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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석이 감옥에서 보낸 편지

어젯밤 무서운 꿈을 꾸었습니다. 책을 읽어도, 장기를 두어도 멍하니 있어도 그 무서움이 달아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서움을 떨쳐내기 위해 이렇게 누구에게 쓸지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편지를 씁니다. 아마 이 편지가 마무리 될 때 쯤이면 누군가 편지를 받아줄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겠죠. 이 곳의 밤은 밝고 아주 깁니다. 저녁 8시 30분만 되면 불을 끄기 때문에 책을 보거나 편지를 쓰기에는 눈이 아픕니다. 하지만 복도에 켜진 불 때문에 이 곳은 암흑이 없습니다. 애매한 조도가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듭니다. 때문에 항상 잠을 자다가 네 다섯번은 깨어납니다. 잠에서 깨도 애매한 불빛이 달빛과 별빛 햇볕을 가로막기 때문에 시간을 짐작할 수 없습니다. 뒤척이기를 반복하는 밤의 길이를 싹뚝 자르며 꿈이 나를 찾아옵니다. 꿈 속에서 보고싶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신기하게도 그네들은 매일같이 다른 얼굴들이 나를 방문합니다. 하루는 암마와 동생과 송이가, 또 하루는 창언이와 선미와 영은이가 다음 날은 신혜와 은애와 돕, 박진이.... 또 오늘 밤에는 누가 나를 찾아올까 마구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그제와 어제 안좋은 꿈을 꾸었습니다. 내 친구들에게 안좋은 일이 일어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평소같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넘길 수도 있지만 친구들의 소식을 접하기 힘든 이 곳에서는 불안한 마음이 못내 떨어져 나가지 않습니다. 아... 게다가 주말입니다. 주말에는 더더욱 이 불안함이 늘어납니다. 운동도 되지 않고(토요일에만 평일의 절반인 15분 운동시간이 주어집니다.) 면회도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답답하고 더욱 불안합니다. 게다가 주말에는 TV가 시끄러운 기계음을 하루종일 쏟아냅니다. 독서나 편지쓰기 혹은 즐거운 상상을 하는데 큰 방해를 합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하던데 빨리 이 무서운 주말이 지나고 다시 평일이 되어서 내 친구들이 여전히 행복하고 아무일 없다는 소식을 듣고싶습니다. 앞으로 남은 이 곳에서의 생활은 아마 이런 류의 불안감들과의 싸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마음고생하는 내 가족들에게, 나를 아껴주고 나를 잘 아는 내 친구들에게, 항상 가난하고 더불어 행복한 활동가 친구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독일에서 돌아오는 친구들이, 대추리에 들어가 살고 있는 친구들이 모두 아무일도 없이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나를 맞이해주면 좋겠습니다. 또한 대추리, 도두리 황새울 들녘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추리 평화공원 소녀상 너머 붉은 노을이 여전히 아름답길 바랍니다. 그 곳이 여전히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사랑이,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땅으로 남아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종류든 불안감이 현실이 될 때, 이 곳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느끼는 무기력감은 불안감보다 더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아무 일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1년 6개월 후 모두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재회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어젯밤 내 꿈속에서의 친구들에게 나의 마음이, 나의 사랑이 전해져서 그들에게 꿈에서처럼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06년 8월 26일 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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