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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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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르맹
  2. 2010/11/05
    2010/11/05
    나르맹
  3. 2009/12/01
    스위스 국민 투표(9)
    나르맹

일기

2011년 4월 입소. 2012년 6월 출소. 지금은 2013년, 그리고 다시 6월. 작년 봄, 파릇파릇 새싹들과 꽃망울을 보면서출소일이 다가옴에 설레었던 기분이 올해 봄 내내 떠올랐다. 어느새 그 봄이 지나 강렬한 햇살 내리쬐는 여름이 되었다.

그동안 차마 들춰보지 못했던 수감시절 기록들을 다시 꺼내 읽어보고픈 마음이 이제야 비로소 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약. 어떻게 살고 싶은지, 뭐 하며 살 것인지에 대한 질문들로 머릿 속은 더 복잡해졌지만, 여기서 한발 더 내딛어 보고 싶은 에너지가 조금씩 움틀거리는 걸 느낀다. 무더위에 늘어지기보단 뭔가 새로운 것을 더 시도해보고픈 호기심이 들었달까. 다시 출소 전 상태가 좋았을 때의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감도 든다.

 

새로운 블로그에서 시작하기보단, 이 공간에 지난 나의 기록들을 남겨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욕심이 있다면 6월이 다 지나가기 전에, 출소한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 이전에 이 정리 작업을 마쳐보는 것. 일상의 스트레스와 분노를 에너지 삼아, 조급한 마음 달래며 딱 한달 기운을 모은단 생각으로 꾸준히 그리고 부지런히 타이핑을 해보리라는 다짐.

 

내 바닥을 다시 봐야한다는 일말의 두려움보단 그 때 내가 치열하게 했던 고민과 문제의식들을 다시 꺼내보고픈 궁금함이 더 커졌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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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5

오늘 조은 면회에 이스라엘 기자를 동행해서 다녀왔다.

조은에게 물어보는 질문을 잽싸게 통역하는데,

영어로 정확히 뭐라고 했는진 기억 안 나지만,

"감옥에서 지내는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냐?"

는 요지의 질문이었다.

군대를 거부했지만, 감옥이라고 군사주의 문화가 덜 하진 않다.

나 한명 감옥에 간다고 해서 세상에서 크게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근데도 굳이 감옥을 가면서까지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지금의 내가 되었듯이,

내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작지만 울림을 전달할수 있고,

더 나아가 그게 더 큰 울림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감옥을 선택한 것은 내 저항의 목소리의 일환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조은의 대답이다. 

그나마 없는 10분 접견 시간을 까먹어서 조은에게 미안하기만 한데,

한편으로는 이 짧은 인터뷰를 계기로 요 며칠 힘든 기간을

견디고 자기가 감옥에 있는 이유를 환기하며 힘낼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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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국민 투표

어제 스위스에서 국민투표가 있었다고 하는데 사안들이 참 흥미롭다. 하나는 이슬람 사원 건물의 첨탑 건축을 금지하는 것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위스에서 생산하는 무기를 해외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것에 관한 내용이었다.

 

난 최근에 WRI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통해 무기수출금지 국민투표 얘기를 처음 알게 된 건데 기사를 좀 찾아보니 한국에선 연합뉴스에서만 이 국민투표 얘기를 간략하게나마 언급한 것 같다. (불어나 독어 검색을 못 하니) 영어기사들을 검색해보니 이번 국민투표 관련 기사들이 적잖이 보인다. '첨탑건축금지'라는 선정적이고도 상징적인 사안때문인 것 같다. 예전에 프랑스 학교 내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했을 때에도 논란이 컸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 '첨탑금지법안'에 스위스 사람들의 57%이상이 찬성했다는 사실에 프랑스 히잡 건보다 더 상징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맘이 많이 아프다.

 

국민투표의 다른 사안이었던 무기수출 금지법안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이 생긴다.

 

자국에서 생산된 무기를 해외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에 대한 국민투표는 사실 이번이 벌써 세번째였다. 1972년과 1997년 이렇게 두 번이 더 있었는데 모두 부결이 된 바 있다. 심지어 72년 국민투표 땐 49.7%가 금지법안을 찬성했다고 하니 그 당시 통과되지 못한 게 무지 아까웠을 것 같다. 97년엔 찬성비율이 22%정도로 떨어졌다는데 이 수치의 차이를 불러온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번 국민투표를 앞두고선 분위기가 상당히 괜찮았던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에선 10만명의 서명이 모여야 국민투표로 상정을 할 수가 있는데 이 무기수출 금지법안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해온 GSwA의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10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제주도지사 소환할 때는 4만 천몇명이 최소충족 요건이었다). 여론조사에서도 이 무기수출반대 법안에 41%가 지지 44%가 반대였다고 하니 한번 기대해볼만도 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68%가 법안통과에 반대의사를 표함으로써 결국 또 다시 부결이 되어버렸다.

 

법안은 비록 아쉽게 부결됐지만,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뒤에 한국으로 치면 재경부장관쯤 될 듯한 사람이 나와서 앞으로 스위스가 수출하는 모든 무기 거래에 대해서 아주 엄격한 관리를 하겠으며 분쟁지역으로는 절대 무기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고 하니 무기거래에 대한 한국과 스위스 사회 사이의 온도차가 실감된다. 한편 이 동네도 이 무기수출금지법안을 두고서 방산업체들은 일자리 감소를 들먹이며 줄곧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고 하는 걸 보면 역시나 자본가들의 논리는 어디든 비슷비슷한 것 같다.

 

이번 국민투표를 성사시키기 위해 주도적으로 활동한 그룹은 the Group for Switzerland without an Army (GSwA) 라는 그룹이다. 이 그룹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이 그룹은 자국의 군대를 폐지함으로써 스위스 사회를 좀 더 "문명화civilizing"시키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아 1982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좀 더 찾아보니 스위스에서 군대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민투표를 예전에 상정시켰던 바로 그 그룹이기도 하다. 89년에 있었던 군대폐지 투표에선 무려 35.2%의 사람들이 폐지를 지지했단다. 우와.

 

링크에 링크를 타고 좀 돌아다니다 보니 이런 글(abolishing the Draft in Switzerland)도 발견했다. 89년 있었던 군대 폐지 국민투표에 관한 짧은 글인데, 여성그룹이 GSwA에 함께 하게 된 배경을 분석한 부분이 흥미롭다. 80년대 중반 스위스에서 여성징병 논의가 불거지면서 많은 여성 그룹들이 군대 폐지 캠페인에 대거 합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워낙 그 동네에 관한 배경 지식이 없어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한국에선 일군의 여성그룹들이 오히려 '양성평등'을 위해 여성징병이 실시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 견고한 한국의 군사주의.

 

병역거부 자료를 찾을 때에도 스위스가 종종 회자될 때가 있었는데 이 참에 스위스 정치제도나 역사적 맥락 등 좀 더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이번 무기수출금지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었다는 플래시몹 영상이다. 영상 자체는 그닥 새로울 게 없어보이는데 마지막에 보이는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 "make cheese not war"가 참 귀엽다.

 

한국에서도 낼모레 12월 3일, 집속탄 금지 협약 채택을 기념하고 각 국의 서명을 촉구하는 국제공동행동의 날을 맞아 홍대쪽에서 데모가 있을 예정인데 앞으로 계속 무기거래 문제를 공론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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