아주 한참 후의 일이었으니까요.

<엄마...>를 만들까 말까 고민하던 그 시기는 무척 외로운 시간이었습니다농사일 때문에 아이를 묶어놓고 들일을 나갔다거나자는 아이를 두고 시장을 보고 왔다는 엄마나 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확실히 우리 세대의 육아는 윗세대보다는 편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그래서 애 보기 힘들다는 얘기를 하려다가도 슬그머니 입을 다뭅니다훨씬 더 어려운 시간을 지나온 윗세대 엄마들한테는 젊은 엄마들의 말이 공감보다는 반감을 생기게 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하지만 그렇게 입을 다물다 보니 나중에는 말이 가슴 밑바닥에 고인 채 굳어가는 듯했습니다선배엄마들한테는 "그게 무슨 고생이라고?"라는 말을 들을까 봐결혼하지 않은 후배들한테는 "아기 얘기 좀 그만해"라는 말을 들을까 봐하고 싶은 말이 가슴 가득 고여 있는데도 말을 아꼈습니다그래서 일단은 심적 부담이 컸지요유난떤다는 말 들을 것같았거든요.

집안일을 해야 해서 주로 삼각대에 놓인 카메라가 촬영을 해야 했고엄마가 어디 가실 때면 아이를 업고 촬영을 해야 했던 일들은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괜찮았습니다정말 힘들었던 것은 이것이 영화가 될 것인가라는 걱정이었습니다영화가 완성되고 여성영화제에서 공개되기 직전푸른영상 후원회원들과 함께 진행했던 내부 시사회에서 남성회원이 우리 엄마는 지금도 맞고 사는데 그게 뭐가 특별한가?”라는 말을 해서 실패했다는 실망감을 맛보았고 우리 오빠도 메시지가 선명하지 않다라고 해서 더 좌절했습니다최초 공개 상영이었던 여성영화제 상영은 그래서 정말 걱정이 심했지요그런데 그 날 그 자리의 경험이 이후의 삶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여성관객들은 영화이야기 대신에 자기 이야기를 했습니다딸이라서 차별받았거나아내라서 희생했거나엄마라서 힘들었던 기억들을 가진여성들이 자신들의혹은 자신들의 엄마 이야기를 하며 울었습니다.

그렇게 제게 새로운 문이 열렸습니다세상의 모든 일들은 제게 소재거리가 되고 저는 설득력 있는 발언을 하기 위해서라도 제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좀 더 혹독하고 좀 더 절실하게 겪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그렇게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고르는 과정이 어느 순간 성찰의 시간이었고 때로는 치유의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제 작업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같아요. ‘땅에서 1cm정도 떠있는 상태에서 나의 일상을 기록하기’. 모든 것이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만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쉴 틈이 없는 힘든 일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그래도 보람은 있습니다그 보람 때문에 자꾸자꾸 영화가 만들고 싶어지는 것같아요.

 

5. <엄마...>를 보면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혼출산 등 여성의 삶의 조건들에 대한 성찰이 있잖아요개인의 이야기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숙제가 아닐까 싶은데요어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해요.

 

제 영화는 한계가 많지요소위 말하는 정상가족의 테두리 안에서부부 중에 한 쪽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집의 이야기이니까요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숫적으로 다수가 처해있는 상황을 담을 수 있고 많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라는 장점이 있지요장점과 한계는 제가 늘 인식하고 있어야 하는 제 작업 세계의 양면성입니다. <엄마...>의 언니와 제가 가지고 있는 욕구불만에 대해 어떤 여성들은 결혼이라는 안정적인 제도를 선택한 것의 댓가일 뿐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그런 면에서 보편적인 이야기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고 생각해요다만 앞서 말한 이 세계에서 다수가 처해있는 상황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내가 겪고 내가 느끼는 것들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기억해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나의 영화를 통해 자신들의 처지와 상황을더 나아가서 이 세계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6.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의 전언에 의하면요즘 유난히 가족 관련한 작업들이 많이 나오는 데요특히 부모가 등장하는 작업들 중 독립하지 않은 혹은 못한 감독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하네요사적다큐멘터리에 대한 오해와 이해가 있지 않나 싶어요감독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제 주변에도 사적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럴 때 사적 영역의 어떤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은지에 대해 먼저 물어봅니다또는 자연인으로서의 당신의 고민 중에서 어떤 부분을 삭제하고 어떤 부분을 부각시킬지를 묻습니다개체로서의 나는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고민하는 나는 세상에 오직 유일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늘 생각해달라고 요청합니다부모가 등장하는 작업들 중 독립하지 못한 혹은 못한 감독들의 이야기가 많은 것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엄마...>에 호응했던 관객들은 일차적으로 저와 같은 여성들이었습니다. ‘저와 같은 여성들이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절망해본 적 있는 사람포기해본 적 있는 사람자신의 힘과 노력만으로 도저히 안되는 어떤 상황 앞에서 절망해본 적 있는 사람 등의 의미입니다명확한 정답을 앞에 놓고도 몸이 따라가지 않는 상황을 겪어본 사람에게는 유려한 명언보다는 나도 당신과 같은 경험이 있다라는 고백이 힘이 될 때가 있거든요.

사적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유는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과 소통하고 싶어서라는 생각이 듭니다그런데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은 의미 있지만 같은 처지의 사람들’, ‘소통만’ 한다고 비판받기도 하죠저도 많이 받은 비판이고 사적 다큐멘터리를 만드려는 감독들이 각오해야할 비판일 것입니다.

 

7.(4와 연결해서당시 얻은 경험생각들이 이후 영화들에 관통되는 건 어떤 것이 있는 지 이후 작업들을 언급해서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듯해요.

 

<엄마>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죠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살아가니까요평범한 제가 그 시간들을 카메라에 담아 영화를 만들자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자신들의 기억을 불러내었습니다그래서 그 다음에 만들었던 <아이들>은 촬영 단계부터 공통의 기억을 불러올 수 있는 장면들을 담는 데 주력했습니다. <아이들>을 보고 나서 어떤 관객이 썼던 "나도그도우리 모두 지나온기억할 수 없지만 존재했던 시기의 애틋함"이라는 문구처럼저는 제 영화가 기억의 문을 여는 문고리가 되길 바랍니다생활의 격랑에 밀려서 엄마들이 흘려보냈던 그 모든 시간은 고스란히 마음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습니다제 영화가 그 반짝거리는 기억들을 불러낼 수 있기를그 기억의 문을 여는 작은 문고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영화를 만들었습니다그래서 제 작업의 모토는 열심히 살고 그 시간을 담아 영화로 만들자입니다.

 

8. 2015, 11년의 시간오랜 시간 작업을 해온 감독으로서 영화는 어떤 것이 되었을까요궁금해요. (처음과 지금의 생각이 다를 수도 같을 수도다르면서도 같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초기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들 때의 주요 고민은 내가 본 세상을 어떻게 당신에게 보여줄까’ 였습니다그 전제는 새로운 세상다른 세상을 보는 거였어요지적 장애인이 주인공인 제 첫 번째두 번째 영화처럼요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이제는 당신과 같은 세상을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를 어떻게 잘 표현할까를 고민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다큐멘터리는 처음에도지금도 제게 구원입니다. 20대에 갈 길을 몰라 방황하던 그 때에 제게 반짝반짝 거리며 삶의 길을 보여주었고 40대 중반이 된 지금은 평탄하지 않은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하나하나 똑똑히 기억하자그리고 이 시간을 어떻게든 영화로 만들자뭐 이런 식.

 

9. 이후 작업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그리고 20살 먹은 인디포럼에 대해서 한마디 해주세요.

 

2013년 10월에 기획을 시작한 다큐멘터리 <따뜻한 손길-아이들2>는 집 밖의 육아와 사회적 엄마들의 목소리를 담을 다큐멘터리입니다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없는 아이로 살아왔던 저는아버지가 없다는 사실보다도아버지가 없으니 문제가 있을 거라는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당당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그리고 여전한 시선들 아래에서 저처럼 열심히 살고 있는 소위 말하는 비정상 가족의 아이들을 봅니다여전히 한 인간의 문제적 인성의 원인을 부모와의(특히 엄마와의!) 애착관계 실패라든지 성장 단계의 불완전한 이행에서 찾는 가족주의그 가족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 어떻게든 항변하고 싶은 마음에서 <따뜻한 손길-아이들2>를 만들고 있습니다.

 

1회 인디포럼 때 저는 다큐멘터리감독을 꿈꾸던 잡지사 기자였습니다그 때 검열문제로 종로구청 공무원이 행사를 방해하던 현장에 제가 있었는데 정권의 탄압을 받고 있는 그 현장에 있는 영화감독들이 너무나 멋지고 부러웠습니다그리고 중년이 된 지금여전히 저는 인디포럼에서 상영되는 영화감독들이 부럽습니다상투적인 사람이 되어버릴까봐 늘 두렵고 제 영화가 상투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늘 고민합니다모든 독립영화는 상투적인 영화공식을 거부하지요인디포럼은 상투적인 것을 가장 치열하게 거부하는 영화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60이 넘어서도 영화를 만들 수 있고그 영화가 인디포럼에서 상영된다면내가 아직은 쓸만하구나라고 기뻐할 것같아요함께 나이먹으면서도 여전히 젊은 인디포럼에게 부러움과 찬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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