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종주기

2005/06/05 00:25

### 2002년 6월29일~7월1일

 

월드컵 4강 진출의 혜택을 나까지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우리 훌륭한 정부는 노동절을 5월1일로 바꾸는 것보다 흔쾌하게, 그리고 시원스럽게 7월1일을 임시공휴일로 선포했다. 그것도 ‘결승 진출할 경우’라는 치사스러운 단서조항까지 과감히 삭제해 버림으로써 나에게 한국팀 준결승전 응원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준 동시에 연휴라는 엄청난 보너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내 주위에 있는 선수들이 대개는 바쁘거나, 게으르거나, 낚시를 더 좋아한 관계로 산행팀 규합은 공휴일에 집회 조직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단독산행이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에서 잠퍼자기냐 기로에서 고민하다 결국 달랑 두명이서 덕유산 종주를 감행키로 했다.

6월29일 밤 11시30분, 영등포역에서 전주행 열차를 탔다. 선배 부친상에 얼굴 내밀러 갔다가 소주를 한병 반이나 들이킨 덕에 열차 안에서 나는 쿨쿨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나의 코를 비틀 것인가, 깨울 것인가 고민 끝에 그냥 참았다고 전한다. 술마신 날 저녁 내가 코를 골더라는 증언은 이전에도 여럿이 한 바 있다. 어쨌든 정신없이 자던 나는, 정신 차리고 있던(엄밀히 말하면 소음 때문에 잠들지 못한) 동료 덕에 무사히 전주역에서 내릴 수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새벽 3시5분. 주위는 캄캄하고, 도착한 열차가 쏟아낸 인간들을 실어나르러 온 택시만 정류장으로 속속 들어왔다. 어쨌든 터미널쪽으로 가보기로 하고 우리는 택시에 올라탔다. 장계로 가는 첫차가 아침 6시10분에 있다는데 3시간이나 남은 셈. 기다렸다가 첫 차를 타자니 남은 시간도 애매하고, 그만큼 산행을 늦게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이 남았다. 택시 운전수에에 따르면 장계까지 택시요금은 3만5천원. 우리는 내친 김에 장계까지 갔다. 장계에 도착하니 새벽 4시가 조금 넘었고, 운전수는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육십령은 어디 붙어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읍내 한가운데 내려주길래 “하다못해 터미널까지라도 가자”고 했드니, 터미널이 따로 없단다. 헉. 다행히 그 택시를 내리자마자 또다른 택시가 지나간다. 불러세워 육십령을 불렀더니 1만5천원. (나중에 덕유산에서 만난 또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은 1만원 냈다며 우리더러 바가지 썼다고 불쌍해 했다.)

육십령에 도착했다. 백두대간이 이어지는 곳. 큰 도로 가에 덜렁 휴게소가 하나 있는데,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문을 열지 않았다. 어디선가 부스스한 아저씨가 나타나 “대간 타세요?”라며 묻는다. (이 선수, 나중에 덕유산 오르며 계속 만나게 된다. 산행에 앞서 야영을 하다 일어난 순간이었단다) 백두대간을 타는 것은 아니고, 그냥 덕유산에 온 것이라 설명하고 산행 준비를 갖췄다. 큰길로 다시 나와 육십령 입구로 들어가려고 보니 휴게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슈퍼가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물과 오이를 사서 채우고 진정한 산행을 시작했다.

 


6월30일 새벽 5시. 아직 주위는 어둡다. 30분 가량 산을 타다보니 주위가 서서히 밝아온다. 그런데 일기예보대로 날씨는 맑지 않아서 주변이 온통 안개 뿐이다. 울창한 나무들은 이슬에 흠뻑 젖어 서서히 신발과 옷이 젖어든다. 지도에 따르면 할미봉이 나타날 때가 됐는데, 이정표가 없어서 알 수가 없고, 안개와 구름으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가파르게 오른 봉우리에 앉아 이게 할미봉이려니 하고 앉았는데, 주변이 하얗다. 구름, 안개,,, 그런데 어느 한순간, 바람이 휘익~ 불더니 주변의 안개가 금새 걷혔다. 정말 장관이다. 어느순간 드러난 산자락과 그 아래 풍경. 그러나 잠시. 다시 안개는 그들을 숨긴다.

 


한참을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난 좁은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계속했다. 두명의 남자가 우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

7시. 우리는 간만에 나타난 널따란 곳에 깔판을 깔았다. 두명의 남자는 결국 우릴 앞서갔고, 우리는 라면 끓여먹고, 담배 태우고 여유를 부리다 8시에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8시45분쯤 덕유교육원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다시 15분쯤 가니 헬기장이 나타났다. 하염없이 구름 위를 걷는다. 육십령 휴게소에서 봤던 아저씨도 만났다. 일행은 세명인데 삿갓봉을 지나 향적봉 직전에서 빼재로 내려갈 계획이라고 한다. 10시20분에 드디어 첫 이정표를 만났다. 남덕유 2Km, 육십령 6.8Km. 육십령에서 벌써 7키로미터 가까이 온 것이다. 그러나 시간을 따져보니, 무지하게 게으름을 피운 것 같다. 우리는 남덕유가 아닌 남덕유 서봉, 즉 장수덕유산으로 올라서 삿갓봉을 지나 향적봉까지 갈 계획이다. 남덕유 정상보다 장수덕유 정상이 암반이 넓어서 쉬기가 더 좋다고 한다. 이정표를 본 다음 5분가량 더 지나니 전망좋은 봉우리가 나타나서 또 담배 한까치... 사실 너무 잦은 휴식이다. 하핫,,,

11시. 드디어 장수덕유산 정상에 올랐다. 헬기장을 지난 이후 갑자기 몸이 퍼지는 듯 하며 산행이 힘들어졌던 터라 우리는 ‘진정한 휴식’을 결정하고 정상에서 바위 하나씩을 장악하고 잠을 청했다. 찬 바람이 쌩쌩 불다가 어느순간 따스한 햇빛이 비치는 듯도 했다. 눈을 뜨니 12시다. 빠른 사람들은 육십령에서 장수덕유산까지 4시간이면 된다는데, 우리는 육십령에서 산행을 시작한 지 벌써 7시간이 지났다. 쩝...

이젠 좀 열심히 가보자고 결의를 다시고 또 구름위를 둥실둥실 걸어 오후2시에 월성치에 도착했다. 이게 웬걸, 육십령 휴게소에서 만난 바 있는 세명의 아저씨들. 빼재로 내려간다는 계획을 들은 바 있는데, 이 곳에 술판을 벌렸다. 여기서 바로 하산하기로 계획을 수정했다고 한다. 강적이다. 덕분에 우리는 고급 술안주 육포에 소주를 서너잔씩 얻어마셨다. 겨우 열심히 걷기로 결의를 다진 지 불과 2시간만에 우리는 ‘술’의 유혹에 어영부영 30분이나 눌러앉았다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올렸다.

술기운에 허걱거리며 2시30분부터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삿갓봉을 지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등산로는 삿갓봉 옆으로 비켜서 있다. 힘들기도 할 뿐더러, 천지사방이 안개와 구름에 휩싸여서 봉우리에 오른다 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삿갓봉에서 7백미터 가량을 지나 4시30분에 삿갓재 대피소에 도착했다.

 


향적봉은 내일로 미루고 짐을 풀었다. 삿갓재대피소는 공사중이지만, 1층과 2층으로 나누어 사람은 제법 잘 수 있을 것 같다. 요금은 5천원, 담요 1천원이다.

한층을 내려가서 마련된 취사장에서 밥을 지어 먹었다. 오늘 산행 시작해서 아침 7시에 라면 끓여먹은 것밖에 없는 터라 배를 주먹으로 치면 등에 멍이 들 정도로 배가 고팠다. 간간히 먹은 참외나 오이, 사탕 덕에 그나마 버텨온 것이다.

밥을 짓고 있는데 옆 사람들이 이래저래 아는 척을 한다. 어떤 아줌마는 우리가 갖고 있는 ‘영진산악’ 주머니를 보더니, 영등포에서 왔냐고 묻는다. 자기가 영진산악 아저씨와 동갑이며 친하고, 일본인들 암벽선생이라고 소개한다. 또 다른 부부는 아현동 살고 아저씨는 당인리발전소에 다닌다며 멸치볶음이며, 상추 따위를 건넨다. 어떤 아저씨는 아이들 둘과 아내를 데리고 왔는데, 계속 다른 팀들의 대화에 끼어서 덕유산이 어떻고 차편은 어떻고 약간은 잘난 척이다.(그런데, 이 선수 나중에 밥 먹고 나서 보니, 퐁퐁이며 치약이며 비누를 들고 설친다. 실망~)

정말 배불리 맛있는 밥을 먹고, 황도에 소주 한잔과 담배 한까치. 내일 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하기로 굳게 결의하며 저녁 9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역시나 결의는 결의대로 끝나고 7월1일 아침 6시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밥먹고, 짐싸고, 빠트릴 수 없는 화장실 업무까지 마친 뒤 6시50분에 삿갓재대피소를 출발했다.

조금 가다보니 퐁퐁 따위를 들고 돌아다니며 치약으로 양치질을 일삼았던 바로 그 일가족이 앞에 나타났다. 조금은 힘들지만 우리는 그 팀을 따돌렸다. 히히. 삿갓재에서 2Km가량 가면 있는 무룡산 정상에 오른 것은 7시50분. 오늘은 어제보다 이슬이 더욱 많아서 바지는 거의 다 젖고, 웃옷까지 젖어든다. 다시 50분쯤 가니 돌탑이 나타났다. 향적봉까지 6.2Km 남았다는 이정표도 있다. 음... 오늘 산행은 나름대로 순조롭군... 흐뭇해하며 내친김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9시30분에 드디어 동엽령. 2시간 40분동안 4.2Km 가량 걸은 셈이다. 역시나 주위는 안개와 구름. 안개비가 계속 안경과 뺨에 달라붙는다. 웃은 물론 몽땅 젖었고, 신발 속까지 물이 차서 철벅거린다.

15분쯤 더 가다가 10시까지 참외를 깎아먹으며 쉬었다. 10시5분에 칠연삼거리(동엽령에서 0.9Km)에 도착했고, 10시50분에 송계삼거리(칠연삼거리에서 1.3Km)에 도착했다. 계속 오르막길이니, 그리 늦지는 않는 셈이다. 계속 내달려 중봉(송계삼거리에서 1Km)에 오르니 11시30분이다.

중봉은 꽤 넓은 듯 한데, 안개 때문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중봉을 조금 지나니 덕유평전이 나오고 향적봉대피소에서 100m가량 오르니 중봉에서 1Km거리에 있는 향적봉이다. 시간은 낮 12시 정각.

산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은 많지 않았는데, 향적봉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다. 대개는 백련사쪽으로 올라오기도 했지만, 배낭도 없이 샌들을 신은 채 선그라스를 낀 가벼운 차림의 사람들이 무척 많다. 구천동에서 곤돌라가 다닌다고 하더니만, 조금 황당하다. 향적봉 정상에 ‘향적봉’이라 새긴 바위가 있는데,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치들은 대부분 샌들을 신고 (산이 아니라 곤돌라를 타고) 올라온 자들이다. 떠들기는 또 어찌나 떠들던지.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자들은 일순간 어디로 가는지 금새 또 어디론가 몰려가 사라졌다. 그 중에 한명은 “야, 필름 몇 방 남았냐? 중봉도 바위 많아서 괜찮다든데, 거기가서도 찍자”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마치 진정한 산악인인양 혀를 끌끌 차며 그들을 일별한 뒤 라면을 끓여먹었다.

오후 1시에 향적봉을 출발해 백련사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이곳 길은 장난이 아니다. 양말과 신발이 온통 젖어서 내리막길이 더욱 힘든데다, 온통 급경사에 계단들이다. 그렇지만 덕유산 종주가 끝나간다는 으쓱함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더 가야 하냐는 걸 물어올 때마다 자신있게 조언해주며, 여유롭게 산을 조금씩 조금씩 내려선다.

오후2시10분쯤 백련사에 도착해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발도 씻고, 오이도 깎아먹고, 2시30분쯤 삼공리 매표소를 향한다. 이제는 구천동 계곡을 따라 포장된 길이다. 가끔 계곡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무척 지루한 길이다. 대개는 덕유산 종주를 할 때 삼공리에서 출발해서 남덕유를 거쳐 영각사로 내려간다는데, 삼공리에서 출발해 이 길로 산행을 시작하려면 무척 지겨울 것 같다.

삼공리 매표서에 도착하니 오후4시다. 드디어 덕유산 종주를 마쳤다.

오후4시30분에 버스를 타고 무주로 나가(구천동-무주 2,700원, 25분가량) 무주에서 다시 동대전행 버스를 탔고 (4,800원, 2시간30분 소요) 대전에서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구름위에서의 36시간,,, 산위에서 코밑에 펼쳐질 산자락들과 저 아래 아득한 깊은 산골들을 볼 수 없었다는 점은 조금 안타깝지만, 온통 구름위에서만 36시간동안 떠다녔다는 것도 괜찮은 일이었다. 게다가 할미봉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순간이나마 안개와 구름이 걷힌 뒤 느닷없이 드러났다 숨어버린 수줍은 산자락도 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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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 00:25 2005/06/05 00:25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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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15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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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유의 그 구름 생각나네...
  2. 2006/09/16 12:0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작년 덕유 종주하다가 태풍에 호되게 당했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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