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역사 노동자가 쓴다”

                                         

 노동자역사 ‘한내’ 출범


양규헌 대표 “민주노조운동과 정신을 되살리는 나침반 되겠다”

 

‘노동자역사 한내’가 첫 걸음을 떼었다.

발기인 155명과 준비위원 193명, 후원회원 등이 참여한 노동자역사 한내는 8월 23일, 서울 보라매공원 청소년수련관 다이나믹홀에서 창립행사를 진행했다. 오후4시에 시작된 창립대회에는 조합원 등 150여 명이 함께했다.
양규헌 대표는 대회사에서 “한내는 퇴색해가는 민주노조운동과 그 정신을 복원시켜내는 나침반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려 한다”며 “거대한 변혁의 물줄기로서 평등세상 건설, 노동해방을 향한 도도한 역사의 강물과 함께 할 것이며 그 중심에 늘 동지들이 서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한내 출범을 축하하러 온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썩어문드러진 지배계층의 역사를 뒤집어 엎고 민중의 역사를 올바로 바로 잡으라”고 당부했다. 이어 1950년대에 탄광에서 진폐증을 앓다 스러져간 이름 없는 노동자 이야기를 풀어놓은 백 소장은 노동운동 역사를 이야기할 때 전태일 열사 이후만을 생각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기록이 있는 것만 역사가 아니야”라고 일갈했다. 백 소장은 지난 1월 22일 한내 발기인들이 모여 준비위원회를 출범할 때 ‘큰 물줄기 또는 한줄기 냇물’이란 뜻의 ‘한내’라는 명칭을 직접 짓기도 했다.
박창수 열사의 아버님도 “창수도 안양병원에서 두 달 동안 투쟁하고 양산에 묻고 올라왔는데, 얼마 안 가니까 다 잊어버리더라”며 “우리 노동자의 역사가 낱낱이 기록되고 해석되게끔 도와 달라”며 격려했다.
참석자들은 회의에서 △한내-웹(사이버 노동운동역사자료실)의 안정화 추진 △노동운동진영과 사회운동진영에 인식 확산 △수주 프로젝트의 수행 및 연기구반 조성 등을 목표로 하는 사업계획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역시 만장일치로 제정된 회칙은 전문에서 “우리는 노동자 투쟁이 사회변혁과 역사진보의 원동력임을 확인하며, 전노협과 노동열사 정신을 계승하여 노동자 역사를 바로 세우고 노동운동의 전망을 열어가기 위해 ‘노동자역사 한내’를 건설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대표-사무처장으로는 준비위원회 대표와 사무국장을 맡아온 양규헌, 이승원 씨를 각각 선출했으며 권승복, 김원, 김진순, 김하경, 박성인, 유경순, 이승원, 이종회, 이호동, 임성규, 임영일, 정경원, 조희주, 최종진, 허영구 등 23명의 운영위원도 함께 뽑았다.

 

‘노동자 계급투쟁 100년’ 전시-공연 펼쳐


창립대회에 앞서 한내는 오후2시부터 ‘노동자 계급투쟁 100년을 기억하라’는 주제로 다채로운 기획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사진으로 보는 노동자역사’는 1903년 하역작업 중인 부두노동자부터 2008년 뉴코아 이랜드 투쟁까지 노동자역사 100년을 사건사진으로 추려 전시했다. 전시된 사진 30점은 박준성 노동교육센터 부대표와 유경순 연구위원장이 추리고 사진 설명을 붙였다. 정경원 자료실장은 행사장 양쪽 벽면을 가득 채운 사진들의 역사적 의미와 선정 배경을 일일이 설명해 이해를 도왔다. 정 실장은 “투쟁 가운데 조직적 결집이 이루어진 의미가 있거나 지역 또는 전국적 의미를 갖는 사건, 정세를 돌파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투쟁 등을 고려해서 골라낸 사진들”이라며 “그러나 여기 전시되지 않은 사건들이 중요치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고 강조했다.
행사장 한켠에서는 ‘머리띠에서 깃발까지, 노동운동 만물상’이 펼쳐졌다. 투쟁현장을 찍은 사진, 품에 지녔던 반지나 배지, 땀에 젖은 머리띠부터 문선대 티셔츠, 투쟁의 상징인 깃발, 극한 투쟁을 벌이던 노동자들의 혈서 따위가 전시됐다. 전시된 전노협 깃발, 현판, 상징마크에서는 그동안 소중하게 보관해온 이들의 애틋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났다. 투쟁 현장마다 맨 앞에서 휘날렸을 마창노련 선봉대 깃발은 직접 손으로 그린 것이어서 전시장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전노협 당시 재정 마련을 위해서 판매된 양말도 전시됐다. 한가운데 전시된 전노협백서는 한내 출범을 가능하게 했던 고 김종배동지(전 전노협백서 발간팀장)의 유작이기도 하다. 이번 만물상 기획과 설명을 맡은 박재범 운영위원은 “지난 자료나 기념품을 갖고 계시다면 꼭 한내로 보내 달라. 지금 당장 보내지 않더라도 절대 버리지는 말아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노래로 부르는 노동자역사’라는 공연도 열렸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노동자의 삶과 정서를 표현한 노래를 통해 노동자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이야기한 이번 공연 기획과 연출은 노동문화 활동가 이은진 씨가 맡았다. 노래는 서울지하철노조 노래패 ‘소리물결’, 사회보험노조 서울지역 노래패 ‘청년’, 노래 활동가 연영석이 직접 불러 감동을 더했으며, 투쟁 현장에서 항상 함께해 온 ‘자유’가 기꺼이 음향을 맡았다.

 

지금이라도 출범했다는 것은 정말 다행

                          

부대행사는 어린아이, 연구자, 활동가, 현장노동자 등 150여 명이 둘러봤다.
한창 투쟁중인 기륭전자 조합원들도 현장을 찾았다. 전시장을 둘러본 최은미 조합원은 “투쟁하고 있는 우리 기륭전자도 유인물, 소식지, 현수막, 손수건, 수건 다 지저분한 거 버리고 있다”면서 “집에다 보관해뒀다가 후손에게 줄 수 있도록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느낌을 전했다.
일본 치바상과대학 김원중 교수는 한내 창립행사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서울까지 날아왔다.
아들 손을 잡고 찾아온 서울지하철 노동자 최병윤 씨는 “그동안 노동자들 역사를 기록하고 관리하고 이용하는 주체는 정작 노동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한내가 만들어져서 기분이 너무 좋다”고 활짝 웃으며 “한내가 현재 노동자뿐 아니라 예비노동자에게 활용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때 세 살이었다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 안그라미 씨는 “학교에서 배우던 역사가 그른 역사였다는 것을 활동하면서 많이 보고 들어왔지만, 오늘은 현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함께 사진을 보니 더욱 감동적이다”고 한다. “투쟁 과정에서 쓴 혈서를 보관한 것을 보며 자료 보관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는 안 씨는 “특히 요즘은 정부 기관에서 돈 받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풍토인데, 전노협이 재정사업했던 물품들을 보니, 독자적인 재정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느껴져 너무 좋았다”고 밝혔다.
노동자의 힘 활동가 박정호 씨는 “지금까지 봐온 경험 중 가장 감동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박 씨는 “역사는 기록하는 자만의 것이라는 말이 있던데, 이제 비로소 노동자계급의 역사를 노동자 스스로 기록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한내 출범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런 단체가 오늘에야 출범한다는 게 안타깝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출범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또 “발기인이나 준비위원으로 참여한 분들이 돈이 많은 분들이 아닌데도 거금을 내서 주체로 나서준 데 존경을 표한다”며 “노동자 전체가 함께 써 나가는 역사로 발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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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7 17:50 2008/08/27 17:50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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