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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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는 아버지와 아들께서 거룩하신 영을 통해 세우신 은사 자들도 있으나 원수가 세운 자들이 더욱더 많이 거하고 있으니 영적인 원인을 치료받지 못하고도 오직 육신만 병상에서 일어나는 자들이 많다. 그러므로 회개와 돌이킴 없이 일으킨 그 신유의 은사가 누구에게로 온 것인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리하여 불의와 죄악을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 숨겨두고도 원수에 의해 그저 육신만 일어난 자들은 반드시 자기의 뜻을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하며 행하며 자신의 의로움과 높아짐을 이루어가게 되어있다. 하지만 많은 자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여 질병에서 일어난 모습만을 바라보고 또한 그 후에 그가 거룩과 상관없이 이루어가는 큰 일들을 보며 그가 일어난 것과 이룬 일을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하신 영의 역사로 인정하면서 따라간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진흙이 떨어져나가는 병을 얻은 자가 찾아왔을 때 다른 병든 자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에게도 동일하게 돌이킴을 명하셨다. 이에 그는 자신의 모든 죄들을 마음을 다해 회개하고 완전히 돌이켰기에 그 영혼을 사망으로 이끌어가던 그 죄를 용서하시어 영의 생명을 허락하셨으며 또한 그가 거룩에 애쓸 수 있도록 그의 육신도 깨끗하게 하시므로 육의 수명을 연장해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제사장들을 찾아가 그의 치유된 몸을 보이고 아버지와 원수가 되도록 이끄는 의문의 율법과 계명이 아닌 사람을 신령하게 하는 모세의 율법과 계명에 따라 예물을 드리라고 그에게 이르셨으니 그 이유는 첫째 질병에서 해방된 그가 신령한 계명에 순종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요 둘째 성전에 거하는 제사장들에게 증거할 것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신령한 율법과 의문에 속한 율법의 차이는 이것이니 전자는 그리스도께서 모세에게 호렙산과 지성소에서 일일이 내려주신 것이요 후자는 그것을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바꾼 것이다. 깨닫기 쉬운 비유로써 어떤 왕이 두 종에게 석판을 주고 그것을 손에 들고 읽으며 그대로 행하라고 명했다. 하지만 한 종은 그것이 너무 무거워 일부를 깨서 버려버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종이에 써서 석판에 붙였으되 다른 종은 석판을 손에 들고 읽으며 그대로 행했다. 그러므로 전자가 바로 신령한 율법을 무겁게 여겨 자기의 의로 바꾸어 지킨 성전의 목자들이요 후자는 그리스도께 받은 것을 그대로 지켰던 세례요한까지의 선지자들이었으니 전자가 말씀을 힘겹게 느낀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썩어질 육의 욕심과 자신의 영광에 빼앗겼기 때문이되 후자는 여호와께 두었기에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율법에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육체로 폐하신 것이 바로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되 다 이루신 것이 대대로 영원히 지켜야 할 신령한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율례다.
그리스도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제물가운데 진흙이 떨어져나가는 병에서 깨끗함을 얻은 영혼을 위해 가장 중요한 예물 두 가지는 첫째로는 양을 드리되 가장 젊고 아무런 흠이 없어야 하며 더불어 그 순한 짐승에게 아버지의 영광이 있는 양만을 드려야 하되 형편이 나은 자는 다른 한 짐승을 더 잡아 피를 흘릴 수도 있었다. 둘째로는 비둘기이되 날아다녔던 산비둘기가 아니요 어느 한 장소에서 따로 키웠던 집비둘기여야 된다.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람과 같이 육신을 취하시지 아니하시는 아버지께서 짐승의 살이나 피를 좋아하시거나 기뻐하시기 때문이 아니시니 오직 죄에서 자유를 얻은 그 영혼이 그 제사제물을 통해 그 피의 의미를 마음 깊이 깨닫고 있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께서는 그가 비록 자신대신 짐승을 잡아 그 피를 흘리되 오로지 그 의미를 마지막 제사의 그 순간까지 자신의 마음속에 늘 기억하고 있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당시 성전에 거하던 자들에게 증거하기 원하셨던 것은 바로 아버지의 아들이셨던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피를 진흙으로 가리는 범죄에 빠진 영혼에게 진흙이 떨어져 나가는 병을 허락하시거나 또는 회개하고 돌이킨 영혼의 육신을 낫게 하시는 분은 오직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밖에 없음을 제사장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성전에 거하며 오직 거룩한 모습의 본을 보이므로 자신과 백성들의 몸이 하나님을 위한 성전이 되게 하는 그 거룩한 일을 하던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증거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정결케 된 그 영혼으로 하여금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고 증거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형편에 따라 수양과 집비둘기와 또한 소까지 가지고 성전의 제사장들을 찾아가 자신의 몸을 보인 후 제사장들을 통해 아버지께로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때에 일곱 명의 제사장들 가운데 한 제사장이 그 영혼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를 알아본 제사장이 자기의 입을 열어 이리저리 돌리지 못함은 이 땅에 하나님께서 내려와 계심을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 두려웠기 때문이되 그는 돌이키기 보다는 오히려 슬쩍 뒤로 가서 숨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그 병에서 나음을 얻은 영혼을 통해 당시 백성들을 거룩으로 인도하던 성전목자들에게 자신을 증거하라고 하시므로 제사장들이 그 영혼을 위한 속건제를 드리며 이 땅에 아버지께서 내려오셨음을 깨닫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그들도 아들을 통해 아버지를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하심이요 또한 백성들에게 그것을 선포케 하므로 모든 백성들도 생명의 아버지를 만나 아버지와 함께 거할 수 있는 그 날을 사모하게 함이셨다. 그러나 입으로는 이 땅에 오시는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린다 말하되 그들의 마음은 오직 자기의 육과 높아짐에 있었다. 게다가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믿고 인정하려면 그 누구보다 먼저 영혼의 목자인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가 앉은 자리에서 거룩은 이루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신의 뜻과 계획을 아버지의 것이라며 이루어갔고 그 과정에서 백성들에게 얻는 물질과 영광이 좋았으니 그것을 끝까지 돌이키지 못했기에 어리석게도 죄와 두려움을 그대로 가지고 뒤로 들어가 숨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 거하는 이방인목자들과 양들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때에 동일한 일을 겪을 것이니 자신이 받은 그 십자가의 첫사랑을 잊고 썩어질 육과 헛된 영광에 마음을 빼앗긴 목자들과 자기의 생각과 의에서 돌이키지 못하여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고 있는 목자들은 늘 하나님아버지 예수님 주여 주여라고 부르고 심지어 재림과 휴거와 마라나타와 대환난을 설교하며 양들을 위로하되 자신의 깊은 곳에 있는 그 욕심과 교만과 의를 돌이키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돌이키지 못하기에 의를 따르지 못하여 거룩을 이루지 못하는 목자들과 또한 성경을 펴서 자신이 들은 설교를 말씀에 맞추어보지 않고 따르는 어리석은 양들은 대환난전에 그들의 육이 사망의 은혜를 얻는다. 하지만 세상에 환난이 임할 때 그들이 찾고 부르짖어도 아버지께서 응답하시지 아니하심은 아버지께서 약속을 어기심이 아니시요 오직 그들 스스로 육과 세상에 두고 있는 그 음란한 마음을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기에 환난 중에 큰 도움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거듭난 자들 가운데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와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는 자와 말씀 앞에 자신의 의를 내려놓는 겸손한 자와 연약한 자와 첫사랑을 붙들고 거룩의 약속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세상에 환난이 임할 때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얼굴을 숨기시지 아니하시고 오른손과 왼손으로 구원하시어 피난처로 이끌어 들이시니 육과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킨 자들은 십자가아래에서 오직 거룩만을 이루어간다. 그리하여 영과 혼과 육의 정결함에 이른 영혼들이 대환난전에 공중으로 들림을 받아 신령한 몸을 입고 혼인잔치에 참여하며 대환난에서 몸의 산 제사로 영광을 돌려드린 영혼들이 거룩한 몸을 입고 144000에 참예하게 되는 것이니 거룩을 이룬 자녀들은 왕과 제사장으로써 이 땅에 내려와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린 후 그 천국의 끝에 셋째하늘로 올라가 영원토록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늘 영광 중에 거하게 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옛날에 한 의로운 아버지가 자기의 아들과 함께 포도열매를 많이 얻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나서 아들을 낳고는 올바른 사랑과 훈계로 길렀다. 그러므로 그 아들은 나중에 자라서 자기의 아버지처럼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또한 그 아들은 자기의 아버지와 인격은 비록 달랐지만 모든 것에서 마음이 통했으니 아버지와 늘 마음이 하나되어 함께했다. 이제 그 아버지의 계획대로 포도원을 만들 때가 되자 그 아들은 아버지와 마음이 통하니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알고 종들을 구해왔다. 그리고 그들에게 포도원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주고는 그 일이 잘되어가나 지켜보며 감독을 했다. 하지만 그 일은 아들 혼자 종들을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요 아버지와 마음이 통했으니 그 아버지와 그 아들과 그 마음이 함께하는 것이었다. 이제 포도원이 완성되자 아들은 자기의 아버지에게 받은 포도 씨 하나를 심고는 자기의 마음과 몸을 다해 가꾸었다. 그랬더니 땅에 떨어져 죽은 그 포도 씨에서는 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옆을 가만히 보니 그 아들이 심지 않은 나무들도 함께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에 그 아들은 자기가 심은 것을 가꾸며 그곳에서도 좋은 열매를 얻고자 자기의 마음과 정성을 다해 가꾸었다. 이제 30일이 지나자 그 아들이 심은 나무에서는 깨끗한 열매가 풍성하게 맺혔다. 그러나 다른 나무들에서는 그 아들이 정성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은 그 열매들을 보면서 자기아버지의 뜻과 계획대로 종들에게 이렇게 시켰다. “내가 심은 나무에서 딴 그 좋은 열매들은 금으로 된 바구니에 담고 약간 질이 떨어지는 열매는 깨끗하게 닦아서 나무 상자에 담아 집으로 가져가자. 그러나 벌레 먹고 병든 것들은 그것을 맺은 나무들과 함께 모아서 불태우고 먹지 못할 포도는 썩도록 땅에다 버려라.” 그 아들은 이렇게 아버지와 마음을 합하여 시작한 그 일을 완전히 마쳤다. 하지만 포도원을 가꾼 후 모든 것을 추수하여 집으로 가져오는 것과 불태울 것은 불태우는 것과 땅속에 묻을 것은 묻는 그 모든 일들은 그 아들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요 아버지와 마음이 통하니 그 아버지와 그 아들과 그 마음이 하나되어 함께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알파와 오메가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으니 첫째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 태초부터 함께 계셨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오직 한 분 생명의 신이신 아버지께서는 영원 전부터 홀로 스스로 계셨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선하시고 기쁘신 그 뜻을 이루시고자 태초에 자신의 품에서 한 아들을 낳으셨다. 그리고 그때에 아버지와 아들의 품에서 나오신 분이 바로 거룩하신 영이시다.
이처럼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태초부터 함께 계셨으며 지금까지도 함께하고 계시며 또한 영원토록 함께 계실 것이다. 그리하여 알파와 오메가라는 그 말씀의 첫 번째 의미를 이루시는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의 뜻은 두 번째로 무슨 일을 시작했으면 그것을 끝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아버지께서 태초에 이미 세우신 그 창조와 구원과 심판과 멸망의 계획을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 함께 이루어가시다 마지막에는 그것을 완전히 다 마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 선하시고 기쁘신 뜻을 이루시고자 영원 전에 창조와 구원과 심판과 멸망의 계획을 세우셨다. 그리고 태초에 아버지의 품에서 나오신 아들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을 이루시고자 셋째 하늘과 둘째 하늘과 첫째 하늘의 창조를 명하셨으며 거룩하신 영께서는 종들을 통하여 그 아들의 명대로 모든 것을 지으셨다. 그리고 나서 아들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그 뜻을 다 이루셨다. 그러므로 아들의 그 십자가를 통하여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거룩을 이룬 자들이 그 거룩한 육체를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태초에 시작하신 그 일을 이 세상의 끝에 다 마치신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의 끝에 아버지의 그 뜻이 다 이루어진 후에는 원수와 그의 사자들과 흑암의 세력들과 이방인들을 이 첫째 하늘의 모든 것과 함께 유황불 못으로 넣으신다. 한편 아버지의 뜻도 원치 않고 영원한 형벌의 사망도 원치 않는 자들은 영원토록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으로 보내신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선악의 죄를 이기고 거룩을 이룬 자신의 형제자매들과 천년왕국에서 거룩을 이룬 백성들은 셋째 하늘로 이끌고 올라가신다. 그리하여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씀의 그 두 번째 뜻도 이루시는 것이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자는 돈을 벌기가 어떤 자는 높은 자리에 앉기가 자식 키우기가 자기이름을 내기가 금메달 따기가 공부가 어렵다 말하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니 유황불 못이나 슬피 우는 곳으로 들어가는 자에게는 자신이 범한 허물들을 십자가 피를 의지해 회개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고 영이 거듭난 자에게는 자신의 생각과 의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울며 씨를 뿌린 후에는 기쁨으로 거두며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게 되고 가장 어려운 일에는 가장 큰 위로와 상급이 주어지리니 의롭고 거룩하게 변화되고자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혼이 거듭나기까지 가장 큰 고난을 받겠으나 하나님께로 난 자는 이 땅에서 범죄치 않는 기쁨을 누릴 것이요 자신의 마음에 천국이 임함은 아버지께서 그의 거룩한 몸을 성전 삼으시기 때문이요 성결의 영으로는 육신의 장막에서 나와 그리스도께 심판을 받고 아들들의 영광에 참여하며 이 땅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했을 때 또한 천국의 끝에 영원한 셋째하늘로 올라갔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제사장으로써 새 예루살렘성전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얼굴을 뵙고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왕으로써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의 약속을 영원히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난지 팔일 만에 할례로 언약을 받은 12제자와 70인과 군중에게 현세와 내세에서 아버지의 크신 위로와 상급을 베푸시고자 산상수훈을 통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 협착한 길을 걸으라고 알리셨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오실 때 무리가 좇았으니 그리스도께서 가시는 곳을 좇아 다니며 더 가르치실까 하여 그들이 더 배우기 원함이었다. 그리하여 산에서 다 내려오셨을 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하고자 하는 한 영혼을 만나셨으니 그는 나이가 서른 일곱일 때 그 병을 받았으며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는 마흔 셋이었으니 육 년을 그 육의 고통가운데 있었다.
그 병은 육을 썩혀 삼키는 병이니 그것은 육을 거룩에 쓰지 아니하고 오직 세상의 쾌락을 즐기며 그 육을 잘 보존하지 아니하였기에 그 육을 통해 그 병이 나오는 것이니 지금도 같은 이유로 그 병이 돋아난다. 구체적으로 그 영혼은 서른 일곱까지 세 가지의 죄를 즐기고 있었으니 첫째로는 그가 세 가족을 이루었으되 율법과 계명대로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여자를 취하는 것을 즐기므로 세 가족을 이루었다. 둘째로 사람들을 속이되 자신의 양심이 찔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살길을 찾으려 늘 거짓말을 하며 속여서 오직 자신의 욕심과 유익만 남겼다. 셋째로는 그가 오지 아니하여야 할 곳에 들어갔으나 그곳은 아버지와 아들의 상징이었던 성소였으니 그가 성소까지 들어왔으되 그 죄악을 그대로 품고 거룩한 곳으로 들어왔다. 세 번째 죄는 이것이니 이방인들의 말에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표현이 있듯 그는 스스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속였으니 자기의 제사짐승을 제사장들이 속일까 걱정되어 끝까지 좇아갔으되 그가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더러운 상태로 들어갔으니 아버지께서는 결국 그 영혼을 내 팽개치셨던 것이다.
또한 아버지께로 그 병을 얻는 자는 깨끗한 십자가의 피를 진흙으로 가리는 죄를 범하는 자이니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경우로써 오늘 죄를 짓고 내일 용서를 구하며 또 그 죄 가운데 있으며 이렇게 말하는 자들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셨도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죄를 나에게 두셨기에 내가 범죄하는 것이요 아버지께서도 사람의 연약함을 인정하시니 이 죄는 더 이상 죄가 아니니라.” 이렇게 자신의 죄를 아버지께로 돌리되 그 죄를 오히려 의로운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과 또한 다른 영혼에게도 그 일을 행하게 하는 것이 바로 피를 가리는 죄이니 그 영혼은 서른 일곱까지 음란과 거짓말과 더러움을 품은 채로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결과로써 그 병은 살과 뼈를 썩혀서 어둠이 그를 삼키는 병이요 아버지의 가장 큰 형벌로써 받는 병이니 그것을 받은 자는 마음을 돌이키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그 영혼에게 그 병을 허락하신 것은 그가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며 또한 자신의 더러운 죄들이 자신의 육체에서 한 부분 한 부분씩 떨어져나가게 하는 것을 보게 하시므로 은혜를 주시고자 함이셨다.
그 영혼이 죄에서 깨끗함을 얻은 과정은 이러했으니 그가 그리스도의 앞에 나왔을 때에 영혼은 당연히 육의 나음보다 영혼의 생명을 원하였으되 그의 생각은 죄를 돌이키지 않은 상태로 오직 자신의 몸을 온전케 해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를 먼저 자리에 앉히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행한 일들을 아느뇨? 안다면 그것을 돌이키어라. 그리하여 너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마음을 살피신 후에 치료를 하시겠노라.” 그러자 그는 첫째와 둘째는 돌이켰으되 마지막 것을 돌이키지 않았다. 이에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세 번째 것을 지적하시며 그의 마음에 양심을 다시 살려주셨으니 그제서야 그의 눈에서 눈물이 나고 사람들이 옆에 있든 말든 그의 입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용서를 구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그의 모습을 보시고 그를 불쌍히 여기셨으니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셨고 또한 육신도 한 순간에 깨끗하게 하셨던 것이요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긴 주인이 원한다 하시니 일곱 영은 말씀에 순종해 그리스도의 피를 그 영혼에게 전하였으며 또한 이 셋째별을 둘러싼 깨끗한 물을 가지고 와서 씻어낸 것뿐이었다.
한편 은혜시대에는 이미 십자가의 피가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믿는 자를 깨끗하게 하시되 반드시 죄들의 회개가 필요하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모든 죄들을 다 자백하여야 아버지께서 그의 마음을 보시고 그리스도께서도 그의 육신과 영혼에 자신의 깨끗한 물과 거룩한 피를 허락하신다. 이처럼 교회시대에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내어주셨으니 죄들을 회개하고 주님께 마음을 돌이킨 자들은 깨끗한 물로 자신의 몸을 씻고 또한 깨끗한 생수를 마시고 또한 포도주로 그의 몸을 씻으며 또한 포도주를 마시면 나음을 얻으리니 치유의 자세한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그가 완전히 회개하고 돌이킨 후에 밤낮으로 포도주와 물로 그 육과 속을 치료하면 사람의 시간으로 5개월 6개월 7개월에 그의 몸이 이전과 같이 회복된다. 사람들의 언어로 이해하도록 그 질병의 시작과 끝을 말하면 우선 사람의 영혼이 죄로 감싸이므로 몸 안의 피 가운데 하얀 피가 생성되지 아니하니 모든 몸의 기능들이 정지되며 모든 세포들이 정지되니 그 육의 사망에 이른 것이 바로 그 병이다. 또한 심장은 빨간 피를 계속 뿜어주되 죽은 피가 그곳에 함께 있으니 모든 뼈마디와 또한 물주머니와 또한 뼈와 살에 붙어있는 큰 물주머니와 사람의 눈에 보이는 살결이 다 죽은 피로 사망에 이른 후에 그 죽은 것들이 조금씩 그 몸에서 조금씩 떨어져 나가되 온 몸에 숨겨져 있는 육의 혼에 이미 사망이 이르렀기에 그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원을 의지하며 병원으로 달려가는 자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으니 하얀 피가 나오지 아니하는 것은 그의 육은 목숨이 붙어있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이미 죽음에 있음을 깨달아야 함이요 그리하여 먼저 그 영혼을 살려야 그에게 하얀 피로써 그의 육체도 다시 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자를 거부하고 인간의 기술을 의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과 또한 하얀 피가 나오지 않는 원인을 모르니 어리석게도 하얀 피가 없는 상태에서 그 죽은 세포들을 그대로 두고 다른 세포들을 만들려 하되 그들이 살린 자도 있고 살리지 못한 자도 있으나 살린 자는 죽음의 피가 그의 몸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며 하얀 피도 나오지 아니하므로 그가 이제 살았다 하되 오직 시간만 조금 더 연장한 것뿐이니 그 자도 결국 곧 일년 이년 안에 사망으로 들어간다.
한편 교회시대에는 병을 고치는 은사 자들 가운데 원수가 세운 자들이 많되 아버지께서 세우신 자들도 있으니 선물의 도움을 받아 생수와 포도주를 통해 치유함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자신이 골방에서 오직 말씀만을 붙들고 물과 피를 통해 깨끗함을 얻을 수도 있고 진리를 전하는 영혼을 통해서도 생수와 포도주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아버지께서 그의 마음을 보시고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면 2천년 전과 동일한 역사가 그대로 나타나리니 일곱 영이 곧바로 순종하므로 그러한 과정과 시간을 거치지 않고 십자가의 물과 피로 즉시 깨끗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당시 그 영혼의 삶과 죄에 대해 또한 치료의 과정과 그 후의 정결한 삶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셨으니 교회시대에 자신의 거룩한 한 몸에 거할 정결한 지체들에게 주시고자 함이셨다. 하지만 유대인가운데 이 병을 가지고 있던 119명은 그 병을 치유 받은 그 영혼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다른 자들은 자신의 죄악을 자백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죄악을 품고 깨끗한 십자가의 피를 계속 진흙으로 가렸으니 자신의 죄를 알아도 돌이키지 못한 자들은 영혼과 육체의 깨끗함을 얻지 못했으되 이것은 교회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자신의 속에 선악이 거하고 있음을 깨닫는 자는 사망권세를 가진 그 죄를 돌이키되 깨달아도 돌이키지 못하는 자들이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이방인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어 온전케 되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깨우쳐 주시니 그들이 마음과 생각을 깨끗케 하였을 때에 백성으로 받아주신다. 그리하여 오늘날 육신이 혹은 영적으로 그 병에 걸린 자들에게 그 죄와 치유과정을 자세히 알려주심은 그들이 마지막 기회를 붙들고 돌이키길 원하심이요 지금은 한민족의 환난과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이 임박한 마지막 때이니 돌이키는 자는 한 몸의 정결한 지체가 되므로 신랑을 맞이하는 은혜가 주어지되 독사의 새끼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만이 아니요 다른 영혼들도 돌이키지 못하도록 그리스도의 복음을 방해하고자 진리를 전하는 자들을 따라다니며 꼬투리를 잡다 결국 피를 흘리게 되어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왕이 포도주의 맛을 본 백성들에게 이런 글을 보여주었다. “아버지의 뜻은 제사도 아니요 전도도 아니요 선교도 아니요 봉사도 아니요 헌금도 아니요 할례 받은 자와 영이 거듭난 자가 이제는 생각과 마음도 거룩해지므로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완성하는 것이니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자의 가족과 그의 주변에 거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은혜와 진리의 빛을 비추어주시겠노라.” 그러나 사람들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글이기에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에 왕은 그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어떤 믿는 영혼이 자기와 생각과 인격이 다른 한 형제를 시기하고 미워하다 자기의 의로 비판한 후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으니 점점 더 강퍅해지다 나중에는 선악의 죄를 따라 저주의 말까지 내뱉었다. 그러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아버지의 앞에 나가 형제를 저주한 그 입을 크게 벌려 아름답게 찬송을 부르며 기도했다. 그리고 예배가 마친 후에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그 혀로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심지어 사람들의 앞에 서서 아버지는 예배를 기뻐 받으시니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예배는 타협해서는 안되고 다른 영혼들을 불쌍히 여겨 전도와 선교와 봉사와 헌금을 열심히 하자고 입을 열어서 가르쳤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그 더러운 자의 어떠한 말도 어떠한 행위도 받으시지 않으셨다.” 이야기를 들은 후 백성들 가운데 12명은 왕이 보여준 그 글의 뜻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때까지 자신이 말하며 행하던 모든 것을 다 멈추고 왕을 따르며 오직 거룩만을 이루어갔다. 그러나 다른 백성들은 자기의 의와 육의 욕심과 헛된 영광에 빼앗긴 마음을 돌이키지 못했으니 검은 것은 글이요 하얀 것은 종이였고 왕의 글과 말은 그들의 마음에서 끝까지 거부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버지의 뜻이라며 죽을 때까지 그것을 말하고 행했다.
이처럼 성전에 거하던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은 짐승의 피가 죄를 속한다는 것 외에 성막에 대한 그 무엇도 깨닫지 못했으니 자신이 살아있는 짐승의 심장에서 나온 피를 받아 손에 들고 있으나 왜 들고 있는지 성소에 들어갔을 때 오른쪽의 떡과 포도주를 왼쪽의 일곱 금 촛대를 보았으나 그것들이 왜 그곳에 있는지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 앞에서 향기를 맡으면서도 왜 분향단이 그곳에 있는지 지성소로 들어갔을 때 법궤 안에 왜 그것들이 들어있는지 법궤 위에 피를 뿌렸으나 왜 뿌리는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채로 때가 되면 그저 속죄제사를 위해 피만 뿌렸으니 죽은 짐승만 불쌍했다. 이렇게 거룩을 깨닫지 못한 채로 가르치며 행하는 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들은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율법과 계명을 펴서 백성들에게 이르되 ‘무엇 무엇은 하지 말고 무엇 무엇은 하라.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말라. 이것이 의로운 것이니 아버지께 합당한 의를 행하는 것이 옳도다.’라고 하며 오직 예로부터 내려오는 도덕적인 것만 가르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백성들을 거룩으로 이끌어야 했던 유대종교의 지도자들과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던 백성들은 자신이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결코 죽지 못했기에 그 율법과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은 자기들이 원하던 것을 이루기 위해 모세 이후로 자기의 생각과 의를 따라 신령한 율법 안에 더 많은 것을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키던 것은 그리스도께서 모세에게 내려주신 아버지의 신령한 율법과 계명이 아니요 오직 인간의 의로 가득한 계명의 율법과 유전이었으니 아버지와 원수 되게 하는 그것은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백성들이 거룩에 마음 없는 행위를 하며 자신이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리고 있다는 뿌듯함에 빠져들었고 지키면 지킬수록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의 욕심과 영광이 이루어졌다.
결국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는 자가 이렇게 거룩을 모르거나 원치 아니하므로 자신이 먼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으면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아 언약을 가진 백성들에게 그가 과연 무엇을 전하게 되리요?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택하신 그 둘째사람의 후손들을 과연 어디로 이끌리요? 그러므로 당시 성전의 목자들은 백성들이 거룩을 이루어가도록 이끌지는 아니하고 오직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복을 얻는다 저렇게 하면 얻지 못한다고 가르치며 영을 가지고 육의 이익을 끼치므로 옆구리와 어깨로 병든 백성들을 밀고 뿔로 받아 세상으로 흩어지게 했으니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그 가르침에 따라 아버지께 나갈 때마다 늘 무엇인가를 손에 들고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애통하는 영혼들을 이렇게 세상으로 내모는 것은 이 마지막 때의 이방인목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는 자들이 오직 육의 필요와 욕심과 또한 자신을 높이는데 마음을 빼앗겼으니 정작 거룩과 영원한 셋째하늘에는 마음과 믿음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어찌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성전지도자들과 동일한 마음을 품고 있는 자들에게 진리의 깨달음을 주시리요? 그러므로 깨닫지 못하고 가르치는 자들은 십자가로 거듭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 없게 될 수 있는 자들이 그들의 안에 있는 죄와 싸워 이기므로 거룩에 이르러 결국 몸의 구속을 얻도록 이끌지 아니하고 단지 이렇게 하면 축복을 받고 저렇게 하면 받지 못한다고 하면서 자신과 다른 영혼들을 썩어질 것과 헛된 곳으로 이끌고 있다. 그리하여 전통과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방인들도 늘 무엇인가를 손에 들고 아버지께로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의문에 속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고 거룩하게 될 수 있는 육체가 없으니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언약을 받은 자들이 아버지와 화평을 이루어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게 하시고자 그들이 죄와 세상과 싸우며 거룩을 이루어가도록 오직 진리만을 전하셨다. 그러므로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은 예전부터 내려오던 성전의 그 가르침과는 전혀 같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리스도께로 진리의 말씀을 들었을 때 놀랐다는 것은 그것이 그들에게는 새로운 가르침이었기 때문이요 또한 그들이 이전에는 그 누구에게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리를 들었을 때 모든 자들이 그 말씀을 듣고 놀라며 기뻐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들과 육과 세상의 유혹가운데서도 십자가의 첫사랑을 지키고 있는 자들만이 그 안에 숨겨진 참된 진리를 늘 깨닫는다. 그러므로 당시에 놀랐던 것은 종교권력을 가지고 있던 목자들이 그랬다는 것이 아니요 군중들의 반응도 아니요 오직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헛된 세상에서 나와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그리스도를 따르던 11제자들과 70제자들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가르치심 안에 담긴 그 참된 진리를 보고 깨달았으매 놀랍다고 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살고자하는 영혼들과 첫사랑을 붙들고 있는 영혼들 외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에게 생명을 주는 진리를 들어도 그곳을 떠나가되 독사의 새끼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은 오히려 진리를 전하는 자들에게 달려들어 상하다 마지막에는 잡아서 피를 흘리게 되어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아버지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니 물로 심판을 하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당신은 만일 원수가 곧 쓰나미를 일으킬 것이니 동남아에서 나오라는 말을 들으면 사랑하는 가족들을 데리고 거기서 나오겠는가 아님 그대로 있겠는가 아님 쓰나미 대처법을 배우겠는가? 혹은 계획대로 그곳에 여행하러 가겠는가 아님 잡아놓았던 여행계획을 취소하겠는가? 마찬가지로 하이티에서 큰 지진이 난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사람은 그런 것을 처음 보면 두려운 마음을 가지거나 바르게 살려는 마음을 잠시 가지지만 시간이 좀 흐르면 금새 잊는다. 또한 그런 것을 몇 번 듣거나 보고 나면 자신에게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는 그 기근에 대해 농담처럼 말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게다가 사람은 자기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좋아한다. 또한 사람은 인격체이니 그곳에서 나오려면 자신의 몸이 나오기 전에 자신의 마음이 먼저 그곳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결국 그러한 경고의 말을 미리 듣는다 하여도 자기의 발로 거기서 걸어 나오는 수가 참으로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은 수가 나오니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거기서 돌이킨 자들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인류의 역사가운데서 원수가 일으키는 기근들과는 달리 자신이 직접 이 땅의 전체에 심판을 내리시는 때가 있으시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공의로우신 심판과 원수의 불법적인 기근에는 세 가지의 큰 차이가 있으니 첫째 원수는 사람이 잊을만하면 이 세상의 군데군데에 일으킨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한 번에 온 세상의 모든 곳을 심판하신다.
둘째 원수는 자신이 택한 자들 외에는 자신이 일으킬 기근을 숨겼다 갑자기 일으킨다. 그러므로 원수의 갑작스런 기근은 사람들에게 놀람과 두려움과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공평하게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곧 다가올 그 마지막 심판을 말씀으로 충분히 알리신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나오지 않던 자들은 아버지께서 이미 말씀으로 경고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그 심판이 자기의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보며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오직 불순종한 자신을 탓한다. 또한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으니 그저 애통할 뿐이다.
셋째 원수는 기근을 통해 오히려 의인까지도 함께 삼키기를 원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가운데서 의인은 끝까지 지키시다 마지막에 모두다 구원하신다. 그리고 온 세상에 의인이 한 명도 없음을 확인하신 후에야 자신의 그 마지막 심판을 내리신다. 그리하여 의인을 구원하신다는 그 약속의 말씀을 지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내리신 심판의 예로서 노아홍수의 경우 이 세상의 어느 한곳에 일어나지 않았으며 온 세상에 임했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당시 이 땅 위에 거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노아를 통하여 충분히 말씀으로 그 물의 심판을 알리셨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순종한 그 의로운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그 심판가운데서 구원하셨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도 이 세상의 한곳에 심판을 내리신 때가 두 번 있으셨으니 그것이 바로 고라와 그를 따르며 아버지를 대적한자들을 위해 땅을 가르신 사건이요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신 유황비였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아브라함 당시에 그 죄악된 도시에 유황비가 내릴 것이니 나오라는 말씀을 아브라함을 통해 그들에게 전하셨다. 그때 롯은 그 말씀에 순종해 나오므로 건짐을 받았으니 아버지께서는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의인으로 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에 거하던 다른 모든 자들은 그곳의 죄악과 불의를 너무나 사랑했으며 살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기에 그 심판의 말씀을 듣고도 자신의 마음이 그곳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마음이 나오지 못했기에 인격체로서 다리가 있음에도 거기서 걸어 나오지 못했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치 않은 그들은 이미 들은 말씀대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불을 자신의 눈으로 보면서 오직 자신을 원망하며 애통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이 두 가지의 심판으로서 이미 세상의 심판한 부분을 보여주신 것이 있으시니 그것은 바로 마지막 심판의 예표였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세우신 교회는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생명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뜻에 애쓰라고 세상에다 전하기 전에 교회시대의 믿는 자들을 향하여 먼저 전해준다. 대환난가운데로 들어가서는 누구든지 육과 세상을 즐길 수 있는 그 짐승의 수를 받으면 그는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간다는 말씀도 전한다.
그러나 아버지를 알아도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서 돌이키지 못하는 자는 어제나 오늘이나 또한 그 마지막 때도 말씀을 듣고도 보고도 순종치 못한다. 그러다 그 환난의 마지막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 그리스도와 함께하던 교회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가 진실로 밝혀지는 것을 깨닫는다. 즉 그들은 666을 받았으니 자신을 돌이킬래야 돌이킬 수가 없게 되어 울면서 그대로 사망을 맞이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애곡하는 것은 살아있는 채로 무저갱의 불로 들어가는 자신을 보지만 자기 자신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곳에 서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노아의 때에도 소돔과 고모라의 때에도 모세의 때에도 그리스도의 전에도 교회시대에도 육과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오직 말씀에 순종하며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애썼다. 그리고 이것은 이 마지막 때에도 마찬가지이니 돌이킨 자는 지금도 거룩에 애쓰고 있다. 그리하여 정결한 그들이 아버지의 약속대로 환난의 전에 들림을 받는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께 받은 그 피를 환난가운데서 목 베임을 통해 아버지께로 올려드리고 그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므로 생명을 얻는다. 예를 들어 그가 아무리 크고 부끄러운 죄가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의 피가 죄를 사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이 범한 모든 불의와 죄들을 회개하므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영접하면 그는 말씀의 약속대로 영의 거듭남을 얻어 백성의 생명을 얻는다. 또한 영의 생명을 얻은 자가 이제는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세상에서 나와 의를 따르면 그는 말씀의 약속대로 자신의 속에 거하는 그 죄를 이기고 혼의 거듭남을 얻게 되니 영혼의 구원에 이른 그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아들과 같은 그 거룩한 몸의 구속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말씀을 듣고 믿는 자가 아니요 오직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생명을 얻는다. 그러므로 누군가 만일 그리스도의 피에 속죄의 능력이 있음을 믿었으나 정작 자신의 죄들을 회개치 않는 자들은 피의 구속을 얻지 못했으니 불순종한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도 유황불 못이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십자가를 통해 피의 구속을 얻은 자들이 이제는 몸의 구속에도 이르기를 원하시되 생명은 오직 말씀을 듣고 순종하므로 얻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영혼들이 이 땅에서 육신의 기회가 있을 동안 말씀에 순종해 혼의 거룩을 이루기 원하는 마음으로 심판대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또한 자신의 심판대에서 각 영혼들이 심판 받는 그 날 후에 온전케 되는 과정가운데서 그들이 어떠한 일들을 겪는지도 알려주신다. 즉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와 불순종하는 자의 심판을 보이시므로 그들이 순종을 택하여 그 생명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순종하므로 심판대에서 비와 창수와 바람과 같은 심판의 말씀을 들었을 때 요동치 않고 그 거룩한 몸의 생명을 얻어 영광의 자유에 이르고 누가 불순종하므로 그 동일한 심판의 말씀을 듣고 요동하며 무너지는가? 또한 순종과 불순종은 과연 무엇에 달려있는가? 한가지 비유를 통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여자가 자기를 죽기까지 사랑한 남자와 혼인할 때 자기의 남자만을 순종하며 따르겠노라 인생을 사는 동안 정절을 지키겠노라 굳게 서약했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에게 일용할 양식을 챙겨주며 변함없이 사랑했고 여자는 신혼기간에 자신의 서약을 잘 지켰다. 남자에 대한 사랑의 힘이 있기에 자기의 생각과 의를 내려놓고 그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하지만 1년쯤 지나자 남자에게 받은 첫사랑을 잊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남자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고 때로는 남자를 따르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주고 결국 몸도 주게 되었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기 보다는 자기의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나를 죽기까지 사랑했으니 제가 당신의 말을 듣지 않고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아도 절 이해하고 받아주세요. 세상사는 게 바빠 마음에 틈이 생겨 처음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지만 이 세상에 무엇을 나에게 다 준대도 당신만은 못해요. 당신은 사랑이 풍성하니 제가 이래도 사랑해주세요. 여보! 사랑해요. 전 당신을 사랑해요. 진심이에요.” 게다가 여자는 자신과 간음한 남자에게 받은 돈을 남편에게 갖다 주었다. 이에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며 나의 말과 뜻에 순종치 않는다면 사랑한다는 그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 또한 당신의 마음과 몸이 다른 남자와 함께하며 얻은 돈을 나에게 사랑한다며 가져올 때 내가 그것을 받는 것이 가하오? 그러므로 당신이 나와 혼인할 때 약속한 것을 지켜야 나도 당신을 더 사랑하며 또한 당신과 더욱더 한 몸을 이룰 것이오” 남자는 이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말하고 기다려주었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다른 남자에게서 끝까지 돌이키지 못했으니 자신이 받은 첫사랑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인격체인 그 남자는 인격체인 그 여자를 때리거나 강제로 이끌지 않고 손을 놓아 고이 보내주었다.
이와 같이 거듭난 후에 죽음보다 강한 그 첫사랑을 잃은 영혼은 자신의 마음을 썩어질 육과 자신을 높이려는 헛된 영광에 빼앗기게 된다. 그리고 자기의 생각을 돌이키지 못하고 자기의 의를 내려놓지 못한 자들은 오히려 자기의 뜻과 계획을 아버지의 것으로 바꾸어 이루어가게 되어있다. 심지어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알기에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는 그 길에서 반드시 ‘주여 주여’를 부르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해요’라고 눈물의 고백도 한다. 그리하여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치 못하고 있는 자들에게 어찌 사랑 위에 더 큰 사랑이 은혜 위에 더 큰 은혜가 구원 위에 더 큰 구원이 임하리요?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의를 이루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아니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를 따르는 자는 결단코 자신의 안에 있는 죄와 싸워 이기지 못하여 믿음의 결국 영혼의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거룩하시니 조그만 흠도 받지 못하시며 또한 영원한 본향인 셋째하늘에는 오직 순종하는 거룩한 자들만이 거하니 아버지와 아들께서 어찌 의롭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한 영혼을 받으시리요? 하지만 많은 자들이 이 세상에서 죄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있는 십자가의 피를 가지고도 혼의 거룩을 이루지 못한 상태로 즉 혈기와 교만과 미움과 판단과 정죄와 음란이 가득한 자신이 그 의롭고 거룩한 곳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 즉 영만 거듭난 자가 육에서 나와 심판대에 서는 날 그리스도께서는 요동하며 무너진 그를 유황불 못으로 보내지 않으신다. 그것은 그의 안에 아직까지 십자가의 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피를 가지고도 혼의 거룩을 이루지 못한 그를 심판하시어 온전케 되는 과정으로 보내신다. 그리하여 그가 그곳에서 자신의 모든 생각과 의와 혈기를 내려놓고 말씀에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면 아버지께서 그를 의로운 백성으로써 받아주신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모든 자들이 그 과정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거듭남의 은혜를 받은 자들 가운데 그의 심령이 반드시 그리스도의 피를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거듭남의 은혜를 거부한 이방인들과 은혜를 받고 타락한 영혼들과 욕심과 교만으로 범죄한 후 나는 믿는 자이니 결코 정죄함이 없다며 회개치 않은 자들은 그의 심령에 피가 없으니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대로 땅속에 있는 그 무저갱의 형벌로 들어간다.
또한 그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 모든 자들이 그곳에서 거룩을 이루고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가 만일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주장하며 그곳에서도 끝까지 말씀에 불순종하면 그는 호리라도 갚지 못했으니 결단코 그곳에서 나오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곳에서 ‘나는 주의 이름을 부르며 또한 주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행했는데 내가 왜 여기에 있나?’라고 생각하며 불평불만 하게 되니 결국 그 어두운 곳에서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영혼들은 그 무너짐이 심하다.
하지만 거듭남도 없이 종교생활을 하는 자들은 이 어두운 곳을 깨닫지 못하니 누구든지 다 과정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또한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으니 돈을 내면 자신의 가족이 그곳으로 간다고 믿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죄의 용서를 받고 은혜로 얻는 영의 거듭남은 그가 오직 육신의 기회가 있을 때만 얻는 것이니 죽어서 혹은 어떤 중간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죽어서도 구원의 기회가 있다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그의 마음은 죄를 사랑하여 놓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요 오늘은 세상을 즐기다 내일 죽어서는 좋은 곳에 가겠다는 심보다. 그러므로 이렇게 안일한 자들이 이 세상에 거하는 동안 어떻게 피로 거룩을 이룰 수 있으리요?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십자가를 통해 모든 사람의 앞에 생명과 사망을 공평하게 두신 후 각 사람에게 오직 한번의 죽음을 정하시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어떤 영혼에게는 거룩한 육체의 부활을 어떤 영혼에게는 무너짐을 어떤 영혼에게는 심한 무너짐을 어떤 영혼에게는 형벌의 사망을 내리신다. 하지만 그것은 아버지의 차별하심이 아니시요 오직 사랑과 은혜를 대하는 각 사람의 마음과 더불어 생명의 말씀에 대한 각 인격체의 순종과 불순종으로 결정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십자가의 첫사랑을 잊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할 때 자신과 가족과 공동체의 지체들의 영혼에 유익이 있다. 게다가 이 세상에서의 삶은 잠깐이지만 한번의 심판이 영원히 간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이 첫째 하늘과 천년왕국의 끝에 모든 심판이 마쳐진 후 가게 되는 셋째 하늘은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영원한 나라이다. 그런데 그 나라에 아버지께서 제사장으로 삼으신 자녀들이 있다. 그리고 제사장이 하는 일은 피의 제사를 드리는 일이다. 그러나 셋째 하늘에서는 제사드릴 일이 없으니 그 이유는 선지자들은 이 첫째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전에 이미 피의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자녀들이 하는 일은 아버지와 하나되기 위해 오직 성전에 거하며 그들 자신을 늘 깨끗하게 하며 정결케 하며 흠 없게 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그 영원한 나라에 또한 아버지께서 왕으로 삼으신 자녀들이 있다. 그리고 왕이 하는 일은 백성들을 다스리는 일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셋째 하늘에서 예루살렘성밖에 거하는 백성들을 말씀으로 왕과 같이 다스리는 그 일을 이 땅에 있을 때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룬 자들에게 주신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이 어찌 자기의 생각과 의를 가지고 자신의 뜻대로 다른 인격체들을 다스릴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후의 이방인의 택하신 교회와 신령한 교회는 아버지를 그 계획을 위하여 이 첫째 하늘에 있을 때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을 듣고 아버지의 말씀만을 전하며 자신이 듣고 전한 그 말씀을 따라 어느 이는 정결함을 어느 이는 죽기까지 순종해 거룩함을 이룬 자들이다.
셋째 하늘의 다스림은 이러하니 예를 들어 이 세상을 볼 때 나라들도 많고 왕들도 많지만 한 나라에는 왕이 한 명씩 있다. 그런데 그 많은 나라들 가운데 한 나라가 셋째 하늘에서는 한 교회로 여김을 받는다. 그러므로 그 한 나라에 있는 백성들이 바로 셋째 하늘의 한 지역의 백성들이 되고 그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서 한 지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을 볼 때 나라들도 많고 왕들도 많다 하였으니 셋째 하늘에서는 한 지역에 있는 백성들을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있고 또한 다른 지역에 있는 백성들을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몸도 있다. 그러므로 그 여러 교회들을 다스리는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 후에 그리스도처럼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그리스도와 같은 몸을 얻은 아버지의 장자들이다.
하지만 그 신약의 장자들과 또한 구약의 장자들을 함께 다스리는 분이 계시니 그가 바로 그 모든 자녀들 가운데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아버지의 말씀에 영원토록 순종하시니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없는 셋째 하늘에서는 오직 아버지의 뜻과 계획이 영원토록 이루어져간다.
한 지역에서 왕과 같이 아버지의 나라를 다스리는 교회와 백성들의 수효는 이러하니 한 교회가 천을 다스리되 가장 큰 교회가 다스리는 수는 오천이다. 그리고 신약의 장자는 그리스도의 몸 천에서 한 명이 나오도록 계획하셨다. 또한 그리스도 후의 이방인의 장자들이 다스리는 교회의 수도 각각 다르니 누구는 열명의 교회를 다스리게 되고 누구는 백 명의 교회를 다스리게 되고 누구는 천명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로 신실하고 충성된 자에게는 많은 교회를 맡기시되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적은 수를 맡게 된다.
한편 셋째 하늘에서 장자와 교회의 다스림은 아버지의 뜻과 영혼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다스림은 첫째로는 말씀으로 자신의 거룩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요 둘째로는 자신보다 아래 있는 자들을 말씀으로 다스리며 셋째로는 셋째 하늘을 계속적으로 말씀대로 번성케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그 나라가 오직 아버지의 뜻과 계획대로 영원토록 이루어져 나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자들은 그곳에서 거할 때 내가 무엇을 할까에 마음을 두지 말고 내가 어디에 있는가에 마음을 두는 것이 옳다.
셋째 하늘에서는 이러한 제사장과 왕의 일들이 영원하다. 또한 아버지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정확하시니 그 공의와 사랑의 위계질서가 바뀌지 아니한다. 즉 영원까지 백 명을 다스릴 자는 백 명을 열 명을 다스릴 자는 열 명을 다스리고 백성은 영원토록 다스림을 받는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며 이 땅에서 거룩을 이루고 백성들을 말씀으로 다스리는 왕과 제사장이 된 자들도 또한 과정에서 거룩을 이루고 온전케 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도 모두다 자신이 얻은 그 구원이 은혜임을 고백한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오직 아버지께로 감사의 영광을 돌려드리는 일밖에 없다.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은 누구든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또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또한 자신의 주로 영접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로 공로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을 수 있다. 한편 거듭난 영혼이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면 그 피로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워 이길 수 있으니 그는 죄에서 해방되어 그 거룩한 자유에 이를 수 있다. 그런데 그의 피로 죄에서 해방된다는 이 말씀은 남자는 씨요 여자는 밭이라는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아버지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통해 사람이 태어나는 것을 씨가 땅에 떨어져 자라나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계획하셨다. 그러므로 우선 남자에게는 생명의 씨가 있으되 그 씨는 오직 남자의 깊은 곳에서 물과 피가 합쳐져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씨를 보관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로 들어가니 여자의 밭이 그것을 받아 키워 새로운 생명의 열매로서 맺어 나온 것이 바로 사람이다.
이처럼 남자의 씨에는 생명의 피가 있으며 여자의 땅은 오직 그 생명의 피를 받아 열매를 맺게 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씨가 아니요 아버지의 씨이셨으며 오직 밭만이 마리아의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깨끗한 피를 가진 그 생명의 씨가 여자를 통해 나온 그 열매가 바로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셨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짐승과는 달리 사람에게는 영을 주셨으니 사람은 영원히 살게 되는 그 영을 자신이 태중에 있을 때 그의 어미를 통해 받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나 마리아가 낳은 그 아들은 2천년 전에 생명을 얻으신 분이 아니요 이미 태초에 아버지의 품에서 나온 아버지의 형상이요 모든 만물의 창조자셨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영광의 형상이신 그 아들께서는 다른 사람들처럼 태중에서 자신의 육신의 어미요 사람인 그 마리아에게로부터 자기의 영을 받지 아니하셨다.
이처럼 사람은 그의 아비의 씨가 어미의 밭에서 영과 함께 열매를 맺어 나온 열매이니 사람은 오직 사람의 피만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아버지의 형상이신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는 육신의 아비요 사람인 그 요셉의 씨가 맺힌 것이 아니요 오직 아버지의 생명의 씨가 여자의 밭에 떨어져 자란 후 나온 분이셨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보고 완전한 사람이요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아들의 그 피는 사람의 피가 아니요 아버지의 그 거룩하시고 흠이 없으신 피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이신 아버지의 생명을 가진 아들께서는 아버지의 그 거룩하신 피를 가지고 이 땅에 와 우리와 같은 육신의 안에 계시는 동안 오직 말씀에 순종으로 범죄치 않으셨으니 그 거룩을 끝까지 유지하셨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그 거룩하고 흠 없는 피를 다 흘려주시므로 정결케 하시려는 아버지의 그 뜻을 다 이루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든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를 의지하는 자는 거룩을 이룰 수 있다. 즉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의지하는 자는 원수를 이기는 그는 그 선악의 죄에서 해방된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룬 그가 그리스도처럼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같은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누구든지 자신의 마음을 육과 세상에 두거나 혹은 자기의 의와 생각을 따르는 자는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니 아버지의 아들의 그 피를 얻지 못하여 그 능력의 피를 끝까지 의지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거듭난 후 아버지의 뜻 이외에 다른 곳에 마음을 둔 영혼은 육신의 기회가 있는 동안 그 죄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것이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인자한 왕이 자기의 백성들을 위해 공평하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 게다가 보잘것없는 백성들을 크게 여겨서 한 명 한 명에게 마음을 두고 큰 상급을 준비했다. 하지만 왕은 아무에게나 상급을 주는 것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말을 듣고 따르며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한 자에게 주고 싶었다. 그러므로 모든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니 이런 복된 백성이 되도록 너희의 뒷마당에는 한 그루의 극상품 포도나무가 심겨져 있노라. 그런데 그 나무는 5년 동안 마음을 다해 가꾸면 깨끗한 포도를 맺을 것이되 다른 곳에 마음을 두고 가꾸면 사람이 먹지 못할 신 포도를 내겠노라. 그러므로 5년 후에 깨끗한 열매를 맺은 자는 나에게 무슨 심판의 말을 들어도 요동치 아니함은 그의 마음이 나에게 있었기 때문이요 신 포도를 맺은 자는 마음이 다른 곳에 있었으니 내게 무슨 심판의 말을 들어도 요동할 것이니라.” 왕의 말을 듣자 첫째 사람은 자신이 왕에게 받은 은혜가 큰 것임을 깨닫고 자신의 마음을 왕에게서 한 순간도 떼지 않았기에 깨끗한 포도가 맺힐 것을 믿고 오로지 왕의 뜻만을 이루어갈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5년이라는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갔고 그의 나무에서는 깨끗한 포도가 맺혔고 그의 옆에 있는 나무들도 좋은 열매를 맺었다. 반면 둘째 사람은 자신이 받은 은혜를 일년 만에 잊었으니 그의 마음은 세상으로 빠졌다. 또한 우리 왕은 무엇이든 크고 많은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며 자기의 뒷마당을 점점 크게 넓히면서 그곳에 수많은 포도나무를 심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하는 이 모든 일들을 나의 왕이 다 인정해주실 것이라는 마음을 품었으나 많은 일들을 행하느라 정작 자기의 뒷마당에 있는 자기의 포도나무를 깨끗하게 가꾸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의 나무는 5년 후에 신 포도를 맺었으며 또한 그가 가꾼 다른 포도나무들도 전부다 신 포도를 냈다. 이제 5년이 지난 후 두 사람은 공히 심판을 받으러 왕의 앞으로 나갔다. 이에 왕이 첫째 사람에게 심판의 말을 할 때 그는 비록 떨렸으나 왕이 무슨 말을 해도 그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고 기뻐했으니 자신의 마음이 오직 왕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왕의 말대로 순종하며 일한 만큼 받은 자신이 상급에 대해 감사하며 왕의 모든 결정을 인정했다. 반면 둘째 사람은 심판의 말을 들을 때 자신이 이룬 일이 많았기에 기대가 컸으나 왕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그의 마음은 이리저리 요동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불순종하며 열심히 일한만큼 받은 그 심판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 한 번의 죽음과 한 번의 심판을 정하셨으니 모든 사람의 영혼은 자기가 거하던 그 육신의 장막에서 벗어난 후 자기가 행한 대로 생명의 상급이나 사망의 상급을 받기 위해 둘째하늘의 낙원에 계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때 자신의 심판대 앞으로 나오는 모든 영혼들에게 비와 창수와 바람과 같은 심판의 말씀을 의롭고 정직하게 전하신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피를 얻은 후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며 받았던 생명의 말씀과 거룩한 진리에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룬 영혼들은 그 심판대에서 그리스도께로 어떠한 심판의 말씀을 받더라도 요동치 않고 굳게 선다. 그것은 그들이 크고 많은 일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요 자신이 받은 그 십자가의 크신 은혜를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빼앗기지 아니하고 늘 그 첫사랑을 마음에 간직하고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의 거룩에 애썼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의 뜻에 이른 영혼은 그리스도 앞에 설 때에 자신의 믿음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알기에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말씀을 하실지라도 그의 마음이 요동치 아니하는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의 그 말씀에 그가 자신을 비추어 그 심판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대에서 요동치 않는 영혼에게는 거룩한 육체의 상급이 주어지니 그는 다시는 무너지지 않는 그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 영광의 자유를 누리며 그리스도를 따라 성소로 들어가 아버지의 얼굴과 영광을 뵈오며 영원토록 아버지를 섬기게 된다.
반대로 십자가를 통한 거룩을 믿노라 하면서도 육과 세상을 따르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일을 이루지 못하고 심판대에 서는 영혼은 그리스도께로 그 어떠한 말을 들어도 그의 마음이 요동친다. 또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는 그리스도의 심판도 받아들이지 못함은 그 심판의 말씀에 자기자신을 비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마음이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뜻에 없었음을 돌아보지는 못하고 심판대에서 오직 자기가 마음 없이 행한 것에 대해 상급을 달라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어두운 곳에 들어 간 후 나는 예수이름으로 모든 것을 행했는데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하며 불평불만 한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도 말씀으로 육신의 혼의 생명을 끊지 못하고 온전케 되는 의인의 과정에서도 자기의 생각과 의를 돌이키지 못하는 그 어리석고 교만한 자들이 그 어두운 곳에서 영원히 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육에 있을 때 이미 불의와 죄를 돌이키라는 거룩하신 영의 책망도 받았던 자들이요 이미 말씀도 알고 있는 자들이니 이 어두운 곳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에서 돌이켜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을 이루어가기보다는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가며 자신이 높아짐을 놓지 못했다. 또한 불법을 행하며 비록 내가 육과 세상을 놓지 못할지라도 내 안에 죄가 거할지라도 내가 행하는 일들을 아버지께서 다 인정해주시리라 하며 오히려 그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하면서 나갔던 어리석은 자들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심판에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또한 자신의 행위를 비추어보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과 함께 그 과정으로 들어가지만 서서히 자신의 어리석음에서 돌이킨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국 말씀에 순종하므로 마음의 깨끗함과 거룩을 이루고 그곳에서 나온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대로 온전케 된 그 영혼들이 셋째하늘에서 아버지의 의로운 백성들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영혼들이 여기에 속하는 것이 아니요 단 한 말씀에라도 순종했던 자여야 하니 오직 그의 심령이 아직까지 그리스도의 피를 붙들고 있어야 하며 그가 이 첫째하늘에 있을 때 자신의 마음을 다해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에 애쓰되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실 때에 거룩하지 못한 자가 이에 속한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 아무리 크고 많은 일을 행했을지라도 죄인을 온전히 거룩하게 하는 그 십자가의 능력과 공로를 믿고 의지하지 못하는 자들은 모든 행위들이 다 헛된 것이니 그가 어리석은 자들과 함께 그 과정 속으로 들어가되 순종으로 혼이 온전케 되어 아버지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러한 심판의 말씀을 받을 때 요동치 아니하려면 그리고 그때를 위하여 이 세상에서도 사람과 육과 세상에 떠밀려 요동치 아니하고 오로지 진리로 거룩을 이루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하리요? 사람은 무엇을 듣고 행하기까지는 오직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말씀을 들었을 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바로 순종으로 옮기는 자에게 거룩의 복이 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거룩을 이미 그의 마음에서 놓았거나 아니면 게을러서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는 것이니 그러한 자들은 그대로 무너지는 심판이 이른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아버지께서는 그 기쁘신 뜻과 그 착한 일을 이미 태초에 계획하셨고 아들께서는 거룩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고 거룩하신 영께서는 거듭난 자들 가운데 첫사랑을 품고 십자가로 모이는 영혼들이 거룩에 이르도록 종들을 통해 도우신다. 그러므로 한 몸의 목자도 거룩한 종들의 섬김을 받으며 자신과 지체들의 거룩만을 이루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며 행하되 거룩에 마음이 없는 목자는 자기의 뜻과 계획을 주님의 뜻과 사역이라며 열심히 이루어간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불법을 행한 목자는 받지 않으시니 그가 육에서 나와 심판대에서 섰을 때 자신에게서 떠나가라고 명하신다. 그리하여 그 목자들은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슬피 울되 그 한 번의 심판이 영원히 간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알리신 그 어두운 곳이 어디에 있는지 또한 거기서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르되 영혼의 갈급함과 거룩에 마음 없는 자들은 알려고도 아니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다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옆에 있으리라 생각하고 안 믿는 자들은 다 영원한 유황불 못에 간다고만 깨닫고 있다. 게다가 나는 그리스도의 피가 있다며 더러운 말과 행위들을 지속하는 자들도 있으니 자신이 육을 벗은 후 들어가게 될 그 어두운 곳을 그들이 어떻게 알며 깨달으리요?
아버지께서는 그 어두운 곳을 오직 영을 이용해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며 자신을 높인 자들을 위해 준비해두셨으니 그리스도께서는 목자들이 불법에 빠지지 않도록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자세히 알려주셨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깊은 것도 통달하시는 거룩하신 영께서는 불법이 성한 이 마지막 때에 불법에 빠져있는 교만한 목자들이 돌이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곳에 대해 알리신다. 그러므로 그 어두운 곳은 아버지와 아들께서 다스리시되 빛으로 다스리시지 아니하심은 그곳은 자신에 대한 원망과 주인에 대한 불만불평으로 가득 찬 곳이기에 그곳에 있는 영혼들이 스스로 말씀을 원치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곳은 완전한 어두움으로 감싸져 있으며 아버지의 나라에서 가장 아래쪽에 있으나 양들을 육과 세상으로 이끈 거짓목자들이 뜨거운 형벌의 고통을 받는 유황불 못과는 다른 곳이다. 그곳이 어떤 목자를 위한 곳인지 주인과 종의 비유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어떤 두 종이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주인에게 저의 목숨을 바쳐서 오직 주인님의 일만하겠노라고 결단했다. 이에 주인은 3일만에 좋은 상급을 보여준 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일은 땅을 파고 돌을 꺼낸 후 그곳에 나무를 심고 정성스럽게 가꾸어 가지에 깨끗한 열매들을 맺는 것이니라. 그런데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 일하는 동안에는 힘들지만 마음은 늘 기쁨과 감사가 있을 것이요 반드시 일을 다 마친 후에야 땀 흘린 만큼 상급을 줄 것이니라. 반대로 너희가 원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반드시 일하는 동안 사람들에게 영광을 얻을 것이되 마음에서 나오는 불평과 불만이 입술에서 끝까지 떠나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런데 첫째 종은 일하는 동안 당장 얻는 영광이 좋아 보였다. 그러므로 그는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않고 깨끗한 열매와 상관없는 일에 열심을 내며 다른 곳에 가지도 않고 늘 한 곳에서 그 일을 했으니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일을 이루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가 이룬 일의 시작과 과정과 결과를 보며 그를 높여주었고 그 종은 많은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으며 흐뭇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며 자기 뜻대로 안되거나 어렵고 힘들 때마다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았다. 또한 사람들의 앞에서도 불평불만하며 자신이 주님의 일을 하고 있으니 동참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이내 기뻐졌다. 반면 둘째 종도 주인이 상급을 준다는 것은 믿었으나 상급은 모르고 오직 마음을 다하여 자기의 주인만을 섬기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 종도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다른 곳에 가지도 않고 늘 한 곳에서 깨끗한 열매를 위해 일했으니 점점 주인의 일이 이루어져갔다. 그리고 그는 주인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기뻐하되 열매들이 깨끗해질수록 겸손해졌다. 그러므로 그의 마음속에 거하는 기쁨과 겸손은 그가 마음을 다하여 오직 주인만 섬기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충성스런 그 종을 높여주거나 돕기는커녕 오히려 미워하며 핍박했다. 하지만 그의 입술에서는 그 어떤 불평과 불만도 나오지 않고 오히려 미움과 핍박을 받을수록 기뻐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다 결국 주인이 원하던 일이 다 이루어졌을 때 주인은 그에게 3일만에 더 큰 일과 다른 종들도 맡기고 자신의 가까이에 두었다. 마찬가지로 첫째 종에게도 그가 행한 일에 대한 상급을 주었으니 그 종은 자신이 일하면서 입술로 불평과 불만을 낸 만큼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은 만큼 주인으로부터 멀리 갔다. 하지만 거기서도 마음을 돌이키지 않고 끝까지 불평과 불만을 내뱉었다.
이처럼 종으로서 만약 주인이신 아버지와 아들의 상급만을 바라보고 일하는 목자는 자신의 마음과 몸을 다해 열심히 일하되 거룩을 모르기에 자기의 뜻과 목회철학과 선교비전이 아버지의 뜻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이라는 생각을 붙든다. 이때 원수는 자신처럼 교만한 목자에게 자기의 종들을 붙여주고 자신이 처음부터 살인할 때 품었던 불평과 불만으로 그의 마음을 이끄니 그는 거룩과 상관없는 많은 일들을 이루어가지만 그의 입에서는 불평과 불만이 나오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입이 내는 불평과 불만을 자신의 귀로 들을 때에는 자신이 불법을 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불평불만가운데서 평생 자기의 일을 행하고 받는 상급이 바로 그 어두운 곳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인격체는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 한 그 마음이 끝까지 간다. 그러므로 주님을 섬긴다며 아버지의 뜻에 마음이 없는 목자는 이 세상에서 불평불만을 내다 마지막 날 그의 영혼이 육을 벗어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도 내뱉는다. 그러나 재판장께서는 그들의 불평불만을 들으실 때에 다투거나 들레지 않고 동일하게 하시는 말씀은 이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마음 없이 일하는 것은 그가 일하지 못한 자보다 더 낮게 보시는 도다. 또한 마음이 없는 것은 거룩하지 못하니 내가 어찌 받을 수 있겠느뇨?” 그리고 나서 아버지의 뜻에 마음이 없이 일한 만큼 자신이 높아지는 것을 기뻐한 만큼 심판하시어 어두운 곳으로 쫓아내신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도 돌이키지 아니하고 나는 세상에서 열심히 주님의 일을 했는데 왜 내가 여기에 있느냐며 불평불만하되 그것이 영원히 간다.
반면 상급을 모르고 마음을 다하여 주인을 섬기는 종은 자기 주인의 마음과 뜻을 알기에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며 푸른 초장에 모인 지체들에게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어간다. 이에 아버지와 아들께서도 그 종의 마음을 아시니 그가 행한 일의 두 배 세 배 네 배 다섯 배의 상급을 그가 육신을 벗었을 때 허락하신다. 또한 그에게 더 큰 일과 많은 백성들을 맡기시며 마지막에는 다른 종들까지 다스리게 하신다. 하지만 높아지는 종은 높아질수록 겸손하니 그것은 그가 주인의 영광을 빼앗지 아니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해 오직 자기의 주인만을 섬기기 때문이다.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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