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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3/07/03
    이기는 그에게는
    살고자하는 마음
  2. 2013/07/02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살고자하는 마음
  3. 2011/10/12
    내가 사랑하는 자
    살고자하는 마음
  4. 2011/10/11
    안약
    살고자하는 마음
  5. 2011/10/10
    벌거벗은 수치
    살고자하는 마음
  6. 2011/10/07
    불로 연단한 금
    살고자하는 마음
  7. 2011/10/05
    나는 부자라
    살고자하는 마음
  8. 2011/10/04
    내 입에서 너를
    살고자하는 마음
  9. 2011/10/03
    차든지 더웁든지
    살고자하는 마음
  10. 2011/10/02
    창조의 근본
    살고자하는 마음

이기는 그에게는

어떤 왕이 자기의 나라를 공의와 사랑으로 평화롭게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악한 자들이 쳐들어와 사람들을 칼로 찌르며 용광로에 빠뜨려 죽이기 시작했다. 이에 그 왕은 전쟁터로 나가 자기 혼자 용감하게 싸워 상대편 나라의 칼과 용광로를 다 쳐부쉈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자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으며 큰 영광을 가지고 다스렸다. 그런데 백성들은 자기의 왕이 홀로 싸우는 그 모습과 또한 승리한 후 큰 영광을 얻어서 다스리는 그 모습을 처음에는 눈물을 흘리며 나중에는 존경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때 왕은 영광스러운 자신을 우러러보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는 자는 나와 같이 승리를 할 것이니 내가 그를 도울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싸움에서 승리한 자는 나와 같은 자가 될 것이니 그는 나처럼 큰 영광을 얻어 나의 왕좌에 함께 앉겠노라.” 왕의 말을 듣자 14명이 왕의 앞으로 나와 이렇게 말하며 왕과 약속했다. “제가 어찌 편히 누워서 영광 받기를 바라겠나이까? 다른 사람이 어찌하든지 저는 왕의 군사가 되겠습니다. 제가 승리하기까지 왕께서 싸우신 것을 보고 그대로 싸우겠습니다. 그 영광을 위해 저의 마음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바쳐 싸우겠나이다. 왕의 용사된 제게 왕의 일을 맡기소서.” 왕은 이렇게 자신과 자신의 나라를 위해 충성을 맹세한 군사들이 자기처럼 용감하고 힘있게 끝까지 싸워 승리하길 원했다. 그러므로 전쟁터로 나가는 전날 밤에 군사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그들에게 힘을 낼 수 있는 음식들을 많이 베풀었다. 또한 악한 자들의 칼과 용광로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하나 하나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밤이 되자 왕의 군사들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드디어 싸움터로 나갔으며 왕은 자기가 했던 약속을 다 지켰다. 즉 자기를 따르는 군사들이 마음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바쳐 악한 자들과 싸울 때 그들을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전쟁터에서 악한 자들의 칼과 용광로를 조금도 겁내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다. 그리하여 왕을 따르며 왕의 말을 들은 군사들은 악한 나라와의 싸움에서 모두다 승리를 얻었다. 그리고 승리한 왕의 군사들은 승전가를 높이 부르며 백성들에게 큰 환영을 받으며 새벽에 왕궁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왕은 어떤 군사는 자기의 오른쪽에 앉는 영광을 주고 어떤 군사는 자기의 왼쪽에 앉는 영광을 주며 너희는 나와 같은 자라고 했다. 그러므로 왕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은 군사들은 자신의 왕과 함께 큰 영광과 기쁨을 누리며 왕의 나라를 함께 다스렸다. 

 

이와 같이 이기는 자는 자신의 안에 있는 그선악의죄와 또한 이 세상을 이기는 자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그것들을 이길 수 있으리요? 사람과 같은 연약한 육신을 실제로 입고 가장 먼저 그것들을 이긴 분은 오직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시요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기신 그가 자신을 따라오는 자와 함께하며 도왔기에 그도 역시 육체가운데서 죽음으로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긴 자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자들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에서 이긴 그 아들에게 거룩한 육체를 입히고 부활시키시어 지성소에 있는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주셨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동등함을 취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을 자신의 가장 가까이에 앉히시므로 그를 모든 만물가운데서 매우 높여주셨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믿고 따르며 이긴 자들에게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주겠노라 약속하셨다. 하지만 거룩한육체를 입은 24장로와 장자들도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와 동등함을 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긴 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앉되 그들은 그리스도의 보좌에 앉는 것이 아니니 그 의미는 이것이다. 

 

우선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낙원이 있는 둘째 하늘을 이끌고 내려오셨을 때 이 땅은 태초에 선하고 깨끗하게 창조되었던 에덴동산처럼 회복된다. 그리고 낙원의 북방 가장 높은 산에 새예루살렘성이 있으니 그리스도는 그 성안에서 정가운데 앉으신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쪽으로는 남았던 유대인을 왼쪽으로는 이겼던 이방인을 앉히신다. 그리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자들이 다 그리스도와 같이 이긴 자가 되므로 그 영광스런 자리에 앉아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천 년 동안 함께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기는 자들이 이렇게 그리스도의 보좌에 함께 앉아 다스리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한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의 끝에 이 첫째 하늘이 유황불 못으로 변하고 모든 것들이 그 안으로 들어갈 때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심판을 마치셨으니 장자들과 신령한 교회와 백성들을 이끌고 아버지의 나라로 올라가신다. 그러면 셋째 하늘의 시온산에도 역시 새예루살렘성이 있다. 그러므로 이긴 자들은 그곳에서도 그리스도의 우편과 좌편에 앉아 함께 기쁨을 누리며 또한 자신이 받은 그 영광스런 빛을 비추고 다니며 시간과 공간의 끝이 없는 셋째 하늘을 영원히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어떤 남자가 자신의 마음과 몸을 다해 한 여자를 사랑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그 여자는 그 남자와 결혼을 약속하고는 혼인날까지 정절을 지키겠노라 마음먹었다. 이제 남자는 여자를 위해 혼인예식과 혼인잔치를 준비하러 떠났다. 그리고 여자는 그때부터 자신의 남자가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며 자신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지나며 기다리는 동안 남자 없는 연약한 여자로서 억울하고 슬픈 일을 많이 당했다.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가 빨리 돌아오기를 바랬다. 또한 다시는 헤어지지 않고 어디든지 남자와 함께 다니며 늘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다. 여자는 이렇게 간절한 마음과 소망을 가지고 오직 남자가 돌아오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다 어느 날 드디어 남자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돌아오며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이에 그 여자는 남자의 목소리를 한 번에 알아듣고 매우 기뻐하며 집에서 뛰어나와 남자에게로 달려갔다. 그러자 남자는 여자를 자신의 품에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를 기다리며 당신의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지키느라 수고했소. 순결한 당신을 위해 영광스런 혼인예식과 성대한 혼인잔치를 준비했소. 그러니 우리 함께 한 몸을 이루어 즐겁게 먹고 마시며 기쁘고 행복하게 삽시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 그 여자는 남자와 기쁨으로 한 몸을 이룬 후 준비된 혼인잔치에 참여해 신랑과 함께 앉아 즐겁게 먹고 마시며 기쁨과 행복을 누렸다. 그리고 그것이 끝난 후에도 늘 남자와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거하며 함께 다니며 함께 기쁨과 안식을 누렸다. 그리하여 순결을 지킨 그 여자는 자신이 간직했던 간절한 마음과 소망들을 다 이루었다. 

 

이와 같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는 말씀은 교회시대의 마지막에 그리스도께서 둘째 하늘을 이끌고 다시 오셨을 때에 그 안에 있는 낙원에서 실제로 있을 일이다. 그러므로 그 말씀의 의미와 순서는 다음과 같다. 

 

우선 그리스도께서 둘째 하늘을 이끌고 이 첫째 하늘로 내려오시기 전에 먼저 과정에 있던 그 영혼들이 종들과 함께 혼인잔치준비를 공중에다 다 차린다. 그런 후 아들의 일곱 종들이 내려와서 잔치가 빠짐없이 준비되었는가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후 다시 아들에게 가 준비가 다 되었음을 전한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때가 되었도다. 너의 신부를 맞이하라.’하시니 그리스도께서는 비로서 하늘 문을 열고 이 첫째 하늘로 내려오신다. 

 

바로 그때 아버지와 아들의 그 일곱 종들이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영혼들 가운데 자신의 마음과 몸을 육과 세상에 빼앗기지 않고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영과 혼과 육을 정결하게 지킨 신부들을 이미 다 찾아놓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무개 영혼아 오너라.’하시면 그 영혼이 신랑의 목소리를 듣고 알고 나온다. 그러면 종들은 장막에서 나온 그 영혼을 데리고 공중으로 올라가니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에 가장 가까운 자를 먼저 맞이하여 그를 껴안고 ‘수고하였도다. 아름다운 나의 몸이 되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다음 영혼도 똑같이 한 몸으로 맞이하시니 이렇게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는 것이 바로 어린양의 혼인예식이다. 또한 이제는 더 이상 떨어지지 아니하고 슬픈 것을 보지 아니하고 오로지 자신의 신랑과 함께하며 영원히 기쁨을 누리는 그날을 바라보며 그 정결한 영혼들이 신랑과 한자리에 앉아서 함께 잔치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며 기쁨을 누리니 그것이 바로 혼인잔치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정결한 한 영혼을 부르시면 세상에 마음을 두고 있는 영혼들은 그 음성을 듣지 못하되 오직 부름을 받은 영혼들은 신랑의 그 음성을 듣고 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음성을 들을 때에는 그 영혼이 매우 기뻐하며 그의 구원이 완성된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살고자 하는 마음과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깨어서 거룩을 이루고자 애쓰며 세상에서 받았던 모든 고난과 고통을 잊고 오히려 기쁨과 위로와 안식을 얻으며 그때부터 영원히 주님과 함께하게 된다. 

 

그렇다면 문 밖에 서서 두드리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교회시대의 마지막에 있을 그 환난이 임박한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과연 얼마나 가까이 오셨나? 먼저 두드린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둘째 하늘과 이 첫째 하늘의 문을 열고 오직 자신에게 마음을 드린 자에 대해서는 자신이 그 영혼의 속에 들어가고 그는 자신의 속에 들어와 자신의 신부가 되리라는 그 약속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현재 얼마나 가까이 오셨는가 하는 것은 상징적으로 그리스도께서 그 문을 여시고자 손잡이를 잡고 오른쪽으로 끝까지 돌리셨다. 그러므로 어느 때든지 그가 열고 나오실 수 있는 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들의 마음이 세상에 빠져 먹고 마시고 있으니 신랑의 마음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으시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내가 사랑하는 자

초대교회 당시 이방지역에 있던 라오디게아 교회의 지체들과 이 마지막 교회시대의 믿는 자들의 공통점이 있으니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당시 그들은 그리스도께로 책망과 징계를 받았다. 그러므로 이 비유를 깨닫는 영혼은 환난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이 왜 책망과 징계를 받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어떤 남자가 작은 진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진주는 크기는 비록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진주는 아무리 높은 사람도 가질 수 없고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얻을 수 없고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살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이렇게 소중한 진주를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값없이 주고 싶었다. 그러므로 남자는 그것을 작은 상자에다 넣고 하얀 종이로 포장했다. 한편 어떤 여자가 자신이 아끼는 바보상자를 가지고 그 남자의 옆에 있었다. 그리고 그 바보상자는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앉아서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컸다. 그런데 그 여자도 자신이 아끼는 여자에게 그것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러므로 택배박스로 포장을 하고 나니 상자가 엄청나게 컸다. 이제 그 남자와 그 여자는 각각 작은 선물과 큰 선물을 들고 자기가 아는 여자를 찾아가서 자기가 준비한 상자를 주며 이것은 당신을 위한 선물이라고 했다. 이에 여자는 남자의 선물은 크기가 작은 것을 보고 실망하며 풀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여자의 선물이 큰 것을 보고는 매우 기뻐하며 기대에 부풀어 뜯어보았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밤낮으로 사람들을 모아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즐기며 허송세월 했다. 그러나 남자가 준 작은 상자의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랐으니 텔레비전에 빠져 끝까지 뜯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람은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으면 그 선물을 풀어보고 그 안의 내용을 보아야 그가 기뻐할 터인데 그때 사람들과 지금 사람들의 공통점은 가장 작은 박스를 보고는 실망한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시대에는 말씀을 전하는 자도 말씀의 비밀을 알려고 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주장으로 말을 전하고 있으며 또한 듣는 자들도 그 말이 그 말이라며 자신의 믿음을 쌓아 올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판단한다.

 

게다가 갈급한 마음이 없는 그들은 가장 큰 박스를 보고는 기뻐한다. 즉 많은 사람들이 모이며 많은 돈이 나오며 큰 건물로 들어가기 원한다. 그러므로 교인들을 데리고 나가지 않는 한 거룩한 공동체로 어떤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품고 들어와도 상관없다. 오직 사람의 수가 많으면 그저 좋다. 그 물질을 내는 자가 아버지의 마음에 합당하지 않아도 혹은 그것이 어떤 물질이라도 많이 내면 무조건 좋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세상의 모든 건물들이 땅속으로 내려가도 또한 눈앞으로 다가온 한민족의 환난에서 큰 도시들의 모든 건물이 다 무너져내려도 상관없다. 오직 무너지게 될 건물을 크고 아름답게 짓되 이것이 교회요 성전이니 그 일에 복이 있다고 말하며 사람들을 생명 없는 곳으로 열심히 이끌고 있다. 전쟁의 전날까지 그럴 것이요 전쟁이 끝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하니 이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이 어찌 아버지와 아들께 책망과 징계를 받지 않을 수 있으리요? 하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아무에게나 훈계를 허락하시지 않으신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입장에서도 누구나 다 책망과 징계를 받는 것이 아니요 또한 그것을 받았다 하여 다 돌이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사생자이며 누가 참 아들인지 즉 아버지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와 사랑하시지 아니하시는 자를 어떻게 구분하시는지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한 아비가 두 아들을 데리고 있다. 그런데 첫째 아이는 오직 일만 열심히 하는 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바깥에 나가 열심히 농사를 짓고 밭을 가꾸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하니 일은 열심히 많이 오래하되 늘 아버지가 원치 않는 엉뚱한 일들을 벌였다. 반면 둘째 아이는 늘 아비의 품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아버지와 함께 거하는 시간이 많기에 자연히 책망을 많이 듣고 훈계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둘째는 오히려 그것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오직 아버지가 원하는 일만 했다. 그리하여 아비의 마음도 늘 둘째에게 있었다. 결국 그 아비는 첫째가 일을 하고 들어오면 그에게 잘했다고 칭찬한 후 그가 일한 만큼에 맞는 상급을 주었다. 하지만 잘못한 것에 대해선 꾸지람을 주었다. 그러나 늘 아비의 품에서 아비의 마음을 알고 행한 둘째는 나중에 오직 칭찬과 상급만을 받았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살고자 하는 갈급한 마음을가지고 불의와 죄악이가득한 이 세상에서 나와 자신의 거룩한 품 안에 거하는 영혼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사랑하는 그를 통하여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가기 원하신다. 그러므로 자신의 한 몸 안에 거하는 영혼이 의롭고 거룩하게 되도록 늘 책망과 훈계를 주시되 그것은 마음을 찌르는 것이요 채찍질같이 아프다. 하지만 부모에게 매를 맞을 때 잘못했다고 빌며 사랑의 품에 안기는 자식이 있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가지고 책망과 훈계를 받은 영혼은 공동체 안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거룩을 이룬 자들이 거룩한 육체를입고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로서그리스도와 형제자매로서 영원히 함께 거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동일하게 매를 맞아도 부모를 원망하며 그 품에서 도망가는 자식도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 거하는 영혼은 책망과 훈계를 받지 못한다. 그리고 책망과 훈계가 없으니 거룩을 이루지 못하여 자녀 됨의 약속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그가 아무리 크고 많은 일들을 이루었어도 마지막 심판대에서는 칭찬대신 오히려 책망을 받는다. 거룩을거부한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말과 행위는 오직 자신의 욕심과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한 불법이기 때문이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안약

어떤 농부가 포도나무장사에게 작은 포도나무 한 그루를 얻어서 자신의 정원에 심었다. 그리고 그 포도나무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깨끗한 물을 주었다. 또한 땀을 흘리며 웃자란 가지를 쳐내고 나쁜 벌레들도 잡아냈다. 그렇게 정성껏 가꾸며 어느덧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자 그 작던 나무는 이제 깨끗한 포도열매들을 풍성하게 맺었다. 그러므로 그 농부는 포도를 따먹으며 자신이 그동안 고생한 것들을 다 잊었다. 또한 포도주를 담가 마시며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또한 깨끗한 포도를 많이 맺기 원하는 일곱 명의 농부들이 찾아와 어떻게 포도나무를 가꾸는지 그 방법을 배웠다. 한편 그 농부의 옆에 있던 다른 한 농부도 똑같이 작은 포도나무 한 그루를 얻어서 역시 자신의 정원에 심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포도나무가 작은 것을 보고 소홀히 여기며 땀을 흘리거나 정성을 드리지 않았다. 또한 다른 농부들의 포도원을 부럽게 바라보기도하며 잠을 자기도 했다. 때로는 포도나무 앞에 무릎을 꿇고 열심히 손바닥을 비볐다. 그러다 갑자기 땅속에서 매우 큰 포도나무가 올라오더니 종류가 다른 포도를 주렁주렁 맺은 후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므로 그는 땅에 떨어진 포도를 주워 먹으며 또한 그것으로 포도주를 담가 마시며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하지만 그가 심었던 작은 포도나무를 점점 죽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농부를 찾아와 어떻게 땅속에서 포도나무가 올라오는지 그 방법을 배워갔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그 두 농부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둘째 농부를 보고는 지혜로운 사람이요 축복을 받았다고 했으나 첫째 농부를 향해서는 어리석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혜로운 농부에게 가서 어떻게 해야 땅속에서 큰 포도나무가 올라오는지 그 방법을 배우려고 했다. 이에 그 두 농부에게 포도나무를 주었던 장사가 잘못된 판단을 내린 그 사람의 두 눈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그의 눈이 반 정도 감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장사는 그에게 눈약을 사서 발라 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눈이 반 정도 감긴 사람은 포도나무장사가 시키는 대로 눈약을 사서 발랐다. 그랬더니 반 정도 감겼던 자신의 눈이 완전히 떠졌다. 이때 포도나무장사는 완전히 눈을 뜬 사람에게 포도나무를 가꾼 그 두 농부를 다시 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첫 번째 사람과 두 번째 사람이 각각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어떠한 결과를 이루게 되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는 눈이 감겨졌을 때는 잘못된 판단을 내렸으나 눈을 뜬 후에는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 즉 첫 번째 농부는 성실하고 정직한 길을 걸었으나 두 번째 농부는 게으르고 어리석은 길을 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는 정직한 농부를 따라다니며 자신에게 있는 작은 포도나무 가꾸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하여 눈을 뜬 그 사람도5년 후에는 깨끗한 포도열매들을 풍성히 맺었다.

 

이와 같이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은 눈이 반 정도 감겨져 있으며 귀도 반 정도 막혀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어떤 한 사람의 상태를 보고 듣되 그 상태에까지 이른 과정은 보고 듣지 않고 오직 그 결과만을 보고 듣는다. 그리고 많은 자들이 자신도 어떻게 하든 짧은 시간 안에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십자가로 아버지의 그 뜻을다 이루신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한 영혼이 셋째 하늘에서 최고의 자리에 앉기 위하여 평생에 가야 할 길을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오직12명을 데리고 목회하셨고 그 중에 한 명은 마지막에 배신했고 나머지는 그저 따라다니는 군중이었다. 그러다 그 길의 끝에서는 고난과 고통을 당하신 후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해 거룩을 다 이루셨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죽기까지 순종과 충성을 다한 아들에게 거룩한 육체를 입혀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시므로 만물의 으뜸이 되게 하셨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되 살고자 하는 마음과갈급함이 없는 영혼은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그 생명의 길을 보지 못한다. 혹 그것을 보고 듣는다 해도 십자가의 길과 진리를 참으로 어리석고 험하게 보이며 들리니 그의 눈과 귀가 반쯤 감겨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그러한 자들이 교회시대에 진리의 길을 걷고 있는 영혼들을 보면 그들을 어리석고 잘못된 자들로 여기되 사람의 길과 세상의 길은 끝까지 하나님의 축복된 길로 보이며 들리게 된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당신은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하루아침에 성공했도다.” “폭발적인 부흥이로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셨도다.” “뜨겁고 강한 성령의 역사가 임했도다.” 많은 목자들이 영혼을 인도하며 혹은 영혼의 목자들을 따라가며 바로 이러한 말을 듣고 싶어하며 또한 보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와 세상으로 인하여 눈이 반 정도 감기고 귀가 반 정도 닫힌 자들은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며 그 거짓된 길을 따라가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이 옳고 거룩한 길을 따르기 원하셨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길의 끝에 거룩한 육체의 영광을입고 그리스도의 형제자매가 되어 아버지의 가까이에 앉아 영원히 다스리는 권세가 약속되어 있다. 그러므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내놓은 그 고난과 영광의 길을 보도록 하심이다. 즉 그들이 썩어질 육의 부요와 사망으로 들어가는 세상의 헛된 영광스런 길을 보지 말고 오직 십자가의 길을 보고 따라오라는 의미로서 그들에게 전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살고자 하는 갈급한 마음을가진 영혼들에게는 마음의 눈과 귀를 열어주사 그 거룩한 육체의 영광과 권세를 얻은 그리스도를 보고 듣게 하시되 그 전에 그가 사람의 육을 입고 어떠한 길을 걸어 그곳에 이르렀는지를 깨닫게 하신다. 그러므로 하늘의 영광을 원하는 자들은 그 어떤 사람이나 세상의 길도 보지 않는다. 오직 주님께서 걸으신 그 길만을 본다. 또한 그 어떤 말도 듣지 않고 오직 진리만을 듣는다. 그러므로 그 옳은 생명의 길을 보고 진리를 들은 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말씀에 순종하며 그 길을 따라나가고 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벌거벗은 수치

어떤 주일학교 교사가 자기들이 가르치는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돈으로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교회 갈 때마다 그 무엇보다 먼저 돈을 챙겼다. 또한 천국은 힘과 능력으로 못 들어간다고 가르쳤으나 열심히 공부해서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 또한 행위나 노력으로도 못 간다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일성수를 잘하고 찬양과 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어떤 꼬마아이가 그의 말과 행위가 가르침과 다른 것을 보고 혼란스러워 이렇게 물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돈으로 가지 못하는데 왜 선생님의 마음은 돈에 있어요? 또 힘과 능력으로 행위와 노력으로도 가지 못하는데 왜 선생님의 마음은 세상에서 좋은 자리를 얻기 원하면서도 주일에는 마음 없이 하나님의 앞에 나와서 찬양과 기도를 하세요? 차라리 교회를 나오지 않고 세상으로 들어가 선생님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요?” 꼬마의 말을 듣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은 마음이 있는 곳에 몸이 있으니까 돈이나 힘과 능력이나 행위와 노력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으로서 당연히 필요한 것이란다.” 그러나 그 꼬마는 선생님의 마음이 세상에 있음을 알았기에 그것이 거짓말임을 눈치챘다. 그러므로 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오직 주님께 대한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지켰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전부다 그의 가르침이 좋다며 따랐다. 그러므로 그 교사를 따라간 아이들도 다 그와 같이 되었다. 그러다 나중에 그 교사가 목자가 되어 어른들의 앞에 서서 옷을 다 벗고 이런 찬양을 인도했다.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나라 힘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나라 벼슬로도 못 가요 하나님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나라!” 한편 성가대도 옷을 다 벗고 일어나 ‘그 날밤 그 날밤에 주님 맞을 등불이 준비 됐느냐 예비하고 예비하라 우리 신랑 예수 오실 때 밝은 등불 손에 들고 기쁨으로 주를 맞겠네!’라는 찬양을 했다. 이제 설교시간이 되자 그 목자는 자기처럼 벌거벗고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물질이 있어야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가정과 세상의 복을 받으려면 십일조를 빠지지 말고 하세요. 물질을 자녀들에게 남겨두지 말고 천국에다 심으세요. 그리고 하나님나라에서 상급을 받으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은 거룩하게 지키고 교회의 모든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세요. 또한 세상에 들어가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세요. 그러면 여러분과 자녀들에게 큰 복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어떤 여자가 그의 가르침들이 찬양과 맞지 않는 것을 깨닫고 또한 그 목자와 교인들의 벗은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이렇게 물었다. “목사님 신랑이 다시 올 때 정결한 신부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흰옷을 입고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리고 그것을 위해 세상과 마음 없는 행위에서 돌이켜 두렵고 떨림으로 옷을 빨아야 하지 않나요?” 벌거벗은 그 목자는 여자의 질문에 답을 주기 위해 강대상에서 내려와 앞쪽으로 천천히 걸어나가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이미 흰옷을 입고 있으니 이제는 구원받은 증거로서 또한 하늘의 상급을 위해서 행위와 열심을 드려야 합니다. 또한 물질과 세상의 복을 받아 이 땅에서 거룩한 자녀들의 권세를 누리며 세상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자 벌거벗고 앉아있던 사람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아멘을 외쳤다. 그러나 여자는 그 목자의 마음이 어두운 세상에 있음을 알고 그를 따르지 않았다. 오직 흰옷을 입고 자기의 신랑을 맞이하고자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자신이 입은 옷을 열심히 빨았다. 그러나 다른 여자들은 그 목자의 가르침을 기뻐하며 따라갔으니 그 목자도 또한 그를 따른 모든 양들도 홀딱 벗고 신랑을 맞이했다. 그러므로 많은 자들이 자신의 부끄럼을 깨닫고 스스로 뒤로 물러갔으나 그들 가운데 몇 명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상급을 달라며 혼인잔치까지 따라 들어갔다. 그러나 신랑은 벌거벗은 자들을 그 혼인잔치에서 다 쫓아냈다.

 

당신은 이것을 알고 있는가? 전통에 있는 영혼들은 어린아이들에게는 돈으로도 못 가요 힘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나라 하며 노래를 가르친다. 그러나 어른들에게는 오직 돈으로만 갈 수 있어요 하나님나라 오직 열심히 하는 자만 갈 수 있어요 하며 가르친다. 그러므로 전통에 묶인 영혼들은 거룩을 포기하고 오직 돈을 내어 놓고 있으며 돈이 없는 자들은 대신 마음 없는 행위와 열심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 없는 것은 더러운 것이니 아버지께서는 그곳에는 거하시지 아니하신다. 아버지께서는 오히려 그들의 어리석은 것들을 다 버리시고 오직 그 사람의 거룩함을 보시고 거룩한 옷을 입히신다.

 

그런데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인 지금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자들의 대부분이 이렇게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아버지께로 가증한 행위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주님께 대한 사랑의 마음과 거룩의 믿음을 지키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애쓰는 영혼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는 참으로 흰옷을 아버지께서는 아주 싸게 거룩을 조금 유지한 자들에게도 다 입히시되 거룩을 유지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아주 안 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거룩한 육체의 부활에 이르는 자들이 적은 것은 마지막 때에는 모든 자들이 세상에 빠져있으니 아버지와 아들께는 마음과 믿음을 조금만 드리는 그것조차도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불로 연단한 금

한 나라의 왕이 어떤 보석가게의 주인에게 말하길 금반지를 만들어서 자기에게 바치면 큰 상급을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가게의 주인에게는 금이 없었다. 그러므로 자기의 가게 앞에다 왕을 위한 질 좋은 금이 필요하다는 알림판을 붙여놓았다. 그러자 어떤 여자가 가게로 들어와 아주 작은 금을 내밀었다. 하지만 주인은 금이 작다고 돌려보내지 않고 그 여자의 금을 저울에 올려놓고 눈금을 보았다. 그랬더니 여자가 내놓은 금은 크기는 비록 작지만 순금반지 한 개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 무게가 나왔다. 그러므로 주인은 여자를 반갑게 맞이해 자리에 앉히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한 후 금을 녹여서 금반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반지를 다 만든 후 여자에게 금반지를 건네주며 왕에게 가서 황금빛이 나는 이 금반지를 바치면 왕이 큰 상급을 내릴 거라고 말했다. 이에 작지만 무거운 금을 내놓은 여자는 왕에게 가서 그 순금반지를 바쳤다. 그러므로 왕은 금반지를 받아서 자세히 살펴본 후 여자에게 공주가 입는 옷을 입히고 백성들을 다스리게 했다. 잠시 후 또 다른 한 여자가 이번에는 아주 큰 금을 가지고 가게로 자랑스럽게 들어왔다. 그리고 자기의 금을 보여주며 가게주인과 왕이 자신을 매우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인은 금이 크다고 좋아하거나 곧바로 금반지를 만들지 않고 그 여자의 금을 저울에 올렸다. 그랬더니 그 금은 크기는 비록 크지만 녹였을 때 실 반지 하나는커녕 아무것도 만들지 못할 정도의 무게가 나왔다. 그러므로 주인은 금반지를 만들려면 금의 크기에 상관없이 무거워야 하는데 당신의 금은 가벼워서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다며 돌려보냈다. 그러자 여자는 큰 금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 주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보석가게를 나왔다. 그런데 때마침 그 보석가게의 뒤에 있는 다른 보석가게의 주인이 그 여자가 가진 큰 금을 보더니 자신의 가게로 들어오라며 아주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여자가 들어오자 싱글벙글하며 여자의 금을 저울에 달아보지도 않고 왕은 당신의 금을 참 좋아할 거라며 곧바로 반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자의 금은 크기만 컸지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았으니 실 반지 하나도 만들지를 못했다. 그러므로 주인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거기다 쇠를 녹여서 넣고 노란 물을 부어 금반지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여자에게 주며 그 앞에 있던 주인과 동일한 말을 했다. 이에 크지만 가벼운 금을 내놓은 여자는 왕에게 나아가 가짜 반지를 바쳤다. 하지만 왕은 반지가 녹슨 것을 보고는 여자를 왕궁에서 쫓아내고 가짜 보석가게의 주인은 잡아다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충성스런 보석가게의 주인은 왕궁으로 불러서 왕자가 입는 옷을 입혀 공주들을 다스리게 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속의 내용을 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눈에 큰 것만을 원한다. 또한 사람들은 네가 크니 내가 크니 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재보기도 한다. 그러나 금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금을 저울에 올려놓아야 한다. 금은 크기에는 상관이 없고 그 금의 무게에 값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로 연단한 금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요 거룩의 믿음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목자들은 불로 연단한 금을 보지 못하며 원치도 않는다. 오직 한 영혼 한 영혼을 이용해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 원하되 그의 뜻과 계획은 사람들을 많이 모으며 사람들이 모이는 그 건물을 넓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과 거룩의 믿음이 충만한 양들은 원치 아니하고 오직 큰 것만을 원한다. 또한 한 영혼을 바라볼 때 불쌍히 여기기보다는 상대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제공해줄 수 있을지 계산하며 오직 그가 가지고 있는 것들과 또한 그가 어떤 자리에 앉아있는 지를 유심히 본다. 그러므로 이렇게 육과 세상의 부요를 구하는 목자들과 양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아버지의 그 뜻을이루어가리요?

 

그러나 아버지께서 택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세우신 일곱 교회의 목자들은 큰 것을 바라거나 혹은 큰 것을 보고 좌우되지 아니한다. 오직 그 사람의 속이 금으로 가득 찬 조그만 것을 얻고자 사모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한 영혼이 세상의 어떤 재물을 가지고 오건 혹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들어오건 혹은 빈손으로 오건 그의 외모에 치우치지 않는다. 오직 그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믿음이 충만할 때는 누구든지 반가이 맞이한다. 공동체가 거룩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오직 불로 연단한 금처럼 변치 않는 그 마음과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나는 부자라

어떤 사람이 아주 작고 아름다운 집에 살다 자신의 집을 더 크고 높게 넓히고 싶었다. 그러므로 가게를 열어서 돈을 벌고 싶었지만 자기가 원하는 가게를 차리려면 천 만원이라는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는 돈이 없었으니 그저 고민만 하고 앉아있었다. 이때 어떤 사람이 그에게 제안하길 그 작은 집을 자기에게 맡기면 천 만원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기뻐하며 하지만 조금 염려하며 자기의 집을 그 사람의 이름으로 올리고 천 만원을 받아서 작은 가게를 열었다. 그런데 그 가게가 장사가 잘되어 일 억짜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 가게를 팔아서 다른 것들을 다 제하고 빚을 갚으면 오직 자기의 집만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처음과 똑같이 작은 집 한 채만이 자기의 것이었다. 그러나 돈을 빌려준 사람은 그에게 말하길 너는 이제 부자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일 억짜리 가게를 이루었으니 자기 스스로도 일 억이라는 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작은 집 한 채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는 욕심이 더 생겨 더 큰 가게를 열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 가게를 맡기고 더 큰 돈을 빌려서 기쁨과 확신을 갖고 더 큰 가게를 열었다. 그런데 그 가게도 잘되어 십 억짜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 큰 가게를 팔고 다른 모든 것들을 다 제하고 빚을 갚으면 여전히 원래 있던 자기의 작은 집만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긴 세월 동안 많은 일들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늘 작은 집 하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돈을 빌려주었던 사람은 그에게 너는 이제 더 큰 부자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그 큰 가게를 일구어 가지고 있으니 자신은 십 억의 재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도 그는 큰 가게와 십 억이라는 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는 작은 집에 살 때보다 모든 것이 실제로 더 풍성하고 부유해졌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작은 집 한 채만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 자신을 부유하게 여겼으며 자신은 어느 것 하나 모자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여유롭게 지내던 어느 날 다른 사람에게 언제까지 주기로 약속했던 돈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경우가 계속되다 결국에는 그 큰 가게를 하루아침에 잃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한 푼도 남지 않았으되 처음에 자기에게 있었던 그 작은 집만이 똑같이 남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스스로 부유하게 여기며 또한 자신은 모자란 것이 없다고 여겼던 그의 모든 수고와 애씀은 참으로 헛된 것들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나중에는 원래 있던 그 작고 아름다운 집마저 빼앗길 형편에 처했다.

 

이와 같이 다른 시대와 달리 마지막 교회시대에는 원수가 믿는 자들의 마음에 이용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이것이니 자신이 조그만 것을 누구에게 맡기고 맡긴 만큼의 지불을 받아 더 큰 것을 벌인다. 그리고 큰 것이 완성되면 그것을 누구에게 맡기고 더 큰 것을 한다. 그러므로 겉의 껍데기가 계속 불어나니 사람의 눈으로는 부유하고 모자랄 것이 없이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제일처음 조그만 것과 똑같이 있으니 허무하고 허무하다.

 

구체적으로 이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아버지의 뜻에 마음과 믿음을 두고 두렵고 떨림으로 거룩을 이루어가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다른 곳에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이루어간다. 그러므로 사람들도 많이 모이고 돈도 많아지고 건물도 아름다워진다. 또한 때로는 사람의 칭찬과 영광도 얻고 자기의 육도 부유해진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부유함과 높아짐으로 인하여 마음 없는 그 행위들에서 돌이키지를 못하게 된다.

 

원수는 이렇게 믿는 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속에 있는 것을 보지 않고 오로지 겉의 것을 계속 늘려가게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육의 부요는 늘 늘어나되 그들의 영은 늘 가난함으로 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육이 불어나는 것을 보며 육적으로 더 신경을 쓰며 좇아간다. 그리하여 그들이 말씀을 들을 때 가난한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라는 말씀을 기억하되 자기의 영이 가난한 것을 보고 나는 복된 사람이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마치 죄 가운데 있는 자가 죄를 애통하거나 이기려 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는 나의 친구라고 하는 것과 같다.

 

결국 이러한 자들의 영혼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저 처음에 거듭난 그대로 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헛된 것을 따르며 헛된 일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았으니 영을 먹일 수 있는 진리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영혼은 부유해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요 오히려 늘 배고픔 가운데 있었다. 즉 영혼이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옷을 입지 못하여 늘 벌거벗음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리석게도 자기가 오직 거듭남하나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이니 의롭고 거룩하다고 생각했다. 거듭난 후 세상에서 나와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는 자신을 보아서가 아니요 오직 자기에게 있는 육의 풍성함과 그 동안 자신이 행한 것과 높아진 것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혼의 배고픔 가운데 있으면서도 오히려 자신을 부자라고 했으니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이 이와 같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내 입에서 너를

어떤 사람이 하늘로부터 이러한 말을 들었다. “이 세상에는 불의와 죄악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 때에 땅을 갈라 이 세상의 모든 자들을 단 한 번에 심판하겠노라. 하지만 악한 자는 나의 심판 전에 처처에 전쟁과 재해를 일으켜 자신과 같은 자들을 추수할 것이니라.” 그 사람은 하늘의 말을 듣고 난 후 의로운 자도 불의한 자와 함께 심판하는 것이 옳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하늘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는 내가 다 구원하겠노라. 그러니 너는 비행기를 만들고 그 안에 먹을 양식과 필요한 모든 것을 넣어라. 또한 내가 시키는 대로 만들면 그 비행기는 항상 안전하게 공중을 날아다니며 악한 자가 일으키는 환난과 내가 마지막에 내리는 심판을 피할 수 있겠노라.” 그는 하늘이 시키는 대로 비행기를 완성했다. 그리고 큰 건물에서 예배와 전도와 교육과 봉사와 선교를 열심히 행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당신들이 만일 하늘의 뜻을 거역하며 그런 행위들을 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 땅에는 곧 전쟁과 재해가 다가올 것이되 이 비행기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하늘이 안전하게 보호하시며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행위들을 멈추고 거기서 나와 이 비행기안에서 하늘의 뜻을 이루어가십시오.” 그는 하늘의 말을 전하고 눈 빠지게 기다리는데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오직 한 사람이 마음을 돌이켜서 가족들을 이끌고 비행기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 가운데 반은 건물에서는 그 행위를 계속하다가 세상으로 나가면 자신의 욕심과 돈만을 위해 살며 술과 담배와 음란과 거짓을 행했다. 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그 행위들을 했다. 한편 나머지 반은 건물 안에서 그 행위를 열심히 행하며 세상을 즐기는 그들을 부러워했으나 세상으로 나가지는 못했다. 그러다 그의 말대로 이곳 저곳에 전쟁과 재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비행기는 하늘을 날며 아무런 피해나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다. 또한 사다리를 내려주며 사람들을 보고 올라오라고 했다. 그러나 건물에 있는 사람들은 이 어려움만 지나면 내가 하던 일들을 다시 하겠노라 마음먹었다. 그러므로 한 사람도 그 사다리를 잡지 않았다. 결국 악한 자의 환난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늘의 심판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그는 마지막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며 처음과 동일한 말을 전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역시 오직 한 명이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고 가족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마음이 전과 같았으니 말과 행위도 전과 동일했다. 이제 그가 전할 말을 다 알리자 이번에도 비행기는 하늘로 떠올랐다. 그러므로 하늘의 말대로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다리를 붙들지 않았다. 결국 건물 안에서 열심히 행하던 자들은 육신의 죽음 후에 창조자의 앞에 서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상급이 무엇일까 궁금해했다. 그러나 창조자는 그들의 마음을 찢고 보니 더러움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을 보고 어두운 곳에 가서 너의 마음을 깨끗이 하면 내가 받아주겠노라고 말했다. 한편 건물 안에서는 그 행위를 하고 세상에 나가서는 이방인들과 동일한 삶을 반복한 자들은 심판대에서 나는 믿음이 있으니 좋은 곳에 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창조자는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으로 들어가라며 그들을 쫓아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입에서 토하여 내신다는 심판은 은혜를 받은 후 세상을 사랑하여 아버지께로부터 물러간 자들 가운데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지 않는 자들을 위한 말씀이다. 즉 세상의 불신자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 아니요 오직 믿는 자들 가운데서 미지근한 자들이 받을 심판이다. 그러므로 유황불 못의 가장 중심으로 들어가는 거짓선지자들과 그들을 따라 영원한 형벌의 사망으로 들어가는 거짓된 양들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었다 다시 토하여 내침을 받은 이 심판에 속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종교적인 행위들이 있었으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입에서 토하여 내친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심판대에서 그들의 행위로 나오고 말로 나온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오직 그들의 마음이 더러운 것을 보신다. 하지만 그들은 거듭남의 은혜를 받았기에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유황불 못으로 보내지 않고 온전케 되는 과정에 들여보내신다. 그러면 거기서 말씀에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는 자들이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백성으로 삼으신다. 그리하여 은혜시대라 불리는 교회시대에 이러한 자들이 많이 있다.

 

둘째 이 마지막 때에 자신의 마음은 육과 세상에 두고 오직 입술로만 믿는다며 아버지의 앞에 나와 여러 가지 거룩한 말과 행위를 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배를 마친 후 세상에 들어갔을 때는 이방인과 똑같은 세상의 쾌락을 즐긴다. 그리하여 그들과 이방인의 차이는 오직 한 가지니 일주일에 한두 번 정해진 시간에 큰 건물로 들어갔다 끝나면 다시 나오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더러움으로 가득한 자들이 단지 주여 주여 불렀다하여 아버지의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그 나라에 거하겠는가?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의 나라에 거하지 못하는 자들을 그 어두운 곳으로 내어 쫓으시는 것이다.

 

그러나 미지근함에서 돌이켜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는 자들과 뜨겁게 사랑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입에서 토하여 내침을 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는 사랑하는 그들과 한 몸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몸과 통한 몸을 얻어 주님과 영원히 거한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차든지 더웁든지

어떤 사람이 말씀을 보니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고 기록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러므로 그는 그 의미를 알고자 어떤 목자를 찾아갔다. 이에 그 목자는 이것을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다며 한 편의 영화를 보여주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넓은 사막이 펼쳐져 있었으며 그 사막의 한가운데로 군인들이 전쟁터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대머리를 한 남자와 여자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림이 세워져 있었고 그 그림 뒤로는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있었다. 그런데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 시작되는 곳에는 좁은 길이라는 푯말이 있었으나 그 길을 따라 기쁨과 소망과 겸손과 자유와 평화를 주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좁은 문이라는 푯말이 서있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곳에는 낙원과 같이 좋은 곳이 펼쳐져 있었다. 반면 왼쪽 길이 시작되는 곳에는 넓은 길이라는 푯말이 있었고 그 길을 따라서는 멋진 자동차와 좋은 집과 놀이동산과 나이트클럽과 술집들이 줄지어 서있었고 창녀들이 슬픔과 낙심과 교만과 억압과 두려움을 주는 음식들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넓은 문이라는 푯말이 서있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곳에는 살아있을 때 자기의 욕심과 명예를 얻기 위해 서로 속이고 헐뜯고 싸우고 죽인 자들이 함께 모여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잠시 후 어떤 여자군인이 자기의 가족들과 함께 사막 길을 걷다 갈라지는 곳에 도착하자 모든 푯말을 읽더니 자기의 가족들을 이끌고 왼쪽 길로 들어섰다. 그러므로 그 여자와 가족들은 그 길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아귀다툼을 하다 마지막에는 그 넓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또한 다른 여자군인들도 계속해서 왼쪽 길로만 들어섰다. 그러나 어떤 남자군인은 자기의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그곳에 도착해 모든 푯말을 읽은 후 오른쪽 길로 걸어갔다. 그런데 그 남자의 아내는 그 좁은 문 뒤에 있는 낙원같이 좋은 곳에 가고는 싶었으나 다리가 약해서 잘 걷지를 못했다. 그러므로 그 남자는 아내를 부축하고 자녀들을 이끌고 그 좁은 길을 걸어갔다. 그리하여 그 남자와 가족은 그 길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다 마지막에는 그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 낙원에서 모든 것을 즐기며 안식을 취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군인도 자기의 아내와 가족들을 데리고 그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푯말을 읽은 후 왼쪽 길로 가려다 발걸음을 멈추었다. 또한 오른쪽 길로 가려다가도 멈추었다. 그리고 그 갈림길에 그냥 주저앉았다. 잠시 후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좁은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을 다 죽이기 위해 날카롭고 번쩍거리는 칼을 들고 좁은 문으로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그 좁은 문에는 그 악한 자가 가지고 있는 칼보다 더 날카롭고 큰 칼을 가진 사람이 서있었다. 그러므로 그 악한 자는 그 좁은 문을 나오지 못했으며 그리하여 좁은 길에 있는 사람들을 한 명도 죽이지 못했다. 결국 그 악한 자는 자기가 만들어놓은 넓은 문을 통해 나왔다. 그리고 그 길에 있는 창녀들의 옷을 벗겨 차례차례 칼로 베어 죽이며 갈림길에 앉아있는 그 가족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므로 그 가족은 살륙을 위해 날카롭게 마광된 그 칼을 보고 무서워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왼쪽으로 가려다 발걸음을 멈추고 오른쪽으로 가려다 멈추고 갈림길에 그대로 서있었다. 그러므로 그 가족은 가만히 서있다 그 악한 자의 칼에 맞아 죽음을 당했다. 이제 영화가 끝난 후 목자를 찾아갔던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영화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사막과 갈림길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대머리를 한 남자와 여자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림이 있는 곳까지 갔다. 그러나 왼쪽으로 가려다 발걸음을 멈추고 오른쪽 길로 가려다 멈추고 그냥 그곳에 주저앉았다. 그러므로 그와 그의 가족도 그곳에 가만히 있다 그 악한 자의 칼에 죽음을 당했다.

 

이와 같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믿는 자들은 자신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으로 가고 싶어도 스스로 멈추었다. 또한 믿는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처럼 그의 살과 피를 드리라 하면 죽음이 두려워 그것도 피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망으로 들어갈 헛된 세상도 좇지 못하며 또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일도 하지 못하여 그저 그 가운데 그대로 주저앉아있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일곱 교회시대가운데 마지막 교회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 믿는다고 말하면서 한 발은 그리스도께 두고 다른 한 발은 세상에 담그고 있는 자들이 참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들이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자신이 받은 첫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자들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 즉 주님과 세상에 대해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므로 자신의 깨끗한 마음을 드리고 있다. 그들은 또한 아버지의 그 뜻거룩한 육체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 대해 마음이 뜨거운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을 소망하며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과 공동체의 거룩에 애쓰고 있다. 그러다 마지막 날에 그 좁은 문 앞에서 그들은 이렇게 행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할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있을 앞날의 일이니 그때에 그리스도의 모든 십자가 군사들이 그 마지막 영적전쟁에서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예수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외침이니 그들은 바로 이 말을 하며 피를 흘릴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그 뜨거운 피가 자기의 말한 것들을 정확히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창조의 근본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하신 나라인 셋째 하늘도 또한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여 올라가신 그 낙원이 있는 둘째 하늘도 또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원수가 갇혀있는 이 첫째 하늘도 또한 그 세 하늘의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오직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말씀에 순종해 창조한 종들도 모두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에 따라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은 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았으며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그 뜻을 이루시고자 창조를 계획하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그 선하시고 기쁘신 뜻과 계획에 따라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으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시다. 그런데 거룩하신 영께서는 창조의 근본이라는 그 호칭을 라오디게아 교회의 믿는 자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며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그 호칭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교회시대에 거하는 자들을 향하여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말씀하셨는지를 알 수 있다. 한 가지 비유로서 마지막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의 집에 생명이 있는 나무가 있었고 또한 옆에는 생명이 없는 나무가 있었다. 그런데 생명이 있는 나무는 그 생명이 유지되려면 또한 나중에 많은 열매를 얻으려면 늘 물을 주어야 하며 웃자란 가지들을 잘라야 하며 나쁜 벌레들을 잡아내야 한다. 그러므로 생명이 있는 나무에는 많은 땀과 애씀이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그 옆에 생명이 없는 나무는 물이 필요 없고 가지를 자를 필요가 없고 나쁜 벌레들을 잡아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죽은 나무에는 땀과 애씀이 필요 없되 나중에 당연히 열매도 없다. 그런데 그 집에 거하는 사람들은 생명이 있는 나무를 뽑아내어 던져버리고 오히려 생명 없는 나무를 더욱 사랑하며 더욱 아름답게 꾸미며 좇아갔다. 그러므로 그 집의 사람들은 생명 없는 나무에 자신의 온 마음을 두고 그것을 위해 땀 흘리며 애를 썼으되 나중에 추수 때가 되었을 때 열매를 하나도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수고는 아무런 소용없는 헛된 것이 되어버렸다. 한편 그들의 옆집에도 역시 생명이 있는 나무와 생명이 없는 나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생명이 없는 나무를 뽑아내어 던져버리고 생명 있는 나무를 더욱 사랑하며 더욱 아름답게 꾸미며 좇아갔다. 그러므로 생명 있는 나무에 자신의 온 마음을 두고 수고하며 애쓴 그 집 사람들은 나중에 추수 때가 되었을 때 좋은 열매를 풍성하게 얻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것을 함께 먹으며 함께 기쁨을 나누었으니 생명을 좇아간 그들의 수고는 헛된 것이 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태초에 아버지께서는 그 선하시고 기쁘신 뜻을 세우시고 그 뜻을 이루시고자 만물의 창조를 계획하셨다. 그리고 그 뜻과 계획에 따라 생명이 있는 것들을 창조하셨고 또한 마지막 날에는 그 생명을 다 거두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생명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고 또한 자신의 그 거룩한 피로 자신과 같은 생명이 있을 교회를 세우셨다. 그러므로 생명주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사람들이 생명 있는 것에 마음을 두고 땀 흘리며 애쓰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여 거듭남의 은혜를 통해 영의 생명을 얻은 자들은 이제는 썩어질 것을 내려놓고 사망으로 들어가는 세상에서 나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땀 흘리며 애쓰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마지막 때를 사는 사람들은 참으로 안타깝게도 생명이 있는 것은 버리고 오히려 생명이 없는 것을 더욱더 사랑하며 생명 없는 것을 더 취한다. 이방인들만이 아니요 그리스도를 믿는 모임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는다며 생명 있는 것은 버리고 생명 없는 것을 바라보고 나가는 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 예를 들어 이렇게 행하고 있다.

 

그가 만일 아버지께서 세우신 목자라면 불신자들에게는 거듭남의 은혜를 전하고 거듭난 자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도록 인도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오직 사람이 많이 모이며 건물을 크게 넓히는 것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만일 회개와 고난과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모이지를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의 명예를 구하는 자들은 설교를 해도 기도를 해도 무엇을 해도 오직 그 목적을 마음에 두고 행한다. 심지어 주님 오실 때가 가까우니 신령한 신부로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이용해 사람들을 모으는 자들도 있다. 목자들이 이러하니 그들의 밑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 따르는 양들은 어떠하겠는가? 그러므로 마지막 때의 사람들은 입으로는 믿는다며 육의 필요와 욕심을 채우고자 또한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깊은 바다로 들어가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썩어질 것과 헛된 곳에 둔 자들이 말씀을 듣고도 그 마음을 돌이키고자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고 또한 마음과 육에도 기쁨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은 가서 각각 자신이 원하는 그 우상을 섬기고 이 후에도 그리하되 다시는 그들의 예물과 우상들로 아버지의 거룩한 이름과 장소를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즉 주님과 세상 중 오직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니 늘 아버지께로 나와 예물을 드리며 행위를 드리며 그 대가로 자신의 마음에 있는 그 우상을 달라고 구하며 있다.

 

이러하니 믿는 자들이 생명 있는 아버지의 일을 하려면 땀을 흘려야 하며 또한 그들의 수고가 들어가야 하는데 이 마지막 교회시대에 거하는 자들은 오히려 세상의 물결에 타 손을 내밀어 봉투만 내밀고 건물만 짓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교회시대가 이렇게 될 것을 이미 아셨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누가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땀을 흘리며 누가 수고를 하겠는가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창조의 근본이라며 말씀을 시작하신 것이요 또한 마지막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진리를 배설물처럼 여기는 마지막 교회시대라 하여도 이기는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택하신 교회는 그 생명의 말씀을 간직하고 소망하며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오직 거룩에 두고 아버지의 일에 땀을 흘리며 애쓰고 있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살고자 하는 자들과 갈급한 자들은 어디에 거한다 하여도 택하신 교회를 통해 말씀을 허락하시니 그들도 또한 신령한 교회도 그들과 함께 생명 있는 일에 땀 흘리며 애를 쓰게 된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생명 있는 나무에 가지로서 붙어있는 그들을 의롭고 거룩케 하시므로 열매를 많이 맺게 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이 나중에 거룩한 열매를 맺은 만큼의 거룩한 육체를 입고 그 생명나무의 자녀들이 되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