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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라의 선한 왕이 진주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왕은 자기나라의 백성들이 진주를 참 좋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가진 진주를 가지고 왕궁을 나와서 모든 백성들에게 진주를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슬리퍼를 신었으니 그 왕도 왕궁 밖에서는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그러므로 그 왕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사막을 지나며 자기 나라의 방방곡곡을 다니느라 두 발이 다 부르트고 발바닥에는 굳은 살이 박혔다. 그런데 진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이웃나라의 백성들 가운데도 있었다. 그러므로 그 왕은 그 부르트고 굳은 발로 찾아가 주변의 나라에 거하는 백성들에게도 자신이 가진 그 소중한 것을 나누어주었다. 그러니 그 왕의 두 발은 성할 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나라의 악한 자와 그의 군사들이 이곳 저곳을 다니며 진주를 나누어주는 그 왕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진주를 싫어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왕을 잡아서 더 이상 진주를 나누어주지 못하도록 그 부르트고 굳은 두 발에다 못을 박아서 죽였다. 그러나 그 왕의 수고로 인하여 그 나라와 또한 주변의 나라에서 진주를 원하던 백성들은 모두다 진주를 얻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셨을 때 수많은 자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두 발로 걸어 다니셨다. 그리고 복음을 다 전하신 후에는 십자가에서 그 수고한 발도 못 박히셨다. 하지만 원수가 유대종교와 이 세상의 가장 강한 나라를 통해 그리스도의 발에 못을 박아 죽였을 때는 이미 복음이 다 증거되었으며 또한 아버지의 그 뜻이 다 이루어진 시점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그 충성과 희생을 통하여 생명을 원하던 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복음을 듣고 믿고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갈 수 있었다.
그 후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그 뜻을 다 이룬 그 아들에게 거룩하고 새로운 육체를 허락하셨다. 즉 아버지께서 그 수고한 아들의 발을 새롭게 해주셨기에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빛나는 그 발을 얻으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그 새롭고 빛나는 두 발을 요한에게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으셨다.
그런데 복음을 위해 발로 수고한 자들이 그리스도와 같이 새롭고 빛나는 발을 얻는 것은 초대교회와 교회시대와 이 마지막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을 모아 자신이 명예를 얻기 위해 유대와 이방지역을 돌아다니는 게 아니다.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생각이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다니는 것도 아니다. 오직 회개와 천국의 복음만을 전하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 그 소중한 부활의 생명에 이르도록 온 땅과 인터넷을 두루 다니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 수고하는 발을 가진 자들로 인하여 이 마지막 때에도 생명을 원하는 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는다. 그리고 불의한 자기의 생각과 세상에서 돌이켜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며 거룩을 이루어간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새롭고 빛나는 그 두 발로 구름을 타고 이 땅으로 내려오시기 전에 복음이 땅끝까지 다 전해지는 것이요 또한 자신과 한 몸을 이룰 신부가 정결하게 준비되는 것이다.
반면 아버지께서 잘라내시는 발도 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거듭남의 은혜를 얻어 세상에서 건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이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으로 들어가는 자들의 발은 아버지께서 잘라내신다. 한가지 비유를 통해 아버지께서 자르시는 발이 무엇인지 또한 그것을 잘라내시는 이유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거룩한 공동체의 인도자들과 따르는 자들은 이것을 깨닫고 기억하며 순종할 때 한 몸에 유익을 끼칠 수 있다.
한 사람의 발이 음란한 곳으로 그의 몸을 이끌었다. 이때 그의 발이 그를 이끌었다 하여 그의 손이 그 음란한 여인을 안지 않겠는가? 또한 그를 그 음란한 곳으로 이끈 것은 그의 발이니 그의 발만 그 여인의 발과 만나되 그의 얼굴은 그 음란한 여자의 얼굴과 만나지 아니하겠는가? 그러므로 그곳으로 간 그의 발에만 죄가 있는 게 아니요 온 몸에 죄가 있는 것이다. 또한 말씀에 술 취하지 말라 하였거니와 발이 술을 마시는 곳으로 갔다고 해도 그의 손이 술잔을 들것이요 그의 혀는 술 맛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발과 손과 혀에만 죄가 있는 게 아니라 온몸에 그것이 퍼지므로 그는 어느 한 부분에 죄악이 있는 것이 아니요 온 몸에 죄악이 가득한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한 몸에 거하는 자가 만일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 두고 그 발로 세상으로 걸어나갈 때 그는 자신만이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즉 그는 세상으로 나갔다 세상의 것을 가지고 거룩한 공동체의 안으로 들어오니 그 세상의 것이 다른 몸에도 퍼진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와 세상에 두 마음을 품은 그 사람과 함께하는 영혼들도 자신의 발을 세상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이렇게 한 몸의 발도 손도 혀도 세상과 함께 한다면 그리스도의 거룩한 공동체가 나중에는 어떻게 되리요?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한 몸에 거하되 세상으로 그 마음을 향하고 돌이키지 않는 지체들은 한 번 두 번 세 번 말씀하신 후 잘라내신다. 이로 보건대 양들을 육과 세상으로 이끄는 자들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으로 들어간 자들은 그가 이미 그리스도께로 잘렸기에 세상에 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자세하고 정확하게 보고 구별하기 원할 때 눈을 크게 뜨니 초롱초롱해지며 빛이 난다. 또한 아무리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다 지켜본다는 의미로 불꽃같은 눈을 떴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신 영을 통하여 자신의 눈을 이렇게 불꽃 같은 눈으로 요한에게 보여주셨다. 비유를 통해 불꽃 같은 눈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한 의로운 왕이 자기의 나라는 너무나 크고 아름답고 백성들은 많은데 아들이 하나밖에 없는지라 자기의 백성들 가운데서 자기의 말에 순종하는 몇 명을 뽑기 원했다. 그리고 그 순종하는 자들에게 왕이 입는 옷을 입혀서 자기의 자녀들로 삼은 후 자기의 나라를 다스리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그냥 백성으로 거하게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그 왕은 자기의 자녀와 백성을 올바르고 공평하게 구별하므로 아무런 불평과 원망이 없고 오히려 우리의 왕은 의롭고 정직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 왕은 이러한 뜻과 계획을 가지고 모든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알렸다. “누구든지 나의 말에 순종하는 자는 의롭고 깨끗한 사람이 될 것이나 순종은 그렇게 쉽지 않겠노라. 그러나 내가 모든 백성들에게 공평하게 베푼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는 자는 나의 뜻과 계획을 깨달을 것이니 그 쉽지 않은 일을 반드시 이루겠노라. 그리고 나의 아들은 그가 얼마나 그 일을 이루는지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본 후 다스리는 자와 백성을 의롭고 정직하게 나누겠노라.” 왕의 말이 끝나자 네 사람이 왕의 일을 하겠노라고 약속한 후 왕의 말에 순종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사람은 왕에게 받은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순종하며 왕의 뜻과 계획을 끝까지 받들어 섬겼다. 그러나 나머지 세 사람은 순종하는 게 어려우니 왕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 왕의 아들은 그 네 사람이 얼마나 왕의 말대로 행하는지를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았다. 또한 그들의 말과 행위가 어떠한 마음에서 나오는지도 살폈다. 게다가 자신의 종들에게 명하여 그들이 말하며 행하는 모든 것들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라고 시켰다. 이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가 그 네 사람은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던 그 아들의 앞으로 나왔다. 그때 첫 번째 사람은 그 아들의 불꽃 같은 눈을 보면서 자신이 왕에게 받은 은혜와 사랑을 느꼈으니 그 아들의 가까이로 갔다. 그리고 그 아들은 왕의 뜻과 계획을 이룬 그에게 왕자가 입는 옷을 입혀서 왕에게로 데려갔다. 그러나 왕의 말에 불순종한 두 번째 사람은 그 아들의 눈을 보고 은혜와 사랑을 깨닫기보다는 불순종한 자신의 죄책감을 깨달았다. 이에 그 아들은 지금이라도 왕의 말에 순종하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두 번째 사람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 후 스스로 물러가서 백성들 가운데 거했다. 반면 왕의 말에 불순종한 세 번째 사람도 그 아들의 눈을 보고 역시 불순종한 자신의 죄책감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그 불꽃 같은 눈을 보고도 스스로 물러가지 않고 자신에게도 왕자가 입는 옷을 입혀서 왕에게로 데려가 달라고 소리를 높였다. 이에 왕의 종들은 자신들이 촬영한 것을 큰 화면에다 틀어주었다. 그랬더니 그는 그것을 보고 자신이 왕의 말에 얼마나 불순종했는지를 확인한 후 부끄러웠다. 그러므로 그 약속을 한 후 모든 백성들 가운데서 제일 뒤에 거했다. 한편 왕의 말에 불순종한 네 번째 사람도 그 아들의 눈을 보고 역시 불순종한 자신의 죄책감을 느꼈으나 세 번째 사람과 같은 말과 태도를 보였다. 이에 왕의 종들은 역시 자신들이 촬영한 것을 큰 화면에다 틀어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보고도 소리를 지르며 그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아들은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그를 자신의 나라에서 쫓아냈으니 그는 그 아름다운 나라에서 백성으로도 거하지 못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불꽃 같은 눈은 육체의 부활을 얻은 자와 육체의 부활을 얻지 못한 자의 구별을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거룩하다는 심판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므로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그 약속을 이룬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그 영광에 이른 자녀들이 왕과 제사장이 되어 천년왕국과 그 후에 올라가는 영원한 셋째 하늘에서 공의와 사랑으로 백성들을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남의 은혜를 얻고도 진리를 따르지 않고 세상을 따르며 순종치 않은 자는 의로움과 거룩함이 없으니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자신의 몸으로 받지 못하신다. 그러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그는 오히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하여 온전케 되는 과정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그가 거룩하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그를 받아주시니 그는 하늘의 형체를 입고 셋째 하늘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의로우시고 정직하시니 부활한 자와 부활하지 못한 자를 구별하실 때 아들을 통하여 의롭고 정직하게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셋째 하늘의 지성소에서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둘째 하늘의 심판대에서 불꽃같은 눈으로 이 땅에 거하는 한 영혼 한 영혼을 지켜보신다. 그러다 한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면 종들을 시켜 심판대로 데려오신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있을 때 불꽃같은 눈으로 자신을 지켜보던 그 그리스도의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때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그 불꽃 같은 눈을 보고 그에게로부터 흘러나오는 은혜와 사랑을 깨닫는 자들은 그에게로 가까이 간다. 그 이유는 그가 썩어질 육을 입고 세상에 거하는 동안 자신이 받은 그 첫사랑을 잊지 않고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해 아버지의 그 뜻만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 불꽃 같은 눈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지켜보기만 하신 것이 아니요 그 십자가의 길에서 자신과 함께 그것을 메고 끝까지 함께 다니셨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받은 그 첫사랑을 잊고 세상을 따르는 자와 자신의 생각과 의를 따르느라 진리를 따르지 못하는 자는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오히려 그 선악의 죄에 따라 말하고 행하며 자기의 뜻을 이루어가니 죄책감만 쌓인다. 또한 아버지와 그리스도께서 그 불꽃 같은 눈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지만 모른척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심판대에서 그리스도의 그 불꽃 같은 눈을 보고 자신의 죄책감을 깨닫는 자는 뒤로 물러가되 죄책감이 많은 자는 더욱더 뒤로 물러간다.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리스도는 머리시오 그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몸이다. 그런데 새하얀 털로 덮인 양을 볼 때 그의 머리만 희지 아니하고 그의 온 몸에 나있는 털도 동일하게 하얗다. 그러므로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다는 말씀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을 상징하는 동시에 또한 그에게 붙는 사람들의 어떠함도 상징한다. 즉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을 상징하며 또한 동시에 그에게 붙는 사람들도 의롭고 거룩하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과 자신의 몸이 이렇게 의롭고 거룩하다는 것을 교회시대에 자신의 신령한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모든 영혼들이 깨닫기 원하셨다. 또한 자신과 같이 거룩한 육체를 얻어 자신과 하나되어 영원토록 함께 행하기를 원한다면 그 의로움과 거룩함을 유지하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그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머리와 몸을 양털처럼 하얗게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시대에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은 그 머리 되신 분의 몸에 들어가는 자들은 어떠한 자들인가? 즉 거룩한 육체를 얻어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그들은 육신의 기회가 있을 때 어떻게 의로움과 거룩함을 이루었으며 또한 어떻게 그것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한가지 비유를 통해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한 왕이 자기의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 그 후 그 왕은 자기가 거하던 왕궁에서 나와 자기나라의 끝에서 살고 있는 백성들을 만나러 갈 일이 생겼다. 그러므로 그 왕은 그곳에 사는 백성들에게 이러한 말을 전해주었다. “나는 일주일 후에 너희들을 찾아올 것이니라. 그때에 나는 너희를 위하여 왕궁의 음식을 준비해서 올 것이요 또한 금은보화를 많이 가져올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나를 위하여 음식이나 금은보화를 준비하지 말아라. 오히려 목욕탕에 가서 깨끗하게 씻은 후 깨끗한 옷을 입고 내가 올 때까지 그 안에서 오직 나를 기다리며 있기를 바라는 도다. 그러면 내가 와서 왕이 입는 옷을 입혀 왕궁으로 데려갈 것이니라. 그리하여 그는 항상 나와 함께 거하며 왕과 같이 다스리겠노라.” 이 말을 듣자 첫 번째 사람은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왕이 누군지 언제 오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목욕탕의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정물에 들어가서 왕이 올 때까지 재미있게 놀았다. 한편 두 번째 사람은 왕의 말을 듣고도 왕의 마음과 의도가 무엇인지를 몰랐다. 그러므로 그는 목욕탕에 가서 옷을 벗기는 했지만 깨끗하게 씻지를 않고 그냥 목욕탕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벌거벗은 몸으로 그 더러운 구정물에 들어가 왕이 올 때까지 재미있게 놀면서 힘들게 음식과 금은보화를 준비했다. 그러면서 말하길 나는 은혜를 베푼 나의 왕을 위하여 이렇게 충성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왕이 다시 온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의 마음은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자신과 함께 그 구정물에 들어가서 놀고 있는 첫 번째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러나 세 번째 사람은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왕의 그 말에 순종했으니 목욕탕에 가서 깨끗하게 씻은 후 깨끗한 옷을 입었다. 그리고 그 깨끗한 옷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왕이 올 때까지 그 목욕탕 안에 거하며 손꼽아 왕을 기다렸다. 또한 ‘왕이시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하며 늘 진실한 마음을 품었다. 반면 네 번째 사람의 마음은 첫 번째 사람과 같이 그 구정물을 좋아했으니 왕의 말을 건성으로 들었다. 그러므로 그는 목욕탕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옷을 벗거나 목욕을 하지 않고 다시 나왔다. 그리고 나와서는 곧장 그 구정물로 달려들어가 놀면서 입술로는 늘 ‘왕이시여! 나와 내 자식들에게 복을 내리소서.’라고 했다. 왕이 오는 그 날까지 그랬다. 이에 그 왕은 일주일 후에 와서 자기의 말에 순종하여 자기가 올 때까지 깨끗한 옷을 입고 기다린 그 세 번째 사람에게 왕이 입는 옷을 입혀주었다. 또한 자기가 말로 약속한 모든 것들을 하나도 어기지 않고 다 지켰다.
이와 같이 믿는 자들이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것은 그들이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거룩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거룩을 유지하려면 무엇을 행해야 하리요?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을 변함없이 오직 아버지와 영원한 셋째 하늘에 두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거룩한 자이다. 그러다 그 마지막에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거룩을 끝까지 유지한 그가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그리스도의 그 한 몸에 거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니 그가 그리스도의 양으로서 자신의 마음에서 그 첫사랑을 잃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에 순종했기에 그리스도의 몸에 붙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이 의롭고 정결해진다는 것을 믿는 자는 자신의 생각과 의를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을 의롭고 정결케 하시는 그 믿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따라간다. 또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므로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고 정결해진 그가 그리스도의 그 한 몸에 붙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에 붙는 이 약속은 교회시대뿐만 아니라 라오디게아 교회시대의 끝인 이 마지막 때에도 이루어지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오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목자의 음성에 순종하는 영혼은 내일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다시 오셨을 때 들림을 받아 그리스도의 몸에 붙는다. 그리고 어떤 자는 거룩을 유지하다 144000으로서 대환난으로 들어가 복음을 다 전한 후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그 영광스런 몸에 붙는다.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나라의 백성들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을 세상의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겼다. 그러나 백성들 가운데 몇몇 선한 자들은 반짝거리는 금을 가장 소중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백성들은 각자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자신의 집안 깊숙한 곳에다 고이 간직했다. 그런데 그 나라의 왕은 참으로 욕심이 많고 악한 자였다. 그러므로 돌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들을 위해서는 자기가 가진 돌들을 길거리에다 많이 뿌려놓았다. 하지만 선한 자들이 가지고 있는 금은 탐났다. 그러므로 두 개의 검은 자루를 가지고 돌아다니며 그들의 집에 들어가 금을 빼앗아갔다. 그리고 자기가 빼앗은 금들을 자기가 거하는 곳에다 깊이 숨겨놓고는 기뻐했다. 이에 그 선한 백성들은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찾지 못하니 억울하여 이곳 저곳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악한 왕은 금을 빼앗기고 우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불공평하고 불의하게 대우했다. 그런데 그 나라의 위쪽에는 의로운 나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선한 왕이 선한 백성들이 당하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므로 그 왕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그 악한 나라의 왕을 쳐들어가 싸움에서 이겼다. 그러나 그 악한 나라의 왕은 자신이 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악한 왕은 자기의 모든 군대를 동원해 그 선한 나라의 왕과 마지막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그 선한 나라의 왕은 금을 소중히 여기는 백성들을 이끌고 나가서 그 마지막 전쟁을 이겼다. 이에 그 승리한 왕의 종들은 그 패한 나라의 왕궁에 들어가 그 악한 왕이 빼앗았던 금들을 다 찾았다. 그리고 그것을 띠로 만들어 전쟁에서 승리한 자기의 왕에게 바쳤다. 그리고 그 선한 왕은 싸움에서 승리한 기념물로서 그 소중한 금띠를 자기의 허리에 둘렀다. 그러자 그 무엇보다 금을 소중하게 여겼던 백성들은 그 선한 왕의 모습을 보고는 기뻐하며 좋아했다. 그리고 그 선한 왕은 그 소중한 것을 자신과 함께 싸움에 참여한 백성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나누어주며 그들의 허리에 묶어주었다.
이와 같이 한 나라가 다른 나라와 싸워 이기게 되면 그 이긴 나라가 진 나라의 가장 소중한 것을 왕께 드린다. 그러면 싸움에서 승리한 왕은 수고한 대가로서 그것을 취한다. 마찬가지로 전쟁에 능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원수가 이끄는 이 세상을 이기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신 후에 아버지께로 받은 금을 자신의 허리에 묶으셨다.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그와 같이 세상을 이기는 자들도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것을 얻어 허리에 묶게 된다.
그러므로 원수는 아버지와 아들께로 의롭고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자신의 마음에 욕심과 교만을 품고 셋째 하늘에서 죄를 창조했다. 그리고 그 선악의 말과 행위로서 자신과 다른 종들을 더럽혀갔다. 그러나 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범죄하고도 끝까지 돌이키지 않은 그를 셋째 하늘에서 쫓아내셨다. 그리고 이 첫째 하늘의 모든 것들은 마지막에 유황불 못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생명을 주신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마지막에 그 형벌로 들어가게 될 원수는 이미 사망으로 들어간 자이다.
그런데 원수는 이 첫째 하늘로 쫓겨난 후 태초에 의롭고 선하게 창조된 그 둘째 사람을 미혹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도 자신의 마음에 욕심과 교만을 품었으니 원수처럼 타락했다. 그리고 원수는 사람이 타락하는 그 순간에 사람의 마음에다 뿌리가 있는 나무로서 그 선악의 죄를 심었다. 그리하여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자기의 욕심과 교만에 이끌리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위로 불의와 죄를 범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사람도 만일 그의 인생가운데 회개치 아니하면 원수를 심판하신 것처럼 심판하신다. 그리하여 거룩해지라는 그 말씀에 끝까지 불순종하고 회개치 않은 자가 이미 사망으로 들어간 그 원수를 따라 유황불 못의 형벌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시며 욕심과 교만을 품지 않으셨으니 범죄치 않으셨다. 또한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도 이기셨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신 후에는 아버지께로 금을 받아 자신의 허리에 두르셨다. 하지만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금이 아니라 생명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싸움에서 승리하신 후 자신의 허리에 금띠를 묶으신 게 아니었다. 오직 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금과 같이 빛나는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입으신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부활하신 그 모습을 통해 믿는 자들에게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 있다. 그러므로 자신과 같이 세상과 죄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도 금띠를 띠게 될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그 금띠를 원하는 자는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생각과 세상에서 돌이켜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을 이루어간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라가 마지막에는 아버지께서 주신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 얻은 피로 산 제사를 드린다. 그러나 그 죽음은 사망권세를 가진 원수와 그가 이끄는 이 세상을 이기는 죽음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그와 같이 이긴 자들도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것을 얻어 허리에 묶는다. 그리하여 태양보다 더 밝은 황금 같은 빛으로 셋째 하늘을 영원히 비추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오직 자기만을 위한 욕심과 교만을 품은 자들은 그 소망의 금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돌을 소중히 여긴다. 또한 이 세상을 떠날 때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고 하지만 마음은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돌과 헛된 영광을 원수에게 얻는다. 그러나 그것은 불의와 죄 없이는 쌓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그 뜻을 거부하고 사망권세와 이 세상에 묶여있던 그가 마지막에 원수와 함께 그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은 자신과 깨끗한 첫사랑을 나눈 사람이 아무리 멀리 있어도 그 사랑을 자신의 마음에서 잊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외모를 가진 사람이 다가와 자신을 유혹해도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의 마음에서 그것을 잊은 사람은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이 다가와서 그 아름다움을 줄 때 그것을 곧 취한다. 또한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이 자신의 눈앞을 지나갈 때 그를 본 후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가지 않고 자기발로 그 사람을 따라가 그와 하나되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영혼과 그리스도와 이 세상의 관계를 뜻하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받은 그 첫사랑을 잊은 자는 자신의 마음을 이미 세상에 빼앗겼으며 썩어질 육을 얻고자 점점 세상으로 들어가는 자는 자기의 마음에서 첫사랑을 잊어가고 있기에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마음의 증거로서 그의 손에 이런 저런 육과 세상의 것들을 쥐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을 때 그리스도의 신령한 신부가 되는 것은 포기한 영혼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그 첫사랑을 잊지 않은 자들이 있으니 그 마음의 증거로서 그의 손에는 세상의 것들이 하나도 없으며 행여 있거나 없어도 그것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 첫사랑을 회복하고 있는 자는 이 음란하고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오직 아버지의 그 뜻과 셋째 하늘에 마음을 둔다. 그리고 그 증거로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취했던 헛된 것들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이 마지막 때에 바로 이러한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을 때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되며 형제자매가 되기 원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며 그리스도의 재림과 피 흘림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마음이 정직한 자를 의로우심과 선하심으로 인도하신다. 그리하여 깨끗한 마음과 정직한 손을 가지고 거룩을 이룬 그들이 마지막에 들림을 받거나 산 제사를 드린 후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멀리서 둘째 하늘의 낙원을 이끌고 내려오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기다리는 영혼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기 원하신다. 그래야 그들이 그리스도를 기다리되 그리스도의 성품을 잘 깨닫고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거룩하신 영께서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모습들은 오직 첫사랑을 잊지 않고 깨어있는 영혼들과 거룩에 애쓰는 영혼들만이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자비가 풍성하시니 누구든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거나 갈급한 자에게도 그 깨달음을 허락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먼저 발에 끌리는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그 옷에는 세 가지의 의미가 있으니 누가 그 옷을 입는지를 알면 그 의미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첫째 한 나라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진 왕이 발에 끌리는 옷을 입는다. 그리고 왕이 하는 일은 다스림이요 또한 자기의 말에 순종하며 자기의 일에 충성한 자를 자신의 가까이에 두고 그들로 하여금 백성들을 다스리게 한다. 마찬가지로 만물을 창조하신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는 자의 마음과 영혼을 다스리시니 그리스도를 따르며 거룩을 이루어가는 그는 마음에 늘 평화와 기쁨을 누린다. 그러므로 거듭난 한 영혼이 마음에 늘 천국을 누리고 있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므로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에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는 그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과 고난과 고통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을 때는 원수가 더럽힌 이 첫째 하늘의 모든 것을 태초의 낙원과 같이 선하게 회복시키신 후 천년왕국의 왕으로서 이 땅을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되 자신을 위해 충성한 자들과 함께하신다. 그러므로 마음에 늘 평화와 기쁨을 누렸던 그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 천년왕국의 영광과 권세에 참여하는 것은 그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발에 끌리는 옷은 둘째로는 많은 자녀들 가운데 장자의 권위를 가진 자가 입고 셋째로는 혼인예식을 위하여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이 입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구약과 신약의 많은 자녀들 가운데서 맏아들로서 다른 형제자매들을 자신의 고난 받은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두 번째 의미요 그가 신랑으로서 자신의 깨끗한 몸에 영과 혼과 육이 정결한 신부들을 자신의 지체로서 맞이하는 모습이 세 번째 의미이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택하신 영혼에게 계시를 주실 때 그 말씀의 비밀을 음성으로도 알리시며 보여도 주시어 그로 하여금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깨닫게 하신다. 그리고 그것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과 갈급한 영혼들에게 값없이 주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요한은 자신이 받은 계시를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음성을 들었으며 그 후에 거룩하신 영께서 그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신 것이 바로 일곱 금 촛대였다.
일곱 금 촛대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매 교회시대마다 붙들고 계신 일곱 교회를 의미한다. 그리고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리스도께서 붙들고 계신 교회들에게 오직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만을 전하신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그리스도께로 붙들려 그들이 어느 시대에 어느 민족에 거하든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어간다. 또한 다른 영혼들도 거룩을 이루도록 힘쓰니 목숨을 내어놓고 회개와 천국의 복음만을 전한다. 그러다 마지막에 복음을 다 전한 후에는 자신이 받은 그 인자의 살과 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마지막 교회시대에도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교회시대와 마찬가지로 이방의 민족들 가운데 일곱 교회를 붙들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아버지의 뜻을 깨달았으니 그 어떤 행위로 돌아서거나 율법에 빠지지 아니하고 마음에 늘 첫사랑을 간직한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자신과 공동체의 거룩에 애를 쓴다. 또한 은혜시대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 마지막 때에는 환난의 복음을 전하고 나서 목 베임으로 제사를 드린 모든 자들이 바로 그 144000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께 붙들린 자들의 피 흘림은 초대교회만이 아니요 일곱 교회시대마다 있었다. 그런데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라간 그들의 피 흘림은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며 또한 아버지의 그 뜻과 의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로는 그 의로운 피를 통하여 온전한 구원의 복음이 계속 선포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교회시대에 진리를 전하는 자들은 오직 그들뿐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의 뜻을 이룬 그 아들을 다시 살리시어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허락하셨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 자신이 준비한 모든 영광과 권세를 주시고 자신의 보좌 가장 가까이에 두셨으니 이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피 흘린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로부터 마지막 시대까지 피를 흘리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러나 사람이 그것을 택한 것이 아니요 오직 아버지께서 택하셨으니 그들이 그 길로 간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에게 일곱 금 촛대를 보여주신 것처럼 이 세상에 자신의 처음 나타나심을 준비한 그리스도전의 선지자들에게도 일곱 등잔을 보여주셨다. 그 동일한 의미가 무엇인지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이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영혼들이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되기 위하여 무엇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할지 그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어둠으로 가득한 넓은 마을의 중간에서 일곱 개의 초를 꽂은 촛대를 꼭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아버지는 오직 한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불을 주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자기가 들고 있던 그 일곱 개의 초에다 하나씩 하나씩 불을 붙였다. 그러므로 그 촛대의 주위가 밝아지기 시작했으며 그 아버지는 그 불빛을 계속 지켜보았다. 하지만 어둠을 좋아하는 한 악한 자가 그 촛불을 끄려고 멀리서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아들의 옆에 있던 친구는 두꺼운 천으로 그 바람을 모두다 막았다. 그러므로 그 촛불은 흔들리거나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촛농이 한 방울씩 흘러 내릴 때마다 어둠을 더 이겼으니 그 어두운 마을에서 그 촛대의 주위는 더욱더 밝아졌다. 이러한 모습을 보자 그 마을에서 어둠이 아닌 밝은 빛에 거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그 촛불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빛으로 인하여 자신의 모습을 밝히 보고는 자기의 옷에 묻은 더러운 모든 것들을 다 털어냈다. 이에 자기의 아들에게 불을 주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만히 지켜보던 그 아버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기쁨을 이기지 못했으며 또한 그들을 사랑하여 자신의 가까이에 두었다.
이와 같이 촛불에는 첫째 어둠을 밝히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각 시대마다 일곱 교회를 붙들고 계시고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 일곱 교회를 보호하고 인도하므로 그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고 계신다. 그런데 빛과 어둠이 싸우면 반드시 예외 없이 빛이 이기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거룩하신 영과 함께 그 교회사이사이의 어둠의 세력들을 다 물리친다. 그리하여 빛이 있는 교회에서는 그 흑암의 세력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나므로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의 뿌리도 결국에는 뽑혀지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촛불의 빛은 오직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녹여진 그 촛농으로 인하여 밝아지며 또한 유지된다. 마찬가지로 각 교회시대의 불꽃 하나하나는 오직 그들의 피 흘림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로 붙들린 자들이 자신을 깨끗하게 한 후 피를 흘릴 때마다 그 촛불이 밝게 켜진다. 그리고 촛불이 켜지므로 이 세상의 어둠가운데서 그 불빛이 그 어둠들을 이기며 그 안에 거하는 자들은 자신의 거룩을 이룬다. 또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기 원하는 자들도 그 거룩한 빛을 보고 하나 둘씩 모여드니 그들도 함께하며 거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영원한 셋째 하늘의 지성소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그 뜻에 순종해 이렇게 자신과 다른 영혼들의 거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곱 촛불을 늘 지켜보시며 거룩한 육체의 상급을 준비하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입고 부활의 생명을 얻은 것은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그 뜻을 위하여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한 나라의 왕이 자기의 뜻을 이룬 백성들을 위하여 큰 상급을 준비해놓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모든 백성들이 내가 준비한 이어달리기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도다. 누구든지 이어달리기에 참여하는 사람은 나의 뜻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이 경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다른 그 무엇을 통해서도 나의 뜻을 이룰 수 없으니 그는 상급을 얻지 못하겠노라.” 왕의 말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이어달리기를 하려고 출발점에 모여들었다. 하지만 달리기를 해야 하는 그 길이 너무나 힘들고 어렵게 보였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이 출발점에다 사람들을 많이 모으자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을 옳게 여긴 사람들은 그 출발점에다 사람들을 많이 모으며 또한 크고 아름다운 건물을 지었다. 그러면서 이것이 우리의 왕이 원하는 경주이니 우리는 나중에 상급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일곱 명은 오직 왕의 뜻을 이루기 원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사람이 달리기를 시작하자 그 왕의 아들이 와서 쪽지를 전해주었다. 그래서 첫 번째 사람은 그것이 무엇인가 하여 펴보니 거기에는 자기가 평소에 알고 싶었던 궁금한 것들이 정확하게 써있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사람은 그것을 재미있게 읽으며 끝까지 달렸다. 그리고 자기에게 정해진 만큼을 달린 후 두 번째 사람의 손을 치니 그 왕의 아들은 그 두 번째 사람에게도 동일한 쪽지를 전해주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사람도 자기가 궁금해하던 것을 재미있게 읽으며 기쁘게 달렸다. 그리고 일곱 번째 사람까지 모두다 이와 같았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그 출발점에 서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게에서 맛있는 것을 사와서 먹느라 그 경기에는 관심도 없다.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가 가게에 가서 맛있는 것을 많이 사먹는 이것이 왕의 뜻이요 왕이 원하는 경주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맛있는 것을 제일 많이 가진 자가 그 이어 달리기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므로 그는 달리는 자들의 뒤를 쫓아가면서 발을 걸어 넘어뜨리거나 온 몸을 때렸다. 그러면서 말하길 우리는 왕의 이름과 왕의 뜻으로 너희를 이렇게 처단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일곱 사람은 그들의 방해와 고문에 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이어달리기를 마쳤다. 그러므로 그 왕은 자신이 준비한 금 면류관을 그 일곱 명에게 씌워주고 자기의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앉혀주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초대교회 때부터 항상 일곱 교회를 통해 진리의 비밀을 이어놓으셨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때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오직 아버지의 말씀을 가지고 직접 다스렸다. 그리고 초대교회 이후의 다른 교회시대의 일곱 교회들도 역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그 진리의 비밀을 가지고 다스렸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를 따르는 자들은 오직 아버지의 그 뜻만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므로 진리를 따라 마음과 그 행위를 오직 아버지와 아들께만 드린 교회는 항상 일곱 교회요 또한 마지막 교회인 오늘의 시대에도 그러하다.
예를 들어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과 이방인의 거듭난 자들 가운데 그 부활의 약속을 믿고 그 무엇보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진리의 길 생명의 길 구원의 길로 정하셨으며 그리스도께서 그 길을 내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진리를 깨닫고 순종해 거룩을 이루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루살렘과 이방의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께 받은 그 피를 뿌렸다. 그리하여 그 피로인해 온 유대와 사마리아 소아시아와 로마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과 그 행위를 오직 주님께만 드린 자의 피를 통하여 복음이 증거되는 것은 모든 교회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교회시대에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대환난 때에 목 베임을 통한 피 흘림이 남아있다. 그리하여 라오디게아의 일곱 교회가 회개와 천국의 복음을 땅끝까지 다 전파한 후 그 마지막 피를 흘림으로서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시고 이 땅에 내려와 그 천년왕국을 이루시는 것이다.
이처럼 누구든지 그 약속을 은혜로 받은 후 믿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한다면 의롭지 못한 자기를 부인하고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한다. 또한 복음을 다 전한 후 마지막에는 피의 순교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고난의 길이다.
그러나 교회시대에 그 길을 걷는 자들은 때로는 기뻐하며 때로는 크게 기뻐하니 그것은 그 길에서 자신이 알고 싶어하던 진리의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들은 진리에 순종하므로 거룩에 이른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룬 그들이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러 자녀 됨의 그 약속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정하신 그 진리와 생명과 구원의 십자가 길은 고난의 길이되 기쁨과 소망의 길이다.
또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드리면 그곳에 자신의 입과 손과 발과 몸도 드리며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되 마지막에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자신의 마음이 있는 그곳에 자신이 원하여 스스로 드린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정하신 그 길을 자원하여 걷는 자들을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니 아들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에 늘 평화를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아 믿음으로 그 길을 걷는 자는 어느 시대든 마음에 평화도 항상 있다.
결국 이 땅에서 사람들의 앞에 서서 복음을 전하는 자를 볼 때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마지막에 그 환난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설교하는 자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평화가 늘 충만하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마음에 없다면 그는 누구의 제자요 무엇을 바라보고 달리는 자이겠는가? 그리하여 육과 세상을 가지고 있는 거짓된 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그 마지막 때에 사망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적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아버지의 택하신 자들을 핍박하는 그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의 왕자가 백성들 가운데서 얼굴이 예쁜 여자가 아니요 오로지 자신에게만 마음을 주는 깨끗한 여자와 혼인을 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 왕자는 큰 왕궁 문을 열고 나가 자기나라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마음을 이리저리 바꾸지 않는 여자를 택했으나 외모는 많이 딸렸다. 하지만 그 왕자는 그 여자에게 진실한 사랑을 베풀고는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나는 당신에게 원하는 것이 오직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당신을 맞으러 돌아올 때까지 당신의 마음이 오직 나만을 기다리며 당신 자신을 나를 위해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요.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는 필요할 때마다 왕궁에 거하는 사람들이 당신과의 혼인잔치를 잘 준비하도록 또한 당신이 나를 맞이할 준비를 잘 하도록 나의 종들에게 시켜 왕궁에서 나팔을 불게 하실 것이요.” 왕의 말을 듣자 그 여자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고는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그 왕은 혼인잔치를 준비하러 왕궁으로 돌아갔으며 그 여자는 자기자신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꾸미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세상의 친구들이 재미있는 곳에 놀러 가자고 하면서 찾아왔다. 하지만 그 여자는 자기의 신랑 될 남자를 위해 준비할 것이 있다면서 거절했다. 또한 외모가 좋은 남자가 좋은 것을 가지고 찾아와서 큰 관심을 보였으나 자신이 받은 첫사랑을 잊거나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잘생긴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또한 자신도 자기의 모습을 그에게 조금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왕궁에서는 빵빠라빵 빵빵빵 빵빠라빵 하면서 큰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궁전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그 나팔소리를 듣고 혼인잔치를 더 열심히 준비했으며 그 여자도 그 나팔소리를 듣고 자신을 더욱더 자신을 아름답고 정성스럽게 가꾸었다. 그리고 두 번째 나팔이 불자 왕궁에 거하는 종들은 혼인잔치를 거의 마무리했으며 그 여자도 자기의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거의 다 끝냈다. 그러나 왕에게 자기의 마음을 두고 있는 그 여자 외에 다른 세상사람들은 그 나팔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러다 종들이 마지막 나팔을 크게 불자 왕궁의 문이 열리며 일하는 사람들이 나와 빨간색 카펫을 그 여자가 거하는 곳까지 깔았다. 그리고 왕궁에서 나온 멋진 종들이 그 왕자가 기다리는 왕궁의 문 앞까지 그 깨끗한 신부를 데리고 갔다. 그리하여 그 남자는 그 여자를 자신의 품에 안고 혼인잔치로 들어갔다. 그러나 다른 세상사람들은 그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이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께서 종들을 통하여 이 첫째 하늘에 울려 퍼지게 하시는 그 나팔소리는 교회의 머리요 신랑인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정결한 신부를 데리러 나오시기에 준비하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들 가운데 십자가를 통해 받은 그 첫사랑의 은혜를 잊지 않고 깨어있는 영혼들과 또한 자기의 생각이나 이 세상을 따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영혼들은 그 나팔소리를 듣는다. 그리하여 이 마지막 때에도 아버지의 그 뜻과 나라에 마음이 있는 그 영혼들이 그 나팔소리를 듣고 더욱더 자신과 공동체의 거룩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을 원수가 이끄는 이 세상에 빼앗기므로 첫사랑을 잃은 영혼들은 그 나팔소리를 듣지 못한다. 거듭남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생각과 의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영혼들도 듣지 못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첫사랑을 잊지 않은 영혼들과 자기를 따라오는 자들에게 어두운 죄와 세상을 이기는 진리의 빛을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자들이 무엇으로 어떻게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며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한 의로움과 거룩함을 이루고자 애를 쓰리요?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그날까지 많은 자들이 노아의 때와 같이 자기의 마음을 육과 이 세상에 두고 먹고 마신다.
그런데 이렇게 어떤 자는 듣고 어떤 자는 듣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다시 오실 그때에 울려 퍼지는 그 마지막 나팔소리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의 종들이 왕이 곧 나오신다는 의미로서 예비의 나팔을 불 때 아버지께서 아들의 안으로 임하시니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둘째 하늘의 문을 열고 나오신다. 그리고 나서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자기와 함께 거할 영혼들을 자기의 성문 앞에 부르신다. 그러면 바로 그때 신랑을 맞이하는 자들과 그를 위한 모든 자들은 주님의 종들이 부는 그 나팔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리하여 종들이 영과 혼과 육이 정결한 자들을 공중으로 데려가니 휴거 된 그들이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첫사랑을 잊은 영혼들과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던 영혼들은 그 마지막 나팔소리도 듣지 못할 것이다. 거듭난 영혼으로서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 두므로 두 마음을 품고 이방인과 같이 이 세상을 바라보고 달리는 자가 어찌 그 신령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요? 심지어 그들은 아버지께서 택하신 자들을 통해 마지막 때의 심판을 끝까지 알리셔도 끝까지 돌이키기를 원치 아니한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그 뜻과 영원한 셋째 하늘에 마음이 없었던 영혼들은 자신의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 즉 자신을 거룩하고 깨끗하고 흠 없게 준비하지를 못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 그 선악의 죄와 함께하며 이 세상에 마음을 둔 자들이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오실 때 사망으로 들어가거나 또는 아무런 준비 없이 대환난의 침상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이루게 되는 그 거룩에 마음과 믿음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피를 의지해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또한 세상과 싸워 이기므로 거룩을 이룬다. 그리고 그 대환난에서 그리스도의 환난복음을 다 전한 후 목 베임으로 산 제사를 아버지께로 올려드린다. 그리하여 그 휴거 된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르므로 죄와 세상을 이긴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과 제사장으로서 이 땅으로 내려와 천 년 동안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린 후 아버지께서 계신 영원한 셋째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한 의로운 왕이 높은 산의 꼭대기에 있는 왕궁에 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왕이 산밑에 있는 도시사람들을 가만히 보니 그들은 돈을 취할 수 있다면 무슨 일도 다했으며 배가 불러도 더 챙기려고 늘 거짓말했다. 그리고 여자는 자신과 첫사랑을 나눈 남자에 만족하지 않고 힘있는 남자를 따라다녔으며 남자는 자기의 아내가 있음에도 늘 기회를 만들어 다른 여자와 즐겼고 남자와 남자가 여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거나 서로가 부부를 바꾸어 취했다. 또한 자신이 높은 곳에 올라가고자 자기의 가족도 다른 사람에게 내주었다. 그러니 자신도 깨끗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불의와 죄와 실수를 보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보통이었다. 한편 도시를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자기의 욕심과 앉은 자리를 위해서만 움직였으며 많은 사람들의 앞에 서서 말하는 자들은 무슨 말을 하든 무엇을 하든 그것은 오직 자기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나라에서는 부하고 강한 자는 대우를 받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는 늘 서러움을 당했다. 이에 그 왕은 불의하고 죄악된 그 도시를 심판하고자 했다. 하지만 자기만 사랑하는 그 악한 자들 가운데서 진심으로 그 불의하고 죄악된 도시에서 나오기 원하는 사람들은 그 심판 전에 다 구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나와 자신을 섬긴 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나라를 다스리는 영광을 주고 싶었다. 그 왕은 이러한 뜻과 계획을 가지고 자기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아들아 너는 저 산밑에 있는 도시로 내려가서 나의 뜻과 계획을 전한 후 다시금 왕궁으로 올라오며 너의 발자국을 선명하게 찍어놓아라. 그러면 저 불의하고 죄악된 도시에서 벗어나 이 좋은 곳에서 왕자와 공주가 되기 원하는 자들은 이 산꼭대기까지 올라오는 것이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인내하며 너의 그 발자국을 따라 끝까지 올라올 것이니라.” 왕의 말을 듣고 난 후 그 아들은 산밑에 있는 도시로 내려가 자기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다 전했다. 그리고 왕궁이 있는 산꼭대기를 향했으니 다섯 사람이 그 아들을 따라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참으로 더럽고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말하면서 거기서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그 세상에 미련이 있거나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한편 많이 가진 자들은 거기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면서 죽을 때까지 즐기고 싶었다. 이제 그 아들은 산꼭대기를 향해 바라보며 가장 빠르고 쉬운 길로 올라가며 발자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다섯 사람의 눈에는 그 길이 가장 멀고 험하게 보였으며 또한 그렇게 느껴졌다. 그러므로 첫 번째 사람은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았으며 두 번째 사람은 한 발은 산을 향해 한 발은 도시에 두고 다리를 벌리고 서있었으며 세 번째 사람은 자기의 눈에 빠르게 보이는 곳으로 가다 웅덩이에 빠졌고 네 번째 사람은 자기의 눈에 쉽게 보이는 곳으로 가다 악한 짐승들에게 쫓겨 다녔다. 그러나 다섯 번째 사람은 불의하고 죄악된 자신과 그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간절히 가졌다. 또한 왕궁에 도착해 영광을 얻게 되는 그 소망을 늘 품고 그 아들이 찍어놓은 발자국만 따라갔다. 그러자 그 아들은 자기를 따라오는 그 사람에게 맛있는 빵과 물을 늘 주었으며 또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항상 들려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기쁨으로 그 고난을 참고 인내하며 끝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하여 왕의 약속대로 그는 그 아들과 함께 왕자로서 그 의롭고 높은 나라를 다스리는 영광을 얻었다. 그러나 그 불의하고 악한 도시를 사랑한 사람들은 모두다 심판을 받았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에 이르는 그 길을 오직 자신의 십자가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영원한 셋째 하늘의 성소에서 아버지의 영광과 얼굴을 보는 그 기쁨과 평화를 누리기 원하는 영혼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그 어떤 행위나 율법에 빠지지 아니하고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간절히 가진다. 또한 마음에서부터 이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을 벗어나기 원한다.
그러나 사람은 육의 한계가 있으며 또한 영적인 세계를 보지 못하니 마음은 있어도 자신이 마음대로 그것을 못한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과 때와 계획에 따라 그 영혼을 이 어두운 세상으로부터 그리스도께로 이끄신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그 진리와 생명의 길을 내셨기 때문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만이 그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그 영혼에게 자신의 그 살과 피를 주신다. 그러면 그는 그 영광스러운 것을 의지해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운다. 또한 원수가 그에게 메어놓은 세상의 줄들이 하나씩 풀리니 결국에 그는 그 어둠의 죄와 어두운 이 세상을 이긴다. 오직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죄와 세상을 이기는 빛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걷는 그 십자가의 길에는 혼적인 고난이 있다. 날마다 자기의 생각과 의를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환난과 더불어 순교도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그 길에는 육적인 고난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뜻을 이룬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 아들과 한 몸을 이루기 원하는 영혼들에게는 말씀의 기초를 시작으로 거룩한 것과 영광스러운 것을 차례차례 주시어 마음과 영혼에 늘 기쁨과 평화를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고난가운데서도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른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마지막에 그 환난에서 아버지께로 피의 제사를 드리므로 넉넉히 이기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거룩한 육체를 입는다. 그리하여 영화롭게 된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왕국을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며 또한 그 후에 셋째 하늘의 영원한 기쁨과 다스림에도 그리스도와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옛날에 한 의로운 아버지가 자기의 아들과 함께 포도열매를 많이 얻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나서 아들을 낳고는 올바른 사랑과 훈계로 길렀다. 그러므로 그 아들은 나중에 자라서 자기의 아버지처럼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또한 그 아들은 자기의 아버지와 인격은 비록 달랐지만 모든 것에서 마음이 통했으니 아버지와 늘 마음이 하나되어 함께했다. 이제 그 아버지의 계획대로 포도원을 만들 때가 되자 그 아들은 아버지와 마음이 통하니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알고 종들을 구해왔다. 그리고 그들에게 포도원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주고는 그 일이 잘되어가나 지켜보며 감독을 했다. 하지만 그 일은 아들 혼자 종들을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요 아버지와 마음이 통했으니 그 아버지와 그 아들과 그 마음이 함께하는 것이었다. 이제 포도원이 완성되자 아들은 자기의 아버지에게 받은 포도 씨 하나를 심고는 자기의 마음과 몸을 다해 가꾸었다. 그랬더니 땅에 떨어져 죽은 그 포도 씨에서는 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옆을 가만히 보니 그 아들이 심지 않은 나무들도 함께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에 그 아들은 자기가 심은 것을 가꾸며 그곳에서도 좋은 열매를 얻고자 자기의 마음과 정성을 다해 가꾸었다. 이제 30일이 지나자 그 아들이 심은 나무에서는 깨끗한 열매가 풍성하게 맺혔다. 그러나 다른 나무들에서는 그 아들이 정성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은 그 열매들을 보면서 자기아버지의 뜻과 계획대로 종들에게 이렇게 시켰다. “내가 심은 나무에서 딴 그 좋은 열매들은 금으로 된 바구니에 담고 약간 질이 떨어지는 열매는 깨끗하게 닦아서 나무 상자에 담아 집으로 가져가자. 그러나 벌레 먹고 병든 것들은 그것을 맺은 나무들과 함께 모아서 불태우고 먹지 못할 포도는 썩도록 땅에다 버려라.” 그 아들은 이렇게 아버지와 마음을 합하여 시작한 그 일을 완전히 마쳤다. 하지만 포도원을 가꾼 후 모든 것을 추수하여 집으로 가져오는 것과 불태울 것은 불태우는 것과 땅속에 묻을 것은 묻는 그 모든 일들은 그 아들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요 아버지와 마음이 통하니 그 아버지와 그 아들과 그 마음이 하나되어 함께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알파와 오메가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으니 첫째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 태초부터 함께 계셨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오직 한 분 생명의 신이신 아버지께서는 영원 전부터 홀로 스스로 계셨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선하시고 기쁘신 그 뜻을 이루시고자 태초에 자신의 품에서 한 아들을 낳으셨다. 그리고 그때에 아버지와 아들의 품에서 나오신 분이 바로 거룩하신 영이시다.
이처럼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태초부터 함께 계셨으며 지금까지도 함께하고 계시며 또한 영원토록 함께 계실 것이다. 그리하여 알파와 오메가라는 그 말씀의 첫 번째 의미를 이루시는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의 뜻은 두 번째로 무슨 일을 시작했으면 그것을 끝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아버지께서 태초에 이미 세우신 그 창조와 구원과 심판과 멸망의 계획을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 함께 이루어가시다 마지막에는 그것을 완전히 다 마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 선하시고 기쁘신 뜻을 이루시고자 영원 전에 창조와 구원과 심판과 멸망의 계획을 세우셨다. 그리고 태초에 아버지의 품에서 나오신 아들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을 이루시고자 셋째 하늘과 둘째 하늘과 첫째 하늘의 창조를 명하셨으며 거룩하신 영께서는 종들을 통하여 그 아들의 명대로 모든 것을 지으셨다. 그리고 나서 아들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그 뜻을 다 이루셨다. 그러므로 아들의 그 십자가를 통하여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거룩을 이룬 자들이 그 거룩한 육체를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태초에 시작하신 그 일을 이 세상의 끝에 다 마치신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의 끝에 아버지의 그 뜻이 다 이루어진 후에는 원수와 그의 사자들과 흑암의 세력들과 이방인들을 이 첫째 하늘의 모든 것과 함께 유황불 못으로 넣으신다. 한편 아버지의 뜻도 원치 않고 영원한 형벌의 사망도 원치 않는 자들은 영원토록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으로 보내신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선악의 죄를 이기고 거룩을 이룬 자신의 형제자매들과 천년왕국에서 거룩을 이룬 백성들은 셋째 하늘로 이끌고 올라가신다. 그리하여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씀의 그 두 번째 뜻도 이루시는 것이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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