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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서양음악사 종강 기념으로 영화를 상영한다기에 보러 갔다. "우리 학교"라는 영화였다. 대전에도 상영하는 극장이 있고 심지어는 학교에서도 상영회가 있었지만, 보러 가고 싶을 때 하필이면 숙제가 쏟아지는 바람에 미처 보지 못했다.


영화의 배경은 홋카이도에 있는 조선학교이다. 남, 북, 일본의 경계에 있는 독특한 학교이다. 그들의 말을 통해 그들의 복잡한 위치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우리 말과 일본 말을 섞어 쓰며, 말투는 북한이지만 남한의 국어 시험도 공부한다. 학교에서는 세 나라의 노래 모두가 흘러나온다.

이 영화는 조선학교의 생활을 조용히 보여준다. 조선학교를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학생과 학생, 학생과 스승 사이가 가족처럼 끈끈하다는 것이다. 많지 않은 학생들이 초등부부터 고등부까지 12년을 함께 생활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본에서 사는 조선 사람이라는 유대감도 한몫 하는 것 같다.

그들은 조선학교가 조선인 사회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생활 뒤에는 조선 사람답게 생활하면서 1세, 2세 분들의 은혜에 보답하고 민족을 빛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 학생들은 우리 옷을 입고 우리 말을 하면서 생활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일본라는 사회에서 소수자로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실제로 일본에서 학생들은 치마저고리를 아무 때나 입고 다닐 수 없었고, 북한에 갔을 때 그들은 우리 옷을 입고 우리 말을 마음껏 해도 누구도 무엇이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감동을 받는다.

우리 학교도 완벽한 학교는 아니다. 여학생만 치마저고리를 입고, 교육 내용은 북한에 치우쳐 있다. 졸업식 장면을 보면서 이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 일본 사회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민족 교육이 과연 그들의 행복에 도움이 될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을 직접 보면서 그들이 왜 그러한 선택을 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조선학교 아이들의 판문점 방문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 미군들과 같이 판문점에 가서 북쪽 땅을 보고, 휴전선 위에 있는 건물에도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그 때 북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반대편에서 그들이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영화에서 좋았던 것은 정치적인 면을 최대한 떠나서 그들의 생활이 어떠한지, 일본에서 조선 사람으로서 사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정치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영화의 한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들의 생활에 집중한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본다. 관객이 더 다양한 시각으로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 학원을 다닐 때 수업 첫 시간에 강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I'm not an alien!" 많은 학생들이 외국인과 대화한 경험이 없어서 말을 꺼낼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외국인을 각종 자료를 통해 접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우리와 정말로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즐겁게 이야기 할 수 있었지만, 처음에는 그랬다.

북한이나 총련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많은 자료들은 북한 사람들이나 조총련 사람들에 대해 그들과 우리의 차이를 중심으로 요약된 정보만을 제공한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이고, 비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결론을 끌어내기 쉽다.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면 그들은 우리보다 가치 없는 사람이고 없어져도 괜찮다는 폭력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영화 속에 나오는 일본 우익들의 생각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학교"와 같이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접하는 것은 가치 있는 경험이 된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와 "다른" 것도 많고, 그들이 "틀린" 것도 있겠지만 그들도 나름대로의 세계 안에서 합리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지루함을 느낄수 없었다. 그들의 앞날이 밝기를, 그리고 어서 빨리 통일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조은아 교수님과 여러 번에 걸쳐 영화 상영에 힘써 주신 시네마테크 대전 관계자분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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