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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물

봉천동 국사봉 버스정류장 종점같은 느낌이 나는 동네.

거기 꼭대기에 있는 일본식 적산가옥이 우리 집이었다.

엄마는 음식점을 하고 있었고

내게는 어린 아이가 있었다. 

거기에 첫번째 연인이었던 P가 찾아온 거다.

세 명의 친구와 부모님, 이모님을 모시고.

23살 이후 한 번도 안암동을, 아니 안암동 뿐만 아니라 

그 시절을 연상시키는 장소와  사람들과는 인연을 끊고

외톨이가 되어 살아갈 만큼

P, 너는 내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내가 가장 고통스러워할 행동을 너는 내게 했지.

꿈 안에서도 나는 너를 아무런 동요없이 바라보았다.

 

20대에 나는 늘 연습을 했었다.

너랑 마주칠 모든 장소들은 두 번 다시 가지 않았으면서도

혹시라도 전혀 예상치못한 장소에서 너를 만날 지도 모르니까

눈동자 하나 움직이지 않는 서늘한 표정으로 너를 바라보는 연습.

그 연습이 빛을 발해서 나는 꿈속에서조차 물끄러미 너를 쳐다본다.

마치 거기 아무도 없는 듯이.

너는 부끄러운 듯 당황한 듯 친구들을 데리고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바깥 쪽 방에 앉은 너의 부모님과 이모님.

야윈 얼굴의 아버님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하셨고

이모님은 물기어린 목소리로 나에게 미안함을 말했다.

'먼다니'라는 애칭을 붙여주며 나를 예뻐했던 그 분만은

나는 가끔 긴 시간이 흐른 후에도 떠올리곤 했다.

 

꿈 속에서도 나는 버림받은 상태였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폭력을 당했고 그 폭력의 피해자임에도

나는 죄인이 된 채로 버려진 상태였어.

이모님은, 사실은 그 가해자가 당신의 아들이었다는 고백을 하는

그런 막장드라마같은 상황을 연출하며, 울었다.

 

꿈 속에서 나는 엄마가 경영하는 식당일을 돕는 사람이었던 것같아.

아무런 동요없이 그 말들을 듣고

그 눈물을 보고

정말로 아무런 동요없이 타인들처럼 그 사람들을 대하다가

나의 아기가 쉬가 마렵다고 해서

나는 양해를 구한 후 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그것이 끝이었다.

내가 아기를 안으며 나갈 채비를 하는 동안

말이 없던 아버지도, 이모님도, 나의 아기와

이미 떠나와버린 나를 아까워했다.

 

꿈 전문가는 늘 꿈을 깬 직후에 떠오른 생각을 실마리 삼아

꿈을, 나를 분석해보라고 했었다.

사고 후, 종종 새벽에 깨어있게 된다.

어떤 날은 몸의 신호를 감지하느라

어떤 날은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상념들을 따라가느라.

오늘은 꿈 떼문에 오래 깨어있었다.

꿈에서 깨자마자 M선배를 떠올렸고 그렇게 아침을 맞았다.

 

어제 카즈미 타테이시 트리오의 공연을 다녀왔다.

지브리와 재즈는 그 자체로 지나온 어떤 순간을 불러온다.

먼지처럼 떠돌던 20대의 축축한, 끈적이는, 몽환적인, 허무한, 쓸쓸한, 어떤 시기.

병원 침상에서 듣는 음악은 지나간 시간을 뭉텅이로 불러오고

한없이 가라앉아있는 지금의 상태는 그 시간 어딘가와 닮아있다. 

대학시절의 나는 근면하고 건전한 인간이었지만

졸업을 하자마자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됐다.

나른한, 제멋대로인, 쾌락과, 감상과, 욕망의 

강렬함, 짜릿함, 비루함, 환멸, 그리고 결국 허무한 공허.  

 

간절하게 나는 근면하고 건전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했고

다큐멘터리는 내게 구원의 동아줄이 되어주었다.

지금은 깊이 가라앉아있는 시간.

다큐멘터리가 내가 돌아갈 시간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미혹의 시간.

아침의 분주함이 지나간 후

걷는다. 

부드럽고 따뜻한 물. 섬세하고 정확한 의사선생님의 손길.

적당히 지적이고 적당히 흥미로운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안한 문장.

지브리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들. 아련한 옛 시절의 꿈을 일깨우는 선율.

이 곳은 부드럽고 매혹적이다. 

메마른 바람이 부는 혹독한 저 시간으로 가고 싶지 않다.

몸은 어쩌면 그런 마음의 명령을 받고 있는지도.

하지만 오래 전에도 이런 부드러운 세계에 몸을 맡겨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이 끝에 어떤 감정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알지.

따뜻한 물은 곧 식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안온한 삶을 꾸려가는 삶의 가능성은

20대에 이미 스스로 차단시켰다.

혹독한 저 세계로 가야만 한다.

그 세계에서만이 나는 온전히 나일 수 있다.

이 부드럽고 안온한 세계에서 나는 세계보다 더 부드러워지고 더 나약해진다.

 

양의 해에 태어난 M 선배.

마지막에 만났을 때 나는 당신에게 다시 시작하자 말했다.

당신은 그냥 웃었지.

그리고, 그래서, 나는 결혼을 결심했다.

당신같은 예민함은, 당신같은 섬세함은, 당신과 함께 있을 때만큼의 일치감은 없더라도

내 영혼에 온기를 전해주는 평화의 사제와 결혼하기로 했다.

결혼은 물 흐르듯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어.

당신과의 시간처럼 고통스럽거나 모멸감을 느낄 사이도 없이.

그러는 중에 핸드폰을 마련했다는 당신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잠시 머물곤 했던 당신의 그 방을 처분한 후

연락처 하나 남기지 않고 떠돌던 당신은

그런 식으로 다시 시작하자는 내 말에 호응을 보냈던 것같아. 

하지만 속성으로 진행되고 있던 결혼 일정을 멈출 수는 없었다.

결혼을 전하는 내 말 끝에 당신은 어이없어하며 웃었지.

그래서 나도 웃었다.

우리는 그렇게 웃으며 헤어졌다.

마지막 밤에 내가 좀 더 구체적으로, 좀 더 간절하게 말을 했다면 

우리의 지금은 달라졌을까.

가끔 생각이 나.

당신의 말이.

 

"나는 이 방에서

이 관 같은 어두운 방에서

너를 기다려.

네가 나한테 와주기만을 기다려."

 

방에 대한 이야기는 남편에게서도 들은 적이 있다.

"밤에 잠이 들 때마다 아침에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내 몸을 수습해주는 누군가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나는 매일 밤 몸을 깨끗이 한 후 잠자리에 들어"

 

당신에게는 속칭 일류대,일류직장에 속한  잘생긴 아들 당신,

그런 당신을 자랑스러워하는 어머니가 있었지.

당신이 너무 자랑스러워 나를 마음껏 모욕했던 당신의 어머니.

"너만이 M을 제 자리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서

나를 닥달했던 당신의 어머니. 그 어머니가 당신에게는 있었지.

나는 남편에게 관같은 방에서, 관이 될지도 모르는 방에서,

꺼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유일한 사람이 되는 쪽을 택했다. 

 

당신에게는 늘 여전히 감사하다.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고

덕분에 의심병을 치유했으니까.

당신에게서 힘을 받고

나는 결국 당신을 떠나왔다.

마지막 밤에 당신은 내 제안을 믿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다시 시작하자고 했던 나의 말을 당신은 이렇게 해석했다.

"너는 네 마음에 힘이 떨어지면 나를 찾는구나...."

신기하게도 그 말이 신호가 되어

나는 당신없이 살아갈 결심을 했다. 

당신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불가능성을 당신의 그 말이 극복하게 해주었다.

나는 최근에 양의 해에 태어났을 것만 같은 

어떤 사람을 만났다.

추측 뿐인데도 양띠 남자를 만나면 당신을 떠올린다.

아마 그래서 당신이 이렇게 꿈에 스민 것일 게다.

 

그렇게 나는 당신 없이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아가겠지.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은 채

굳건히 땅에 발을 딛고 바로 설 거다.

이 늪같은 시간을 건너서.

 

https://youtu.be/nF4_o0V3r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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