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쏭끌란, 물의 축제와 게으름뱅이들의 춤.

 
 
 
 

하루 종일 게으름뱅이처럼 굴었다. 오후에 점심을 사러 갈 때, 동네 뒷길을 걸을 때는 마음이 편안했다. 늦은 오후의 햇빛아래 우렁우렁 자라나는 나무들, 진한 빛깔의 튼튼한 여름 꽃들. 늘어져 자는 게으른 개와 마당을 가득 메우며 자라나는 선인장들. 잎사귀가 두껍고 가시가 뾰족한 식물들이 나무집 앞 마당이 꽉 차게 자라난다. 비닐 봉다리에 식은 밥 한 덩어리를 사가지고 돌아오며, 고요한 오후가 사랑스러워 마음이 가득 기뻤다.   

 여름 저녁, 해질 무렵처럼 아름다운 때가 있을까. 하늘이 자꾸 낮아지고, 마지막 햇빛은 열기 없이 빛깔만 가득해. 크고 높은 나무들 사이로 꼬리가 넓은 새가 하루의 마지막 날개짓을 하고, 빨간 꽃 너머로 음영이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해 넘어 가는 순간, 아름다운 때는 어찌나 금새 지나가는지, 어느새 하늘 빛이 남빛으로 변했다. 저녁, 빈 골목에 금새 어둠이 차고 나는 두려울 것도 없이 그리운 이들도 지금은 없이, 나 혼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느껴져 고요했다. 멀리 두고 온 당신이, 내 마음의 어둠이, 저녁, 이제 막 내린 어둠에 묻혀 지금은 구별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골목을 걷는 동안 나는 편안했다.  

사방이 온통 조용한 줄만 알았는데, 대로변에서는 젊은 남자아이들이 물을 뿌리고, 춤을 추고 있었다. 어둠이 가만히 내리는 여름 저녁에 웃통을 벗어제낀 젊은 총각들이 추는 춤이 즐거워만 보였다. 지나가는 버스에 호스로 물을 뿌리며, 사내애들이 춤을 춘다. 한 바가지의 물 맞아 주어도 될껄, 한 걸음 비켜나 한 손에 든 저녁 거리를 보여주자 웃자란 소년이 예의 바르게 비켜주었다. 거리가 온통 축축히 젖고, 툭툭 의자마다 희뿌연 횟가루투성이다. 물의 날, 축제의 밤. 모두가 즐거운 때, 나는 발꿈치에 날개가 달린 것마냥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멀리 있는 이들, 안녕,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나를 나는 오늘 그냥 봐주기로 했다.  

 

* 쏭끌란은 태국 새해 명절이랍니다.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다들 휴가에요. 축복의 의미로 사람들에게 물을 뿌리고, 얼굴에 회칠을 한답니다. 이 기간 동안 밖에 나가면 길에서 다들 서로 물을 뿌려요. 쏭끌란 축제가 제일 멋지다는 치앙마이에 다녀오려고 하였으나 급격한 체력 저하로 이 기간 동안 방콕에서 방콕하고 있을 예정입니다. 아앗,  초방 30 바이트, 최악의 인터넷 상황에서 영화를 다운 받으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크흐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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