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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생활을 상상하는 것

0. 한동안 쓰던 진보넷 블로그가 있었어요. 영국에 갓 건너가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시작했던 블로그엿어요. 여기에 포스팅을 하면 누군가는 읽어주고 피드백을 해주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어느 순간 그 블로그 방문자가 제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났고, 그때부터 저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 조심스러워지더라구요. 이 글을 누가 읽을 것인가 하는 생각은 분명 제가 쓰는 글의 투와 내용을 정하는데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1. 지난 금요일엔 영등포구치소에 가서 백승덕씨를 보고 왔어요. 영등포구치소엔 무척이나 오랜만에 다시 가본 것 같아요. 그런데 여전히 변한게 하나도 없더군요. 아마 바로 옆에 있는 영등포 교도소와 함께 올 봄에 이사를 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나중에 제가 수감되면 찾아올 사람들을 생각하며 구치소 민원실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죠. 

 

승덕씨가 수감될 무렵인 재작년 가을에 정말 우연히 신촌 거리에서 마주친적이 두어번 있었던 것 같아요. 각자 다른 술자리에서 놀고 있다가 늦은 밤거리에서 마주친 것이죠. 그렇게 본 것이 마지막이었던 분과 1년 여의 시간이 흐른뒤 유리창 너머로 마주하니 기분이 새롭더군요.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는데 10분 약간 넘는 접견 시간이 어느새 끝나버렸어요.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이 감옥 밖에 있는 저를 오히려 위로하는 상황이었어요. 출소날 꼭 마중을 나가야겠어요. 승덕씨는 지난달 1급수를 달았고, 이번달 말에 가석방으로 출소할 예정입니다. 

 

1급수를 달면 매일 한번씩 접견이 가능해지고, 아마 전화통화나 접견시간에서도 혜택이 있는 것 같아요. 국가가 모범수라고 인정을 해주는 것이죠. 학창시절 교사들에게 인정받아 생존하는 법을 체득했던 저는 수용시설에서 과연 어떤 방식으로 공무원들과 관계를 맺게 될지 제 스스로도 자뭇 궁금해지네요. 자발적으로 체제에 순응했던 모범생이 이젠 국가에 대한 반동분자가 되어 국가가 먹여주는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네요. 다행인 점이 있다면 지금의 저는 이제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면서 눈 앞의 상대를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배웠고 계속 연마 중이라는 것입니다. 

 

2. 어제 광화문 교보에서 이 책 저 책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어요. 어제는 사전 코너에서 영어 사전과 국어 사전을 들여다보면서 감옥 안에 어떤 사전을 들고 갈까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밖에 있을 땐 인터넷으로 바로 찾으면 되지만, 안에서 사전이 없으면 좀 답답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전을 고르다보니, 안에서 무슨 공부를 하다가 나올까 생각이 이어지더라구요. 영어공부와 일어공부는 좀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시 소설도 많이 보고, 그동안 사놓고 못 본 책들도 몰아서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구체적인 계획을 짜봐야겠단 생각까지 들었고, 문득 고3 수험생 시절로 돌아간 기분도 들더라구요. 수능 시험 본 이후로 뭔가 계획적으로 공부해본 적이 없었는데, 감옥에 가면 이렇게 계획을 짜는 것만으로도 징역의 시간들을 빨리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심지어 1년 6개월 시간이 이 공부를 다하기엔 짧은 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어요.

 

물론 징역이 징역이니만큼 개인시간 갖기도 힘들 것이고, 하루 노동이 끝난 뒤엔 티비소리와 방 사람들과의 관계, 친구들에게 편지쓰는 시간 등등 공부만 한다는 건 김치국부터 마시는 생각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래도 제 발로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 이 분열적인 상황에서 뭔가 목표의식을 갖는 것이 스스로를 위안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하는 것 같네요.

 

3. 승덕씨가 추천해 준 <관용>이란 책을 교보문고에서 샀습니다. 옮긴이 후기에 작년에 출소한 우공님 얘기도 나오더라구요. 기대가 많이 되네요.

 

*cafe.daum.net/co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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