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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한국이 고향인 외국인 노동자

[한국일보 2005-03-20 17:18]    


지난 설날 네팔 노동자들을 위해 네팔의 유명한 가수와 탤런트들이 한국으로 위문공연을 왔다. 그들 중 한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떠들썩하던 공연장은 어느새 조용해지면서 이내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가사 내용은 실제 한 네팔인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부푼 꿈을 안고 온 한국에서 사고로 손가락이 잘리고, 다시 돌아간 고향에서 반겨줄 가족은 마오이스트로 몰려 사라져 버리고, 젊은 시절을 보낸 한국이 태어나고 자란 네팔보다 더 고향 같이 느껴지는 생각에 가슴 아파하고, 젊은 시절을 나라를 위해 보냈더라면 하고 괴로워하는 내용이었다.

노래를 들으며 네팔 노동자들은 돌아가고 싶어도,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좋지 않은 모국의 상황 때문에 돌아갈 수 없는 처지를 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 게다가 수많은 네팔 노동자들은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돌아간다해도 한국을 그리워하며 태어난 고향을 오히려 낯설게 여긴다.

실제로 한 친구는 고등학교를 마친 열 여섯 나이에 한국에 와 15년간 공장에서 일했다. 그 친구에게 15년 동안 일한 공장의 사장님과 사모님은 친부모 보다 더 부모 같은 존재였다.

그분들 또한 그를 친아들처럼 대해 주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한국에서 보낸 그 친구는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갔지만 한국이 너무나도 그리워 고생해 모은 돈을 들여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창 일을 하고 많은 생각을 하는 젊은 시절의 10년, 20년은 한 사람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는 시간이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낸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식 생활과 사고에 젖을 수밖에 없다.

많은 한국인들은 “그만큼 오래 일해서 그만큼 돈 벌었으면 이제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라고 너무나도 쉽게 물어보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을 떠난다는 것은 정든 고향을 떠나는 것과 같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생활하고 돌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래서 가족을 만난다는 기쁨도 크지만 막상 돌아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막막함이 큰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아무런 준비 없이 불법체류자로 잡혀 추방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자신을 자식처럼 생각해준 사람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떠날 일과, 제대로 계획하지 못한 앞으로의 캄캄한 삶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두려움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한국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법적 조치를 취할 때 이러한 처지가 조금이라도 반영되기를 바란다.



검비르 만 쉬레스터(네팔인ㆍ동국대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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