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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신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노동자가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기질에 적합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즉, 언어는 단순하고 쉽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문장은 길게 늘어놓지 말아야 한다.

의미를 파악하기 위하여 문자하나 하나를 해독하듯이 읽기 힘들게 인쇄된 지면은 독자에 대한 부당한 요구이다. 그밖에도 노동자들에게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하여 수수께끼 풀듯이 할 시간이 별로 없다.



공장신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 번역: 최상진(노동운동가)

  

표제 면을 명함으로 만들자.

표제면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표제면은 눈에 와서 꽂혀야 하고 빨아들이는 효과를 가져야 하고, 즉시 동료들과의 접촉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표제면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큰 신중을 기해야 한다. 표제면은 2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 즉, 신문의 머리와 논설이 다. 목차의 당면한 문제가 제 일면을 차지한다. 전면으로 나오는 내용은 예를 들면 임금협상, 경제적 상황, 파업, 노동절, 특별한 정치적 사건 등이다. 논설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써야 하고 객관적으로 묘사되어야 하며 가능한 한 논설과 걸맞은 만화를 갖추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논설내용을 짧고 적절하게 표시해주는 머리기사의 제목 이다. 표제면에는 논설과 만화에 대한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다음 면으로 논설이 계속될 수 있다.

신문머리는 어떤 특정한 것을 표현해야 한다. 예를 들면 2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충전불꽃’(Akku-Funke) 같은 것이다 : 즉, 충전기의 생산과 번개처럼 꽂히는 불꽃이다; 혹은, 한편으로는 쇠사슬을 생산하는 것을 암시해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업원이 하나의 쇠사슬처럼 단단히 결속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쇠사슬 고리’ 등이다. ― 함께하면 우리는 강하다. 많은 신문머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기업가들을 조롱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공장에 관련된 언어와 문화

공장신문이 내용과 형식에서 영향을 미치려면 다음의 두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

1. 노동자가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기질에 적합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즉, 언어는 단순하고 쉽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문장은 길게 늘어놓지 말아야 한다. 공장신문은 공장과 관련된 어조 즉, 공장지도부에 대하여 가볍게 풍자적인 어조를 담아야 하고, 또 이것을 사건의 객관적인 묘사와 결합시켜야 한다. 이러한 어조는 정곡을 찌르게 되며, 노동자들과 사무직원들 모두에게 호응을 얻게 되어서 동료들에 대한 영향력을 놓치지 않게 된다. 그러나 공장지도부에 대한 영향도 빗나가지 않는다.

이렇게 가볍게 조롱적인 어조는 공장지도부를 노하게 만들어서 이들로 하여금 분별없는 말과 행동을 하도록 자극한다. 이런 언행은 다음호의 신문에서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것이 또다시 공장지도부를 격분시키게 된다.

2. 공장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표현하거나 풍자하는 적절한 만화를 통하여 공장과 관련된 언어의 효과는 더욱 증가할 수 있다. 가볍게 풍자적인 어조는 노동자들에 대하여 자신들이 무척 우월하다고 느끼고 실제로는 노동자들을 경멸하는 공장지도부의 자만심에 상처를 입힌다. 공장지도부는 이제 자신들이 왕좌에서 끌려 내려지게 되었다고 느끼며, 이때 노동자들은 이 신사님들이 결코 특별한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된다.

이외에도 기업가와 기업가의 충복들을 비꼬아서 이들을 전체 종업원 앞에서 조롱거리로 만드는 공장과 관련된 만화가 또 있다. 이들 기업가 등은 이 만화로 인하여 노동자들의 눈에는 ‘작은 소시지’(가련한 인간을 빗대어서 하는 말 -역자 주)로 되어 버린다. - 그리고 공장지도부의 권위가 주는 광휘는 햇볕 속의 버터처럼 녹아버린다. 두 가지 즉, 공장과 관련된 언어와 공장과 관련된 만화가 함께, 공장신문을 폭탄이 공장에 떨어지는 것과 같이 만드는 폭약과 같은 영향을 미친다.

공장지도부에 대하여 풍자와 조소를 가지고

충전기를 생산하는 공장의 공장신문 ‘충전불꽃’의 간기(신문발행자, 발행 시기, 주소 등 -역자 주)는 아우구스트 뉘메스(August Nuemmes : 우리말과 달리 독일은 뒷부분이 성이고 앞이 이름 -역자 주)로 되어 있다. 뉘메스란 단어는 하겐(Hagen : 독일 북서지방의 도시 -역자 주)의 방언이고 무명씨란 뜻이다.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서 외눈의 거인이 오딧세이를 무명씨라고 생각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충전기 제조기업과 외눈거인의 비유와 회사간부들의 태도는 신문편집부의 입장에서는 아주 매력적이었고, 호머의 시와 현대의 외눈거인은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공장장은 매우 격분한 나머지 공장벽에 설치된 신문함을 치우게 하고 공산주의 신문을 안데르센 동화와 비유하였다. 이런 그의 행동과 발언은 즉시 풍자화 되어서 그를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이미 레닌도 공장폭로의 중요성을 지적한 바 있다. 공장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은 공장신문의 한 지속적인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만약 한 공장신문의 효과가 의도한 대로 들어맞으면 그때는 공장지도부 쪽의 추적이 뒤따르게 된다. 이때에 종종 경찰이 관여한다. 그러므로 신문의 간기는 아무도 위험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러므로 간기의 담당자가 가끔 뉘메스 같은 전설적인 인물로 되는 것이다.

분위기를 완화시키기 위한 큰 표제와 제목

본문을 완화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은 이미 만화에 의해서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가 않다. 또 모든 면에 만화를 사용할 수도 없다. 본문은 가능하면 2단으로 쓰는 것이 좋다. 더 쉽게 읽히기 때문이다. 만약 기분전환을 위해 전면으로 써야 할 경우라면, 반드시 중간에 큰 표제를 끼워 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지면은 생명이 없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큰 표제는 다양한 크기와 인쇄활자의 모양을 여러 가지로 변화시키면서 쓰는 것이 좋다. 만화가 없는 2단지면도 큰 표제를 가운데 넣어주는 것이 좋다. 또한 일부는 전면으로, 다른 부분은 2단으로 본문을 배열할 수 있다.

또 다른 기분완화를 위하여 네모모양의 난 -수직 혹은 수평으로 배치된- 을 끼워 넣을 수도 있다. 우리는 항상 다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공장신문의 모든 면은 살아 있어야 한다. 모든 면, 기사는 읽혀지게끔 자극해야 한다. 만약 읽히지 않는다면 내용적으로 아무리 잘 쓴 기사라도 아무런 가치가 없다.

우리는 제목에 큰 가치를 두어야 한다. 제목은 기사의 본질적인 것을 표현해야 한다. 제목은 눈에 띄어야 하고 단조로운 느낌을 주지 않아야 한다. 인쇄활자는 크기와 모양을 여러 가지로 변화시켜야 한다. 항상 어떤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야 한다. 만화와 마찬가지로 제목도 눈에 와서 꽂혀야 한다.

너무 꼭 진지할 것이 아니라 유머, 위트와 풍자를 사용하자!


우리는 공장신문에서도 모든 것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유머와 위트(음담패설이 아닌)는 공장신문의 분위기를 완화시켜줄 뿐만 아니라, 좋은 위트는 동료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그를 더 진지한 문제들에게도 더 가까이 다가가게끔 만들어 준다. 이때 위트는 두 노동자간의 대화의 모양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인물들은 때때로 다시 등장할 수 있고, 위트의 내용만 새롭게 바뀌면 된다. 최고의 위트는 동료의 낄낄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이 낄낄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 꼭 위트일 필요는 없다. 동료에 대한 우애적인 비판도 그런 웃음을 자아낼 수 있다. 예를 들면, 동료 아무개는 이전에 한번 KPDL(1956년에 금지된 구독일 공산당 -역자 주)의 당원이었는데 허풍쟁이로 유명했다. 동료들은 이 비판에 대하여 즐거워하였고, 낄낄웃음이 이 동료에서 저 동료로 퍼져나갔다.

날카로운 무기로써의 만화

우리는 이미 공장 내의 폭로와 관련해서 무기로써의 만화의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공장과 관련된 만화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경제, 정치투쟁의 만화도 똑같이 중요하다. 이때 이 두 가지 투쟁이 만화에 의해서 서로 결합될 수 있다. 만화는 문자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기사의 효과를 높이고 기사의 의미를 강조하며, 세세한 점들을 더 잘 부각시키고 기사의 내용을 더 이해하기 쉽게 해 준다.

정곡을 찌르는 적절한 만화가 효과적인 반면, 서투른 만화는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공장과 관련된 만화가 실제 기계가 아닌 어떤 환상의 모양을 묘사한다면, 그것은 노동자들의 웃음꺼리밖에 안된다. 무기로써 그림이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는가는 적어도 알 수 있어야 한다.

만화는 (문자와 마찬가지로) 기술적으로도 산뜻하게 제작해야 한다. 윤곽이 불분명하고 인쇄가 희미하게 되면, 만화의 원래 의도를 알리려는 소기의 목적이 달성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경우에 독자의 관심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만화는 직통으로 눈앞으로 튀어 올라야 하고, 한 눈으로 보아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만화가 기사를 읽게끔 자극할 수 있다. 만화는 생동감이 있어야 한다. 등장인물의 시선과 몸짓은 만화의 내용을 더 강조시켜야 한다. 이것은 꼭 인물의 전체묘사로 나타낼 필요는 없다. -손의 움직임이라든가 발동작으로도 생동감을 표현할 수 있다.-

만화를 통해서 우리는 경제, 정치투쟁의 결합도 나타낼 수 있다. 만화를 통해서 적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노동자들의 투쟁의지를 강화시킬 수도 있다. 간략하게 말하면, 만화는 우리 선동의 결정적인 보조수단이며 계급투쟁의 무기이다. 그러나 이 무기는 날카로워야 한다. 즉 효과적이어야 한다. 이것은 특히 공장신문을 제작할 때 타당하다.

공장신문이라고 해서 모두 관심을 끄는 것은 아니다. 내용과 형식에서 지루한 공장신문은 종업원들의 마음에 불을 붙이지 못하고 기업가나 간부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즉 공장신문이 동료들에게 미치는 효과가 문제이다. 그러므로 신문을 내기 위하여 신문을 발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내용이 지루하고 언어가 활기가 없으며 겉모양이 생명력이 없으면, 그 신문은 효과 없고 무의미하며 돈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종종 피해를 끼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적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맞추는 부메랑이 된다. 공장신문은 적 즉, 자본가와 그들의 충견들을 맞혀야 한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일상투쟁시의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이는 신문이 아주 우아하게 인쇄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정반대이다. 그렇게 우아하게 인쇄된 신문은 불신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이 신문은 ‘밖에서’ 온 것이고, 어떤 지식인들이나 ‘언론인’들에 의하여 제작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단순하면서도 다채롭게 꾸며진 신문을 노동자들이 직접 쓰고 인쇄한 것으로 간주한다. ; 즉, 그들은 그런 신문을 ‘자신들의’ 신문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또 그렇다고 해서 신문지면을 산뜻하게 인쇄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의미를 파악하기 위하여 문자하나 하나를 해독하듯이 읽기 힘들게 인쇄된 지면은 독자에 대한 부당한 요구이다. 그밖에도 노동자들에게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하여 수수께끼 풀듯이 할 시간이 별로 없다.

출처 : ‘새로운 길’ 출판사, 1990년, 독일
저자 : 빌리 디크후트(Willi Dickhut)
책명 : 그 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부제 :1949년 이후의 한 솔링언(Solingen, 독일북서부지방의 한 도시 -역자 주)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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