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에서 음식나눔 잔치를

꼬뮨 현장에서 2007/01/06 21:33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완공되면서 그 광대한 갯벌이 죽어갔고, 그곳에서 살아왔던 가진 것 없는 어민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던 상황들을 목격하면서 나는 느낀 것들이 많았다.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새만금 어민들은 공사를 저지시키기 위해 해상시위에 나섰다.

하지만 경찰력을 앞세운 자본의 압도적인 힘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면 권력자들이 가진 저 압도적인 힘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내 고민이었다.

결론은 환경운동이 주민들의 삶과 더 밀착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2006년 3월 새만금 해상시위에 환경단체들이 참가하려고 했을 때 몇몇 어민들은 선상에서 '환경단체들은 돌아가라'고 했었다.
'어민들을 위해 한 것이 하나도 없었던 환경단체들은 필요없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어민들의 생존권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불만을, 백합과 도요새 뿐만 아니라 어민들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호소를 어민들은 그런 방식으로 쏟아냈었다.

 

환경운동이든 평화운동이든, 무슨 운동이든 제일 먼저 영향을 받게 될 사람들, 즉 민중들과 굳건히 연대하지 않으면 정작 중요한 순간에, 마지막 가장 중요한 일전을 목전에 두고서 힘을 쓰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절실하게 연대가 필요할 때 스스로를 고립시킨 주민들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민중의 생존권을 말하지 않는 평화운동, 환경운동 역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열심히 운동을 하고도 그 결과는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새만금 방조제 저지 운동이 새만금 연안 어민들의 생존권 문제로 치환되는 순간 그 운동의 결과는 예견되는 것이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운동이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로만 치환된다면 그 운동의 결과는 예견되고 만다.
어민, 주민들의 생존권 싸움을 모든 사람들의 생명 평화 운동으로 발전시키지 못하면 군사주의자들과 개발주의자들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그대로 용인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 내가 새만금에서 얻은 교훈이며, 대추리로 들어온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대추리에 들어온 것은 목전에 임박한 국방부의 마을파괴 폭거를 온몸으로 막고자 하는 것도 있었지만 미군기지 확장으로 당장 엄청난 피해를 겪고 있는 주민들과 바로 곁에서 함께 살면서 호흡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바로 내가 스스로 주민이 되어서 이것을 나의 문제로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이제 미군기지 확장은 나의 생명과 나의 평화를 위협하는 직접적인 문제가 된 것이다.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고, 갯벌이 죽어가고 있다고 해서, 그리고 많은 연안 어민들이 갯벌과 바다를 버리고 떠났다고 해서 그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생명운동이 끝난 것은 아니다.
방조제 공사로 인해 새만금 갯벌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 끊임 없이 확인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해 죽음의 방조제를 반드시 틀 수 있도록 운동은 계속되어야 하며, 실제로 많은 이들이 떠나버린 그 자리에 남아서 묵묵히 그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찬가지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모두 이주에 합의했다고 해서 미군기지 확장 반대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다.
애초에 이 싸움은 주민들의 생존권 싸움으로만 벌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떠난다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며, 새로운 단계의 싸움으로 접어들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단계의 싸움은 누가 할 것인가?
새롭게 평택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벌여나갈 힘이 남아 있기나 한 것일까?
나는 기존의 대규모 단체에 속한 대오가 아니라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풀뿌리 개인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조직의 논리로 운동을 사고하기 보다는 그저 너무나 평택을 사랑해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말이다.

범국민대회를 하면 깃발을 들고 하나의 대오로 참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추리 촛불행사장에 와서 주민들 손을 일일이 잡아가며 함께 아파하는 그런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다.
평택'범대위' 소속이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어색한 구석이 있지만 스스로 평택'지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가진 힘을 모아내고 싶다.

 

그래서 대추리, 도두리에서 살고 있는 몇몇 지킴이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했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을 '대추리 방문의 날'로 정하고 마을에 모여 이 아름다운 곳을 지켜나가는 조그만 직접행동들을 하기로 했다.
당장 1월 27일 토요일에 첫번째로 대추리에 모인다.
대추리에 올 때는 자신의 추억이 담긴 소중하고 조그만 물건을 하나씩 가지고 오자.
그것에 담긴 사연들도 갖고 오면 좋다.
비어 있는 집을 하나 정해서 청소를 하고, 이 물건들로 채우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중한 사연들이 하나하나 모여 온기가 사라진 빈집을 다시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대추리, 도두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평화전시관으로 거듭날 수도 있는 것이다.
빈집을 꾸미는 작업과 더불어 조각천을 바느질하면서 함께 퀼트 만들기도 할 생각이고, 함께 예쁜 공책도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황새울 벌판에 흉물스럽게 버티고 서있는 철조망 주변에도 우리의 평화의 의지를 모은 상징적 작업을 할 수 있다.
오후 2시 정도부터 작업을 시작하고, 저녁은 각자가 가져온 음식들을 나눠먹는 일종의 음식나눔 잔치(potluck party)를 할 생각이다.
전국의 지킴이들과 함께 먹고 싶은 음식들을 가져와 요리를 하고 어울려 숟가락을 드는 것이다.
나는 거기에 희망이 있고, 평화가 있다고 믿는다.

 

저녁을 먹고난 후 촛불행사에 참여하고, 밤에는 대화의 시간도 가지려고 한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같은 공간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면서 서로에게 따뜻한 등불이 되는 것이다.
대추리, 도두리에 좀 더 자주 찾아오지 못해 항상 죄송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 마음은 항상 이곳에 두고 있지만 좀처럼 시간을 내기 힘들었던 모든 사람들이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황새울에 모여 서로 힘을 모아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시와 노래와 그림과 사진과 음식과 대화와 촛불과 직접행동으로 우리는 이 생명과 평화의 땅을 반드시 지켜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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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6 21:33 2007/01/0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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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cked from 2007/01/09 14:45 DELETE

    Subject: 1월 27일 토요일입니다

    돕헤드님의 [대추리에서 음식나눔 잔치를] 에 관련된 글. 그날은 서울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날이었다. 1월 4일쯤이었겠다. 그 전날에도, 그 전전날에도 뭔가를 해야하지만 뭘해야할지 알
  2. Tracked from 2007/01/19 15:26 DELETE

    Subject: 황새울 나들이

    평택 지킴이들의 인터넷 꼬뮨 '평화를 택했다'에서 옮겨왔습니다. 1월 27일, 평택 대추리에서 열리는 음식 나눔 잔치에 함께할 것을 제안합니다! 황새울 쌀로 빚은 떡국도 함께 먹고, 침낭...
  1. 아침 2007/01/06 21:56 Modify/Delete Reply

    간다. 희망을 만들러...

  2. 로리 2007/01/06 22:54 Modify/Delete Reply

    와 좋은 생각이다. 무엇을 해야할지 늘 고민하는 돕은 참 좋아 ^^

  3. 까마종이 2007/01/07 14:00 Modify/Delete Reply

    와 'ㅁ' 좋아요 저두 가고 싶어요~

  4. 나루 2007/01/07 14:33 Modify/Delete Reply

    그날 만나요, 다시 갈 수 있게 되어서 기뻐요

  5. 당신의 고양이 2007/01/09 15:30 Modify/Delete Reply

    헤- 좋은 생각- 갈 수 있기를>.<

  6. navi 2007/01/09 21:38 Modify/Delete Reply

    당고/ 그 날 오면 저도 볼 수 있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삼.ㅋㅋ

  7. 달군 2007/01/09 21:43 Modify/Delete Reply

    ㅋㅋㅋ 완전 멋있어요.나도 가야지!!

  8. 루냐 2007/01/10 09:30 Modify/Delete Reply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D

  9. pace 2007/01/10 10:12 Modify/Delete Reply

    그때 나도 시간 낼수 있음 좋겠네(괜히 바쁜척..) 이거 퍼가도 되는 거지...(이미 퍼 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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