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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용석]채식이야기 첫 번째, 감옥에서 채식하기

현재 병역거부로 수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용석이가 보내 온 편지입니다.

채식가인 용석이에게 진보넷에서 토론 되었던 채식관련한 논쟁을 몽땅 출력해서 보내주었었지요(한데 모아준 달군에게 감솨. ^^*) 두 번째 편지도 와 있는데 곧 마저 타이핑해서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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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감생활의 식단


수감되기 전 오리가 나에게 수감되면 채식식단을 요구하며 단식을 하라고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를 했었다. 그 당시는 이 곳(수감시설)의 식단이 어떻게 짜여져 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나의 채식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었다. 수용자들에게 고개반찬을 푸짐하게 제공하지는 않을 듯 했고, 까짓것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꽁보리밥에 김치만 먹고도 고된 육체노동들을 했는데, 굶거나 영양실조에 걸릴 일은 없겠지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채식은 수감생활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 힘든 취장의 김장철(교도소에서 하는 일 중 가장 힘든 육체노동일 듯)도 견뎌냈으니…


그래도 이곳의 식단이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터이니 좀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하루 세끼, 한 끼는 밥(쌀:보리=4:1)과 국 한 그릇 두 개의 반찬(그 중 하나는 김치 류)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007년부터는 하루에 한 끼씩은 반찬이 세 개가 나온다. 식단은 일주일 단위로 반복된다. 일주일 동안 21번의 국 배식 중 내가 먹지 못하는 고기국은 4번밖에 안 된다. 또한 고기가 포함된 반찬도 일주일에 5번이니 하루에 한 가지도 안 되는 셈이다. 간혹 운이 나빠 고기국과 고기반찬이 겹치더라도 기본적으로 김치가 있다. 게다가 김, 멸치볶음, 무말랭이, 마늘장아찌 등을 구매해 먹을 수 있으며, 반찬이 남으면 다음 끼니에 먹게 되니 채식을 하는 것에 큰 어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여기서 나오는 고기반찬들은 전혀 먹음직스럽지 않기 때문에 먹고 싶다는 일말의 욕구도 생기지 않는다(물론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 고기를 먹다.


채식을 시작한 지 3년차, 사실 그 동안 몇 차례 고기를 먹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었고 스스로 고기를 먹기도 했다. 총 4번 정도 ㅋㅋ 수감생활 7개월째, 이곳에서도 고기를 두 차례 먹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의 경험들은 이전에 생각지 못한 것들을,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게 해 주었다.


취장(밥 짓는 곳)에서 일할 때였다. 취장은 육체적으로 힘든 곳이기 때문에,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곳이기 때문에 먹는 거 하나는 풍족하고 음식의 종류와 질도 뛰어나다. 다른 곳에서는 고추장, 간장, 참기름이 유일한 양념이지만 취장은 설탕, 고춧가루, 식초, 미원 등 각종 조미료와 마늘, 파, 양파 등 양념이 구하기 쉽다. 힘든 취장일 때문에 취장의 수용자들이 배식표에 없는 특식을 해먹는다고 해도 어느 정도 용인이 된다. 특히 김장철은 일이 더욱 고되기 때문에 소 측에서 고기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취장은 몸이 힘든 만큼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다. 서로 고기를 많이 먹으려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내가 취장에 있을 때도 여러 가지 특식을 먹었다. 다른 곳에서는 못 먹는 김치전, 김치볶음, 김치찌개, 돼지보쌈, 탕수육, 간짜장, 깐풍기 등등… 다른 사람들은 취장일 하려면 고기 먹어야 한다며 권했지만, 난 그저 웃으며 먹지 않았다. 몸이 힘들긴 했지만 일이 힘들어서이지 채식 때문이라고 생각지 않았고, 채식에 대한 편견(힘을 못 쓴다는)을 깨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이지 다른 것은 몰라도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 탕수육과 김장김치에 보쌈은 너무 먹고 싶었다. 그리고 운 좋게 창고에 혼자 남겨졌을 때, 아무도 모르게 낼름 집어 삼켰다. 먹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해 고기를 먹은 것은 처음이었다. 냉동 창고에서 차갑게 식은 고기는 그러나 맛있었고 다행스럽게도 한 번의 일탈로 끝이 났다.


재판소환장을 받고 수원으로 이감오기 전 3일 정도 출력이 취소된 채, 미징역방(일하지 않고 있는 방)에 머물렀다. 그 방은 지금껏 내가 겪어본 그 어떤 방보다도 최악이었다. 건달 한 명이 왕처럼 군림하며 다른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었고, 사람들은 서로 간에 어떤 긍정적인 관계도 보여주지 않는, 지옥 같은 방이었다. 재판 대문에 마음이 뒤숭숭하기도 하고 방 분위기도 그 모양이라서 난 굳이 채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왜 고기를 안 먹는지 만나는 사람마다 석명하는 일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그냥 안 먹으면 되겠지, 어차피 금방 떠날 방인데…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계속 고기를 권했고 거절하기도 귀찮고 설명하기도 귀찮은 난 그냥 먹었다. 방 분위기로 미루어 나의 채식이 이해되지 않을 거라 짐작했었기 때문이다. 몰론 강력히 거부했으면 안 먹을 수 있었겠지만 난 먹기 싫은 걸 억지로 먹은 느낌이었다. 뭐랄까 동물의 시체를 먹는다는 생각이 들고 속은 메스꺼웠다.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입맛이 뚝 떨어졌다. 불과 며칠 전 취장에서 스스로 집어먹은 고기는 맛있었는데 억지로 먹게 된 고기는 몸과 마음에서 거부하는 것이 너무도 확연했다. 머리로 이해하는 채식이 아닌, 몸에서 채식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 아무튼 이 두 가지의 상반된 경험은 꽤 흥미로웠고 습관처럼 정체되어버린 나의 채식에 대해 돌아보는 시작이 되었다.


☮ 채식의 의미 찾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감옥에서 채식하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하는 것이었다. 채식은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상징적이며 또한 실질적인 실천이다.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가치실현이라는 면에서 실질적인 실천이고, 직접 행함으로써 주변사람들의 공감과 동참을 유도한다는 면에서 상징적이다(물론 전적으로 나의 생각이며 백 명에게는 백 가지의 다른 의미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감옥이라는 특수한 공간은 채식의 두 가지 의미 모두를 감소시키거나 무의미하게 만든다. 내가 접촉하는 사회가 제한됨에 따라 상징성은 급속히 감소하고, 실천의 의미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 내가 세상과 맺어가는 방식으로서의 채식의 실천성이 ‘나’라는 주체적인 개체가 사라지는 감옥에서는 발휘되지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 하나의 행동이, 혹은 나의 저항이 거대한 구조(감옥) 속에 파묻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된다. 내가 집에서 고기를 안 먹으면 하다못해 단 200g이라도 고기소비량이 세계적으로 줄어들겠지만 여기선 나에게 아무런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고기소비량에는 변동이 없고 쓰레기량이 200g 늘게 되는 것이다. 오리의 말대로 채식식단을 강력하게 요구하거나 같은 방 사람들에게 채식의 필요성을 역설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까? 하지만 목소리 높여가며 논쟁하면서까지 피곤하게 채식을 하고 싶지는 않고(병역거부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피곤하다. 그리고 내 경험상 채식은 병역거부보다 인정받기 더 힘든 주제다) 앞에 제시한 식단대로 고기를 안 먹으며 살기에 큰 무리가 없기에 채식식단(채식주의자를 위한 별도의 식단)을 주장하기엔 약간 내 쪽의 근거가 빈약하게 느껴진다. 감옥에서 나의 채식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채식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우선 고기를 먹어야할 어떠한 이유도 느끼지 못하겠다. 전혀 눈길을 끌지 못하고 침샘을 자극하지 못하는 이곳의 고기요리(?)때문이기도 하고, 건강에 있어서도 아무런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고기 먹는 것이 당연한 채로 살다가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고기를 끊었었지만, 지금 나에게는 고기를 안 먹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고기를 먹기 위해선 특별한 이유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혀끝에서 침이 고이는, 너무 먹고 싶은 욕구도 특별한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속단할 수는 없지만, 좀처럼 그 같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수감생활 중 두 번의 육식의 경험에서 시작된 나의 채식에 대한 공부와 고민들이 새로운 즐거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채식에 대한 이해가 싶어지면서 새롭게 인식하는 채식의 의미, 그리고 그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할 여러 가지 실천적인 방법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나를 즐겁게 한다. 이곳에서의 채식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은 여전하지만 채식에 대한 즐거운 상상이 (출소하고 나서 펼쳐갈 미래에 대한) 지금의 채식에까지 영향을 기치고 있는 것이다.


☮ 첫 번째 이야기를 끝내며.


평화를 알고 나서 병역거부를 한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를 시작으로 평화를 만나고 알아가게 된 것처럼, 무언가를 알기 때문에 채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채식을 하면서 새로운 세상과 만나고 새로운 미래를 만나게 된다. 채식은 고민 끝에 도달하는 결과가 아니라 고민을 확장해가는 시작이자 영속적인 과정이고 그 자체로 완결적인 목표이다. 채식의 의미를 삼켜버리는 감옥에서 채식에 대한, 채식으로부터 시작된 고민이 심화되는 것이 참 역설적이다. 감옥에 감사해야하는 걸까? 미안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 첫 번째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조만간 채식에 대한 신나는 이야기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어쩌면 가물가물한 이야기, 그래서 내 이야기가 가물가물한 몸의 기억, 태고 적부터 우리의 영혼과 육신에 새겨진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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