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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

알엠님의 [태릉선수촌] 에 관련된 글.

 

어제밤에 하은이가 울고 있었다.

깜짝 놀라 왜 우냐구 물었더니 남친이 헤어지자고 했다고 한다.

하은의 남친은 트럼펫을 전공할 계획인데

방콕 여행 중에 트럼펫을 그만 두었다는 말을 들었고

다음날 다시 하기로 했다는 말을 또 들었다.  힘든 시기인 듯.

하은은 힘들었다 한다. 네가 나를 여전히 좋아하는지 그게 궁금하다고 물었다고.

하은의 남친은 정으로 좋은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한다. 500일이 넘었으니까.

한 번은 만나자는 하은의 말에 트럼펫 때문에 바쁘다고 했다가

그럼 만나지 말자는 하은의 말에 날을 잡아보자고 했다고.(뭐야, 얘? 짜증나!)

암튼 하은에게 몇가지 조언.

 

1. 관계는 늙어간다. 감정은 변해간다.

그걸 받아들여야해.

남친으로부터 헤어지자는 말을 듣기 전부터

너와 남친은 관계를 바라보는, 감정을 표현하는 양태가 이전과는 달라져있었어.

다시 만난다 하더라도 예전같지 않을 거야.

감정도, 관계도, 자기 삶이 있어서 태어나고 자라고 죽어간단다.

그걸 인정해야해.

시작은 합의로 동시에 시작하지만

감정의 변화는 서로 일치하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여전히 좋은데 그가 너를 그만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고

그는 여전히 네가 좋은데 네가 아닐 수 있는 거야.

그걸 받아들여야해. 

 

2. 관계는 관성의 법칙을 따라.

가던 차를 갑자기 멈추면 덜컹, 하고 흔들리게 되지?

관계도 마찬가지야.

감정이 변했는데도 관계의 관성 때문에 이어가는 경우가 있어.

잘 생각해봐. 정말 네가 그 애를 여전히 좋아하는지

아니면 좋아했었고 좋아해왔고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 변화가 힘에 겨운지.

잘 생각해봐.

 

3. 너 자신을 더 사랑하길 바래.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다른 누군가를 사랑해왔잖아?

나는 네가 스스로를 더 알아봤으면 좋겠어.

너가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지

그리고 너가 너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너를 더 많이 사랑하길 바래.

 

하은은 많이 울었다. 

혼자 자기방에서 자겠다는 하은이를 두고만 보다가

하은의 방에 가서 "내가 옆에서 같이 잘까?"라고 물었더니 됐다고 했다.

자기 전에 마음을 다잡고 헤어짐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새벽에 문득 잠에서 깨었다가 얼떨떨한 상태에서

아, 맞아. 나 걔랑 헤어졌었지.....라고 뒤늦게 이별을 인식하는 그 상태.

나는 그 상태의 쓸쓸함을 알거든.

결심과 다르게 마음의 속도는 느려서

어제 자기 전까지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고 굳게 결심했는데도

잠에서 깨었을 땐 마음은 그냥  과거에 머물러 있는 거야.

그리고 뇌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했을 때

그 때에서야 몰려오는 쓸쓸함.

내가 그런 걸 좀 알거든.

그래서 옆에 있어주고 싶었던 거야.

 

하은을 자기  방에 혼자 두고서

뒤척이는데

하은이 베개를 들고 내 옆으로 왔다.

하은과 함께 잤다.

안거나 손을 잡진 않았지만

그냥 내 딸의 옆에서 너의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너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늘 네 편이 되고싶어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을

느끼기를 바랬다.

 

하은에게 말했던 마지막 부탁.

4. 마지막 만남을 꼭 하기를 바래.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장 좋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이별을 말하고

함께 했던 시간에게

예를 다해서 안녕,이라고 말해줘.

지금 울더라도

나이스하게 안녕~이라고 말해줘.

너와 네 남친과 너희들이 함께 했던 그 시간에게

좋은 이별의식을 치러줘.

 

누가 먼저 잠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짜뚜짝 시장에서 남친에게 주겠다고 산 하트모양 드림캐쳐 두 개.

재즈바에서 남친에게 들려주겠다고 열심히 녹음하던 오디오파일.

그것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쨍, 하고 아팠다.

애처롭다.

하지만 이 모든 시간을 다 네 것으로 만들기를 바래.

애처로움과 아쉬움과 아픔까지.

너희들은 참 건강한 사랑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도 해.

1. 그러니까 오래된 연인은 그대로 두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거야. 양다리, 또는 문어발.

2. 끝났다는 걸 분명히 아는데 끝이라고 말은 하지 않고 자꾸 다른 사인을 보내.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거지.

이젠 더이상 너를 사랑하지않아서 끝내자,라고 말을 하는 게

어려우니까 자꾸 다른 행동을 하면서 상대방이 끝,이라는 걸 눈치채주기를 바라는 거야.

3. 장벽에 가로막힌 사랑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으면서 

그냥 옆에서 질질 끌면서 절망의 나락으로 같이 빠지자고 해.

4. 제일 안 좋은 게 뭔지 알아?

서로가 끝이라는 걸 알고

더이상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관계에 중독되어

관계의 관성 때문에 가는 거야. 


나는 이 모든 잘못된 끝을 지겹게 겪어가며 20대를 보냈어.

그래서 너희들의 그 건강한 사랑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거야.

나는 지금 너희들이 헤어지길 바래.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네 얼굴이 살짝 밝아져있다.

혹시라도 남친이 뭔가 다른 사인을 줬을 수도 있어.

하은아, 사랑하는 하은아.

끝을 인정하는 게 사랑을 지키는 방법이야.

제발 그러길 바래.

제대로 된 실연을 거치길 바란다.....

디 엔드.라고 깔끔하게 자막을 올려주길 바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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