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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에도 많은 눈이 왔다.

3월인데 밤에 내린 눈이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보고 모두들 놀란다. 그해 3월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눈이 와서 고속도로에 차량이 즐비하게 갇혀 있을 정도였다. 눈이 많이 내린 3월 10일이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날이다. 벌써 6년이 지났다.

 

아버지께서 먼저 돌아 가셨다. 아버지를 내 삶의 버팀목으로 생각을 하고 의지하고 살았다. 돌아 가신후 이제는 모든 일을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제 온전이 홀로서기를 해야하는거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때까지 아버지의 존재가 크다랗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명절때와 기회있을때 고향에 가면 어머니를 뵐 수 있고, 어머니와 함께 자고 올 수가 있었다. 동네 어른들과 마을 사람들을 다 알고 있기에 거리낌없는 고향 마을은 항상 정겹게 다녀올 수 있었다. 아버지 산소에 가면 아버지의 자리가 비어있어 허전함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고향은 거기 있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다녀올 수 있는 곳이었다.

 

눈으로 뒤덮였던 그날 아침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자식을 보고 싶어 했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아이들과 함께 정신없이 고향으로 갔다. 부끄럽게도 그날 따라 주머니에 몇 천원 밖에 없었다. 동네 친구들과 어른들이 장례를 잘 치러주어 아버지 옆에 나란히 모셨다. 내 고향에는 마을공동체의 풍습이 남아 있어 큰일도 어려움 없이 치를수 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서울에서 찾아오기도 힘든곳 까지 문상을 온 교회 친구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장례를 마치고 내가 자라던 고향을 등지고 동구밖을 나오는데 하염없는 눈물이 났다. 이제 고향을 잊어버린다는 생각이 미치니 눈물을 참을수 없었다. 동네 구석구석 내가 돌아다니지 않은 곳이 없고, 그곳에서 놀던 기억을 잊을수 없다. 이런 내 고향에 이제 자주 올 일도 없고, 찾아온다 한들 가족이 없는 고향은 지난날 부모님께서 계시던 고향과는 다를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는 어려운 시절, 어려운 살림에도 열심히 사셔서 우리를 이렇게 키웠지만, 지금 아이들의 부모가 된 내가 그 분들의 뒤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생각하면 항상 송구하고, 지금도 땅에 있는 자식들을 걱정하며 기도하고 계실것을 생각하면 더욱더 죄스러울 뿐이다.

 

이런 아들과 함께 사는 며느리가 어머니의 기일을 기억하고, 일을 마치고 와서 약간의 음식을 장만하고 막걸리까지 한병 받아 놓고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은 출타하고 없는지라 부부가 어머니를 기억하면서 기도를 드렸다. 돌아가신 어머님의 은혜를 말로 다 할수 없으며, 어머니를 기억해서 음식을 장만하고  함께 고개숙인 아내에게도 고마운 마음이다.

 

내가 살던 고향 마을과는 끈이 떨어지고 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게될 마을은 어디이고? 고향은 어떻게(어디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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